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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노동을 하는 사람들

<질문교차로 인문학카페36.5º> 지워진 여성의 노동


※ 춘천에서 인문학카페36.5º를 운영하는 홍승은 씨가 기존의 관념과 사소한 것들에 의문을 던지는 ‘질문교차로’ 칼럼을 연재합니다.  Feminist Journal ILDA

 

학교 비정규직 행정직이 하는 일

 

인문학 카페를 오픈하기 전, 나는 한 고등학교에 비정규직 행정직으로 취업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진로를 고민하다 보니, 학생운동을 한답시고 성적관리는커녕 흔한 토익 한 번 본적 없는 내가 들어갈 곳은 마땅치 않았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는 내가 그동안 해왔던 활동을 쓸 수 없었고, 지향하는 가치를 담을 수도 없었다.

 

그래도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고집이 있었기에, 학교 비정규직 노조 활동을 해보지 않겠느냐는 선배의 권유에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퇴근 시간 정확하고 노조 활동도 할 수 있으니까 괜찮겠지. 학교면 다른 곳보다는 깔끔하겠지.’

 

내가 입사한 날, 계약직 교사 세 명이 함께 첫 출근을 했다. 부장 선생님은 우리를 부르더니 나에게 당부했다. “앞으로 승은 씨가 이 선생님들 잘 도와주세요. 교실 잘 청소하고 힘든 일 있다고 하면 무조건 해주고.” 계약직 선생님뿐 아니라 모든 선생님을 보조하는 게 내게 주어진 역할이었다. 내 원래 업무는 각 교과 교실을 관리하는 것이었지만, 업무가 워낙 모호하게 적혀있어서 온갖 일을 다 맡아야 했다.

 

출근한 지 이틀째 되는 날, 나는 떡을 돌렸다. 한 선생님이 전근을 가면서 떡을 샀는데, 그 떡을 나누는 일은 자연스럽게 나와 비정규직 동료에게 주어졌다. 학교에는 교무실이 두 개였다. 내가 있는 교무실에서 꽤 떨어진 앞 건물에 3학년 교무실이 있었다. 나는 동료와 함께 무거운 떡을 들고 다니면서 자리마다 올려놨다. 문제는 학교 내 대소사가 꽤 많다는 점이었다. 적어도 일주일에 두 번 이상 결혼, 전근, 학부형의 선물로 무언가가 자주 오갔는데, 떡이고 빵이고 온갖 먹거리를 나누는 일은 나에게 주어졌다. 그때마다 생각했다. ‘교무실마다 한두 사람씩 와서 가져가면 될 일을 왜 굳이 일을 만들어서 시키지?’

 

학교에서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회의가 있었다. 전체회의 학년회의 교과회의. 그때마다 나는 차와 간식을 준비해야 했다. 하루는 간식을 준비하고 문밖으로 나서는데, 들어오던 남자 선생님들 무리에서 큰 소리가 나왔다. “아, 예쁜 선생님이 주니까 차가 더 맛있을 거 같네.”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껄껄 웃었다. 나만 빼고. 그 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반복됐지만, 나는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 재빨리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교무실 안에 있었지만, 내 자리는 없었다

 

내 직속 상사였던 부장 선생님은 사회복지 대학원 야간반에 다녔다. 본인 자리 바로 앞에 내 자리를 배치하곤 시시때때로 나를 찾았다. 승은 씨, 내가 대학원 과제를 다 못했는데 승은 씨도 대학원에서도 사회복지과였잖아? 이것 좀 도와줘요. 승은 씨, 통계 자료를 좀 찾아줘요. 승은 씨, 승은 씨, 승은 씨. 그렇게 나를 찾던 부장 선생님이 유일하게 나를 찾지 않는 순간이 있었다. 다른 선생님들에게 음료수를 돌리거나 소소한 나눔을 할 때, 언제나 나와 동료의 것은 없었다. “항상 이런 식이야. 부려먹을 때만 찾고, 챙길 때는 쏙 빼.” 오랫동안 학교에서 일했던 동료가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사소한 챙김부터, 회식 자리에도 당연히 우리는 제외됐다.

 

하루는 교무실 자리 배치도를 만드는데 교감선생님이 오더니, 이 사람들은 선생도 아닌데 괜히 헷갈리니까 구석으로 옮겨, 라며 나와 동료의 자리를 구석으로 배치하라고 시켰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학생들과 선생님들 앞에서 굳이 그렇게 표현해야 했을까. 학교에서 내가 그런 존재란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굳이 확인시키는 교감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같은 교무실 같은 학교 아래 있지만, 그들과 나는 달랐다. 나는 유니폼을 입지 않았지만 뚜렷한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학교 내에서 선생님도 학생도 아닌 그 외의 존재였고, 눈에 띄는 순간 아무리 자잘하더라도 무언가를 시킬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어떤 업무를 맡고 있는지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몰랐으므로 그때의 나는 ‘심부름꾼’이라고 스스로 명명했다.

 

그 넓은 건물 중 잠시라도 마음 편히 쉴 한 평의 공간이 없었다. 힘들 땐 사람들의 시선을 벗어나고 싶어서 인적 드문 화장실 변기통에 앉아있기도 하고, 가끔은 교과 교실을 청소한다는 핑계로 국어 교실을 찾기도 했다. 그 교실에는 시 전집이 꽂혀있었는데, 한 권씩 뽑아서 시를 훑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갔다. 그때만큼은 내가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종이라도 치면 행여 학생들이 들어올까 봐 후다닥 자리를 피해야 했다.

 

저녁 6시면 칼퇴근을 할 수 있었고 적지만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되는 날들이었지만, 나는 왜인지 한없이 무기력했다. ‘일과 일상의 분리’라는 말로는 다 담을 수 없었다. ‘이 일은 내가 아니다, 내 삶이 아니다’라고 주문처럼 중얼거려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얼마 안 가 일을 그만두었다. 이후 카페를 오픈했고, 전혀 다른 노동의 세계를 살아가느라 그 시간을 잊고 있었다.

 

추가노동, 감정노동, 돌봄노동 요구받는 여성들

 

▶ 인권오름 제222호, 224호 <청소노동과 청소노동자의 삶> 기획에 실린 윤필의 일러스트.  hr-oreum.net  ⓒ윤필


몇 주 전, 우연한 기회에 한동대 청소노동자 간담회에 참석하게 됐다. “교직원들 자리마다 작은 쓰레기통이 있는데, 그것도 우리가 치워야 해요. 자기들이 할 수 있는 건 스스로 하면 되는데 뭐든지 우리에게 시키려고 하니까… 그 일을 하려면 우리는 30분 일찍 나와서 일을 해야 하거든요.” 한 청소노동자의 증언을 들으며 잊고 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학교에 무밭이 있었어요. 노조가 생기기 전까지 우리 업무 중에는 무밭을 가꾸는 일도 있었어요”, “어떤 건물에는 우리가 쉴 공간이 없어요. 청소하다가 힘들면 학생들이 없을 때 휴게실에 앉아서 음료수를 마셔요. 그러다가 학생들이 오면, 불편할까 봐 얼른 자리를 피해요”, “노조가 생기기 전에는 언어폭력이 심했어요. 처음 노조 만든다고 했을 때 노조는 아무나 만드느냐, 청소나 잘하라던 사람도 있었어요. 만들고 나니까 그런 말 못하던데요. 내가 그 사람들 얼굴 다 기억해요. 끝까지 기억할 거예요.”

 

말씀 한마디를 들을 때마다 온 감각이 열렸다. 익숙한 차별의 감각이었다.

 

차별의 타래를 따라가다 보니 다시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내가 학교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나보다 나은 처지라고 생각했던 계약직 선생님이 정규직 선생님으로부터 폭언을 들어서 힘들다는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학교는 이미 촘촘하게 차별로 엮여있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교장과 교사. 교사와 교사 외 존재. 행정직과 청소노동자.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학교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그렇다.

 

거기에 여성노동자는 기본적 업무 외에도 ‘성역할’을 요구받는다. 차 심부름, 손님 접대를 비롯한 감정노동, 돌봄노동은 으레 여성에게 향한다. 업무 외 추가 노동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노동으로 인정되지도 않는다. 생활의 가장 기본적 토대이지만 천대받는 살림에 대한 인식과도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매일 반복되지만 드러나지 않는 가사노동처럼, 직장에서도 여성의 추가 노동은 손쉽게 지워진다. 주부와 청소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이러한 인식에 발맞춰 당연하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

 

차별이 존재하는 한,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것은 엄마만의, 청소노동자만의,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투명인간을 거부하고 실재하겠다는 사람의 외침은 그래서 언제나 소중하다. 작은 강의실에서 울렸던 청소노동자의 목소리는 내 목소리이기도 했다. 그것은 우리 모두의 목소리여야 한다.

 

“학생들 기숙사 복도에 신발을 신발장에 넣어주기만 해도 우리가 일이 훨씬 줄어요. 안 그러면 하나하나 다 신발장에 집어넣고, 청소하고, 다시 꺼내놔야 하거든요. 그것만 부탁해도 될까요?” 한 청소노동자의 말에 엄마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양말 뒤집지 말고, 입었던 옷은 바닥에 팽개치지 말고 세탁기에 넣어줘. 안 그러면 내가 일을 두 번해야 해.”

 

나의 편리함은 누군가의 불편함을 수반한다. 나는 오늘 얼마나 많은 노동에 기대어 편리함을 누렸을까. 얼마나 많은 차별 속에서 모른 척 편리함을 누렸을까.  (홍승은)  Feminist Journal IL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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