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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에서 함께 ‘우리는 페미니스트다’
농촌 성문화 다시보기 “이제 퉁 치지 말자” ⑥
※ ‘문화기획달’에서 한국여성재단의 후원으로 2016 농촌 페미니즘 캠페인 <농촌 성문화 다시보기 “이제 퉁 치지 말자”>를 진행 중입니다. 이 캠페인의 배경과 진행 과정, 그 안에서 제기된 쟁점과 대안에 대해 예민하게 짚어보는 연재 기사를 싣습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농촌에서 페미니즘 활동을 한다는 것
작년 가을, 계간 <지글스>(지리산에서 글쓰는 여자들)의 한 코너인 ‘떴다 수다방’에서 시작한 작은 꿈틀거림이 2016 농촌 페미니즘 캠페인 <농촌 성문화 다시보기 “이제 퉁 치지 말자”>로 이어지기까지 여러 절기가 지나갔다.
한국여성재단의 후원이 결정되었고, 농촌여성 대상 성문화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농촌에서 여성들이 겪는 차별과 폭력에 대해 폭로하는 <여자들의 토크파티>도 열렸다. 농촌에 남아있는 가부장 문화와 성폭력 문제에 대해 전문가와 여성단체의 자문을 구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 연재 기사로 내보냈다. 이제 남은 과제는 우리의 캠페인을 정리하는 자료집을 발간하는 일이다.
▶ 농촌 성문화 다시보기 “이제 퉁 치지 말자” ⓒ일러스트: 자정
농촌이기 때문에 더욱 더 페미니즘이 절실했지만, 같은 이유로 페미니즘의 ‘페’자도 꺼내기가 망설여지는 순간이 있었다. 캠페인을 시작하고 나서도 진행하는 과정에서 우리 활동과 표현의 수위를 조절하고 스스로 검열하곤 했다. 도시에서라면 페미니즘 활동을 한다고 해서 ‘내가 이 동네에서 계속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다시 안 보면 그만이다. 하지만 우리의 터전은 시골이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살피고 고려해야 했다.
‘마을에서 계속 살 거면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에서부터 ‘마을 사람들 모르게 별명으로 활동할까? 어차피 누군지 다 알겠지만 실명으로 활동하면 너무 헐벗은 느낌이 들어. 그래도 별명 쓰면 빤쓰라도 하나 입고 있는 거 같아서…’, ‘우리를 단체 디스하는(상대방을 깎아내리고 비난하고 놀리는) 사람들 생겨나겠는데…, 앞으로 활동하는데 지장 있는 거 아니야?’, ‘이러면 파장이 좀 클 거 같은데, 그게 좋으면서도 두렵다’는 반응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할수록 소심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페미니즘 캠페인을 함께 한 활동가들이 우려한 부분은 ‘마을에서의 낙인’이었다. 마을 공동체와 소수의 네트워크로 이어진 지역에서 이것은 가장 두려운 일이다. 낙인은 ‘열외’로 이어지고 암묵적인 강요 끝에 자발적인 추방으로 끝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리의 캠페인은 큰 파장 없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불편한 현실을 드러내고 함께 변화를 모색하는 이들과의 즐거운 연대와 작당의 시간이었다. 누군가는 지리산 자락의 아름다운 한 마을에 스크래치를 냈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에게는 이런 일이 있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캠페인의 현장감이 미미했을 수도 있다. 캠페인의 기대 효과와 목표 달성 여부를 떠나,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더’ 불편하게 드러내어, 공동체를 회복하자
농촌 페미니즘 캠페인 첫 번째 시즌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우리에게 남은 숙제는 이 활동을 어떤 형식의 자료로 남길 것인가이다. 처음 구상은 농촌에 필요한 성교육 자료집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캠페인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의식과 행동이 변화하는 것에 반하여, 기존의 지배규범과 끈끈한 유대 관계를 바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인식의 괴리’는 더 벌어져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농촌 여성해방 전단. ⓒ 문화기획달
여성을 향한 멸시와 폭력에 대해 지적하는 사람들은 ‘오지랖 넓은 X’로 비난받았다. “이웃 지간에 친밀하게 건넨 말을 가지고 누굴 파렴치범으로 몰고 있냐”면서 도리어 성희롱 가해자를 두둔하는 쪽으로 여론을 몰아가는 경우도 있었다. 사람들이 객관적으로 정황을 판단하기보다 가족과 지인의 편에 서는 것이 자신의 영역을 지키는 일이라고 믿는 경우, 힘의 우열에서 밀리면 피해자가 재차 피해를 입는 경우가 쉽게 발생한다.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일상에 뿌리깊이 남아있고, 가족과 지인들과의 관계를 통해 안전망을 확보해가는 작은 공동체 사회에서, 페미니즘을 내세운 거창한 구호는 허망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는 것을 자각했다. 변화를 외치기 전에, 우리는 지금 상황을 거칠게 드러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현실을 불편하게 받아들이길 원했다. 그래서 자료집에는 농촌에 온 여성들이 겪은 부당한 일들을 에피소드 형식으로 재구성한 삽화를 넣고, 추가로 2차 피해의 현장까지 담았다.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을 문제 제기하는 현장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은 쉽게 모호해지곤 한다. 사실관계보다는 권력의 역학관계와 여성에 대한 이중 잣대가 판단의 기준이 된다. 가해자, 피해자의 구분을 떠나 ‘내 편’을 지키는 게 우선이다. 내 편이라면 가해자라 하더라도 기꺼이, 또는 필사적으로 지켜낸다. 그렇게 방관자 또는 공범자가 되고, 집단 내 약자가 감내해야 할 피해와 희생은 무시된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지 않으면 피해자를 비난하는 여론에 나도 모르게 휩쓸려가고 만다. 이렇게 불편한 현실에 둔감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왜 이렇게 예민해?”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왜 이렇게 둔하냐”고 묻고 있는 것이다. <농촌 성문화 다시보기> 자료집은 농촌에 온 여성들이 던지는 질문이다. 공동의 선이라는 명목으로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폭력 앞에서 개인의 존엄을 지켜내기 위한 목소리이다. 나 또는 공동체가 누리는 것이 누군가의 희생 덕분이고, 나 또는 우리가 즐거운 것이 누군가의 모멸 속에 가능하다면 이거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농촌 성문화 다시보기 “이제 퉁 치지 말자”>라는 긴 제목을 가지고 시작한 2016 농촌 페미니즘 캠페인 시즌1이 종착점에 다다랐다. 여성의 눈으로 돌아본 농촌의 성문화와 성 인지도는 우리가 몰랐던 것도 아니고, 새로운 것도 아니었다. 감추고 숨겨왔던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을 뿐이다.
“이제 퉁 치지 말자”는 여성들이 논밭과 직장에서 해내던 노동, 여성들이 맡아왔던 가정과 마을 내 역할, 여성들이 참아왔던 수치와 폭력에 침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여성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불평등한 성역할 구분과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는 남존여비 관념, 개인의 다양성을 무시하는 지배규범으로 얼룩진 농촌의 가부장 문화를 수많은 종과 개체가 어우러져 살아가는 아름다운 자연처럼 회복하자는 호소이다.
일상에서 배우고 토론하고 실천하는 페미니즘
페미니즘 캠페인과 더불어 <문화기획달>에서는 올 상반기에 마을 주민들과 ‘페미나’(페미니즘 세미나)를 진행했다. 하반기에는 페미니즘과 예술을 연계한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여성의 눈으로 보고 여성의 손으로 그리는 ‘페미니즘 아트스쿨’과, 몸과 소리로 해방의 퍼포먼스를 공동 창작하는 ‘페미니즘 액션스쿨’이 9월부터 11월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여성주의 시선으로 삶의 이면을 포착하고 억압되고 굴절된 자아를 드러내는 작업을 통해, 낯선 세상과 마주할 내면의 힘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2016 농촌 페미니즘 캠페인 시즌2로 유쾌한 작당을 이어가면서, 기존의 사고체계와 지배규범을 깨고 앞으로 함께 만들어갈 세상을 기대해본다.
▶ 농촌 성문화 다시보기 “이제 퉁 치지 말자” 캠페인 자료집 중에서 성희롱, 성추행 편. ⓒ일러스트: 자정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술자리가 벌어지고 그 술자리에는 음담패설이 난무하니까 모임 자체에 가지 않는다든지, 음식과 서빙과 설거지를 여자만 해야 하는 게 싫어서 마을행사에 참가하지 않는 식의 삶으로 내몰리고 싶지 않다. “여자가 젖이 커야지”류의 성희롱을 누군가 늘어놓을 때, “그럼 니 건 크냐? 이제 젖 얘기 좀 그만하고, 좆 얘기할까?” 식의 대거리로 끝을 맺는 대화를 원하지 않는다. 우리는 스스로 포기함으로써 배제당하는 삶을 거부한다.
부푼 꿈을 안고 이주한 농촌, 그곳에서 맞닥뜨린 ‘여성’이라는 불운한 정체성, 그리고 귀농에 대한 후회와 좌절로 얼룩진 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삶을 그냥 받아들여야하는 시골 아낙의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페미니즘을 통해 배운다. 페미니즘은 철학과 역사를 바탕으로 삶의 인문학에 통달해야 하는 어려운 학문이다. 무엇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꾸는 작업이기에 낯설고 불편하다. 그래서 더욱 배우고 토론하고 실천하는 장이 필요하다.
서로의 차이를 인식하고, 차이의 굴곡만큼 유연하게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 권력이 아닌 자연이 부여한 질서에 맞추어 살아가는 삶에서 진정한 ‘농(農)’적 삶으로의 회귀를 되새겨본다.
태도와 방식은 다양해도, 우리는 페미니스트다
페미니즘이라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는 시선 때문에, 언어의 선택을 제한하고 표현의 수위를 조절하는 수고가 따를 때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가지는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은 사실 대체할 말이 없다.
일상에서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것은 피곤하고 긴장되는 일이다. 유행가 가사도 신경이 거슬려서 듣기 힘든 경우가 있고, 여성혐오성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뽑아내는 뉴스 기사도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 여성을 우습게 아는 사람들의 언행을 일일이 지적하고 싸우는 것도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니다.
▶ 삶의 터전인 농촌을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 활동을 ‘농촌 페미니즘’이라 이름 붙였다. ⓒ일러스트: 자정
각자 처한 현실과 힘이 다르기 때문에, 개개인들은 그에 맞는 페미니즘 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온건할 수도 있고 과격할 수도 있다. 태도나 방식이 어떠하든 우리는 페미니스트가 되어가는 것이고, 그 과정을 즐겁게 받아들인다. 지금 삶의 터전이 농촌이고, 여기를 살고 싶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의 활동을 ‘농촌 페미니즘’이라고 이름 붙였듯이, 다른 삶의 터전을 가진 이들의 페미니즘은 그 방법과 이름이 다양할 것이다.
어딘가로 올라가기 위해 사다리 하나에만 의지할 순 없다. 누군가 톱으로 사다리의 밑동을 자르려 할 때 우리에게는 다른 사다리나 톱을 막아내는 방법이 필요하다. 누군가 사다리에 못을 거꾸로 박아놓고 위에서 화살을 내리꽂는 대도, 그 상처를 끌어안기만 할 수는 없다. 잘못 박힌 못을 빼고 화살을 막는 방패가 되어 주는 사람들이 함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살아 숨 쉬는 한, 같이 손잡고 출렁이며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 농촌에서 페미니즘을 꺼낼 수 있도록 앞서 터를 잡고 환경을 만들어주신 이웃들과, 이 캠페인에 지지와 격려, 응원을 보내주신 분들, 그리고 벽에 부딪히고 놀라 넘어지고 움츠러들 때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명심) 여성주의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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