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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의 종부세 감세론과 한국의 여성운동
지난 해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종합부동산세가 사실상 무력하게 됐다. 당시 헌재는 종부세가 일부 위헌이라고 판단한 근거에 대해, ‘부부별산제로 나타나는 개인소유권을 저해한다’고 했다. 헌재의 결정은 개인소유권 중심으로 여성의 재산권을 지지하는 것이어서 여성주의 진영을 당혹스럽게 했다.
그럼에도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는, 이어진 종부세 논란 속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필자 이박혜경(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님은 ‘여성의 재산권’을 둘러싼 여성운동과 페미니즘 담론을 되돌아볼 것을 제안한다. 또 현재 한국사회에서 ‘젠더’정치와 ‘계급’정치가 맞물려 있는 정황을 살펴보고, 페미니즘이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해 묻는다. [편집자 주]
한나라당의 여러 의원들이 발의한 안과 조중동 신문의 사설들, 그리고 개인적 헌법소원을 통해서 문제제기 돼왔던 종부세가 헌법재판소로부터 일부 위헌, 일부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음으로써 해당 조항의 적용이 불가능해졌다. 그 핵심은 과세대상의 세대합산과 1가구1주택에 대한 장기보유에 대한 과세, 높은 세율이다.
2005년 1월에 제정된 종합부동산세의 목적은 “조세부담의 형평”과 “부동산의 가격안정”으로 법문에 진술되어 있다. 부동산의 가격안정과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은 집에 대한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의 논의를 불러일으킨다.
헌재에 의해 종부세의 세대합산은 특히 ‘부부별산제’로 나타나는 개인소유권을 저해하기 때문에 문제라고 지적되었다. 세대합산 과세 문제는 집의 이중적 의미-건물이라는 의미와 친밀한 관계로서의 의미-와 여성의 재산권에 관한 그간의 논의에 대해 생각을 키운다.
집/땅의 재산가치 이전의 윤리적 차원
집은 재생산이 일어나는 장소다. 인간의 삶에서 재생산은 타인과의 유대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인간의 재생산은 모종의 인간관계 구성과 연관되어왔다. 집이 인간의 삶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그것이 단순한 ‘거주 장소’가 아니라, 관계를 지원하거나 분리시키는 ‘삶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집은 때론 건물을 의미하고, 때론 그 안에 거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특히 한국에서 “내 집 마련”이라는 말은 단지 저축과 주택시장에서의 거래행위가 아니라, 도시로의 이주와 비좁은 셋방살이, 절약과 절제로 점철된 삶의 꿈, 빈곤 속에서 갈등과 유대를 나눠온 관계의 역사를 내포한다. 따라서 이 어구는 정서적인 함축과 반향을 가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집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집에 대한 모종의 윤리적 태도를 가진다.
부양가족이 있는 가구주에 대한 아파트 우선분양권과 같은 시장과 공공의 정책이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것은, 집에 대한 이러한 윤리적 태도와 연관되어 있다. 집은 단순히 시장에서 교환되는 상품이 아닌 것이다. 집이 정책의 대상이 될 때, 그것은 단지 재화에 대한 접근이 아니라 친밀성의 관계에 대한 정책적 함의를 갖게 된다.
통합적 가족정책이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가족은 언제나 국가통치의 중요한 대상이었다. 예를 들어 주택정책은 외관상 주택시장에 개입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내용적으로는 관계에 대한 개입이기도 하다. 가족이 정책적 지원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가족이 일차적으로 보살핌의 연대체이기 때문이다. 개인에 대한 지원이 그 개인이 속한 가족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되는 방식일 때, 개인 지원은 더욱 사회적으로 효과가 큰 접근으로 평가 받는다.
부양가족을 가진 개인에게 서민 전세주택자금대출, 분양권, 임대분양권 등에서 독점권이나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은, 보살핌의 유대에 대한 지원의 의미를 갖는다. 개인간의 보살핌의 유대는 개인적인 수혜만이 아니라 사회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맥락이다.
개인 재산권 논리의 파장
‘종부세’ 논란은 집에 대한 시장의 논리와 윤리적 논리의 경합으로 볼 수 있다. 엄연히 교환의 대상이 되는 집에 관하여 완전히 시장의 논리를 배제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집에 대한 윤리적 기대를 간과한 때, 정책의 정의(justice)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장기적으로 조세저항의 강도에 못지않은 윤리적 공황과 해이를 초래할 수 있다.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이라는 목적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집과 관련한 우려되는 역사에 대한 인식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집을 우선적으로 재산이라고 본다면, 지금까지 보살핌의 유대를 지원하기 위해 실시된 주택정책의 정체성은 불안정해진다. 1가구1주택 정책은 다주택 보유에 대한 억제장치일 뿐 아니라, 가구당 하나의 주택을 보급할 수 있는 기반이다.
더욱이 한국사회의 오랜 고질병으로 알려져 있으며, 서민생활의 기반을 위협하는 것이 바로 주택가격이다. 때문에 주택가격 폭등을 불러온 부동산 투기와 부동산의 소수 집중을 막기 위한 정책은 국가정책의 가장 중요한 일부였으며, 중요한 선거공약이었다.
신자유주의 사회의 맥락에서 부동산과 주식 등에 집중된 투기자본의 지배가 강화되고 있지만, 부동산 투기가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그 예외를 두지 않기 때문에 심각하다. 또한 서민일수록 그것으로부터 부정적인 타격을 받는다.
저금리를 기반으로 대출을 받아 제2주택을 구입하여 시세 차액을 올리거나 그것을 시도하는 것이 부동산 투기가 아니라, 중산층 가정의 재산관리 기술(재테크)로 받아들일 만큼 주택에 대한 윤리의식이 희미해진 사회는 윤리적으로 위험하다. 다른 서민들의 친밀한 관계를 위협하는 사회다.
윤리의식의 변화가 아니라 금리인상과 주택가격 하락이라는 시장요인에 의해서 그러한 재테크가 부적절한 것으로 판단되는 지금의 상황도 역시 시장지배의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단지 시장에서 각축하는 행위자들이 될 것인가, 아니면 타인의 필요에 공감하고 우선권을 위해 양보할 수 있는 윤리적 주체들이 될 수 있는가?
집이 단지 개인의 재산이라면, 가족을 단위로 한 주택지원 정책의 기반이 유지될 수 있는가? 헌재의 판결은 종부세의 목적은 부인하지 않으면서 부분적으로 불능화시키는 판결을 내리고 있기 때문에, 이 논란을 피해가기도 한다.
그렇다면 가족은 제1주택을 분양 받거나 서민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때는 우선적 수혜권을 가지거나 독점하고, 제2주택부터는 다른 개인들과 똑같은 재산에 대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면, 주택정책이 보살핌의 유대를 지원하도록 하면서도 사유재산권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제한을 막는 절충안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부양가족을 가진 세대주와 그 성원들에 대한 특혜로 보아야 하는가?
집은 다른 재산과 마찬가지로 사재로서 경합적이고 배제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으로서 클럽재 또는 비순수 공공재와 유사한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비순수 공공재인 전기는 누진세가 적용되는데다 세대합산 과세이기 때문에, 개인의 재화 사용권을 기준으로 보면 규모가 큰 가구에는 불리하다. 이것은 그 물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과다사용을 제한하는 효과를 가지므로 정당화된다.
주택에 대한 세대합산이 개인의 재산권을 저해한다는 지금의 헌재 논리로 보면, 전기세의 세대합산과 누진세는 개인의 전기사용권을 저해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의문이 부인되려면 주택과 전기가 어떻게 다른지가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계급정치와 젠더정치 사이의 딜레마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작가가 되기 위해서 자기만의 방과 돈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여성이 자기만의 방만이 아니라, 자기만의 집/땅을 가질 수 있다고 선언했다.
부부재산에 대하여 한국의 법제는 별산제를 택하고 있고, 한국의 여성운동진영은 별산제를 바탕으로 한 공동명의나 부부공유제를 주장함으로써 여성의 재산권을 지지해왔다. 여성의 재산권에 대한 지지는 상속지분에 관한 민법규정의 개정 요구를 통해서도 중요한 이슈로 등장해왔다.
재산이 소수 부유층이 접근할 수 있다는 표면적 사실만으로 그러한 운동들이 가지는 상징 정치의 힘을 부인하는 것은 곤란하다. 하지만 부동산을 개인 재산으로 보는 논리가 부동산에 대한 윤리적 인식을 축소시키는 지금의 상황이, 페미니즘이 주장해 온 여성의 재산에 대한 지지를 통해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페미니스트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계급정치에 충성해야 할지 아니면 젠더(gender)정치에 충성해야 할지 양자택일해야 하는가? 이 문제야말로 젠더가 사회계급계층과 교직(交織)되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우리가 이 혼란을 잘 헤쳐나가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젠더(gender)정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안이했음을 뜻한다. 계급계층의 차이와 차별에 대한 인식이 약화되었을 때, 페미니즘의 주장은 시장중심의 논리와 결합할 수 있다. 지금의 상황은 시장이 페미니즘을 삼키고 소화시키는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이대로 가다간 곧 페미니즘은 시장 지배를 강화시키는 논리를 살찌우는 자양분이 될지도 모른다.
페미니즘이 ‘불평등’에 대한 정치적 대안이 되려면
주목해야 할 것은, 최근 10~20년여 간 한국사회에서 부동산투기 또는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재테크가 중산층 기혼여성들의 가계관리의 일부가 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부동산투기꾼이나 복부인이라는 정체성을 부인하면서, 가정의 CEO라는 합리적이고 계몽적인 주체로 정체화되고 있다.
가사노동의 가치에 대한 논의가 임금을 받는 가사노동자들의 존재를 거의 배제한 채, 전업주부의 위치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한국 페미니즘의 담론적 역사는 지금의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한국의 여성운동계가 주장해 온 주택 부부공동명의 시 증여세 반대논의는 여성의 소유자격을 주장하는 것이었는데, 그 역시 (비취업)기혼여성을 가사(전담)노동자와 동일시하는 논리에 기반한 것이었다.
이러한 주장이 지금 효과를 발휘하게 되면, 종부세를 회피하기 위한 부부공동명의는 종부세 뿐 아니라 증여세를 피하면서 중산층 이성애의 연대(결혼연대)를 강화시킬 것이다. 페미니즘이 성별불평등에 도전하면서 동시에 사회계급계층의 불평등을 강화시키고 이성애관계의 특권적 유대를 지지하는 논리로 활용되거나 그러한 효과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한국의 페미니즘이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급진적인 정치적 대안으로서의 목소리를 유지하려면, 이러한 예상치 못했던 효과에 대해 이념적, 전략적 성찰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개인 재산권을 명분으로 중산층의 가족이기주의를 지지하고, 경제정의와 친밀한 관계의 연대의 논의를 후퇴시키는 주장이 페미니즘의 출발이었던 ‘평등’의 가치와 만나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할 때다. 그럼으로써 가진 자 중심의 보수 논리와 페미니즘의 결합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드러내야 한다. 일다▣ 이박혜경
지난 해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종합부동산세가 사실상 무력하게 됐다. 당시 헌재는 종부세가 일부 위헌이라고 판단한 근거에 대해, ‘부부별산제로 나타나는 개인소유권을 저해한다’고 했다. 헌재의 결정은 개인소유권 중심으로 여성의 재산권을 지지하는 것이어서 여성주의 진영을 당혹스럽게 했다.
그럼에도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는, 이어진 종부세 논란 속에서 찾아보기 어려웠다. 필자 이박혜경(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님은 ‘여성의 재산권’을 둘러싼 여성운동과 페미니즘 담론을 되돌아볼 것을 제안한다. 또 현재 한국사회에서 ‘젠더’정치와 ‘계급’정치가 맞물려 있는 정황을 살펴보고, 페미니즘이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해 묻는다. [편집자 주]
한나라당의 여러 의원들이 발의한 안과 조중동 신문의 사설들, 그리고 개인적 헌법소원을 통해서 문제제기 돼왔던 종부세가 헌법재판소로부터 일부 위헌, 일부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음으로써 해당 조항의 적용이 불가능해졌다. 그 핵심은 과세대상의 세대합산과 1가구1주택에 대한 장기보유에 대한 과세, 높은 세율이다.
2005년 1월에 제정된 종합부동산세의 목적은 “조세부담의 형평”과 “부동산의 가격안정”으로 법문에 진술되어 있다. 부동산의 가격안정과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은 집에 대한 윤리적이고 사회적인 차원의 논의를 불러일으킨다.
헌재에 의해 종부세의 세대합산은 특히 ‘부부별산제’로 나타나는 개인소유권을 저해하기 때문에 문제라고 지적되었다. 세대합산 과세 문제는 집의 이중적 의미-건물이라는 의미와 친밀한 관계로서의 의미-와 여성의 재산권에 관한 그간의 논의에 대해 생각을 키운다.
집/땅의 재산가치 이전의 윤리적 차원
집은 재생산이 일어나는 장소다. 인간의 삶에서 재생산은 타인과의 유대 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인간의 재생산은 모종의 인간관계 구성과 연관되어왔다. 집이 인간의 삶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것은 그것이 단순한 ‘거주 장소’가 아니라, 관계를 지원하거나 분리시키는 ‘삶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집은 때론 건물을 의미하고, 때론 그 안에 거하는 관계를 의미한다.
특히 한국에서 “내 집 마련”이라는 말은 단지 저축과 주택시장에서의 거래행위가 아니라, 도시로의 이주와 비좁은 셋방살이, 절약과 절제로 점철된 삶의 꿈, 빈곤 속에서 갈등과 유대를 나눠온 관계의 역사를 내포한다. 따라서 이 어구는 정서적인 함축과 반향을 가진다. 이러한 맥락에서, 집에 대해 이야기할 때 사람들은 집에 대한 모종의 윤리적 태도를 가진다.
부양가족이 있는 가구주에 대한 아파트 우선분양권과 같은 시장과 공공의 정책이 사회적으로 수용되는 것은, 집에 대한 이러한 윤리적 태도와 연관되어 있다. 집은 단순히 시장에서 교환되는 상품이 아닌 것이다. 집이 정책의 대상이 될 때, 그것은 단지 재화에 대한 접근이 아니라 친밀성의 관계에 대한 정책적 함의를 갖게 된다.
통합적 가족정책이 있든 그렇지 않든 간에, 가족은 언제나 국가통치의 중요한 대상이었다. 예를 들어 주택정책은 외관상 주택시장에 개입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내용적으로는 관계에 대한 개입이기도 하다. 가족이 정책적 지원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가족이 일차적으로 보살핌의 연대체이기 때문이다. 개인에 대한 지원이 그 개인이 속한 가족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되는 방식일 때, 개인 지원은 더욱 사회적으로 효과가 큰 접근으로 평가 받는다.
부양가족을 가진 개인에게 서민 전세주택자금대출, 분양권, 임대분양권 등에서 독점권이나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은, 보살핌의 유대에 대한 지원의 의미를 갖는다. 개인간의 보살핌의 유대는 개인적인 수혜만이 아니라 사회유지를 가능하게 하는 맥락이다.
개인 재산권 논리의 파장
‘종부세’ 논란은 집에 대한 시장의 논리와 윤리적 논리의 경합으로 볼 수 있다. 엄연히 교환의 대상이 되는 집에 관하여 완전히 시장의 논리를 배제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집에 대한 윤리적 기대를 간과한 때, 정책의 정의(justice)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장기적으로 조세저항의 강도에 못지않은 윤리적 공황과 해이를 초래할 수 있다.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이라는 목적이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한국사회의 집과 관련한 우려되는 역사에 대한 인식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집을 우선적으로 재산이라고 본다면, 지금까지 보살핌의 유대를 지원하기 위해 실시된 주택정책의 정체성은 불안정해진다. 1가구1주택 정책은 다주택 보유에 대한 억제장치일 뿐 아니라, 가구당 하나의 주택을 보급할 수 있는 기반이다.
더욱이 한국사회의 오랜 고질병으로 알려져 있으며, 서민생활의 기반을 위협하는 것이 바로 주택가격이다. 때문에 주택가격 폭등을 불러온 부동산 투기와 부동산의 소수 집중을 막기 위한 정책은 국가정책의 가장 중요한 일부였으며, 중요한 선거공약이었다.
신자유주의 사회의 맥락에서 부동산과 주식 등에 집중된 투기자본의 지배가 강화되고 있지만, 부동산 투기가 국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그 예외를 두지 않기 때문에 심각하다. 또한 서민일수록 그것으로부터 부정적인 타격을 받는다.
저금리를 기반으로 대출을 받아 제2주택을 구입하여 시세 차액을 올리거나 그것을 시도하는 것이 부동산 투기가 아니라, 중산층 가정의 재산관리 기술(재테크)로 받아들일 만큼 주택에 대한 윤리의식이 희미해진 사회는 윤리적으로 위험하다. 다른 서민들의 친밀한 관계를 위협하는 사회다.
윤리의식의 변화가 아니라 금리인상과 주택가격 하락이라는 시장요인에 의해서 그러한 재테크가 부적절한 것으로 판단되는 지금의 상황도 역시 시장지배의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단지 시장에서 각축하는 행위자들이 될 것인가, 아니면 타인의 필요에 공감하고 우선권을 위해 양보할 수 있는 윤리적 주체들이 될 수 있는가?
집이 단지 개인의 재산이라면, 가족을 단위로 한 주택지원 정책의 기반이 유지될 수 있는가? 헌재의 판결은 종부세의 목적은 부인하지 않으면서 부분적으로 불능화시키는 판결을 내리고 있기 때문에, 이 논란을 피해가기도 한다.
그렇다면 가족은 제1주택을 분양 받거나 서민 전세자금대출을 받을 때는 우선적 수혜권을 가지거나 독점하고, 제2주택부터는 다른 개인들과 똑같은 재산에 대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면, 주택정책이 보살핌의 유대를 지원하도록 하면서도 사유재산권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제한을 막는 절충안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부양가족을 가진 세대주와 그 성원들에 대한 특혜로 보아야 하는가?
집은 다른 재산과 마찬가지로 사재로서 경합적이고 배제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이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으로서 클럽재 또는 비순수 공공재와 유사한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다. 비순수 공공재인 전기는 누진세가 적용되는데다 세대합산 과세이기 때문에, 개인의 재화 사용권을 기준으로 보면 규모가 큰 가구에는 불리하다. 이것은 그 물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과다사용을 제한하는 효과를 가지므로 정당화된다.
주택에 대한 세대합산이 개인의 재산권을 저해한다는 지금의 헌재 논리로 보면, 전기세의 세대합산과 누진세는 개인의 전기사용권을 저해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의문이 부인되려면 주택과 전기가 어떻게 다른지가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계급정치와 젠더정치 사이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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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재산에 대하여 한국의 법제는 별산제를 택하고 있고, 한국의 여성운동진영은 별산제를 바탕으로 한 공동명의나 부부공유제를 주장함으로써 여성의 재산권을 지지해왔다. 여성의 재산권에 대한 지지는 상속지분에 관한 민법규정의 개정 요구를 통해서도 중요한 이슈로 등장해왔다.
재산이 소수 부유층이 접근할 수 있다는 표면적 사실만으로 그러한 운동들이 가지는 상징 정치의 힘을 부인하는 것은 곤란하다. 하지만 부동산을 개인 재산으로 보는 논리가 부동산에 대한 윤리적 인식을 축소시키는 지금의 상황이, 페미니즘이 주장해 온 여성의 재산에 대한 지지를 통해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페미니스트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계급정치에 충성해야 할지 아니면 젠더(gender)정치에 충성해야 할지 양자택일해야 하는가? 이 문제야말로 젠더가 사회계급계층과 교직(交織)되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우리가 이 혼란을 잘 헤쳐나가지 못하는 것은 그만큼 젠더(gender)정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안이했음을 뜻한다. 계급계층의 차이와 차별에 대한 인식이 약화되었을 때, 페미니즘의 주장은 시장중심의 논리와 결합할 수 있다. 지금의 상황은 시장이 페미니즘을 삼키고 소화시키는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이대로 가다간 곧 페미니즘은 시장 지배를 강화시키는 논리를 살찌우는 자양분이 될지도 모른다.
페미니즘이 ‘불평등’에 대한 정치적 대안이 되려면
주목해야 할 것은, 최근 10~20년여 간 한국사회에서 부동산투기 또는 부동산을 중심으로 한 재테크가 중산층 기혼여성들의 가계관리의 일부가 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부동산투기꾼이나 복부인이라는 정체성을 부인하면서, 가정의 CEO라는 합리적이고 계몽적인 주체로 정체화되고 있다.
가사노동의 가치에 대한 논의가 임금을 받는 가사노동자들의 존재를 거의 배제한 채, 전업주부의 위치를 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한국 페미니즘의 담론적 역사는 지금의 상황에서 돌파구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더욱이 한국의 여성운동계가 주장해 온 주택 부부공동명의 시 증여세 반대논의는 여성의 소유자격을 주장하는 것이었는데, 그 역시 (비취업)기혼여성을 가사(전담)노동자와 동일시하는 논리에 기반한 것이었다.
이러한 주장이 지금 효과를 발휘하게 되면, 종부세를 회피하기 위한 부부공동명의는 종부세 뿐 아니라 증여세를 피하면서 중산층 이성애의 연대(결혼연대)를 강화시킬 것이다. 페미니즘이 성별불평등에 도전하면서 동시에 사회계급계층의 불평등을 강화시키고 이성애관계의 특권적 유대를 지지하는 논리로 활용되거나 그러한 효과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한국의 페미니즘이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급진적인 정치적 대안으로서의 목소리를 유지하려면, 이러한 예상치 못했던 효과에 대해 이념적, 전략적 성찰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개인 재산권을 명분으로 중산층의 가족이기주의를 지지하고, 경제정의와 친밀한 관계의 연대의 논의를 후퇴시키는 주장이 페미니즘의 출발이었던 ‘평등’의 가치와 만나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할 때다. 그럼으로써 가진 자 중심의 보수 논리와 페미니즘의 결합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드러내야 한다. 일다▣ 이박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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