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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가구의 ‘건강’을 위한 제안

<반다의 질병 관통기> 1인가구의 언어와 경험을 반영하라


※ 질병을 어떻게 만나고 해석할 지 다각도로 상상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질병을 관통하는 지혜와 힘을 찾아가는 <반다의 질병 관통기> 연재입니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1인가구는 일반적이고, 다양하다

 

“1인 가구, 신(新) 건강 취약계층! 

혼밥, 염분 섭취 비율 높고 비만과 심혈관계 질환 높인다. 1인가구는 만성질환비율, 입원률, 우울 의심률이 다인가구보다 높다. 혼밥에서 고독사까지 1인가구 문제, 어떻게 볼 것인가?”

 

저런 기사를 볼 때마다 좀 답답한 기분이 든다. 저기서 말하는 1인가구는 누구일까? 1인가구는 굉장히 다양하다. 연령이나 경제력에 따라 크게 다르고, 1인가구 기간, 1인가구가 된 계기, 주거가 임시적인지 장기적 삶의 형태인지에 따라 삶을 꾸려가는 태도나 질이 다르다. 당연히 자기 돌봄 능력과 태도가 상이할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혼밥(혼자 먹는 밥)이 주된 일상이라고 하더라도 1인가구 주거 기간에 따라, 인스턴트 음식과 신선한 음식 섭취 비율이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성별, 연령, 경제력에 따라 건강을 관리하는 양상이나, 자신을 돌보는 태도도 상당히 다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저런 기사는 1인가구 내부의 차이를 지우고, 1인가구가 단일한 특정 집단인 것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 1인가구 통계 ⓒ이미지 제작: 조짱

 

때로 저런 식의 기사가 답답함을 넘어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아직도 1인가구 자체를 문제적 시선으로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1인가구를 다룬 기사를 보면, 1인가구의 삶은 건강하기 어렵고, 1인가구 그 자체가 취약계층이라는 관점이 전제된 경우가 아직도 많다. 물론 1인가구 중 빈곤층 비율이 높고, 적극적 돌봄이 필요한 노인가구 등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1인가구 자체가 취약계층인 건 아니다.

 

1인가구 자체를 관리대상 취약계층으로 보는 건, 다인가구 중심 사고방식의 연장이다. 무엇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여성들이 비(非)민주적인 가족으로부터 독립하고, 불평등한 결혼 제도로부터 비혼(非婚)을 선택하면서 1인가구가 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통계를 볼 때 더욱 문제적이다. 1인가구 자체를 문제적 취약계층으로 보는 시선은, 여성의 적극적 삶의 선택과 의지를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혼제도 안에 있는 다인가구 여성에게도 1인가구라는 주제는 멀지 않다. 직장, 학업, 이혼 등의 이유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성별 평균 수명 차이로 인해 남편과 사별 이후 평균 4-7년 정도를 1인가구로 사는 여성노인이 많다. 1인가구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나 정책은 여러모로 여성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물론 성별을 떠나 1인가구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나 정책, 복지 서비스는 당사자에게 삶의 만족도는 물론 안전을 포함한 건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현재 한국에서 1인가구는 전체 가구 중 가장 일반적인 형태가 되었고 그 수는 지금도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지만, 1인가구라는 정체성 자체가 여전히 소수자 위치에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나마 몇 년 전에 비하면, 1인가구를 화려하고 자유로운 싱글과 어두운 단칸방에서 고독사하는 비극의 주인공으로 그리던 양극단은 다소 벗어난 것 같다. 그리고 1인가구를 임시적인 어쩔 수 없는 삶의 형태로 그리거나, 1인가구의 삶은 어려우니 결혼(재혼)해서 가족을 이뤄야 한다는 식의 일방적 이야기도 언론에서나마 상당히 수그러든 것 같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무급 가사노동’이 전제된 가구의 건강

 

이제 본격적으로 1인가구의 건강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 최근 1인가구를 주제로 한 뉴스를 검색해 보면 주로 안전, 빈곤, 주거를 포함한 ‘건강’ 이슈를 중심으로 조망 되는 내용이 많이 보인다. 인스턴트나 잦은 외식 형태의 혼밥으로 인한 위장질환이나 고혈압, 부적절한 주거 환경으로 인한 수면부족이나 건강저하, 외로움으로 인한 정신건강 위협 등이 자주 등장한다. 어쨌거나 1인가구는 건강 취약계층이라는 주장이다.

 

나는 아직까지 1인가구 내부의 다양한 차이를 정밀하게 반영한 건강, 질병 통계를 본 적이 없다. 그래서 1인가구 평균 건강이 실제로 훨씬 취약한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하지만 우리사회 제도와 문화가 다인가구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1인가구가 건강 면에서 취약할 가능성은 높을 수 있다고 본다.

 

▶ 각국의 성별 가사노동 시간. 한국남성의 수치가 단연 눈에 띈다. ⓒ이미지 제작: 조짱

 

그리고 만약 실제로 1인가구보다 다인가구의 건강 평균이 더 높다면, 그건 복합적 요소가 작용한 결과일 게다. 특히 다인가구의 건강 평균을 높이는데 절대적 기여를 한 건, 여성들의 일방적 노동이다. 한국남성의 돌봄노동, 가사노동 시간이 세계 최하위 수준이고, 맞벌이 부부도 큰 예외가 아니라는 통계를 보면 여성들의 ‘독박 돌봄노동·가사노동’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다인가구 안에 있는 여성들은 가족 구성원들이 인스턴트 음식을 먹거나 외식을 하지 않고 집밥을 먹게 하기 위해, 장을 보고 음식을 조리하고 식사 이후 설거지 및 음식 관리 등의 노동을 수행한다. 그 덕분에 신선한 음식이 식탁에 오르고, 누군가는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그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또한 가족 구성원의 건강에 이상이 없는지 일상적으로 상태를 살피고, 적절한 영양제를 챙겨주는 노동도 여성의 성역할에 포함되어 있다. 이외에도 가족이라는 집단 자체를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정서적, 물리적 노동이 필요한데 그 대부분도 엄마, 아내라는 이름으로 여성에 의해 수행된다.

 

뒤집어 말하면 1인가구가 건강에 취약한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집에 ‘엄마’나 ‘아내’가 없기 때문인 것 아닐까? 역사적으로 지금과 같은 ‘임금노동’ 자체가 출근은 노동, 귀가는 쉼을 전제로 한 형태다. 그리고 집이 쉼의 공간일 수 있었던 건, 돌봄노동이나 가사노동 같은 재생산 노동을 무료로 수행하는 ‘여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사 이래 1인가구가 대거 출현했고, 그들에겐 재생산 노동을 무료로 수행해줄 ‘여성’이 ‘집’에 없다. 현재 1인가구는 임금노동부터 돌봄노동, 가사노동까지 모두 혼자서 수행해야 한다.

 

사실 1인가구는 그 누구보다 자기돌봄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많은 경우 열심히 그 노동들을 다 수행해보려고 시도한다. 하지만 퇴근 이후, 자신의 적절한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음식조리, 청소, 세탁 등을 할 시간이 없는 경우가 많다. 혹은 시간은 있다 해도 한국은 직장의 노동 강도가 워낙 높다보니, 퇴근 이후 여분의 체력이 남아 있지 않은 경우도 많다. 건강을 위해 쾌적한 생활공간을 유지하고 질 좋은 음식을 챙기는 게 쉽지 않다.

 

이렇게 건강관리에 필수적인 것도 수행하기 어렵다보니, 결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는 소소한 것들은 방치되기 일쑤다. 허리가 아프지만 당장 일상에 지장이 있는 건 아니어서 치료를 미루거나, 간간히 AS맡겨야 할 전자제품, 갈아야하는 형광등, 관공서나 은행에 방문해서 처리해야 할 일 같은 것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결국은 그냥 몇 달씩 불편함을 감수하며 지내기도 한다. 삶의 질이 떨어진다. 물론 경제적으로 부유하거나, 내공이 단단한 1인가구는 상황이 다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1인가구는 그 모든 노동을 혼자 다 수행하는 게 버겁게 느껴지기 쉽다.

 

1인가구 ‘현실’에 비해 너무 빈약한 ‘정책’

 

사실 이렇게 다양한 노동을 다 수행하기 어려운 현실이, 1인가구 당자사에게만 부담스러운 건 아닌 것 같다. 가볍게 검색만 해봐도 여러 연구소, 지자체 등이 발행한 1인가구 관련 연구 자료가 무척 많다. 이토록 많은 공적 자료가 생산되고 있는 건 ‘퇴근이후 집에서 잘 쉬고, 아침이면 질 좋은 노동력이 되어 직장에 공급되는 시스템’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사회적 불안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 많은 자료 중에서 1인가구 ‘대책’에 관한 내용을 보면, 1인가구의 건강저하와 고독사 등에 대한 ‘사회적 처리 비용’을 계산하고 그에 맞는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상당히 보인다. 1인가구가 고위험군 취약계층으로 전락해서 사회적 자원과 비용 소모가 상당해 지는 것에 대한 염려와 경계도 느껴진다.

 

▶ SNS에서 혼자 사는 여성의 안전 문제를 제기한 #이게_여성의_자취방이다 해시태그 사진

 

그래서인지, 최근 지자체 복지와 행정의 주요 이슈는 1인가구라고 한다. 실제 1인가구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많고, 그에 따라 1인가구 정책이 수립되기도 한다. 서울시 기준 1인가구 정책을 살펴보니 여성안심택배, 소형 쓰레기봉투 제작 보급, 식당에 저염식단 권장 등이 있다고 한다. 그 외에 소형주택 보급 사업이나 주거비 지원 사업 같은 것도 있는데,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해서 실효성이 아직은 미미해 보인다.

 

이 사업들이 다 나름 의미 있어 보이지만, 1인가구 현실에 비해서는 너무나 ‘취약’하다. 아쉽다. 혹시나 해서 1인가구 정책 제안에 대한 여러 자료도 읽어 봤는데, 역시나 아쉬웠다. 1인가구에 맞는 정책을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자료들을 볼 때마다 갑갑한 마음이 쌓여왔던 터라, 이 공간을 빌어 몇 줄 적고자 한다. 오랜 1인가구로서, 그리고 1인가구의 건강은 사회정책, 복지와 긴밀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으로서 최소한 두 가지는 꼭 언급하고 싶다.

 

모든 정책의 ‘가구별 영향평가’가 필요하다

 

첫 번째로, 1인가구 정책과 관련해서 특화된 서비스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는 기존 정책이 다인가구와 1인가구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는 게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마치 성별영향평가(gender impact assessment), 성인지 예산제도(gender sensitive budget)가 시행되는 것처럼, ‘가구별 영향평가’ 같은 제도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사실상 우리 사회는 다인가구 중심의 제도만 실제해왔기 때문에, 1인가구는 사회의 보편적 정책으로부터 다양한 배제와 소외를 겪을 수밖에 없다.

 

이미 이슈가 되었던 두 가지. 즉, 조세제도가 부부나 자녀 혜택 중심이라서 결과적으로 1인가구나 비혼인구들이 사실상 ‘싱글세’를 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주거 관련해서 청약 가산점이 신혼부부, 다자녀 중심이라 1인가구에게 불리하다는 것 등은 극히 일부 사례일 거라고 본다. 이같은 사례가 여러 정책과 제도 안에 수도 없이 있을 것이다. ‘가구별 영향평가’ 제도 같은 것을 도입함으로써, 1인가구를 취약계층으로 밀어내는 기존 사회 제도의 개선을 기대해볼 수 있다.

 

▶ 성별영향평가 제도에 대한 설명. ⓒ출처: 여성가족부 

 

또한 앞으로 새롭게 제도를 도입할 때도 ‘가구별 영향평가’가 적용되길 바란다. 이를테면 나는 건강권과 관련해서 무상의료 실시와 함께 상병수당(아프거나 다쳐서 갑자기 일을 하게 될 수 없을 경우 지급되는 수당) 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상병수당은 경제적 파트너가 없는 1인가구에게 더 절실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1인가구가 건강 취약계층이라면, 국민건강을 위해 시행되어야 할 여러 건강 제도 중에서도 상병수당의 우선적 도입을 고려할 수 있으리라 본다.

 

두 번째로, 1인가구가 장기적으로 건강하기 위해서는 가족 안에 묶어 놓은 돌봄노동, 가사노동을 사회화해야 한다. 앞서 언급했듯 임금노동, 돌봄노동, 가사노동을 1인이 모두 소화하기란 사실상 무척 벅차다. 대체로 어느 한쪽을 포기하기 쉬는데, 처음엔 가사노동을 그다음엔 돌봄노동을 포기할 가능성이 많다. 그런 현실이 개인의 건강 저하와 사회적 노동력의 질 저하를 가져오는 건 명백하다.

 

물론 돌봄노동, 가사노동의 사회화는 장기적 전망과 체계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천리길도 한걸음부터라는 태도로, 작은 것부터 시도해 보면 좋겠다. 최근 지자체에서 1인가구 대상으로 ‘사회적 가족’ 형태의 네트워크를 만들거나 소셜다이닝(SNS를 통해 만난 사람들이 식사를 함께하는 것) 사업을 한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그런 사업을 왜 지자체가 하는지 의아했다.

 

오히려 지자체는 보건소를 이용한 건강관리, 일상 돌봄 서비스가 골목골목까지 스며들게 하는 정책을 개발하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전에도 이 지면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집 인근에서 간단한 간호간병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제도를 개발하면 좋겠다. 1인가구들이 가장 어려움을 느끼는 상황 1위가 ‘아플 때’라는 통계가 여러 보고서에서 제출된 것으로 안다. 병원에 입원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일상적 돌봄이 필요한 상태일 때,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사회적 서비스가 거의 없다. 간병인을 고용할 수 있지만, 1인가구 절반이 빈곤층임을 생각할 때 중증질환이 아닌 한 사실상 쉽지 않다.

 

또 하나는 1인가구 주거 계약 옵션에 가사노동이 포함되는 경우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나의 지인이 필리핀 보라카이 원룸에 살고 있는데, 그 집의 계약 옵션이 1주일에 한 번씩 헬퍼(helper)가 방문해 청소와 세탁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한다. 원룸 건물이나 소형주택 밀집 지역을 중심으로 구체적 사업 모델을 개발해볼만 하지 않을까 싶다.

 

1인가구의 대거 출현은 인류의 새로운 실험이 될까

 

건강이나 질병은 개인이 어떤 사회적 조건 하에서 살고 있느냐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다. 특히 1인가구처럼 사회복지 서비스에 민감하게 영향받을 수밖에 없는 집단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1인가구의 건강과 안녕을 지킬 수 있도록, 1인가구의 경험과 언어를 반영한 사회정책과 복지를 기다린다.

 

글을 마무리하려고 보니, 1인가구의 대거 출현은 ‘인류의 새로운 실험’일 수 있다는 어떤 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가 이 실험을 잘 진행한다면 돌봄노동과 가사노동이 탈가족, 탈젠더화 된 사회를 사는 첫 세대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페미니스트로서, 1인가구로서 감격스런 순간일 것 같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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