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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위안부’ 합의의 6가지 문제점

“두 정부끼리 속닥속닥…” 배제된 피해자들과 국민들



2015년 12월 28일 한일외교장관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위안부’ 피해자들을 비롯해 시민들도 혼란과 분노에 휩싸였다. 각계각층에서 이번 합의는 무효라는 주장이 쏟아지고 있고, 재협상하지 않는다면 박근혜 정권은 탄핵감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양국이 ‘합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일 정부가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어 그에 따른 분쟁도 계속되고 있어, 이번 합의의 내용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도 불확실한 상태다. 공식적인 합의문을 공개하지 않아서, 이것이 한일 간의 조약인지 행정협정인지 정치적 합의인지 그 성격에 대한 논란도 커지고 있다.

 

1월 5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이번 합의의 문제점을 진단하는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일본군‘위안부’연구회 설립추진모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이 공동 주최한 자리다. 이번 토론회에서 제기된 내용을 바탕으로, 12.28 한일 협상의 내용과 문제점을 정리해보았다.

 

① 협상의 주체인 피해당사자가 배제됐다

 

▲ “얼마나 늙은이들을 무시했으면, 우리도 모르게 해 놓고 타결이라고 합니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씨.  © 일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기본 당사자는 피해자인 할머니들이다. 그럼에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합의에서, 피해자의 자리는 없었다.

 

양현아 서울대 법학과 교수는 “이번 합의는 피해자를 협상과 협의의 주체로 여기지 않고 기껏해야 배상의 객체 정도로 위치 짓고 있다는 점이 가장 문제적”이라고 지적했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얼굴을 드러내고 자신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증언한 것은 한국 사회뿐 아니라 세계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이후 다른 피해자들의 증언이 잇따랐고,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피해자로 등록한 분들만 해도 238명이다.

 

당사자들과 지원자들의 용기와 힘으로 시작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은 24년간 1200회 이상 지속된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로 이어졌으며, 아시아의 대표적 인권 의제로 자리 잡았고, 나아가 ‘전시 성폭력’ 문제에 관한 세계시민들의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윤미향 정대협 대표는 “12.28 합의 소식을 듣고 수십 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고 심경을 밝혔다. 특히 양국 정부가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은 것에 대해 분노를 표했다.

 

“피해자들을 배제했다는 비판이 일자 외교통상부가 ‘피해자들을 계속 만나왔다. 2015년만 해도 피해자들을 15번 만났다’고 말했다. 외교부가 스스로 자리를 만든 건 추석 때 방문한 것뿐이며, 다른 만남들은 도대체 협상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혹은 피해자들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 전달하기 위해 피해자들과 지원단체들이 직접 찾아가서 만난 것이다. 그 만남들이 이제 와서 피해자와 관련단체들을 비난하는 데 쓰이고 있다.”

 

양현아 교수는 “피해 당사자로부터 시작하고 지속돼 온 이 운동의 마침표 역시 피해자와 함께 가야 하는 것이 순리에 맞다”고 강조하면서, “피해자 권리를 중시하는 국제인권 기준을 따르지 않은 합의”라고 비판했다.

 

“UN은 중대한 인권침해 피해자의 권리에 관해 기준과 내용을 정립해 왔다. 2000년 발효된 국제형사재판소 규정을 보면 인권유린 사안의 경우, 수사와 사법절차의 모든 단계에서 피해자의 참여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피해자는 정보를 제공받는 객체의 위치가 아닌 ‘참여자로서의 피해자’(Victim as participant)의 절차적 보장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것이 피해 회복의 첫 단추라는 것이다.”

 

② 외무상의 사과문 ‘대독’, 사죄가 이런 것?

 

▲ “당사자인 본인들한테 이렇게 할 거라는 걸 얘기를 해줬어야 하는 것 아니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씨.  © 일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는 아베 총리가 직접 사과하지 않고 외무상이 대독한 행위에 분노를 표했다. 또한 이를 ‘사죄’로 받아들여 합의한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두 정부끼리 속닥속닥 해놓고 사죄했다고 합니다. 그런 사죄 받으려고 우리가 이렇게 고생했습니까? 아베 본인이 직접 나서서 기자들 모아놓고 진심으로 우러나는 사죄를 해야지, 얼마나 늙은이들을 무시했으면, 우리도 모르게 해 놓고 타결이라고 합니까?”

 

이용수 할머니도 “아무리 늙은이들을 무시한다고 해도 당사자인 본인들한테 이렇게 할 거라는 걸 얘기를 해줬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양국 정상을 향해 분통을 터뜨렸다.

 

당사자들과 지원단체들, 그리고 이번 토론회 참여자들 모두 일본 측의 입장 표명 내용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사죄라고 볼 수 없다고 진단했다.

 

③ ‘위안부’ 문제가 무엇인지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대독’ 행위뿐만 아니다. 피해자들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해왔는데, 일본 정부는 여전히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사실과 책임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은 채, 두루뭉실 사안을 희석시켰다는 지적이다.

 

한일 외교장관회담 공동 기자회견문의 일본 측 표명 사항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함. 아베 내각총리대신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다시 한 번 ‘위안부’로서 많은 고통을 겪고 심신에 걸쳐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 대한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함.”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본 측 표명 사항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가 문제가 되며 피해의 내용은 무엇인지 전혀 구체적으로 적시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재승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위안부’ 문제는 일본의 국가 권력이 작동한 국가 범죄(state crime)임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위안부’ 모집업자들의 사인 범죄(personal crime)로 보고 있다. 이번 합의문에서 ‘군의 관여’라고 모호하게 얼버무린 것은 국가 범죄의 주체인 군대와 일본 정부의 책임을 부인하거나 희석하려는 시도로 보인다”고 밝혔다.

 

④ 피해자들의 한결같은 요구는 ‘법적 책임’

 

피해자와 관련단체들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고 강조해왔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중대한 국가범죄이며 당시의 국내법, 국제법을 위반한 것으로, 일본 정부가 이에 대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요구였다. 한국의 헌법재판소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반인도적인 불법 행위’로 판단한 바 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그동안 ‘법적’ 책임을 회피하고 ‘도의적’ 책임만 지겠다고 하여 이 문제를 둘러싼 양국의 갈등이 지속돼왔다. 1995년 일본이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이하 국민기금)을 모으면서 내각총리대신 명의로 발표했던 사과 편지에서도 ‘도의적 책임’을 거론했다. 한국의 다수의 피해자들은 국민기금 수령을 거부한 바 있다.

 

그런데 12.28 일본 정부의 표명에서는 ‘도의적’이라는 수식어가 빠진 채 ‘책임’이라는 단어만 쓰였다. 이것이 ‘법적’ 책임을 진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다.

 

김창록 경북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본 측 표명 사항을 두고 ‘기존의 입장에서 진일보한 것’이라고 보는 시선이 있지만, 1995년 발표했던 ‘사과 편지’(국민기금과 함께 전달된)와 별 다를 바 없다”고 냉정하게 진단했다.

 

“이번 합의 직후, 아베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전화 회담에서 ‘위안부’ 문제는 1965년의 한일청구권, 경제협력협정으로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해결되었다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도의적’이라는 단어는 사라졌지만 일본 정부에게 책임은 여전히 ‘법적 책임’이 아닌 ‘도의적 책임’인 것이다.”

 

▲ 2016년 1월 5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긴급진단 2015년 한일외교장관회담의 문제점> 토론회  © 일다

 

⑤ 두고두고 반성해야 할 역사를 ‘불가역적’ 해결?

 

이번 합의에서 무엇보다 많은 시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는 것은 바로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구절이다. 이번 발표의 한국 측 표명 사항에는 이렇게 적시되어 있다.

 

“한국 정부는 (...) 일본 정부가 상기에서 표명한 조치를 착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번 발표를 통해 일본 정부와 함께 이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함. (...) 한국 정부는 이번에 일본 정부가 표명한 조치가 착실히 실시된다는 것을 전제로 일본 정부와 함께 향후 유엔 등 국제 사회에서 동 문제에 대해 상호 비난 비판을 자제함.”

 

이나영 중앙대 교수는 “한일 정부는 이번 발표를 통해 ‘동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임을 확인한다’고 못박음으로써 (피해자들이) 그토록 원했던 재발 방지에 대한 어떤 약속도 없이 일방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종결짓고자 했다”고 비판했다.

 

김창록 경북대 교수도 “이번 합의로 일본 정부로서는 10억엔만 출연하면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과 한국 정부의 비난, 비판 자제를 얻어낼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아베 정권은 일본군 ‘위안부’ 관련해 강제연행의 증거는 없기 때문에 ‘강제성이 없다’고 계속 주장해 왔다. 이번 합의에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역사 교육 등의 내용이 빠진 상태에서, 이후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강제성이 없었다고 국내외적으로 주장하거나 역사교육에서 진실을 왜곡해도 이미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을 한 것이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


▲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앞 벽에 시민들이 노란 나비 모양의 종이에 적은 평화와 연대의 메시지.   © 일다

 

이번 합의에는 피해자들과 지원단체들이 수십 년간 요구해 온 ‘재발방지 노력’에 대해 단 한 줄도 언급도 없다. 피해자들은 역사교과서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기술하고, 추모사업을 실시하고, 잘못된 역사 인식에 근거한 공인의 발언을 금지하는 등의 재발방지 조치를 요구해 왔다. 그런데 오히려 아베 정권이 ‘다시는 문제 삼지 말라’며 적반하장격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토론회 참가자들은 무엇보다 역사적 과오를 되새기면서 두고두고 반성해야 할 일을 두고,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 운운하는 것은 사죄하는 측의 자세가 아니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독일의 수상들이 “홀로코스트를 기억할 영원한 책임이 독일에게 있다”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성을 표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라는 것.

 

⑥ 재단에 고작 10억엔 출연, 그것도 조건을 걸고?

 

이번 합의 내용 중에서 한국 정부가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에서 약 10억엔을 출연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양국 간 해석이 다르다. 한국 정부는 사실상 ‘배상’의 성격을 갖는다고 해석하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도의적 책임’에 따른 ‘인도적 지원금’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김창록 경북대학교 교수는 “일본 정부는 ‘법적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배상’하지 않는 것이나 재단 설립에 스스로 나서지 않고 한국 정부를 통해 사업을 하기로 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이라고 꼬집었다.

 

양현아 서울대 법학과 교수는 재단 설립에 일본이 출연하는 기금의 액수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굳이 금전으로 피해 회복을 대신하고자 한다면, 살아있는 분들에 국한하지 않고 한국 정부에 신고한 피해자들을 고려했어야 한다. 이들의 생명과 일생의 고통을 고려한다면 1인당 1억원 정도를 산정해도 24억엔은 되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아시아태평양 전쟁에서 전사한 ‘위안부’ 피해자들을 고려할 때 적어도 1조원 정도의 액수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현재 한국 국민들의 반발을 사고 있는 것은, 일본 측의 기금 출연이 그동안 일본 정부가 눈엣가시로 여겨왔던 ‘평화의 소녀상’ 철거 및 이전과 연결되어 이야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양현야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절대 다수가 전장에서 이름도 없이 돌아가셨거나 적진에서 귀국하지 못한 채로 고인이 되었다. 사자(死者)들이 편히 누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일본 정부의 책임과 통감이 생존자뿐만 아니라 사자(死者)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면, 평화의 소녀상은 철거의 대상이 아니라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참회해야 할 존엄의 표상”이라고 말했다.


▲  일본군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해 날아오르는 <희망나비> 유럽평화기행단이 2016년 1월 6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연대 수요집회를 마치고 평화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 출처: 희망나비

 

“피해자들의 요구 반영해 재협상해야 한다”

 

윤미향 정대협 대표는 “피해자들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가해자인 일본이 곤란하지 않게 몇 개의 단어만 나열한 이번 합의는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이렇게 해석해도 되고 저렇게 해석해도 되는 이런 합의의 피해는 고스란히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윤 대표는 “피해자들이 요구하는 내용이 채택될 수 있도록, 유엔이 이번 합의에 대해 진상조사하고 재협상의 테이블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대협은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운동이 세계 각지의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과 연대를 더욱 굳건히 하는 한편, 여성들이 성노예로 끌려갔던 지역에 평화비를 건립하는 운동을 더 활발히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일본의 변호사 가와카미 시로우씨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아베 정권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실을 왜곡하는 발언을 계속해 왔기 때문에 양국 외무 장관이 합의했다는 사실은 일본 사회에서도 놀라움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아베 정권의 언사들이 너무 퇴행적이었기 때문에, 그에 비하면 이번 합의가 한발 전진한 것이라는 여론이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가와카미씨는 “아베 정권은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이 대폭 양보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을 만들고 공을 한국 측에 넘겨버렸다. 이를 통해 아베 정권의 산적한 여러 과제 중 위안부 문제를 우선 순위에서 내리겠다는 것”이라고 진단하면서 “‘위안부’ 문제의 진정한 책임 주체는 일본 정부임을 다시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나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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