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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부터 노후까지…‘가족’이 책임지는 나라

<돌봄의 세대 전가>② 가족을 통한 돌봄 해결



※ 취업부모의 양육 책임과 부담이 조부모에게 전가되는 이른바 ‘조부모 양육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돌봄의 세대 전가’ 현상이 왜 발생하였으며 어떤 문제를 대두시키고 있는지,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기사를 연재합니다. 필자 김양지영 님은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입니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왜 베이비시터를 고용하지 않고?

 

한국 사회가 현재 맞이하고 있는 ‘조부모 양육 전성시대’는 취업 부부의 장시간 노동의 결과라는 점을 지난 기사에서 지적하였다. 부모가 장시간 노동을 하면, 질 좋은 공보육 시설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지기 전에 이미 공보육에 대한 접근성 자체가 떨어지게 된다. 대리양육자를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조부모가 돌봄을 지원하는 현상이 취업 부부의 장시간 노동만으로는 모두 설명되지 않는다. 장시간 일하는 나라들이 많지만 유독 한국에서 조부모 양육이 취업 부부의 돌봄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은 다른 요인들이 결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보통의 경우 공보육 접근성이 떨어지면 시장을 통해 돌봄노동자(베이비시터)를 고용해 아이 돌봄을 해결한다. 미국이 전형적인 사례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시장이 아닌 가족이 돌봄 공백을 메우고 있다.

 

한국 사회의 강한 가족주의는 우리의 역사적 경험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일제하 식민 지배, 6.25 내전, 군부 쿠데타, 산업화로 이어지는 격동의 시간을 거쳤다. 국가와 사회공동체는 개인의 물질적, 신체적, 정신적 보호를 보장해주지 못했다. 때문에 개인은 가족을 중심으로 인적 자원을 수시로 동원하면서 위기에 대처해야 했고, 새로운 기회를 개척하면서 사회적 정체성을 유지해온 것이다.(장경섭, 2001)

 

국가 또한 ‘성장 제일주의’를 기치로 걸고 자본을 축적하는 것을 우선시하면서 사회 복지는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복지의 부담은 개별 가족에게 전가됐다. 그래서 한국의 가족주의는 가족원들 간의 소통과 친밀성은 약한데 반해, 도구적인 성격이 강하다는 특징을 갖는다. 한국의 가족은 경제적 생존을 위해 ‘도구적 가족’ 연대전략으로 대응한다. 특히 세대 간의 연대전략이 강하게 나타난다.(김혜경, 2007) 바로 그 전형이 조부모의 손자녀 양육이라고 할 수 있다.

 

▶ 많은 취업부부들이 돌봄노동자는 부모만큼 아이를 맡기기에 신뢰가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김양지영

 

‘내 새끼를 가족 말고 누구한테 맡겨’

 

강한 가족주의는 친족 외의 타인에 대한 불신을 낳는다. 아이 돌봄에서도 돌봄노동자를 고용하기보다는 자신의 부모가 지원하는 것을 선호한다. 인터뷰를 통해 만난 취업 부부들과 그들의 부모는 ‘내 새끼를 누구한테 맡겨?’, ‘내 식구처럼 돌보지 않을 거야’, ‘아이 데리고 도망가면 어떻게 해?’ 등과 같이 타인의 돌봄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취업 부부들은 많은 경우 돌봄노동자(베이비시터)는 내 부모가 하는 것처럼 아이를 사랑으로 돌볼 수 있을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얘기한다.

 

김재훈 씨는 돌봄노동자는 신뢰가 가지 않고, 가족은 확실히 다르다고 말한다. 돌봄노동자는 내 새끼, 내 식구처럼 아이를 돌보지 않을 것이라는 것. 그는 아이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가족이니까’ 사랑을 줄 수 있다고 믿고, 베이비시터는 돈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사랑이 없다고 믿는다.

 

“베이비시터. 못 맡기지. 우리 와이프가 의심이 많거든. 나도 가능하면 아시는 분이 봐주는 게 좋지. 왜냐면 사회가 뭐 애기 뭐 수면제 먹이고 재우고 그런다는데, 그니까 부모님만큼 케어를 못(해). 우리 동네에 그런 분들(베이비시터)이 있어. 가끔 (내가) 아침에 늦게 출근하면 애 어린이집 데려다주거든. 그러면은 아침에 만나. 아주머니들이 와 거기도. 그런데 확실히 틀려. 부모님이 애 보는 거랑은. 애 울어도 그냥. (애가 울어도 내버려둬?) 내버려두진 않지. 내 식구처럼 그렇게는 돌보지 못하지. 내 식구처럼 내 새끼, 그니까 가장 좋은 거는 엄마나 아빠가 애를 키우는 거거든. 왜? 가족이니까. 애는 가족에서 사랑과 그런 거를 받고 자라야 되는데 이 베이비시터나 이런 분들은 사랑은 없거든. 그냥 돈을 목적으로 하는 거니까. 물론 애기를 좋아하시는 분은 많아. 많은데 한계가 있다는 거지.”

 

아이 맡아줄 친족 없으면 일 그만두는 여성들

 

이처럼 한국 사회의 가족에 대한 강한 신뢰는 아이 돌봄에 있어서 비(非)가족적 돌봄을 고려하지 않는 결과를 낳고 있다. 그 결과 자녀가 있는 직장여성들은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을 때 ‘친족 돌봄’과 ‘사람을 고용하는 것’ 사이에서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친족 돌봄 지원이 안 될 때 일을 그만두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유자녀 취업여성들은 부모나 시부모의 지원이 없었다면 일을 그만뒀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조진영 씨는 임금 수준이 높은 증권사에 다니고 있다. 이제 아이가 아홉 살로, 돌봄노동자를 고용해 돌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경제적 요건이 된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아이를 돌봐주는 시부모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의 시장노동은 ‘끝’이라고 말한다.

 

“(시부모님은 모두 건강하셔요?) 나이가 드니까 잔병치레를 하시죠. 다. 무릎. 뭐 입원하거나 그러지는 않으시는데 근데 아플까봐 노심초사하는 거. 아프면 저는 끝이잖아요. (애 봐줄 사람이 없으니) 끝이에요 끝이에요 끝이에요 저 끝이에요. 그래서 아플까봐 걱정하는 거지. 맨날. 최대한 아프지 않게 애를 돌볼 수 있는 방안을 맨날 강구해. 주말엔 절대 안 맡기잖아요. 저희는 주말에는 무슨 일 있어도 저희 시어머니 시아버지한테 애 안 맡기잖아요.”

 

▶ 취업여성들 중엔 아이를 맡아줄 부모나 시부모의 지원이 없을 때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김양지영

 

‘자녀 돌봄’과 ‘부모 노후’ 해결하는 일석이조?

 

한국의 도구적 가족주의 특성은 조부모의 양육 지원을 통해 ‘가족복지’가 실현되고 있는데서 잘 드러난다. 취업부부는 가족을 통해 아이돌봄 지원을 받아 돌봄 공백의 문제를 해결한다. 또 조부모는 손자녀 양육을 지원을 하면서 자녀에게 경제적 지원을 받아 불안정한 노후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지금 아이들의 조부모 세대는 자녀들이 가정을 떠나는 시기가 지연되어 성인 자녀에 대해서도 부모 역할을 수행하는 기간이 길어졌다. 그에 따라 제대로 된 노후준비를 못하고 있는 상태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고령자의 일자리가 부족하고, 사회적 안전망이 미비해서 고령층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즉, 이러한 실태는 취업 부부의 경제적 지원이 이들 부모의 노후에 도움이 된다는 걸 뜻한다.

 

취업 부부들은 부모 세대가 자녀를 양육해주는 것에 대한 보상과 노후 지원의 의미로 일정 정도의 비용을 드리고 있다. 평균 80만원에서 100만원 수준에서 이뤄진다.

 

성인 자녀세대들은 자신들을 키우느라 은퇴 준비가 안 된 부모를 경제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상황에서, 아이 돌봄을 위해 돌봄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을 또 다른 비용 부담으로 보기도 한다. 취업 부부들은 부모에게 아이를 맡기면서 자녀 돌봄과 부모 부양이라는 이중부담을 해결하고 있는 것이다.

 

김은선 씨는 부모에게 자녀 돌봄을 지원받고 그에 대한 비용을 드리는 것이, 자녀로서도 돌봄 비용을 줄여서 좋고 부모도 노후 지원을 받을 수 있어 좋은 ‘일석이조’라고 말한다.

 

“두 개가 다 약간 적절히 섞인 거 같애요. 왜냐면 저희들 부모님 세대가 은퇴 준비가 잘 안돼 있는 세대고. 저도 사실 일정부분 돈을 드리는데 ‘그거 없이도 자유롭게 다 은퇴준비 돼있다’고는 말 못하거든요. 그니까는 어떻게 보면은 그건 내가 도움 받는 게 절대적으로 크지만 그럼으로써 나도 내 소득의 일부 얼마를 당당하게 엄마한테 드릴 수 있고. 안 드리는 집은 없어요. 거의 다 드려요. 없어도 된다고 하시는 분들은 정말 극히 일부고 아마 그런 분들은 직장 생활도 안 할 거고. 대부분 비슷하게 노후 준비가 완벽하게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최저 50만원에서 100만원 이상. 그러면은 일반 아예 그냥 남한테 맡겼을 때는 150에서 거의 200만원 가까이 들잖아요. 그거보다는 나도 비용을 세이브하면서. 그리고 이제 안 맡겼을 때 내가 드릴 수 있는 용돈보다는 많이 드리고. 물론 택도 없지만. 근데 거기에는 아예 그 돈이 필요하지 않는 건 아니거든요. 그분들 세대 다 연금이라든지 이런 걸로 노후를 완벽하게 해놓지 않으셨기 때문에 분명히 용돈에 어느 정도 가계에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거든요.”

 

한국의 ‘도구적 가족’ 연대전략, 가족보험

 

이처럼 가족이라는 사적인 틀 안에서 아이 돌봄과 조부모 세대의 노후 문제가 상호 밀접한 연관 속에서 해결되고 있다. 2016년 한국에서는 여전히 가족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가족복지’가 실현되고 있다.

 

취업부부는 일-가족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지 않은 한국의 현실에서, 자신이 가진 사적 자원을 총동원해 일을 지속하고 있다. 조부모 양육은 한국의 맞벌이 부부가 일을 지속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장시간 일하는 노동 시장이 변하지 않는 이상, 돌봄도 하면서 시장노동을 할 수 있도록 노동시장 구조가 변하지 않는 이상, 조부모 양육 지원 현상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양지영  여성주의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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