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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O가 무서운 진짜 이유
전환의 시대를 여는 농생태학 이야기② 대안을 찾아서
※ 기후변화, 생태계 파괴와 자원 고갈, 식량안보의 위기, 빈부 격차와 인간 소외 등이 지금 세계화 시대의 위기를 읽는 키워드입니다.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김신효정 님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농생태학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GMO는 악의 축인가?
지난 달, 전북 전주 농촌진흥청 앞에서는 시민들이 주도한 집회와 시위가 수차례 벌어졌다. 현재 농촌진흥청은 GM(유전자변형) 벼, 사과, 콩 등을 시험 재배하고 있다. 또 박근혜 정부는 작년 말, 세계 최초로 GM 쌀을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식용 GMO 수입국 세계 1위인 한국이 이제 GMO 재배국으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정부의 발표에 시민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GMO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런데, 온라인 상에서 GMO에 대한 정보들을 찾아볼 때 종종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쥐 한 마리, 주사기 하나, 나선형의 유전자가 조합된 사진 한 장과 마치 GMO를 악마와 같은 존재로 묘사하는 글들을 볼 때마다 그다지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GMO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을 조장하는 방식으로는 정작 GMO가 갖는 전반적인 시스템의 문제를 보기 어렵다. GMO는 단순히 콩 한쪽, 쌀 한 톨의 문제가 아니다.
▶ 농생태학 훈련센터에서 생산된 인도네시아 토종 먹거리. ⓒ김신효정
우리는 매일 GMO를 먹고, 입고, 주입하며 산다. 공원의 잔디밭과 아파트 화단에는 2A등급 발암물질인 유전자변형 농약 글리포세이트가 뿌려진다. 병원에서는 유전자변형 인슐린, 미생물, 호르몬을 활용한 의약품이 사용된다. 매일 얼굴에 바르는 화장품, 여성들이 사용하는 생리대에서부터 아기들이 사용하는 일회용 기저귀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생활 속에서 셀 수 없이 많은 GMO를 사용한다.
특히 한국에 수입되는 식용 GMO의 경우, 약 80% 가량이 가축의 사료로 사용된다. GMO 콩과 옥수수를 먹고 자란 소와 돼지와 닭, 그리고 난류에서 사는 장어의 유전자가 주입된 GMO 연어가 저렴한 가격에 팔려 사람들의 밥상에 오른다.
GMO는 우리 삶의 방식의 문제이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소비하기 위해 효율과 경제성을 쫓아온 성장과 개발의 패러다임이 봉착한 문제다. 그러니 GMO는 우리 가족의 밥상과 건강을 위협하는, 외부에서 온 악마가 아닌 것이다. 지금, 여기서 우리의 일상을 바꾸지 않는 이상 GMO로 인해 생물 다양성이 파괴되고, 유전자원(genetic resource)이 오염되고 소멸하는 것은 머지않아 맞을 우리의 위험한 미래가 될 것이다.
대안을 찾는 움직임들
GMO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정치적으로, 정책적으로 다양한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우리 사회에 대한 반성과 사람들의 일상의 전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러한 전환의 씨앗들 중 하나가 바로 농생태학이다. 농생태학은 삶의 방식을 변화시키려는 운동이다. 시장과 초국적 기업에 내맡겨온 농업기술과 지식을 다시 나와 내가 속한 공동체가 쌓아온 기술과 지식으로 전환하는 운동이다. 농민이 지켜온 씨앗과 지혜로 농사를 짓고, 소비자는 건강한 밥상을 통해 식량 주권을 되찾는 운동이다.
농생태학은 쉽지 않다. 사실 농생태학이라는 개념 자체가 어렵다. 게다가 삶의 방식을 바꾸는 운동이라니, 불가능할 것 같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내다보며 농생태학 운동을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하 전여농)을 중심으로 여성농민들이 그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10년 전, 토종 콩 세알에서 시작된 여성농민들의 토종씨앗운동은 이제 ‘언니네 텃밭’이라는 여성농민 생산자협동조합으로 조직화되었다. 여성농민들이 토종씨앗을 지켜 GMO의 침투에 대비하고, 농업 주권과 식량 주권을 회복하려는 소중한 움직임이다. 현재 협동조합을 통해 전국 2백명의 여성농민이 생산한 제철 토종 먹거리가 매주 4천이 넘는 도시 소비자 가구와 개인들에게 배달되어 밥상에 오르고 있다.
인도네시아 보고르 농민들의 농생태학 운동
전여농 활동가들은 아시아 지역에서 농생태학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 지난 2월 인도네시아에 방문했다. 자매단체인 SPI(Serikat Petani Indonesia, 인도네시아농민연합)의 도움으로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이 걸리는 보고르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농생태학 마을 공동체를 만날 수 있었다.
▶ 인도네시아 보고르 지역, 농생태학 공동텃밭에 가다. ⓒ김신효정
뜨거운 태양 아래 다양한 토종 작물들이 자라는 마을 공동텃밭에서 보고르 농민들이 우리를 반겼다. 공동텃밭에는 중간 중간 물웅덩이와 파파야 나무가 있었다. 덕분에 건기에도 물을 사용하는 게 어렵지 않고, 나무그늘은 잠깐 쉬기에도 좋다. 밭에는 잎과 뿌리를 모두 먹을 수 있는 카사바, 모유 수유에 좋은 까뚝, 토종 시금치, 땅콩 등이 자라고 있었다.
좁은 땅을 활용해 밭가에는 줄 콩과 파를 심고, 벌레를 쫓기 위해 밭 구석구석에는 향이 강한 부추와 허브를 심어놓았다. 이렇게 자연에 가까운 ‘복합농 방식’의 텃밭농사는 일 년 내내 다양한 작물을 생산할 수 있게 해주어 농가 소득에도 도움이 된다.
판매의 경우, 직거래로 마을 시장에 내어놓는데 늘 매진이라고 한다. 왜냐면 유기농으로 농사지었음에도 농산물의 가격이 기존의 관행 농산물과 동일하기 때문이다. 동네 사람들은 유기적으로 생산된 건강한 음식을 이전과 같은 가격에 사먹을 수 있어서 좋아한다. 이렇게 가격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농민의 지혜와 기술을 활용하기 때문에 기업으로부터 돈을 주고 사야 하는 농사 투입물이 적고, 중간 매개 없이 직거래로 판매하기 때문에 유통비가 절감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 마을 사람들은 한국의 농민들과 마찬가지로 ‘녹색혁명’ 기치 아래 기업에 의존하여 종자와 비료, 농약을 구매하여 농사짓게 되면서 많은 빚을 떠안았다. 농민의 땅을 담보로 하는 ‘금융화된 농업’에서 농생태학으로 전환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특히 관행농업에서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생산량이 대폭 줄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은, 농민 스스로 씨앗을 채종하고 직접 유기 퇴비와 농약을 만들어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집집마다 빚을 줄일 수 있었다.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마을 농민들이 함께 했기에 견딜 수 있었다.
▶ 인도네시아 <농생태학 훈련센터>를 소개하는 수마트라 지역 여성농민대표와 그 가족. ⓒ김신효정
지속가능한 농업, 인류 공동의 미래가 달려있다
인도네시아 농민들의 농생태학 운동은 2007년부터 시작되었다. 이전에도 유기농, 친환경에 대한 이슈는 많았지만, 그것은 공정무역이나 친환경 인증을 비롯한 시장 중심적 논의들이었다. 어떠한 농업기술을 투입해서 더 많은 유기농 작물을 생산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었다. 정부의 보조금은 친환경 자재를 만드는 ‘기업’에게 집중되었다. 유기농이 농민들과 지역 사회에 실제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고려가 절실했다.
농기업이 친환경 자재를 판매하고 정부가 친환경 인증 시스템을 만들어서 그 구조에 농민과 소비자가 편입되는 방식이 아니라, 지역 특성에 맞는 지식과 전통 지식, 토종 씨앗과 같은 생산자 중심의 변화가 필요했다. 인도네시아 농민들의 농생태학 운동은 자본과 시장을 넘어서 지역공동체, 사회, 환경과 문화를 포괄하며 삶의 질과 방식의 변화를 촉구하기 시작했다.
SPI(인도네시아농민연합)은 농민들에게 농생태학에 대한 정보와 인식의 변화, 실천 방법을 교육하고 논의하기 위해 2010년, 보고르 지역에 ‘농생태학 훈련센터’를 설립했다. 어떠한 정부의 지원도 없이, 농민들의 손으로 만들어진 교육장에서 SPI 회원들은 2개월 과정의 농생태학 교육을 받는다. 토종종자 채종법과 유기퇴비와 해충 기피제 제조법을 비롯해 농생태학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배울 수 있다. 한편 이곳은 교육을 받으러 온 회원들이 가져온 토종 씨앗을 교류하는 장이 되기도 한다.
▶ 한국과 인도네시아의 여성농민들이 함께 농생태학 운동을 외치다. ⓒ김신효정
인도네시아 또한 한국과 마찬가지로 농생태학 운동을 확산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바로 GMO의 문제이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통해 세계 최대의 GMO 생산수출국인 미국은 한국과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에게 GMO를 재배하고 생산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도 지난 2월, GMO 생산에 대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공청회에 초청된 사람들은 단 한 개의 시민단체를 제외하고 대부분 몬산토, 카길과 같은 초국적 기업 관계자였다. 이에 농민과 시민단체의 GMO 반대 캠페인과 운동이 이곳에서도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한국과 달리 여전히 농업이 주요한 산업을 차지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는 세계적으로도 다양한 생물자원의 보고다. 바나나만 해도 수백 가지의 종류가 있다. 7천 가지가 넘었던 쌀은 많이 멸종되어 현재 1천 가지 정도가 농민의 손에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과연 몬산토와 같은 초국적 기업이 판매하는 단 한 종류의 GMO 콩, 단 하나의 GMO 바나나와 GMO 쌀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인류 공동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질문해봐야 한다. (김신효정) 여성주의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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