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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당신이 걸어 나오기를 기다립니다’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6. 2. 1. 08:30

‘당신이 걸어 나오기를 기다립니다’

연탄과 함께하는 글쓰기치료(9) 미소님의 사례⑤



연탄이 진행한 글쓰기 치료 프로그램의 한 사례를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이는 글쓰기 치료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 결코 아니며, 다양한 글쓰기 치료 중 하나임을 밝힙니다.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사례는, 40대 여성으로 3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두 아이를 혼자 돌보면서 항상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는 ‘미소’(별칭)님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공개하는 내용은 실제 진행한 회기와는 다르며, 매회 글쓰기 과제와 미소님이 작성한 글, 연탄의 피드백 중 주요 내용을 중심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비슷한 상처로 힘들어하고 있을지 모를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사례를 공유하도록 허락해 주신 미소님께 감사드립니다.

 

[미소]

 

“편견이 당연해서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라, 편견은 부당한 것이다. 세상의 편견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내공을 길러줘야 한다. 아이의 행동과 사고방식이 정립되는 것은 부모의 시선과 태도에 달려 있다.”

 

미소는 연탄님의 피드백 중 이 부분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넘어가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당연한 얘긴데 내 아이에게 강조하지는 못했던 말이지요. 남편의 장례식이 끝난 뒤 바로 아이들의 새 학기가 시작됐고 전 두 아이에게 ‘누가 아빠 얘기를 묻거든 처음부터 안 계신다는 얘기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네 잘못은 아니지만 굳이 얘기하지는 말라’고 했지요. 다소 비겁하게 불편한 시선을 피해가는 방법을 알려준 건 아닌가 늘 마음에 걸렸어요.

 

연탄님의 글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이 비합리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잘못됐다고 당당히 얘기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한 번 드네요. 가끔은 억울하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합니다. 남들은 하지 않아도 되는 생각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 말이죠.

 

“자책만 한다면 무기력감에 빠질 수 있다. 소모적인 일에 시간 낭비하지 말자. 나는 불행한 사건을 겪었지만 그것이 내 인생을 좌우하게 해선 안 된다.” 백번 공감하는 말입니다. 미소도 가장 두려운 부분은 무력감에 빠지거나 불필요한 생각에 인생을 낭비하는 건 아닌가 하는 부분입니다. 출퇴근길에 타고 다니는 광역버스가 위아래로 흔들릴 때조차 두려움에 휩싸여 당황스러워하는 저였습니다. 그만큼 심리적인 에너지가 바닥났다는 증거겠죠.


▶ 우리의 마음이 늘 설레는 것은 걸어 나오는 이야기가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정용철 <걸어 나오기를> 중에서


그동안 미소도 심리적인 충전과 내 행동의 원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많은 책을 기웃거렸습니다. 누워만 있던 생활을 청산하고 내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기 위해 ○○수업과 △△수업을 신청해 듣고 있습니다.

 

요즘엔 다시 성경책을 손에 들었습니다. 잠언을 읽고 있는데 많은 위안을 받고 삶의 지혜를 얻고 있습니다. 어제 처음으로 털컹거리는 광역버스를 타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미리 기도했지요. 불안해하지 않게 해달라고.

 

지혜롭게 살고 싶습니다. 내 환경 탓만 하지 않고 당당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네요. 연탄님의 따뜻한 말들이 위로를 주었습니다. 연탄님이 내 상황을 정리해준 말들이 나를 안심시키고 평안을 주네요. 산만하게 퍼져 있어 갈피를 못 잡던 내 상황들이 조금씩 정돈되는 것 같아 좋습니다.

 

처음에 글쓰기 치료를 시작할 땐 연탄님이 내게 확실한 답을 줄 거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답은 제 안에 이미 있었죠. 그걸 연탄님이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었네요. 분명한 답을 제시해주는 것보다 연탄님이 내 상황을 정리정돈해준 것이 더 와 닿습니다.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연탄님이 뭐라 답을 줄지 궁금해지기 시작한 저를 발견했습니다. 글쓰기 치료 과정이 잘 진행될까? 무슨 도움이 될까? 하던 우려가 자연스럽게 없어지네요.

 

[연탄]

 

미소님, 연탄의 피드백에 충분히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현재의 상황을 정확하게 확인하고 이해하려는 미소님의 노력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다양한 노력을 하고 계신 데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미소님, 잠시 제가 좋아하는 시 한 편을 읽어드리고 싶습니다.

 

걸어 나오기를 -정용철

 

사람들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도착역에서 당신이 걸어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절망과 좌절에서 걸어 나오기를

미움과 증오에서 걸어 나오기를

불평과 불만에서 걸어 나오기를

열등감과 우월감에서 걸어 나오기를

수치심과 두려움에서 걸어 나오기를

우울과 무력감에서 걸어 나오기를

부정적인 생각과 허무에서 걸어 나오기를.


봄은 겨울에서 힘차게 걸어 나오는 것들의 이야기입니다

굳은 땅에서 걸어 나오는 새싹의 이야기

딱딱한 껍질에서 걸어 나오는 꽃잎의 이야기

얼음에서 걸어 나오는 시냇물의 이야기

방에서 걸어 나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당신의 문은 안으로 잠겨 있기에 사람들이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걸어 나오는 일은 당신이 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로부터 걸어 나오기

때문이고, 우리의 마음이 늘 설레는 것은 걸어 나오는

이야기가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미소님, 연탄이 특히 좋아하는 구절은 마지막 부분입니다. “우리의 삶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로부터 걸어 나오기 때문이고, 우리의 마음이 늘 설레는 것은 걸어 나오는 이야기가 계속되기 때문입니다”라는 구절이 고개를 끄덕이게 하면서도 뭉클하게 만듭니다.

 

우리 모두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지?’ 하다가도, ‘그래 그런 거지’ 하죠. 연탄이 좋아하는 말이 ‘삶은 도전’인데, 도전이 없으면 사는 재미도 없다고 생각하면 또 다시 힘을 내게 된답니다. 이 시의 마지막 구절도 그런 맥락인 것 같아 참 좋습니다.  연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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