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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를 품은 건 누구일까

<질문교차로 인문학카페36.5º> 페미니스트 딸과 아빠의 대화


※ 춘천에서 인문학카페36.5º를 운영하는 홍승은 씨가 기존의 관념과 사소한 것들에 의문을 던지는 ‘질문교차로’ 칼럼을 연재합니다.  Feminist Journal ILDA 


며칠 전 아빠가 카페에 왔다. 거의 6개월 만에 보는 얼굴. 서로 춘천에 있으면서도 아빠와 나는 잘 만나지 않는다. 아빠도 어색한지 나를 보며 머쓱하게 웃었다. 6개월 전, 내가 겪었던 성폭력과 낙태, 동거 경험을 글로 썼을 때, 아빠는 창피하게 왜 그런 글을 올리느냐고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그 이후로 유일한 연결고리였던 메시지도 차단해서 한동안 아빠와 소통할 수 없었다.

 

나를 보며 웃던 아빠는 이내 볼멘소리로 말을 건넸다. “너는 왜 자꾸 아빠 나쁜 점만 글 쓰냐? 내가 그렇게 나쁘게만 했냐?” 그동안 아빠는 쭉 내 글과 동생 글을 지켜봤다며, 우리 때문에 동네 창피해 죽겠다고 했다. 주위에 친척, 친구, 동료들이 자신을 이상하게 볼 거라면서 “너 그거 사회적으로 한 사람 죽이는 행위야”라며 서운한 기색을 드러냈다.

 

▶ 사랑이라는 이름의 폭력  ⓒ홍승은


– 아빠가 확실히 언어폭력을 하긴 했지. 예전에 승희가 말대꾸한다고 쓰레기통 뒤집어서 머리에 쏟은 적도 있고, 나 잘 때 얼굴에 얼음물 부은 적도 있지. 성적 떨어졌다고….


아빠 - 아 됐고, 그거 말고 내가 잘해준 것도 많잖아. 내가 요즘 창피해서 못 다녀. 무슨 내가 폭력 아빠인 줄 알겠다.

 

– 아빠, 아빠는 폭력 아빠 맞았어. 언어폭력도 심각했잖아. 말끝마다 욕하고, 무시하고, 비교하고. 아빠 그것도 폭력이야.


아빠 – 참나, 그럼 세상 아빠들 다 폭력이게?

 

- 응! 맞아. 나는 세상 많은 아빠가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그래서 내 글은 아빠 개인 탓하려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그렇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 그게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가 용인하는 구조적 문제라는 뭐 그런…. 그래서 댓글들 보면, 남 일 같지 않다는 사람들이 많아.


아빠 – 됐어, 댓글 보니까 아빠보고 사이코패스라는 사람도 있더라. 나 상처받았어.


– 그래서 그 댓글은 삭제했었어. 근데 아빠는 상처를 더 받아야 해. 지금 나한테 따질 게 아니라 뭘 잘못했는지 좀 반성해야지!

 

가끔 엄마를 만나서 아빠 얘기를 할 때면, 엄마는 “그래도 네 아빠는 돈도 꼬박꼬박 벌어오고, 딴 짓하고 다니는 것도 아니잖아. 누구네 집 아빠는 더 하다더라”라며, 막장 드라마에 나올 법한 캐릭터와 비교하며 아빠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라고 말했었다. 엄마의 레퍼토리가 아빠의 입으로도 나왔다. 나 정도면 다른 아빠들에 비해서 괜찮다는 말.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던 건 아니다. 아빠는 (여느 텔레비전이나 주위에서 들은 폭력 가부장의 전형에 빗대어) 알코올 중독도 아니었고, 물리적 폭력을 행사하는 일도 상대적으로 적었다. 경제적으로 필요한 때 지원도 해줬고, 가끔 다정하게 쇼핑을 가거나 외식도 함께 했다. 퇴근길에 맛있는 음식을 사 올 때도 있었고, 우리 딸들이 최고야, 라고 말해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아빠에 대한 우선적인 감정은 ‘조마조마’다. 우리 집은 아빠가 기분이 좋을 때와 좋지 않을 때로 분위기가 극명하게 갈렸다. 아빠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 가족들에게 어떻게 눈치를 줬고 폭력을 행사했는지 나는 몸으로 기억한다. 아빠가 퇴근하는 저녁 6시만 되면 동생과 나는 벌떡 일어나서 책을 읽는 척 책상에 앉아있었다. 눈에 띄지 않으려고 방에 들어가서 쥐죽은 듯 자는 척도 잘했다.

 

내가 여섯 살 때 아빠가 선풍기로 엄마를 때렸던 것, 초등학교 때 멍과 피로 얼룩진 엄마를 보고 눈물 흘렸던 기억도 뚜렷하다. 몇 년 전까지도 나는 ‘매일 때리는 아빠도 있다는데, 이 정도면 양호하지’라고 생각했었다. 누구나 겪는 일쯤으로 여겼었다. 이 문제가 비난 내 아빠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내 가족은 특별히 불우했던 가족이 아니다. 많은 가족 서사에서 당연하게 그려졌던 가부장의 모습을 담고 있는 평범한 가정이다. 그리고 그 평범한 가정이라는 게 얼마나 기울어진 권력을 전제하는지, 가족 구성원의 입장에서 글을 쓰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내 아빠가 유독 더 폭력적이라서 글을 쓰는 게 아니다. 많은 아빠가 자신도 모르게 저지르는 폭력을 성찰했으면 해서 글을 쓴다. “그래도 네 아빠는…”이라며 위안하는 말이 얼마나 많은 고통과 가능성을 억누르는지 밝히고 싶다. 아빠라는 존재도 충분히 서로를 존중하며 사랑하는 관계를 맺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 아빠와 그 외 존재들 ⓒ칼라


아빠가 내게 말했다. “아무튼, 너 이제 내 얘기 쓰지 마.” “싫어, 난 아빠 얘기 쓸 거 아직 한 트럭 남아있어. 책에도 쓸 거야. 아빠가 내 글 보지 마.” “안 돼. 남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그럼 나도 너 치부 쓴다?” “내 치부가 뭐가 있는데?” “많지. 쓴다?” “응 써! 누구 글이 더 공유되는지 봅시다.” “안 돼!!”

 

아빠가 글을 쓰지 말라고 당부하는 동안 나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며칠 전 <한겨례21>에서 낙태와 관련된 인터뷰를 할 때, 아빠가 피임을 잘 안 해서 엄마가 나와 동생을 낳고 세 번 낙태를 한 적 있다는 말을 했었기 때문이다. 아마 며칠 뒤 아빠가 그 기사를 보면, 또 나를 얼마나 원망할까 상상이 됐다. 그렇지만 결혼 후 남성이 피임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기혼 낙태율이 50%가 넘는 사실도 언급했으니, 아빠가 부디 자신의 얘기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많은 남자의 문제구나’라고 생각하고 반성했으면 좋겠다. 아빠 주위의 친구, 친척들도 내 글을 보게 된다면, ‘우리 집’만의 문제로 보지 말고 자신의 자리를 먼저 성찰하고 반성하길 바란다.

 

아빠는 우리 카페에 5만 원을 기부해주고 집으로 돌아갔다. 나에게 아빠는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존재이다. 대다수 가정폭력과 ‘아내폭력’, 나아가 데이트폭력은 이렇게 복잡한 관계와 감정이 뒤섞여있기에 보통의 폭력보다 접근이 어렵다.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해왔던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구분 자체를 무력화시키고, ‘사랑싸움’이라는 명목으로 폭력을 합리화한다.

 

‘오랜 세월 동안 가정폭력은 남성의 성 역할이었다’는 여성학자 정희진의 말처럼, 폭력은 가족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였다. 나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지만, 칼처럼 아빠와의 관계를 재단할 수 없었다. 아빠와 편안한 듯 불편한 듯 타협하며 대화를 나누는 나를 발견하곤, 이런 나의 감정이 가정폭력이 오랫동안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와 같은 선상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빠는 4년 전부터 시를 쓴다. 헤어지고 나서, 아빠가 나를 생각하면서 썼다고 시를 보내줬다. 제목은 <고슴도치>. 아빠는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한다. ‘아빠를 파는 게’ 아니라, 내 아픔을 회고하고 복기하는 과정인데. ‘잘 자라주어 고맙구나’가 아니라 ‘미안하고 반성한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가장 궁금했던 점. ‘고슴도치’를 품은 건 아빠였을까, 다른 가족들이었을까?


<고슴도치>  홍OO (아빠)

 

너 계속 아빠의 나쁜 점만 글로 쓸 거니?

응!

 

아빠가 언제 폭력적이었니?

아빠는 정신적 폭력이거든

 

세상에 진짜 폭력적인 아빠를 못 보았구나

아빠는 내가 중학교 때 전교 50등 했다고 자랑했을 때

큰아빠, 큰고모 아들들은 맨날 전교 1등 했다고 했지 기억나?

 

기억 없는데, 그래서 아빠가 네 글의 주인공이 되는 거니?

응!

 

그냥 적당히 해라

그냥 아빠는 내 글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어

 

졸지에 주인공이 되었다

페미니스트, 딸 덕분에 

그래 애비를 팔아서 잘된다면야

 

딸아, 잘 자라 주어서 그래도 고맙구나   * Feminist Journal IL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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