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저널리즘 새지평

내 친구 보은의 희로애락 알바인생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6.08.19 08:30

교과서보단 알바현장에서 배운 게 더 많아

<생계형 알바를 하는 청년여성들>⑤ 보은의 희로애락 알바인생



※ 직업이라고 하기엔 불안정하고 열악하며, 아르바이트라고 하기엔 장시간 일하고 급여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이른바 ‘생계형 알바’를 하는 10대, 20대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빈곤-비(非)진학 청년들의 진로 탐색과 자립을 돕는 협동조합 <일하는 학교>와 은평구청소년문화의집 <신나는애프터센터>와 함께하는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연재됩니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고교 시절엔 못 들었던 친구의 이야기


나는 집안사정이 넉넉한 편은 아니지만 부족함을 거의 못 느끼고 살아왔다. 간간히 용돈이 필요할 때, 시간이 날 때 알바를 했다. 그래서 어쩌면 ‘생계형 알바’를 하는 청년여성들의 이야기는 나의 삶과는 조금 멀고 내가 다루기 힘든 주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청년여성으로서,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다. 궁금증과 호기심을 가지고 시작한 인터뷰는 나에게 많은 성찰을 주었다. 사실 이 이야기들이 나와 멀리 떨어진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나의 옆에 너무나 가까이에 있는 삶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카페 쿠아레에서 보은과의 만남.  인터뷰를 하며 우리는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버

 

어느 날 불현듯, 가끔 연락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곤 하는 고등학교 친구 보은(가명)이 생각났다. 항상 학교에서 피곤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수업이 끝나면 부리나케 알바를 하러 달려갔던 그 모습이 떠오른 것이다. 당시에 고등학생인 보은이 했던 알바만 해도, 내가 알고 있는 것만 세 가지였다. 우리 반 모든 친구들이 보은이의 건강을 걱정할 정도였다. 하지만 남 걱정시키는 것을 어려워했던 보은이는 항상 “괜찮아” 라고 말했다. 그 때의 보은이를 떠올려보면 너무 착해서 자기 것을 못 챙기는, 친구로서 답답함까지 느끼게 되는 천사 같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도 우린 종종 만났지만, 은근히 숨기는 것이 많은 보은이에 대해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인터뷰를 요청하기 위해 전화를 했을 때는 ‘과연 받아줄까’ 하는 마음이었다. 조심스럽게 꺼내본 인터뷰 섭외 요청에 보은이는 특유의 귀여운 목소리로 흔쾌히 응했다. 그렇게 해서 24세 보은과 은평 지역에서 일하는 청소년활동가 미리, 은평구청소년문화의집 <신나는애프터센터> 실무자 오매와 나(비버). 이렇게 네 사람은 역촌동에 있는 카페 쿠아레에서 만났다.

 

‘무리한 알바로 결핵에 걸렸어요’

 

보은이는 모 대학교 전통조리과를 졸업하고, 현재 어린이영어학원에서 일하고 있다. ‘생계형 알바’에서 조금은 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인터뷰가 끝날 때쯤, 현재 생계형 알바를 하며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어봤다.

 

“그 순간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꼭 말하고 싶어요. 힘든 순간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거, 지나가면 웃고 떠들 수 있는 날도 분명히 올 거예요.”

 

이런 말이, 힘에 겨운 당사자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알바의 굴레에서 벗어날 작은 빛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선 오히려 막연한 희망고문일 수도 있으니까. 쉽게 말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보은의 말은 절대 가볍지 않다. 보은의 삶이 담겨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 마치고 집이 어렵다보니 학교에서 필요한 돈, 용돈을 벌기 위해 친구의 추천으로 주유소에서 처음 알바를 하기 시작했어요. 초등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아버지가 어머니의 이름으로 빚보증을 서서 유산은 고사하고 빚을 받았어요. 유산은 할머니 쪽으로 갔는데 아버지가 해놓은 다른 문제도 있어서 그걸 해결하려면 할머니도 우리에게 주실 게 없었죠.”

 

빚을 갚으며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쉼 없이 일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보은은 마음이 아파서 중학교 2학년이라는 어린 나이에 알바를 시작한 것이다.

 

“주유소 알바는 거의 1년을 했고, 고등학교 1학년 때는 패스트푸드점,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했고, 3학년 때는 카페, 패밀리레스토랑 홀서빙, 아이스크림 가게까지 세 가지 알바를 했어요. 대학교 때는 4-5개월 정도 아파서 일을 할 수가 없었고, 그 이후에 패밀리레스토랑, 학교 근로, 편의점 야간 알바를 했어요.”

 

나는 보은의 집안사정에 대해, 그리고 중학교 때부터 쉬지 않고 알바를 해온 것에 대해서도 몰랐다. 항상 괜찮다고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괜찮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무리한 것이 쌓이고 쌓여 몸에서 이상신호를 보내왔다고 한다.

 

“고3 때 너무 무리하게 알바를 해서 결핵에 결렸어요. 입원한 기간은 2주 정도로 길진 않았지만, 면역이 생길 때까지 4-5개월 집에서 요양하고 매일 통원치료를 받았어요. 그리고 1년 반 정도 약물치료를 했어요. 균이 폐에만 있는 게 아니라 비장, 목까지 있었거든요. 그 이후로 폐에 연기가 들어오면 다시 임파선에 무리가 올 것 같아서 건강상 요리 쪽으로 직업을 선택할 수 없게 되었어요.”

 

▶ 무리한 ‘생계형 알바’로 인해 고등학생 보은은 병원에서 힘든 시간을 견뎌야 했다.

 

보은이가 입원해 있던 2주 사이에 나는 병문안을 갔었다. 함께 과자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핵은 옮을 수 있다며, 오지 말라고 보은은 만류했지만 ‘난 튼튼하다’며 기어코 병원에 갔다. 그리고 답답하다는 이유로 마스크까지 벗었다. (인터뷰 중에 결핵은 굉장히 위험한 병이라고 알려준 미리의 경험담을 듣고는 정말 식겁했다.)

 

아무튼 보은은 고3 때 벌어놓은 돈을 병원비로 다 까먹었다며 굉장히 속상해했다. 게다가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해야 했다니! 다행히 학교는 휴학을 할 수 있었지만 그 후에 대학생활을 위해 보은은 통원치료를 받는 4-5개월 기간이 끝난 후 바로 패밀리레스토랑 주방알바를 시작했다.

 

학교보단 밖에서 체험하는 걸 좋아했던 십대

 

보은의 알바인생을 보면, 정말 지치고 힘든 삶으로 보인다. 하지만 보은은 알바를 통해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을 더 많이 떠올렸다. 성취와 배움, 관계에서의 감사함, 기쁨…. 보은은 자신이 정말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는 힘들어도 재밌게 알바를 한 게, 주유소에서 일할 때는 식구 같은 삼촌과 사장님이 있었어요. 수행평가가 있어서 리코더 연습을 하면 봐주시고, 시험 때면 문제를 내주시기도 했어요. 아이스크림 가게 일은 겨울에 추워서 힘들었는데, 사장님이 수학여행 간다고 하면 언니들 몰래 맛난 거 사먹으라며 용돈도 주시고 집까지 데려다 주시기도 했어요.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지내요.”

 

보은은 ‘안 좋은 상황이 오더라도 지나고 나면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겨내자고 다짐하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에 대해 설명했다.

 

“고3 때 너무 힘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알바를 안 했으면 그 사람들을 몰랐겠구나 라고 생각해요. 언니오빠들과도 거의 대부분 연락하고 지내고 있기 때문에, 그 때 그런 힘든 일을 안 겪었더라면 나중에 더 힘든 일을 겪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관계뿐만 아니라 알바 자체에서도 배움과 성취를 느꼈다. 학교에서 앉아서 공부만 하는 시간보다는 알바를 하며 직접 체험한 것에서 더 많은 배움을 얻었다고 한다.

 

“친구도 좋고, 학교라는 울타리에 있다는 것이 좋았어요. 사회에 나가면 또 내가 알아서 해야 하는 것이 힘들 것 같았어요. 친구들도 재미있고, 선생님들도 개성이 강해서 좋았어요. 하지만 학교공부보다 밖에서 느끼고 체험하고 게 더 좋았어요. 학교에서는 교과서대로 하니까. 교과서에서 느낄 수 없는 걸 느낄 수 있는 게 좋았어요. 전형적으로 공부 안하는 사람의 이야기 같지만…”

 

보은은 삶에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소중히 생각하고 우선시하는 것으로 보였다. 사람과의 친밀함, 감사, 성취 등. 하지만 그것이 알바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없더라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보은의 근로조건들은 썩 좋은 편은 아니었다.

 

“고3 때 카페를 제외하고 최저임금인 곳에 지원했어요. 주방의 경우 일주일에 몇 시간이면 근로수당 조금씩 더 붙고, 편의점 야간알바는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야간수당은 없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사장님이 나중에 월급에서 좀 더 주시기도 하고, 야간수당은 따로 준 건 아니고 그냥 시급을 100원 정도 올려주셨던 것 같아요. 다른 곳들은 잘 대해주지도 않고 3개월 수습기간을 넣기도 한다는데, 그런 것도 없었고. 편의점 사장님도 정말 좋았어요. 베스트였어요.”

 

보통은 힘든 주방일, 편의점 야간 알바라고 하면 더 많은 급여를 기대하는 게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보은의 얘길 들어보니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소중하고, 그 일을 통해 얻는 배움과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근로조건에 포함되어 있다고 여기는 듯했다. 그렇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어떻게 해나가고 있을까?

 

▶ 보은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비버

 

120만원, 급여보단 뭘 배울 수 있을지가 ‘기준’

 

“봉사활동을 하다가 친해진 언니가 어린이 영어학원을 다니는데 선생님이 필요하다며 다녀보지 않겠냐고 제안했어요. 일은 작년 11월부터 시작했고, 처음엔 보조업무만 하다가 지금은 보조강사를 하고 있어요.”

 

급여를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120만원. 이것도 4대 보험을 포함한 금액이다. 월세 30만8천원에 식비 15만원, 아플 때 들어놓은 보험이 많아 보험료 20만원, 고양이들 아플 것을 대비한 적금 5만원, 그 외에 고양이에게 들어가는 돈 8만원, 교통비 10만원, 휴대폰비 10만원, 인터넷 사용료 5만원. 그걸 제하고 남은 비용은 그 때마다 생각해서 쓴다고 한다.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자취하는 보은의 생계를 감당하기엔 부족한 금액이다.

 

“아직 스물 대여섯 살까지는 120만원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직업 선택에 있어서 뭘 배울 수 있을지, 뭘 느낄 수 있을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아이들을 좋아하지만, 선생님은 중요한 역할이고 어린 시절엔 (교육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여서 인격이 형성되는 게 무서웠어요. 그래서 특성화고등학교 유아교육과를 졸업하고도 다른 관심사인 요리 쪽으로 갔어요. 결국 요리도 못하게 되었지만. 유아 쪽에서 저를 써준다고 하니 정말 고마웠어요. 순수한 아이들이 배워가는 과정을 함께하며 깨달음이 많아요. 팀워크를 중요시하고 서로 즐겁게 지내는 직장 분위기가 좋아요. 그 곳 선생님들은 저를 어리다고 무시하지 않고 왕언니처럼 인생선배로서 가르쳐주시는 게 많아요.”

 

일을 일로만 생각하지 않고 그 안에서 사람과의 관계, 배움을 소중히 생각하는 보은의 태도가 엿보였다. 그런 긍정마인드가 얼굴로 표현되는 보은은 항상 환한 웃음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경계심을 허물게 만든다. 그런 태도는 손님들에게도 통했다.

 

“(편의점 야간알바를 할 때) 알바생들을 잘 챙겨주는 삼촌이라 불리는 분도 있었는데, 자기도 젊은 시절에 힘들었다면서 아침을 사주려고 노력하셨어요. 1년 동안 정말 고마운 분들을 너무 많이 만났어요. 떡볶이도 사주시고, 치킨을 갖다 주시는 분들, 박카스도 주시고, 같은 대학생 또래들이 힘내라고 라면을 주기도 했어요. 그 때 만난 손님들 중에 아직 연락하고 지내는 언니들도 있어요. 우리 동네는 따뜻한 분이 많다고 느꼈어요.”

 

내가 사는 곳은 “좋은 동네”

 

보은은 은평구 토박이이다. 현재는 개인사정으로 자취를 하는 중인데, 1년 반이 되었고 고양이 두 마리와 살고 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주인이 키우지 못하는 고양이들이었는데, 인터넷을 통해 사연을 보고 데려왔다고 한다. 자취생활이 힘들 수도 있을 텐데 좋은 사람을 만난 것에 감사를 표한다.

 

“옆집 분이 정말 좋은 분이어서요. 집주인부터가 좋았어요. 보증금을 안 받겠다고까지 하셨어요. 남편이 집을 다 관리하시다가 돌아가시고, 아내 혼자 월세만으로 살고 있어서 집수리를 전혀 못하셨어요. 대신 옆집에 살고 있는 부부가 나서서 집 다 고쳐주시고 청소해주시고 그러셨어요. 내가 이사 왔을 때도 집주인은 이불, 그릇 다 챙겨주시고, 춥지는 않냐고 하고. 화장실이 오래 되어서 전구가 내려앉았는데 옆집 분이 다시 달아주셨어요. 세탁기가 들어오려면 싱크대랑 연결해야하는 상황이었는데, 업체에서 15만원 달라고 했는데 옆집분이 다 해결해주셨어요.”

 

보은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을 “좋은 동네”라고 말했다. 보은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게 진짜 우리가 외쳐대는 마을공동체가 아닐까 생각했다.

 

“동네에 고양이 밥을 주시는 분도 있어요. ‘고양이가 한겨울에는 먹이를 못 구해서 먹지 못하면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뜯는다. 우리가 밥을 주자.’ 그렇게 써 있더라고요. 길고양이 중에서 늙은 샴고양이가 있었는데 몇 년째 챙겨줬다고 해요. 이런 것들이 저로 하여금 이 동네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아요.”

 

알바생들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 당연히 존재해야 할 비상벨의 부재로, 알바생들의 안전이 더 위협받는다.


보은의 알바인생에는 아찔한 순간들도 있었다. 대학에 다닐 적에 보은은 금요일 수업을 마치고부터 토요일까지 야간 시간밖에 일할 짬이 나지 않았다. 그래서 여자는 안 받는다고 하는 사장님을 몰아붙여 편의점 야간알바를 시작했다. 그런데 알바를 시작하고 얼마 안 돼 위험한 상황이 발생했다.

 

“비가 오는데 웃통을 벗고 칼을 들고 들어온 만취한 남자손님이 있었어요. 교대타임이라 두 살 아래 남자애가 있었는데 걔가 겁을 먹은 거예요. 그래서 걔를 제 뒤에 있게 했어요. 그 손님을 상대하는데, 말을 들어보니 우리를 해하려고 한 게 아니라 어떤 사람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거예요. 원래 편의점에는 발 아래를 툭 차면 경찰서에 연결되는 게 있는데요, 우리 지점에는 그게 없었던 거죠. 결국 밖에서 구경하던 사람들 중 어느 용기 있는 사람이 들어와서 데리고 나가셨어요.”

 

칼을 든 손님에 대한 에피소드를 너무나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보은이 더 놀라웠다. 게다가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남자애를 보호할 수 있었을까? 보은은 자기도 잘 모르겠단다. 기본적인 안전장치가 없는 편의점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칼을 들고 설쳤던 그 남자는 이전에도 보은과 같이 젊은 여자 알바생들을 괴롭혔다고 한다.

 

“평소 제정신이었을 때는 자신이 중화식당에서 돈을 많이 버는 셰프라고 하면서 ‘아내를 구해야 한다’며 음담패설을 했어요. 그때마다 저는 웃으면서 ‘남자친구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여러 번 보냈어요. 칼을 들고 온 그 날은 눈빛이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야간이다 보니 술 취한 손님이 많이 오는데, 1년 일하면서 그 분이 최고였던 것 같아요.”

 

이런 일들을 겪은 후 보은은 어떤 마음으로 일했는지, 사장님은 그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물어봤다.

 

“다음 날부터는 핸드폰을 바로 옆에 두고 일했어요. 그리고 사장님한테는 걱정하실까봐 연락을 따로 안 했어요.”

 

이 와중에도 사장님을 걱정하는 보은이었다. 어쨌든 그 상황들은 무사히(?) 지나갔다. 다행히 보은에겐 별 탈 없었지만, 아직도 누군가는 그런 곳에서 일하고 있다.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 채 말이다. 누구나 안전하게 일할 수는 없는 것일까.

 

‘멘토’ 내가 혼자가 아님을 알게 해준 사람들

 

보은을 인터뷰하며 우리 세 사람이 공통으로 느낀 것은 ‘이런 사람이 있단 말이야?’였다. 심지어 나는 보은에 대해 어느 정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보게 되었다. 무엇보다 내가 못 본 사이에 그녀는 단단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도대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휴학하면서 학교에서 상담을 받게 되었어요. 심리검사 같은 것을 했는데 죄책감인지 뭔지가 높다며 상담 권유가 들어왔고, 가족 이야기를 하게 되었어요. 전혀 모르는 타인에게 말해보고 싶기도 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상담을 했는데, 삶의 문제 속에서 끙끙 앓기보다 생각들이 잘 정리된 것 같아요.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많이 울었어요. 친구들도 다 아는 건 아니지만 많이 위로해줬고, 엄마와는 따로 살게 되었지만 좋은 이웃과 사람을 만나면서 나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보은의 옆에는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멘토같은 분이 있어요. 마음 편하게 말할 수 있고, 정신적으로 가르침을 주시는 분이예요. 여러 가지 일들로 감정이 올라오고 내려가는 것도 많고, 속으로 삭혀야 하는 것도 많았는데, 그냥 위로만 하려는 게 아니라 나와 같이 아팠기 때문에 알려주려고 하는구나 싶었어요. 다른 사람에게는 그런 적이 없었는데 그 언니에게는 못되게 굴어보고 그랬어요. 그런데도 흔들림 없이 저를 찾아와 이야기를 들어주셨어요.”

 

보은이 말한 “못되게 굴어본 것”이란, 언니가 집에 찾아왔을 때 이야기하다가 피곤하다고 먼저 잠이 든 것, 문자를 받았는데 한참 후에 답한 것, 그리고 약속시간이 다 되어서 못 볼 것 같다고 말한 것 정도였다. 여하튼 보은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도록 해주고, 그 모습을 또 있는 그대로 받아준 ‘멘토’와 같은 언니 덕분에 힘든 시간을 견뎌낼 수 있었다고 한다. 친구로서 나는 그녀의 아픔을 함께 해주지 못한 미안함과 동시에, 그 시간동안 함께 해준 보은의 멘토 분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 내 친구 보은은 힘든 삶의 여정 속에서도 밝은 오늘을 살아간다.   ⓒ비버 

 

‘아이들도 나를 보며 배울 게 있을 거예요’

 

일련의 성장통을 겪고 한 단계 더 성숙해진 보은의 앞으로의 꿈은 무엇일까?

 

“비행기 타고 일본에 가보고 싶고, 공부도 많이 해보고 싶어요. 스물네 살이 되어서 다들 직장에 자리 잡고 결혼자금도 모으고 현실적으로는 그렇다고 하는데, 잠시 그런 생각 접어두고, 공방 가서 가구 만드는 것도 배워보고 싶고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것을 공부해보고 싶어요. 그림도 해보고 싶고, 악기도 하나쯤 제대로 다뤄보고 싶고… 하나씩 하나씩 이루어보려고 해요. 다 해버리려고 하면 어느 하나도 안 이루어질까봐… 봉사활동도 하고 있으니까 책임지고, 공부하는 것도 해놓고, 그 다음에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보은은 일을 위해 다 포기하지 않는다. 영어공부도 하고 있고, 일본에 다녀온 친구에게 일본어도 배우고, 철학책을 읽는 스터디도 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많은 것을 투자했다.

 

그런데 보은처럼 이렇게 하나를 이루기 위해 많은 공을 들여서 헤쳐가야 하는 현실을 사는 이도 있지만, 이런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도 있다. 자신과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 즉 보은이 가르치고 있는 강남 어린이영어학원의 부잣집 아이들을 보며 부러운 마음이 들지는 않은지 물어봤다.

 

“저는 아이들이 겪지 못할 다른 경험을 해왔고, 다른 걸 깨달았으니까. 저도 이 아이들을 보며 배울 수 있고, 아이들도 나를 보면서 배울 수 있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은 내가 겪은 풍파를 모를 테니까요. 자기 집에만 있으면 자기 장남감만 가지고 놀겠지만 이 학원에 와서 함께 노는 법, 함께 어울리는 것을 배우고 있는 것처럼요.”

 

보은은 자신보다 잘나가는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들을 오롯이 느끼며 지내왔다. 이렇게 힘든 시간을 견디고 성장해오면서, 세상이 제공해준 것은 무엇이며 제공받았으면 하는 것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제공받았던 것은, 중학생 때 학원 못 다니는 아이들을 위해 방과 후 교실이 있었는데 기초생활수급자였기 때문에 공짜로 들을 수 있었어요. 고등학교 때는 외부에서 후원해주겠다고 해서 몇 달에 한 번씩 작은 상품권 같은 것도 받고, 여름방학 캠프도 가게 해줬어요. 급식비도 지원받았고요. 대학에서도 등록금을 줄여주는 지원이 있었어요. 열심히 해서 첫 학기 빼고는 장학금을 받았죠. (세상이) 제공해줬으면 하는 것은 학생 때에 꿈을 찾을 수 있도록 공부 말고도 취미 등으로 제공해주었으면 좋겠어요. 돈을 잘 버니까, 취업이 잘 되니까 그걸 택하는 게 아니라 꿈을 찾을 수 있게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방과 후나 특별활동 등을 통해서도 그런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인터뷰가 끝나고 나는 보은의 집에 놀러갔다. 귀여운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놀면서 쌓아놓았던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다. 내가 아는 보은과 인터뷰를 통해 만난 보은은 많은 차이가 있었고, 그것들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많은 질문거리들 속에서 보은에게 ‘삶의 단어’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녀는 한참을 고민하다 ‘밝음’이라고 말했다. 나는 웃으며 참 보은 같다고 생각했다. 보은의 밝음은 그녀 특유의 성격덕분인 것도 있겠지만, 삶의 어둠 속에서 빛을 밝혀준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우리 주변의 누군가는 어둠 속에 있다. 그 어둠에서 한 조각 빛을 보여주는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이.

 

-인터뷰: 오매, 조미리, 비버

-기사정리: 비버  여성주의 저널 일다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