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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새지평

발렌타인데이에 “동의하고 하는 행진”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6. 2. 13. 21:00

비명에 가까운 캠페인 <#그건_강간입니다>

‘술과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 방지 캠페인’을 시작하며



※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술과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 방지 캠페인 <#그건_강간입니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캠페인의 기획단이 그동안 논의한 내용과 변화를 위한 질문과 제안을 담은 이야기를 5회에 걸쳐 싣습니다. -편집자 주

 

성폭력에 대해 이전과는 다르게 사고하게 되길

 

술과 약물을 이용하여 발생하고 있는 성폭력에 대한 예방 캠페인을 하기로 한 것은 즉흥적인 일이었다.

 

작년 10월, 여성혐오에 반기를 든 메갈리아 활동이 한창이었고, 여성을 대상으로 한 몰래카메라 촬영물 유포 근거지였던 소라넷이나 그와 유사한 남성들의 성문화에 대한 폭로로 온라인이 들끓던 시기였다. 나 역시 분노가 목구멍까지 차올라 있었다. 그것은 특별한 감각이었다. 분노 자체보다도, ‘함께 분노한다’는 감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감각이 그저 시간의 흐름 속에 사라지지 않았으면 했다. 무력감이 닥쳐오기 전에 무엇인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성폭력상담소에 제안서를 냈고, 작년 11월부터 함께 ‘술과 약물을 이용한 성폭력 방지 캠페인’을 시작했다. 상담소에서 공고한 캠페인 자원활동가 모집에 20명이 신청하였을 때부터 그것이 나만의 욕구가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곧 캠페인을 위해 모금이 진행되었고, 139명의 후원을 받아 사업이 시작되었다.


▶ #그건_강간입니다 캠페인 기획단 회의 모습.    © 한국성폭력상담소

 

그리고 두 달 동안,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의 경험과 논의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성폭력에 대해 이전과는 상당히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게 되었다. 거리에서 캠페인을 한 번 하고 나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또 달라졌다. 간담회를 할수록 더 많은 이야기들이 쌓였다. 아마 앞으로 다섯 회에 걸쳐 연재하게 될 이 기획 기사로도, 이달 말 최종 발표회에서 캠페인 팀이 발간할 자료집에도, 그 이야기들이 다 담길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은 완결된 이야기가 아니고, 정리되지 않은 여러 갈래의 의문과 감정들로 이루어진 이야기이다. 성폭력에 대해 함께 분노했던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의 타래가 건네지기를 바란다. 우리의 캠페인이 온라인을 통해 건네받은 여러 이야기에서부터 출발했듯이, 이 이야기 역시 건네받은 사람들에게 어떤 출발점이 될 수 있고, 나 역시 또다시 연결되는 이야기의 어느 지점에 다시 합류할 수 있다면 기쁠 것이다.

 

여성혐오 사회는 성폭력을 유발하고 방조한다

 

#그건_강간입니다 캠페인의 배경이 된 것은 어떤 공통된 분노였다. 여성혐오 자체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온라인에서의 여성혐오는 가시성과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며 여성들에게 실제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다만 이전까지는 그것이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로 지칭되는 특정 커뮤니티에서 국한된, 연애 시장에서 탈락한 일부 ‘루저’ 남성들의 돌출적 행위라고 해석되었고 그 영향력에 대해서도 축소되어 분석되었다.

 

그러나 여성혐오가 한 번 이름 붙여지며 주목되기 시작하자, 그것이 얼마나 촘촘하게 남성, 아니 사회 전반의 성문화를 에워싸고 있는지 드러나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온라인 문화가 여성에 대한 폭력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알게 되었을 때, 나를 비롯한 여성들이 받은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술과 약물을 이용한 강간은 남자친구에 의해, 지인에 의해, 또한 무작위적으로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온라인에는 강간 용도의 약물을 판매하는 불법 사이트가 넘쳐나고, 강간 후기가 약물의 상품 평에 오르며 사진과 함께 소라넷에 공유되기도 한다. 아무 인증 없이 쉽게 가입할 수 있는 사이트인 소라넷에서 남성 유저들은 술이나 약물에 취해 의식이 없는 여성의 성기 사진을 찍어 올리며 강간의 공범을 찾는 ‘초대남 구해요’라는 글을 매일같이 올린다. 여기에 댓글을 다는 남성들 중 누구에게도 이것이 범죄라는 인식이 없다는 것, 이곳이 가입자 백만 명을 자랑하는 한국 최대의 대중적인 성인 사이트라는 사실은 너무나 놀라운 일이다.

 

소라넷의 유입 경로는 매번 바뀌는 주소를 공지하는 공개 트위터 계정인데, 이 계정을 구독하는 팔로워 수만 38만 명에 이른다. 소라넷에 대한 충격이 트위터를 휩쓸자, 한 트위터 계정이 소라넷 트위터의 팔로워들 한 명 한 명에게 일일이 “너 소라넷 하니?” 라는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그에 대한 반응이었다. 소라넷이 몰카를 공유하고 강간을 공모하고 인증하는 범죄 사이트임에도 불구하고, 소라넷 트위터 팔로워에게 “소라넷 하니?” 라는 질문을 던지는 건 지나치게 무례하며 부당하고 성적 엄숙주의이며 억압이라는 남성들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던 것이다.

 

‘강간하지 말라’는 말을 못하게 만드는 문화

 

이 캠페인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만연한 문화 속에서 행동을 수정하도록 요구받는 대상은 지금까지 항상 여성이었다. 노출이 많은 옷을 입지 말라거나, 술을 마시지 말라는 등 모든 ‘조심’의 방침은 여성을 향했다. 대부분의 성폭력은, 또 약물을 이용한 강간은 특히 여성이 조심해서 예방할 수 있는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성에게 화살이 향하는 것에 대해서는 사회적 저항감이 존재한다.


▶ 2015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진행한 거리캠페인.     © 한국성폭력상담소

 

남성 성문화는 이미 성폭력을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형성되어 있다. 남성은 ‘남자끼리’라는 이유로 친하지 않은 관계에서도 음담패설을 하거나, 야동을 돌려 보거나, 여자친구와의 성적 경험을 낱낱이 유포하거나, 성매매를 함께 하면서, 서로가 이러한 문화 속에서 돌출되지 않는 공범임을 확인하고 구분되지 않도록 한다. 이를 통해 남성 개개인은 성폭력적인 문화의 ‘책임의 주체’가 되는 것을 회피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성폭력 가해자들 역시 자신을 가해자로 특정되는 개인이 아닌, 수없이 많은 일반 남성들 중의 한 명으로 인식한다. 성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얼굴 없는 공모자들과 함께하며, 소라넷 같은 인터넷 사이트에 하루에도 수십 건씩 인증되고 만 회 이상 조회되는 일상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문화적 공모는 남성들 사이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남성은 성욕을 참기 어렵고, 성욕을 참지 않는 것이 ‘남성적’인 것이라는 인식은 수많은 경로로 재현된다. 반면 여성은 자신의 성욕을 드러내어서는 안 되며, 여성이 성적인 존재로 보였을 때 남성은 ‘본능적으로’ 성관계할 수 있다는 인식을 경찰과 재판부조차 공유하고 있다. 성폭력 사건이 신고조차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쉽게 무죄가 되고, 약한 처벌을 받는 이유이다.

 

성폭력을 남성의 ‘본능’처럼 당연시하며 여성들에게 ‘조심할 책임’을 지우는 교육은 학교와 가정을 막론하고 공기처럼 존재한다. 강간을 당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말은 여성들이 수도 없이 반복해서 들어서, 의식과 무의식의 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강간을 하거나 방조하지 마라’고는 누구에게 말할 수 있을까? 당신이 강간을 할 수도 있는 사람이라거나, 당신이 있는 곳에서 강간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말은 무례하고 공격적인 말로 받아들여지는데 말이다.

 

개인, 단체, 회사, 연인, 영업장, 학교, 친구집단 중 그 누구도 ‘강간하지 말라’거나 ‘강간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는 말을 ‘나에게 하는 말’로 듣지 않는다. 그저 형식적인 이야기로 흘려듣거나, 심지어 ‘나는, 또는 우리는 관계없는데 왜 그런 말을 하느냐’고 화를 내며 가해자에게 가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장소에 가서, 나쁜 사람들에게 직접 말하라고 한다.

 

피해자-가해자의 문제이지, 내 문제는 아니었던

 

페미니스트 정체성을 갖기 시작하고 꽤 시간이 흘렀지만, 성폭력은 그동안 나에게도 주요한 주제가 아니었다. 너무나 분명해서 논의 대상조차 아니지만 실행에는 턱없이 많은 어려움을 동반하는, 매력적이지 않은 주제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폭력이 내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고 싶었다. ‘나에게는 특정할만한 성폭력 피해 경험이 없다’, ‘나는 평소에 성폭력에 대해 별로 예민하게 느끼지 못했다’, ‘나는 성폭력 피해자에게 충분히 이입할 자신이 없다’는 등의, 그래도 부끄러운 줄은 알아서 차마 함부로 내뱉지는 못했던 생각들이 성폭력에 대한 나의 시각이었다.

 

성폭력을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 일로 한정짓고 싶어 하고, 그에 공모하는 사회에 적응하여 살고 있는 나의 위치를 인지해서 불편해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이 캠페인을 하면서야 조금씩 알아차리고 있다. 남성과 여성이 ‘얻으려 하며 소유하는 주체’와 ‘보호받으며 귀속되어야 할 대상’으로 구분되어 있는 이상, 그 중 한 존재이기를 강요받는 모든 사람은 어떤 면에서 피해자이다. 또한 그러한 구분에 의존하고 공고히 하며 살아가고 있는 모두는 가해자이기도 하다.


▶ #그건_강간입니다 캠페인 홍보물.      © 한국성폭력상담소   

 

제도적으로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강간당하지 않을 권리’가 성폭력을 정당화하는 성별 통념으로 인해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 #그건_강간입니다 캠페인은 사람들 개개인의 통념에 대해 저항하는 운동을 하고자 했다. 그동안 대중이라는 이름으로 흐려진 책임의 주체를 각각 호명하여 구분하고, 생각의 재고와 행동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이다. 여기서의 주체는 성별을 불문하고 여기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아 온 모든 사람이다.

 

기획단 역시 이러한 주체로서 두 달 동안 변화를 거쳐 왔다. 통념을 허물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것까지는 쉬우나, 통념을 벗어난 사람 또는 공동체로서 어떤 모습이 될 수 있을지 상상하는 것은 무척 깜깜한 영역이었다. 그 깜깜한 영역이 우리가 혼자서는 도달할 수 없었던, 두 달 간의 회의와 대화, 간담회를 거치며 발견한 곳이었다. 그 곳은 메시지가 정확하고 분명해야 하는 캠페인의 영역은 아닐지 모르지만, 이 이야기의 타래를 통해 뻗어나가고자 하는 곳이다.

 

발렌타인데이에 “동의하고 하는 행진”

 

우리는 모두가 동의하지만 누구도 자신의 이야기로 듣지 않기 때문에 별다른 의미가 없는 ‘성폭력 반대’라는 말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는 가능하면 통념을 거스름으로써,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고 거기에서 문제를 발견할 수 있도록 자극하는 행동을 하고 싶다.

 

그래서 캠페인의 하이라이트로 2월 14일, 발렌타인데이에 신촌 연세로 차없는 거리에서 집회와 행진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행진 중에 술 취한 듯이 걷고, 길에 쓰러지고, 치마를 들쳐 올리며 성폭력의 원인이 피해자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또한 폭력적으로 구성된 남성성을 거부하는 목소리도 행진에 포함될 것이다.


  


행진 이후에도,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다. 이어질 기획 기사에서 언어를 가지기 전까지 피해를 인지할 수조차 없었던 여성으로서, ‘남성’의 범주 안으로 들어올 것을 폭력적으로 요구받아 온 퀴어로서, 법과 제도로 보호받지 못하는 시민으로서, 또 페미니스트로서 성폭력 문화에서 벗어나고 이를 바꾸어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처하는 위치가 달라질 때마다 이러한 방법은 또다시 새롭게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아무에게도 해당되지 않는 것처럼 여겨지던 ‘성폭력에 대한 책임’이 각자의 자리에서 무수한 각도로 논의되고 스며들 수 있을 때에야, 온라인에서 촉발되었던 이 비명에 가까운 운동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함께 분노하던 사람들이 그 때까지 무력감에 지지 않고, 이야기의 타래들이 계속해서 전달되고 뻗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 가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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