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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주택공사 ‘아름다운 일자리’ 유감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09. 2. 10. 15:08

▲ 임대아파트 거주 주부들에 일자리 제공키로 
 
주공 임대아파트에 사는 65세 이하 미취업 주부 1천명에게 일자리가 생길 모양이다. 6개월간 하루 6시간씩 월 20일을 일하고, 한 달에 60만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채용된 주부들은 주공이 관리하는 영구임대주택에 사는 중환자·노인·장애인·소년소녀가장을 돌보게 된다고 한다. 청소·세탁·밥짓기를 돕고 함께 병원·약국에 가거나 노인의 말벗이 되어 주며, 소년·소녀 가장의 방과 후 지도 역할도 하게 된다. 주부사원 1천명이 6개월간 돌보는 사람이 무려 2만여 명에 달할 것이라는 계산이다.
 
경기가 어려울 때마다 값싸게 동원되는 여성들 

언뜻 보면 그동안 이어져 왔던 사회적 일자리와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 이 일자리가 주목을 받고 있는 덴 다른 이유가 있다. 40억 원에 달하는 예산을 다름 아닌 대한주택공사 측에서 조달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주공은 사원들의 복리후생비, 즉 건강관리·체육행사·의복비 등 각종 복지 비용을 줄여 그 돈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주공 직원의 복지기금은 지난해 350억 원에서 올해 120억 원으로 3분의 1수준으로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중에서 선뜻 40억 원을 떼어 좋은 일에 나선 것이다. 나는 주공의 엄청난 복리후생비 규모에 먼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만, 이 글의 논지와는 거리가 있으므로 논외로 하겠다. 그보다는 1천명에게 6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제공한다는 일자리가 과연 주공 임대아파트에 사는 주부들을 고려한 처사인지 묻고 싶다.
 
주공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기초생활보장법 수급자인 주부에게 기회를 주겠다고는 하지만, 한달 60만원(4대 보험료 포함) 받고 6개월 동안 일하면 소득이 생기므로, 소득이 생긴 만큼 매달 받는 수급비에서 공제가 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때문에 일한 만큼 소득이 늘어나지 않는데도 기꺼이 일을 하겠다고 나설 사람이 과연 있을지 의문이다.
 
만일 기초생활보장법 수급자들 중 지원자가 없을 경우, 그들은 또다시 일할 의욕이 없는 기생적인 집단으로 매도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차 모집을 마치고 자리가 남을 경우, 2차로는 주공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일반 주부들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겠다고 한다. 경기가 어려울 때마다 여성들을 위한답시고 값싼 노동시장으로 내모는 처사 역시 나는 못마땅하다.
 
2만여 명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성과를 내기 위해 주부들을 값싸게 동원하며 이런 식으로 임시방편적인 처방을 내릴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게 해주는 제도가 진정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전문성 없는 임시방편적 서비스에 감지덕지해야 하나?
 
한편 취업이 된 주부사원들이 돌보게 될 중환자·노인·장애인·소년소녀가장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이는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다. 중환자·노인·장애인·소년소녀가장을 돌보려면 각각의 대상 별로 최소한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사전교육도 없이 파견했을 때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중환자·노인·장애인·소년소녀가장은 자신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받지도 못하면서 하루 3만원의 일당을 받아야 하는 주부사원들의 대상이 되기 쉬울 것이다. 시간당 5천원을 받고 6개월이라는 단기간 동안 일해야 하는 주부사원들에게 직업의식과 헌신성을 요구하기는 무리다.
 
게다가 이번의 결코 아름답지 못한 일자리로 일해 노인·장애인들은 또다시 불쌍하고 비참한 존재로만 집중조명을 받아야 했다. 주공 측에서 이 사업의 배경을 설명하면서 영구임대아파트에는 몸을 제대로 못 가눠 시장에 가는 것은 물론 옷·이불조차 제대로 빨지 못하고 사는 사람이 상당수 있고, 어떤 노부부가 사는 아파트의 수도계량기가 전혀 올라가지 않아 걱정이 되어 찾아가 봤더니 수도요금을 아끼기 위해 인근 상가화장실을 이용하고 물은 페트병으로 떠다 먹더라는 사연을 언론에 전했다.
 
영구임대아파트에 처지가 어려운 노인과 장애인이 살고 있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는 사실이지만, 겨우 6개월 동안 저렴한 서비스를 받기 위해 이 정도까지 비참하게 부각되어야만 하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중환자·노인·장애인·소년소녀가장은 왜 늘 저렴하고 임시방편적인 서비스만 받아야 하는가. 저렴하고 임시방편적인 서비스 이상은 사치라고 여기기 때문일까. 결국 관심의 초점은 중환자·노인·장애인·소년소녀가장에게 어떠한 서비스가 필요한지에 있기보다,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었다는 생색내기에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SBS-TV의 ‘대통령과의 원탁대화’ 말미에서 주택공사 노사가 협의한 위의 내용을 두고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모른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줘 이들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돕게 한다는 취지를 두고 하는 말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노사가 협의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희생하고 이루어낸 일이니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하지만 경제가 끝도 모르게 추락하고 있는 이때, 공기업 복리후생비를 줄여 만들어 낸 예산으로 얼마나 서민생활에 보탬이 될지 의문이다. 그토록 아름다운 일자리는 정부가 앞장서서 긴 안목을 가지고 만들어낼 일이다.일다▣ 김효진의 다른 생각
 
[관련 글 보기] 장애가 뭐길래 김효진  2009/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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