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문화감성 충전

인디언 저항운동의 상징, 레너드 펠티에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09. 2. 3. 16:40

미국 사회의 인종문제는 흑백갈등뿐만 아니다. <나의 삶, 끝나지 않은 선댄스>는 FBI요원을 죽였다는 누명으로 연속 종신형을 선고 받고 1976년부터 감옥에서 지내고 있는 인디언 레너드 펠티에의 옥중 수기다.

레너드 펠티에는 인디언 저항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과 같은 밴드가 그의 석방을 위해 뮤직비디오를 찍는 등 국제적으로도 유명한 양심수다. 레너드 펠티에의 수기는 차별에 맞서 저항운동을 하다가 감옥에 갇힌 한 개인의 내면과 인디언 생존을 위한 투쟁과 저항운동의 역사를 동시에 보여준다.

미국사회에서 흑인에 대한 차별과 마찬가지로 인디언 차별은 사회적인 관습으로 고착화되어 있다. 인디언 ‘문제’에 대한 미국정부의 정책은 시대에 따라 변천해왔지만 원주민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1860년대 후반 연방정부는 인디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디언 부족의 거주지를 특정한 구역으로 제한한다. 그런다 지정거주지는 사람이 살기 어려운 불모지여서 인디언들은 정부 보조금에 의존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이후 연방정부는 인디언을 백인사회에 강제로 동화시키는 정책을 펴는 등 정책적 변화를 통해 인디언 거주지의 크기를 줄이고 인디언들의 삶을 계속 흔들어놓았다.

레너드 펠티에는 인디언들의 저항과 그에 대한 폭력이 매우 심각했던 1970년대에 활동했다. 레너드 펠티에는 어려서부터 백인경찰들에게 단지 ‘인디언’이라는 이유로 혼나는 한편, 1890년에 일어난 운디드니 대학살과 같은, 철로를 부설할 땅을 빼앗기 위해 정부가 300여명의 인디언들을 학살한 사건들을 들으면서 자라왔다. 남북 아메리카 대륙 통틀어 약 2억 명 이상의 인디언이 살고 있지만, 이들은 백인들의 분열정책에 의해 제대로 단합하지 못한다.

지은이는 과거 인디언들이 직접 학살당했다면, 지금의 인디언들은 ‘통계’를 통해 학살당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우스다코타의 인디언 지정 거주지는 미국에서 가장 높은 빈곤율, 가장 높은 실업률, 가장 높은 유아사망률, 가장 높은 청소년 자살률에 허덕인다. 사실상 이것은 학살이다.”

1950년대 중반 이후 인디언의 새로운 세대들은 주 정부와 연방정부가 자신들에게 가한 위법행위에 저항하기 시작한다. 캘리포니아의 앨커트래즈 섬 점거, 로톤 요새 점거 사건은 인디언들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운동(AIM)은 1970년대 활발하게 일어난 인권운동의 흐름 속에서 생겨났고, 도심의 빈민층에 사는 인디언들이 주축이 돼 ‘주권’, ‘조상 땅의 반환’과 같은 적극적인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73년 벌어진 운디드니 점거 및 정부와의 협상 이후 인디언들은 엄청난 공격을 당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죽거나 다쳐도 아무도 진상을 제대로 규명해주지 않았다. 결국 1975년 FBI에서 직접 인디언 공격을 시작하고, 혼란한 와중에 지은이는 FBI 수사관을 죽였다는 죄목을 뒤집어쓰게 된다.

인디언들의 저항과 그들이 당한 폭력, 그리고 지은이의 무죄석방을 위한 수많은 노력이 책의 주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삶, 끝나지 않은 선댄스>는 희망적인 느낌으로 가득하다. 아마도 감옥에서 오랫동안 지내면서 인디언의 전통적인 방식에 기대어 자신의 감정을 다독인 레너드 펠티에의 깊은 사유에서 나온 힘일 것이다.

그는 감옥생활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당신은 결코 감옥살이에 익숙해 질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이 다시 자유롭게 될지 어떨지 언제나 불안에 떨어야 한다면 그것이 바로 고문이지 무엇이겠는가. 언제나 그것은 당신의 심장에, 당신의 영혼에 상처를 입힌다.”

자신이 겪은 폭력의 경험은 인디언 부족 전체의 상처가 되어 언제고 그의 마음을 헤집어놓는다. 다행히 지속적인 저항운동의 결실 중 하나로 1998년 캐나다 정부에서는 인디언들에게 사과하는 ‘화해헌장’을 제정하고 구제기금을 설립했다.

인디언의 관습에 의해 얻은 이름, 전통적인 종교의식에서 레너드 펠티에는 희망을 찾는다. 그가 외치는 인디언다운 삶은 아마도 전통만을 완고하게 고수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삶의 양식을 완벽하게 미국식으로 바꾸는 것도 아닐 것이다. 인디언들의 삶은 아직 제대로 펼쳐지지 않았기에, 인디언다운 삶 또한 진행형이다.

“내 이름 중 하나는 ‘해를 좇는 바람’이라는 뜻이다. 이 이름은 내게 총체적 자유, 곧 감옥 담장 밖의 사람들조차 대부분 결코 성취하지 못할 목표를 상징한다. ‘해를 좇는 바람’이라는 이름을 숙고할 때, 나는 온 몸이 분해 되어 벽돌 담장과 철창을 벗어나 바람을 타고 순결한 햇빛을 지나 하늘 세상으로 나아가는 듯한, 가슴 가득한 자유를 느낀다.”
일다▣ 김윤은미

[관련 글 보기] 노예들의 모세로 불렸던 여성, 해리엇 터브먼 김윤은미 | 문화읽기  
댓글
  • 프로필사진 ryu 인디언들은 대륙의 원주민임에도 불구하고 흑인들보다 더 가혹한 역사를 가졌지요.
    땅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인디언들이 세력화되지 못하도록 치밀하게 억압해 온 미국사를 생각해보면, 정신이 아득해질 때가 있습니다.
    2009.02.04 02:45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