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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여성들의 ‘건강두레’를 상상하다
<반다의 질병 관통기> 1인가구, 정서적 공동체가 필요해
※ 질병을 어떻게 만나고 해석할 지 다각도로 상상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질병을 관통하는 지혜와 힘을 찾아가는 <반다의 질병 관통기> 연재입니다. -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한곳에 살지 않아도 함께 살아가는 친구들
혼자 살다가 아프면 어떡할래!
글쎄,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누군가 알려주면 좋겠다. 그런데 저런 말로 협박하는 이들 일수록 답을 가지고 있을 리 없고, 오랜 1인가구로 살아온 나도 잘 모르겠다. 이따금 나에게 1인가구로서 투병 기간을 어떻게 보냈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뭔가 팁이라도 있을까 싶어 약간 기대감을 품고 하는 질문인 것 같은데, 미안하게도 상대에게 힘 빠지는 답을 하게 된다. 한창 아프던 시기는 애인과 함께 살았다. 그리고 그때 연애중이 아니었다면, 친구와 살았을 가능성도 높다.
당시, 친한 친구가 혼자 건강을 보살피는 게 힘들 테니 함께 살자는 제안을 했었다. 하지만 이미 애인과 살기로 결정한 직후라, 마음만 고맙게 받았다. 그리고 이후에도 귀농이나 귀촌한 친구들로부터 공기 좋은 곳에 와서 요양하라며, 빈방을 정리해 놓겠다는 제안도 받았다. 아무리 오랜 친구사이라고 해도 아픈 이와 함께 사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여러 제안에 마음이 뭉클했다.
그리고 실제 그 친구들과 함께 살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정서적 지지는 물론 현금부터 농산물까지 생활에 보탬이 될 만한 것들을 지속적으로 보내왔다. 그리고 치료비 마련을 위해, 내 체력이 닿는 대로 할 수 있는 알바 같은 걸 만들어서 꾸준히 챙겨주는 친구도 있었다. 몸이 아프면서, 삶을 혼자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님을 어느 때보다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고마움을 표할 때마다 친구들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서로의 집이기로 했잖아’, ‘우리가 서로한테 보험 가입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우리가 서로의 엄마 인거 아니었나?’ 저 말은 친구들이 독립해서 1인가구로 삶을 시작하거나, 비혼주의자로 자신을 정체화했을 때, 서로에게 좋은 울타리가 되어주자며 나눴던 이야기들이다. 처음 말할 때는 다소 진지한 태도로 했었건만, 사실상 이후로는 집에 문제가 생겨서 잘 곳이 필요하거나, 술값을 내거나, 서로에게 잔소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할 때, 농담처럼 쓰기도 했던 말들이다. 이렇게 우리는 여러 상황에서 한 번씩 서로에게 ‘집’, ‘보험’, ‘엄마’가 되어주고 있다.
사실 우리는 함께 살지도 않고, 연락을 자주하는 편도 아닌데, 그럼에도 서로에게 꽤 괜찮은 울타리가 되어주고 있는 것 같다. 가족을 애정, 돌봄,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관계라고 했을 때, 우리의 관계는 ‘개방가족’에 가깝다고 부를 수도 있을 것 같다. 혈연이나 성애적 관계로 닫힌 가족이 아니고, 오로지 애정, 신뢰, 가치관으로 구성된 열려있는 형태의 ‘가족’.
▶ 친구들과 나의 관계는 ‘개방가족’에 가깝다. ⓒ이미지 제작: 조짱
비혼여성들의 개방가족, 공동체에 대한 실험
나는 이런 1인가구 혹은 비혼주의자 친구들이 주변에 여럿 있으니 운이 좋은 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히 운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회는 1인가구나 비혼 인구를 ‘공동체성을 저해하는 집단’으로 보는 경우가 여전히 많지만, 최소한 내 주변을 보면 1인가구나 비혼주의자들이 지인을 더 살뜰히 챙기거나, 공동체에 대해 구체적 고민을 하는 경우가 흔하다. 대체로 친구들이 페미니스트거나 이런저런 사회운동을 하며 사는 이들이라서, 그런 성향이 더 두드러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그룹에서도 1인가구로 살아온 연차가 길수록, 비혼으로 명확하게 정체화한 지 오래될수록 그런 경향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나의 경우는 대학 때 학생운동을 하며 페미니스트로 정체성이 확립됐고, 페미니즘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비혼’을 비교적 빠르게 선택할 수 있었다. 그 후 여성단체에서 상근하면서 그 선택이 더욱 단단해졌다. 20대 때다.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한 번씩 비혼을 ‘선전·선동’했고, 당연히 그 선전·선동 때문만은 아니지만 주변에 비혼인 1인가구들이 점점 늘어갔다. 아마 시대적 흐름도 있었을 게다. 한국 사회에서 본격적인 ‘결혼파업’ 첫 세대가 1970년대 생 여성들이라고 하니, 딱 나의 세대다. 비혼을 선택한 배경엔 여성의 높아진 교육율과 경제적 자립도, 1990년대 페미니즘 흐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는 비혼을, 1인가구를 적극적으로 선택했지만 혼자 사는 삶을 선택하진 않았다. 우리는 누구보다 ‘따로 또 같이’ 사는 삶에 관심이 많다. 친구 중 한명은 10여 년 전부터 곳곳 공동체를 돌아다니며 살아보고 있다. 공동체를 이뤄서 사는 삶을 충분히 경험하면서, 자신을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유연한 몸’으로 변화시키고, 장기적으로 비혼여성들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또 다른 친구는 농촌에서 1인가구 비혼여성으로 살면서, 가부장적 문화와 맞서는 동시에 지역 주민들과 어떻게 잘 스미며 살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다. 그 외에도 쉰 살이 되면 퇴직금과 적금을 가지고 방이 많은 집을 짓는 게 계획인 이도 있다. 그 집에 머무는 동안은 누구나 ‘가족’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 한다.
나의 경우는 ‘정서적 공동체’에 관심이 많다. 특히 당장 1인가구로서 어떻게 잘 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최근 1인가구의 사회적 고립에 대한 이슈가 부각되면서, 동네밥상 모임이나 동네친구 만들기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 모임도 좋지만, 1인가구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공동체도 필요하다. 1인가구들은 이동의 홀가분함 때문에, 혹은 집값 때문에 주거공간 변동이 비교적 잦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성에 갇히지 않는 정서적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 1인가구 여성들의 공동 돌봄 모임 <건강두레>를 구상해본다. ⓒ원본 이미지 출처: vecteezy.com
1인가구 여성들의 상호부조 모임 어때요?
그래서 생각한 게, 1인가구 여성들의 ‘건강두레’다. 건강두레란, 몸이 아플 때 서로를 정서적으로 보살펴 줄 수 있는 공동 돌봄 모임이다.
이를테면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한 후, 결과를 기다리며 느끼는 불안을 건강두레에서 귀기울여 들어줄 수 있다. 수면 내시경을 했는데 집까지 동행해 줄 이가 필요할 때, 건강두레 성원이 자원해서 함께할 수 있다. 입원을 했는데, 간병인을 고용할 정도는 아니지만 소소한 손길과 정서적 지지가 필요할 때 건강두레에 돌봄을 요청할 수 있다. 물론 그런 돌봄을 받기 위해, 계절에 한번쯤은 자신의 월차나 주말을 건강두레 성원을 돌보는 데 사용할 수도 있다. 돈을 매개로 하지 않는 일종의 상호부조 모임이다.
대체로는 이러한 돌봄을 가족, 친구, 애인과의 관계에서 나눌 수 있겠지만, 사실 그게 마땅치 않은 때도 많다. 무엇보다 1인가구로서 느끼는 건강과 질병에 대한 막연한 불안에 대해, 건강두레라는 안정적인 돌봄 관계를 형성해 놓음으로써 최소한 정서적 위안이 될 수도 있다.
건강두레를 실제 시작한다고 했을 때, 성공적으로 진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굉장히 의미 있는 실험이 될 것은 분명하다. 혈연이나 친밀한 관계가 전제된 ‘배타적 돌봄’이 아니라, 단지 1인가구 여성이라는 공통점만으로 모인 관계, 그 안에서 서로에게 ‘열려 있는 돌봄’을 시도해 보는 것. 이 자체가 갖는 의미가 상당할 거라고 본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에게, 돌봄이 가능한 사람이 적극적으로 보살핌을 제공하고, 그 과정을 통해 나, 타인, 우리라는 경계를 질문해볼 수 있다. 혈연이나 애정으로 엮인 관계가 아니라고 해서, 돈을 매개로 한 돌봄만 가능한 건 아님을 사회적으로 증명해볼 수도 있다. 사실 돈을 매개로 하지 않는 돌봄이, 혈연이나 애정관계 안에서만 이뤄져야 할 필연적, 당위적 이유는 없다. 건강두레에 대한 실험은 ‘함께 돌보는 사회’라는 말을 현실로 만드는데, 하나의 징검다리가 될 수도 있다. 상상만으로도 신나고 흥미로운 일이다!
사실 건강두레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한지는 꽤 됐다. 실제 2,3년 전쯤 한 언론사와 1인가구를 주제로 인터뷰할 때도 이야기했었다. 또 주변에 함께해보고 싶다는 이들도 꽤 있는데, 아직 시작을 못하고 있다. 나의 몸 날씨가 조금 더 안정기로 이동하게 된다면, 가장 먼저 시작해 보고 싶은 모임이다.
▶ 가족이 없어도, 누구나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 ⓒ이미지 제작: 조짱
혼자 살아도 불안하지 않은 사회를 원해
기존 제도에 들어가지 않으면, 이런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는 자원이 생긴다. 생각해보면, 불과 5년, 10년 전만해도 1인가구, 특히 비혼여성에 대한 인식은 지금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단지 비혼주의자라는 이유만으로 기존 ‘가족제도를 위협하는 거 아니냐’는 질문을 불쾌한 시선과 함께 받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나 같은 페미니스트들에게 비혼은 가부장제와 타협하지 않고, 공모하지 않으며, 자신을 지키는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니, 기존 가족제도를 위협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내 대답은 틀린 말이었다.
몇 년 전부터는 다르게 답한다. 당신 말이 맞다, 비혼은 기존 가족제도를 위협한다. 가부장적 가족제도에 들어가길 거부하니, 지금과 같은 불평등한 가족제도가 재생산 되는 것을 위협하고 있다. 개인의 가치를 수용하지 못하고, 가부장적이고, 이성애중심적이며, 여성노동을 착취하며 유지되는 지금의 가족제도가 하루 빨리 균열되길 바란다. 심지어 비혼이면서 1인가구인 이들은 노동시장의 전형적 남성생계부양자 모델마저 위협하고 있다, 라고 말이다.
우리는 이 낡은 가족제도를 위협하면서, 새로운 ‘가족제도’와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런 변화를 가져오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면서 비혼주의자라는 것에, 1인가구라는 것에 더욱 자부심 느끼게 됐다.
사회가 1인가구를, 비혼을 불편한 시선으로 보든 말든 이제 이러한 선택을 하는 이들은 ‘대세’가 되고 있다. ‘혼자 살다가 아프면 어떡할래!’ 라는 협박은 필요 없다. ‘우리가 혼자 살다가 아프면, 사회는 어떡할래?’라고 사회에게 묻고 싶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혈연·친밀한 관계 등으로 배타적 경계를 나누지 않고도 누구나 돌봄 받을 수 있는 사회다. 우리가 원하는 건, 혼자 살아도 불안하지 않은 사회다. (반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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