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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면접, ‘갑질’로 얼룩진 5분

<한국에서 젊은 여자로 산다는 것>⑪ 교수 사회의 젠더 인식



※ 2016년 <일다>는 새로운 페미니즘 담론을 구성하기 위하여, “한국에서 젊은 여자로 산다는 것”을 주제로 청년여성들의 기록을 연재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습니다. [편집자 주]

 

2016년 한국에서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것

 

대학원에 가겠다는 결심은 거창하지 않았다. 취업하는 건 아직 싫고, 2년 더 “학생입니다”라는 말 뒤로 숨을 수 있다는 게 왠지 마음이 놓였다. 내가 과연 학자(!)가 되기에 적합한 유형인지, ‘원생’이 되면 의자에 엉덩이 붙이는 시간을 필히 늘려야 한다던데 과연 할 수 있을지도 확인해보고 싶었다. 학점이 일정 정도 이상이면 1년 수업료 전액 장학금을 받을 수 있기에, 자대 대학원에 지원하기로 마음먹었다.

 

학부와 대학원은 전혀 다르다는 말도 선배들과 친구들에게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교수님과의 관계가 보다 ‘친밀해진다’는 것, 너무 친밀해서 공과 사 구분이 종종 흐려진다는 것, 너도나도 누군가의 ‘도비’(소설 <해리 포터>에 등장하는, 노예와도 같은 집요정 말이다)가 될 수 있다는 것, 매사 눈치 보느라 피곤해질 일이 많다는 것.


▶ 독서모임 중.  나는 올해,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마음 먹었다.   ⓒ리외

 

자대 대학원, 게다가 학부 때와 같은 학과라 면접에서 마주할 교수님들도 모두 일면식이 있는 분들일 것이므로 간단한 질문만 오갈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름대로 성실히 준비했다. 현실적인 판단(취업은 싫고, 어딘가에 적籍이 필요하다)과 더불어, 학문 탐구라고 하기엔 거창하지만 뭐 그와 비슷한 기대감이 분명 있었으니까. 다들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면접 당일, 5분 같지 않던 5분

 

예상대로 1차 서류심사는 붙었다. 별도의 시험이 있지 않다면 인기 있는 대학, 학과든 아니든 당락은 대부분 면접에서 결정된다. 경쟁률이 높지 않아 대부분의 지원자가 합격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해서, 나 역시 침 꿀꺽 삼키고 세상 무거운 마음으로 면접장 문을 연 것은 아니었다.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내 얼굴 앞으로 헉, 하는 어느 교수님의 외마디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흠칫한 내게 끼얹어진 한 마디.

 

“아니, 왜 이렇게 못 생겨졌지?”

 

파하하하 웃음소리가 뒤를 이었다. 땅에 꽂혔던 고개가 간신히 웃음소리 쪽을 향했을 때, 세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 서로 친하다고 알려진 세 명의 남자교수가 앉아 있었다. 그 말을 던진 사람은 중앙에 앉은 학과장이었다.

 

“아니, 자기소개서에 붙어있는 사진에는 머리카락도 길고 여성스러운데 말이야, 내가 이 사진 속 얼굴은 분명 기억하는데 어쩌다··· 무슨 큰 신변의 변화가 있었기에···?”

 

학과장의 눈은 내 짧은 커트머리를 향하고 있었다. 이 질문 아닌 질문에 답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순간 고민했다.

 

“···교환학생 갔을 때 기분 전환을 하고 싶어 잘랐습니다.”

“아휴, 너무 못생겨졌다 정말.”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아찔해졌다. 자리에 앉기도 전에, 면접장 문고리를 잡은 채로 그 질의응답(?)이 오갔다. 몇 초나 흘렀을까. 엉거주춤 의자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을 때, 언뜻 보아도 건성으로 자기소개서를 읽던 오른쪽 교수가 뭔가를 발견한 듯 입을 열었다.

 

“재수, 삼수까지 했다고 적혀있네? 그럼 다른 학생들보다 두어 살 정도 많은 건가?”

“네.”

“그러면··· 자네 결혼 생각 있나?”

 

그리곤 다시 히죽거리는 웃음. 아,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뭐 같은 면접’이로구나. 그제야 사태를 파악했다.

 

“네? 무슨 말씀이시죠?”

“결혼 생각 있냐고. 나이가 좀 있기도 하고, 대학원 오는 여자들은 남자들과 달리 결혼하고 애 낳고 뭐 하면 다들 과정을 제대로 안 끝마쳐. 논문을 쓰기는커녕 수료도 안 한 채 사라지기도 한다고. 그런 여자들이 아주 많아요. 학생도 지금은 공부하고 싶다 어떻다 하는데, 어떻게 될지 몰라. 그래서 입학할 때부터 미리 묻는 거야. 이거, 아-주 중요한 문제다?”

 

뭐라 답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대학원에 지원한다는 건 일단 공부를 지속하겠다는 의지가 티끌만큼이라도 있어야 가능하다고, 그래서 전공에 관련된 나의 관심사와 향후 연구하고 싶은 분야를 (적어도 예의상으로라도) 묻는 게 우선이라고 여겼던 내 생각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물론 결혼한다면 공부에 지장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저급한 농담하듯 묻는 저 태도는 뭐란 말인가?

 

“결혼 생각, 전혀 없습니다.”

“그럼 됐고.”

 

이 ‘면접’이 행해지던 5분 여 동안 세 사람의 낄낄거리는 분위기는 계속되었다. 학업계획서에 석사 과정을 마친 뒤 유학을 가고 싶다고 적었었는데, “갔다 온다고 해서 뭐하겠어? 벌어먹고 살 수나 있나? 굶어죽지 굶어죽어” 같은 발언도 나왔다.

 

예상을 못한 건 아니었다. 그들이 나를 모르지 않으니 ‘근황 토크’와도 같은 편안한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겠다는 예상 말이다. 그렇지만 이건 도무지 ‘편안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영락없는 40대 아저씨들의 술자리 같았다. 그 짧고도 긴 5분 동안 연구 관심사에 대한 질문은 결국 단 한 개도 없었다.

 

어디에, 어떻게 문제 제기해야 할까

 

▶ 대학 교정에서. ⓒ리외


면접장 문을 닫고 나오는 내 머릿속엔 하나의 생각만이 가득했다. ‘이 모욕감을 어떻게든 알리고 싶다.’ 교내 신문에 익명으로 기사를 쓸까? 세 교수의 연구실로 찾아가 무턱대고 따져볼까? 학생회에 제보할까? 요즘은 많은 대학에서 의무적으로 교수들에게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한다던데, 어떻게 이럴 수 있지? 그와 동시에 도리 없이 다른 생각도 끼어들었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

 

우선 믿을 만한 여자교수님 한 분을 찾아가 사태를 알렸다. 그분은 학내 성폭력상담실에 찾아가보라고 하셨다. 그곳에선 어떤 방법을 취하면 좋을지 알려줄 수 있을 거라고 하시며 이렇게 덧붙이셨다.

 

“대학 내부에서 일어나는 상황들은 민감한 문제라, 이런 일에 어떻게 대처하라고 말해 줄지는 잘 모르겠군요. 저도 학생 시절 겪어보기도 했고 여러 번 목격하기도 했는데, 전반적인 분위기라는 게 잘 변하지 않더라고요.”

 

그분의 예상이 맞았다. 성폭력상담실 선생님은 내 이야기를 충분히 귀 기울여 들었고, 어떤 학과이며 교수들의 이름은 무엇인지도 상세히 물었다. 그러나 그분의 태도 역시 조심스러웠다. 학생회에 알리면 이 사건을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끌고 갈 가능성이 있고, 신문에 제보하더라도 내 정체가 금방 탄로 날 거라고 했다. 성폭력상담실 측에서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공론화해줄 수도 있지만, 나를 익명 처리하더라도 그 교수들이 나를 알 수밖에 없을 거라고 했다. 입학 이후 논문 심사나 성적 처리에 있어서 실질적인 불이익을 줄 가능성이 높다는 염려를 하나하나 들으며 앉아 있자니 ‘이게 대체 뭔가’ 싶었다.

 

만약 내가 남자였더라면…

 

좀 더 생각해보겠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건네고 상담실을 나왔다. 허탈했다. 답답한 마음에 친구들에게 털어놓았을 땐 ‘무한 공감’과 함께 유사 사례들이 넘쳐났다. 성차별 언행을 습관처럼 일삼던 교수를 학생들 몇몇이 성명서를 통해 성폭력상담실에 알렸을 때, 오히려 교수가 명예훼손이라며 학생들을 고소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어느 강사는 학생을 본인 집으로 불러들이고 명백한 성희롱을 여러 번 했는데, 고발당했을 때 사과문을 적으며 ‘혹시 이 각서를 쓰는 게 향후 나의 교수 임용에 영향이 있냐’고 물었다고도 했다.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마지막 선택지는, 함께 면접 봤던 학생들의 연락처를 얻어서 혹시 나와 유사한 불쾌감을 경험했느냐고 물어보고 혹시 그렇다면 단체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몇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인 좁은 대학 사회에서 화살이 나를 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두려워졌다. 결국 나는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못했다.

 

상상을 안 해볼 수가 없었다. 만약 내가 남자였더라면 어땠을까? 왜 이렇게 배가 나왔느냐, 어째서 피부가 그렇게 엉망이냐 등등, 면접장 문을 들어설 때부터 외모 지적이 나왔을까? 적어도 내가 알기로 그런 사례는 없다. 결혼에 대한 질문은 또 어떤가? 내가 남자였더라면 ‘결혼한/결혼할지도 모르는 연구자’에 대해 염려의 탈을 쓴 조롱을 과연 들었을까?

 

▶ 도서관에서.  여성들은 공부를 계속하든, 중단하든 이래저래 고립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리외

 

또 한 번,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계속 공부하는 여자’는 아직도 그렇게 적은가? 남자가 여자보다 수학능력이 뛰어나서? 설마 2016년까지도 그런 터무니없는 발상을 하는 사람은 없겠지. 그러나 대학 사회, 학계는 여전히 굉장한 ‘남초’다. 왜 그럴까? 결혼한 여성은 집안일을 해야 하는데 학업과 병행하기 힘들어서? 이미 ‘집안일을 해야 하는데’부터가 가사노동을 여성(만)의 일로 간주하는 성차별적인 ‘통념’이다.

 

이 ‘통념’은 사실 모순적인데, 그 까닭은 여성이 공부를 지속할 수 없게 만드는 ‘손가락질’로 작용하는 동시에, 주변의 압력으로 인해 공부를 포기하는 소위 ‘경력단절 여성’이 되면 의지박약이라며 문제를 개인화시키기 때문이다. 이래저래 여성이 고립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하고 싶은 공부를 포기했을까? 헤아릴 수도 없다.

 

‘남성+교수+중년’ vs ‘여성+학생+청년’

 

그래, 어쩌면 내가 겪은 것은 총체적인 권력 관계 체험인지도 모른다. “교수님, 그런 질문은 불편합니다.” 라고 그 자리에서 똑똑히 말하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도 가장 후회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못한 까닭은 나의 입학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전적으로 그들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입학 이후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언제나 ‘을’의 입장에서, 교수가 시키는 것을 하고 행동의 방향을 끊임없이 수정하고 검열해야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내가 예민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웃자고 던진 농담에 왜 죽자고 달려드냐’ 하는 눈초리를 나도 모르게 내면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은 나이 상으로도, 사회적 지위로도, 학문의 경력에 있어서도 상대적 약자이기 때문에 교수에게 어떤 의사 표현을 했을 때 버릇없다, 나댄다, 아직 뭘 모른다는 말을 듣기가 너무도 쉽다. 거기에 더해 내가 ‘젊은 여자’라면? ‘빼박 차별각’(빼도 박도 못하게, 즉 거의 항상 차별을 당한다는 뜻) 아닌가.

 

만약 내가 대등한 연구자 혹은 교수였다 하더라도,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 같다는 사실이 가장 화나고 또 슬펐다. 여성으로 하여금 ‘내가 예민한가?’라는 자기검열을 하게끔 만드는 것 역시 사회 구조다.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지나치게 예민하게 군다는 반응은 절대 다수가 여성, 나이 어린 사람, 약자에게로 향한다. 뿌리 깊은 성차별 중 아주 작고 사소한 일면을 나는 면접장에서 경험한 것이리라.

 

▶  학회에서.  면접일 교수들의 태도를 접한 이후, 학계에 대한 순진한 생각을 가진 나는 더 이상 없다.  ⓒ리외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학계, 내부자로서의 고민

 

학계는 상당히 폐쇄적이고, 또 보수적인 동네다. 학문의 조류가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뿐만 아니라, 교수와 학생 사이에, 교수와 교수 사이에도 나이와 성별로 엄연한 서열이 존재한다(마치 대학 간에 ‘순위’가 존재하듯이)는 점에서도 말이다. 면접장에서 편안하고 평등한 ‘근황 토크’, 자유롭고 산뜻한 문답을 기대한 내가 얼마나 어리석게 느껴지던지.

 

수많은 학생들이, 특히 여성들이, 남성이 다수를 차지하는 대학 교수들에게 어떤 대우를 받고 있을지, 내가 겪은 것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수많은 상황들을 얼마나 일상적으로 참아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서글퍼졌다.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하찮게 취급되는 학계, 그것은 명백한 모순인 동시에 버젓한 현실이다.

 

현재 나는 대학원 안에 ‘내부자’로 들어와 있다. 면접일 이후로, 전공 공부의 깊이를 키워보겠다는 순진한 소망을 품는 나는 더 이상 없지만, 어떻게 하면 유사한 순간이 닥쳤을 때 제대로 반응하고 더 잘 대처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계속 고민하고 있다. 공부와 진로에 관한 고민들에 이 고민까지 더해졌으니 한층 더 피곤해질 수밖에. 그렇지만 불편함과 불쾌함을 참지 않는 여성으로 산다는 건 이미 어느 정도 피곤할 일일 테다.

 

그런데, 버젓한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학문을 탐구하는 직업을 가진 교수들이 최소한의 젠더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길 바라는 것이 이처럼 피곤한 일이어야 할까?  (리외)  여성주의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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