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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은 당연하지 않다”

<연탄과 함께하는 글쓰기치료> 미소님의 사례④



연탄이 진행한 글쓰기 치료 프로그램의 한 사례를 10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이는 글쓰기 치료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이 결코 아니며, 다양한 글쓰기 치료 중 하나임을 밝힙니다.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하는 사례는, 40대 여성으로 3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두 아이를 혼자 돌보면서 항상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는 ‘미소’(별칭)님의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공개하는 내용은 실제 진행한 회기와는 다르며, 매회 글쓰기 과제와 미소님이 작성한 글, 연탄의 피드백 중 주요 내용을 중심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비슷한 상처로 힘들어하고 있을지 모를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사례를 공유하도록 허락해 주신 미소님께 감사드립니다.

 

[연탄]

 

미소님이 현재 느끼는 심리적 문제는, 남편과 사별 후에 혼자 남겨진 것에 대한 외로움과 슬픔뿐만이 아니라 한부모 가정에 대한 차별과 편견에 대한 두려움도 큰 상태입니다. 지난 3년간 미소님께서 남편의 부재나 한부모 가정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또는 제도적으로 받은 차별이나 상처가 있다면 자세하게 글로 써보십시오.

 

[미소]

 

새 학기에 학생신상명세서를 적어오라고 할 때마다 고민입니다.  © 일러스트: 정은


한부모 가정이라 받은 피해는 아직까진 크게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아직 어리고, 아이들과 살아가야 할 미래가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두렵습니다. 상처는 몇 번 받았지요. 사람들과 얘기 나누다가, 문제 아이의 가정이 대부분 한부모 가정이나 조손 가정이라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내가 한부모 가정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의 경우에도 아무렇지 않게 그런 얘기를 하는 상황에서는 매우 당황스럽죠.

 

공교롭게 아이들이 아빠를 떠나보낸 시점에, TV에는 아빠 육아 프로그램이 유행이었고 아직까지도 포맷을 달리해 방송되고 있는데요. 이 프로를 열심히 보는 둘째 아이를 보며 한숨이 절로 나왔지요. 하필이면 이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프로그램의 취지가 처음에는 의미가 있었지요. 그러나 갈수록 내용이 상업화되어 점점 럭셔리하고 든든한 백이 돼주는 아빠가 등장하면서, 아이와 함께 보기 거북한 프로그램이 됐습니다. 육아의 힘든 점을 아빠가 공유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좋은 옷에 좋은 집에 항상 여행을 다니며 부를 과시하는 프로그램이 되면서, 우리 아이들도 혹시나 저런 아빠를 부러워하는 건 아닐까 걱정됩니다. 아빠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게 해준다기보다는 그나마 간직해야 할 아빠를 잊게 만드는 건 아닌가 아쉽습니다.

 

군대 내 폭력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관심사병’이라는 단어가 생겼는데요. 군에 입대했을 때 관심사병으로 분류하는 우선 대상 중 하나가 한부모 가정 자녀라는 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회사의 입사지원서에도 아버지의 직업을 묻는 칸이 버젓이 있고요.

 

아이들 초등학교에서 새 학기가 되면 학생신상 명세서를 적어오라고 할 때마다 늘 고민입니다. 솔직하게 썼다가 아이가 혹시 선생님한테 차별받거나 무시당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대부분 아버지가 있는 것으로 기재합니다. 큰아이 학교에서 부모가 모두 있는 것을 ‘정상적인 가정’이라 여기고, 항상 모든 일에 부와 모의 이름과 연락처를 적도록 칸을 나누고, 심지어 온라인에 게재하기도 해 사생활이 그대로 노출되는 일이 있었지요.

 

사실 이런 일들은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아무도 헤아릴 수 없는 일입니다. 나 또한 예전에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일이니까요. 당사자 부모뿐만 아니라 아이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조금의 배려가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절실히 듭니다.

 

이렇게 몇 가지 사례만 봐도 우리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사회에 진출해서까지 차별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잠재적인 문제아, 잠재적인 관심사병이 되는 거죠. 이 부분이 가장 저를 힘들게 합니다.

 

또 한부모 가정이면 모두 생활이 어려울 거라고 미리 짐작하는 것도 견디기 불편한 시선입니다. 급식비와 방과후 수업비를 지원받겠느냐는 큰아이 담임선생님의 전화를 받고 당황했습니다. 물론 선의에서 나온 행동이겠지만 일방적인 적선이라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안 좋더군요.

 

남들이 보기에 모든 면에서 생각이 왜곡되어 있고 부정적인 사람으로 여겨질 것 같은 우려도 살짝 듭니다. 장애가 없는 장애인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늘 사회적인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하지는 않습니다. 잊고 살 수도 없고, 무시하며 살 수도 없고……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네요.

 

[연탄]

 

남편의 부재로 인해 생긴 문제와 피해에 대해 힘들지만 솔직하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미소님께서는 아직까지 큰 문제는 없었지만,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해 두렵다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들과의 일상적인 대화에서 한부모나 조손 가정에 대한 편견을 들을 때마다 가슴 아프다고 하셨습니다. 더욱이 본인 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것이 당황스럽고 화가 나시기도 하구요. 그리고 공문서나 학교 서류에 나타나는 남편의 부재가 항상 불편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학연, 지연, 부모의 배경이 중요시되는 한국 사회에서 차별받을 수 있는 근거가 드러나는 게 싫다고 하셨습니다. 아이들이 이것에 상처받을까봐 불안해하고 계시구요.

 

▶ 우리는 편견과 차별적인 제도를 피해갈 수 없습니다. 다만, 끊임없이 그것이 잘못됐다고 싸울 수밖에 없지요.  ©일러스트: 정은


제가 아이를 키우고 아이들과 상담하면서 느낀 게 있습니다. 아이들은 우리보다 훨씬 순수하고, 솔직합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어른인 우리보다 더 강해보이기도 합니다. 가끔 부모인 나는 고민하고 상처받는 무언가를 아이는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도화지 같다고들 하죠. 아이들에게 편견이 당연해서 어쩔 수 없노라고 얘기하면, 아이들은 편견에 움츠러들게 될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아이들에게 편견은 당연하지 않다고, 부당한 것이라고 하면, 아이들은 세상의 편견에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내공을 기를지도 모릅니다.

 

두 가지의 선택은 부모의 시선과 태도에 달려있다고 할 수 있지요. 우리는 편견과 차별적인 제도를 피해갈 수 없습니다. 다만, 끊임없이 그것이 잘못됐다고 싸울 수밖에 없지요.

 

심리적 고통을 주는 문제가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유발한 상대방 또는 환경 탓만 하고 있거나, 아니면 자책하기도 합니다. 두 가지 모두 별 도움은 안 됩니다. 전자의 경우, 내가 문제 제기해서 금방 바뀔 수 있는 상대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무력감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내 잘못이 결코 아닌데 발생한 일에 대해 죄의식을 갖거나 자책한다면 정말 그처럼 소모적인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제와 자신을 분리시키고 객관화시키길 주문합니다. 그리고 쉽게 바뀌지 않는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내 자신, 내 관점을 바꾸라고 조언합니다. 우리가 배우자나 부모와 사별했다면, 그것은 “내 팔자가 세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불행한 사고와 같은 일입니다. 그리고 내 잘못이 아니기 때문에 그로 인해 내가 혹시 차별받는다면, 그런 상황이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의 사건이 우리의 인생을 좌우하게 해선 결코 안 됩니다.

 

미소님이 쓰신 글을 읽어보면, 미소님 스스로가 답을 이미 알고 계십니다. 하지만 답을 알고 있다고 바로 사고와 행동의 전환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지요. 우리의 사고와 행동의 변화는 꾸준한 연습밖에는 길이 없다고들 합니다. 글쓰기 치료도 그런 연습의 과정이구요.

 

미소님, 오늘은 좀 길었지만 연탄의 피드백으로 진행을 했습니다. 다음 번 글쓰기에는 미소님의 생각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보거나, 연탄의 이야기 중 피드백할 만한 것이 있다면 써주십시오. 미소님, 저와 함께 끊임없는 노력과 연습의 시간을 가져 보시길 바라고, 본인에게 몰두하는 시간도 더 많이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연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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