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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강간을 인정했던 부산지법이 이번에는 트랜스젠더에 대한 강간죄 성립 여부를 어떻게 판단할지(징역 5년 구형, 선고 예정)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현행 형법은 강간죄의 피해자를 “부녀”, 즉 여성으로 한정하고 있다. 30년 전에 성전환 수술을 받고 남성에서 여성으로 생활하고 있는 피해자가, 형법상 강간죄의 피해자인 “부녀”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이 사건의 핵심이다.

현행법체계는 모든 사람이 남자 또는 여자 중의 하나에 포함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남자와 여자의 기준, 즉 성의 결정기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성별 결정기준에 대한 우리 법원의 초기 태도는 인간의 성별은 ‘성염색체’를 기준으로 결정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2006년에 대법원은 트렌스젠더의 개명과 호적정정을 다룬 사건에서, 성별 결정 기준에 정신적·사회적 요소를 포함시켰다.
 
종래에는 사람의 성을 성염색체와 이에 따른 생식기·성기 등 생물학적인 요소에 따라 결정하여 왔으나 근래에 와서는 생물학적인 요소뿐 아니라 개인이 스스로 인식하는 남성 또는 여성으로의 귀속감 및 개인이 남성 또는 여성으로서 적합하다고 사회적으로 승인된 행동·태도·성격적 특징 등의 성 역할을 수행하는 측면, 즉 정신적·사회적 요소들 역시 사람의 성을 결정하는 요소 중의 하나로 인정받게 되었으므로, 성의 결정에 있어 생물학적 요소와 정신적·사회적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판시했다(대법원 2006.6.22. 자 2004스42 전원합의체 결정).
 
이런 기준에 의하면 30년 전에 성전환 수술을 받아 줄곧 여성의 몸과 마음으로 살아온 피해자를 여성으로 보지 않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1996년에 대법원은 납치되어 윤간당한 트랜스젠더에 대해 강간죄 객체인 부녀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성염색체의 구성이나 본래의 내.외부성기의 구조, 수술 후에도 여성으로서의 생식능력이 없는 점 등을 들어 사회통념상 여성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대법원 1996.6.11. 선고, 96도791 판결).

트랜스젠더의 성적 자기결정권 보장해야 

만약 성별을 생물학적 성으로만 고집한다면 ‘인간의 성을 변경하는 성전환 수술을 법이 허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성전환 수술은 금지되어야 하지 않는가’라는 소박한 의문이 든다. 의학적인 치료방법으로 육체적 성과 정신적 성을 일치시키는 성전환 수술을 법이 인정한 것은, 일정조건 하에서 개인에게 성별 선택의 권리를 인정한 것이다. 이는 인간다운 삶에 있어서 성 정체성이 불가결의 요소라는 것과 함께, 개인은 성 정체성에 대해 기본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성전환 수술은 인정하지만, 성전환 수술의 효과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자기 모순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트랜스젠더의 행복추구권과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서 누려야 할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 된다.
 
한편, 트랜스젠더가 생식능력이 없기 때문에 강간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면, 여성들 중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불임여성들 또한 강간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는 것이 된다. 강간죄의 보호법익은 ‘여성의 임신가능성과 그로 인한 남성의 피해’가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권’이다.
 
인간의 성별이 생물학적 성과 함께 성의 자기인식, 즉 사회적, 심리적 성에 의해 결정되고, 강간죄의 보호법익이 성적 자기결정권에 있다면, 트랜스젠더에 대한 강간죄 성립이 인정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강간죄의 피해자를 여성으로 한정할 이유 역시 없어진다. 남성의 경우에도 성적 자기결정권은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비교법적으로 볼 때에도 강간죄의 객체를 중성화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보인다. 영국은 1976년 성범죄법의 개정으로, 프랑스는 1980년 형법 개정에 의해 남성이 강간죄의 객체에 포함되었다. 독일 역시 1997년 형법개정으로 강간죄의 객체가 ‘부녀’에서 ‘타인’, 즉 사람으로 변경되었다. 부산지법의 현명한 판결을 기대한다.
일다▣ 박선영(편집위원/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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