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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가족들 ‘조금이라도 진실이 더 드러났으면…’

세월호와 함께 사는 사람들(2) 청문회 그 후



2015년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시간은 빠르게 흐르지만 진상 규명은 624일 동안 한치 앞도 나아가지 못했고, 세월호의 희생자 가족들은 점점 더 고립되고 있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변함없이 오전에는 청운동에서, 오후에는 홍대 앞에서 가족을 찾아달라는 피켓을 들고 세월호 미수습자 다윤이의 어머니와 시민들이 거리에 섭니다.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는 아침부터 밤까지 매일 자리를 지키는 단원고 희생자 부모님들이 계십니다. 광화문 ‘노란리본 공작소’에는 늦은 시간까지 ‘세월호를 잊지 말자’는 표식의 노란리본을 만들어 전국으로 보내는 봉사자분들이 계시고, 안산의 분향소와 공방에도 부모님들이 계십니다.


▲  홍대 전철역 앞에서 몸이 불편하신 미수습자 다윤이의 어머니는 매일 피켓을 들고 리본을 나눠주신다.  © M.J.Hong

 

팽목에는 미수습자 혁규의 큰 아버지께서 망부석처럼 일 년이 넘도록 자리를 지키고 계시고, 미수습자 은화 부모님은 전국을 뛰어다니며 인양을 호소합니다. 광화문 사거리의 ‘진실 마중대’에는 하루 종일 목이 터져라 서명을 요청하는 분들이 계시고, 이제 시민들의 눈길조차 뜸해진 ‘세월호’ 피켓들을 변함없이 들고 있는 전국 각지의 시민들이 있습니다.

 

진상 규명을 위해 끊임없이 싸우는 희생자 부모님들과 일상을 내어놓은 시민들이 계시지만 가끔은 망망대해에 떠있는 작은 섬처럼 아득한 외로움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시간만 흐르고 모든 것이 박제된 것 같아 두렵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세월호 사건’의 모든 의혹을 영원히 봉합해두려는 것 아닐까 불안합니다.

 

아니, 모든 것이 그 자리에 멈춰있기라도 하면 다행이겠습니다. 나중에라도 밝힐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2016년 1월 12일 단원고 명예졸업식을 마치고 나면 희생자 학생들의 흔적이 남아있는 교실을 철거한다고 합니다. 세월호 인양은 진척이 없지만, 바다에서 무언가 꺼내어 옮기는 것이 동거차도에 계신 부모님들에게 목격되고 있습니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증인들은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발뺌합니다. 2014년 4월 16일로부터 진실은 더 희미해지고 중요한 것들은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교실마저 없애고 나면…기억을 지워가는 거죠

 

칼바람이 불던 지난 월요일, 다윤이 어머니를 도와서 다른 시민들과 함께 피켓팅을 마치고 광화문 광장에 갔습니다.

 

월요일 담당인 4반 웅기 어머니 윤옥희씨와 승묵 어머니 은인숙씨가 차가운 전시장에 앉아 시민들에게 선물로 나눠줄 매듭 반지를 만들고 계셨습니다. 항상 함께 계시던 경빈 어머니와 수현 어머니는 다큐멘터리 <나쁜 나라>(김진열, 2015) 상영 간담회에 참석하느라 자리를 비우셨다 합니다. 이제 어머니들은 안산에서 광화문까지 먼 길을 오가는 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힘든 내색보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주셔서 한편으로는 든든했지만, 청문회 이후 절망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  세월호 광장 전시장에서 웅기 어머니 윤옥희씨가 승묵 어머니 은인숙씨에게 실로 반지 만드는 법을 알려주고 계신다.   © 화사

 

이분들은 ‘보여주기’식 명예졸업식이나 기념관 건립보다 교실 존치가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이들의 마지막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그들을 그리워하는 선후배와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과 기록이 있는 교실이야말로 ‘산교육의 현장’이지, 멋진 건물을 새로 지어 책상을 옮겨 놓는다고 아이들이 기억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입니다.

 

웅기 어머니 윤옥희씨는 교실을 없애선 안 된다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작 할 수 있는 일들을 여태까지 미뤄뒀다가 교실이 부족하다고, 아이들 교실을 치운다고 하고 있어요. 교실 문제는 단원고가 아니라 교육청에서 할 일인데, 재학생 부모님이나 유가족에게 미루면서 둘이 해결하라며 싸움을 붙이는 것이죠. 교실마저 없애고 나면 광화문도 안산 분향소도 언젠가 없앨 거예요. 사람들 기억 속에 있는 것부터 지워가는 거죠.”

 

‘기억에서 지운다’는 얘기를 들으니 지난 14일~16일에 열린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가 다시 떠오릅니다. 3일 내내 증인들이 한 말이라곤 “기억나지 않습니다”였으니까요. 뻔뻔하게도 “최선을 다했다”는 말도 나왔습니다. 사건에 책임이 있는 자들이 증인석에 앉아서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에게 호통을 치는 등, 말도 안 되는 상황도 있었지요.

 

이러한 상황은 세월호 청문회가 여태까지의 청문회들과 달리 공중파 3사 어느 곳에서도 생중계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청문회 장소도 국회가 아니라 민간단체(YWCA)였고, 장소가 협소해 유가족 외에 시민들의 참관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공영방송을 자처하는 KBS는 여당 위원 5명이 출석하지 않는 ‘반쪽짜리 특조위’이기 때문에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 위해 청문회 생방송을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뉴스 전문채널 YTN 노조는 ‘세월호 청문회 언급 말라’는 내부 지시가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특조위를 사퇴한 여당 위원 5명 중 이 헌(특조위 부위원장)은 청문회 마지막 날 기자들 틈에 앉아서 지켜보다 갔어요. 이석태 위원장님이 ‘의원님, 자리가 거기가 아니니까 이리로 앉으시라’고 했더니 ‘잠깐 보다 갈 거다’면서 비죽비죽 웃으며 앉아 있다가 가더라고요. 정말 화가 났어요. 특조위와 청문회를 얼마나 무시하는 것인지 알 수 있었죠.”

 

윤옥희 씨는 정부 여당과 언론이 특별조사위원회를 무시하는 것이라며 분노를 표했습니다. “국회의원이 하는 청문회가 아니라서, 특조위 위원들이 ‘의원님’들이 아니니까 무시하는 거죠.”

 

청문회장 앞에서는 어버이연합이나 고엽제전우회 등의 보수단체는 “특조위 해체하라”는 피켓을 들고 소란을 피웠습니다.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예산을 삭감하여 손발을 묶고, 세월호 침몰일 ‘대통령 7시간’의 행적을 묻는다는 이유로 여당 의원들이 사퇴한다면서 정식 사직서도 제출하지 않아 인원 보강도 못하게 하고, 생중계하지 않고 청문회의 권위를 빼앗고… 세월호 사건의 진상 규명을 하지 못하도록 정부가, 여당이, 언론이, 또 민간에서 합심하며 움직이는 상황이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해 더 많은 사실을 알려주는 것 같았습니다.


▲  광화문 세월호 광장 전시장에는 공중파 방송에서 중계되지 못한 청문회 영상이 매일 재생되고 있다.   © 화사

 

‘위에서 감추려는 게 더 있구나!’ 확인한 청문회

 

“청문회는 말 그대로 울화통 터지는 거였어요. 공중파 어디서도 보도된 곳이 없잖아요. 국민들이 보지 못하는 그런 청문회가 어디 있어요?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생중계를 하지 않은 청문회는 처음이에요. 얼마나 뭘 그렇게 숨기기 위해서 청문회까지도 방송을 안 하고 숨기는지 모르겠지만, 두려운 거겠죠. 왜 두려운 걸까요? 다른 청문회할 때는 국민들이 다 볼 수 있게 해놓고 왜 세월호 청문회만 그럴까요?”

 

승묵 어머니 은인숙씨도 청문회를 지켜본 갑갑함에 대해 이렇게 토로하였습니다.

 

“의원들 답변하는 것도 보세요, 아주 똑같이 말 맞춰서 온 것처럼 ‘모릅니다’, ‘생각 안 납니다’ 그러잖아요. 우리 국민이나 유가족이나 어린 아이들까지도 그날이 생생한데, 그렇게 지휘하는 자리에 있었으면서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나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게 말이 되냐구요. 청문회장에 와서 말 맞춘 것처럼 이야기하고 갔어요. 자료를 다 보여주는데도 모른다고만 하고요. 우리는 특조위를 믿고, 청문회에서 밝혀지는 것밖에 의지할 게 없는데, 그 사람들은 그렇게밖에 말을 안 하니까 정말 속상했어요.”

 

은인숙씨는 발뺌만 하는 청문회를 보면서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도 이번 청문회에서 보시다시피, 자기들 다 아는 걸 모른다고 하는 걸 보면 ‘정말 뭔가가 더 있다’는 거예요. 해경이든, 정부든 다 조직이니까 체계가 분명하게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기들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떠밀기만 하잖아요. 명령 없이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이면서요. 지시를 받은 무언가가 분명히 있을 텐데, ‘모른다’ 발뺌만 해요. 그러니까 우리가 오히려 확실하게 알 수 있어요. 그들이 왜 말을 못하고 부하직원한테만 책임을 전가하는지, 위에서 감추려고 하는 무엇이 더 있다는 걸 더 확실하게 알게 한 청문회인 것 같아요.”

 

구조를 위해 출동해놓고 선원만 구해 온 해경은 증인석에서 “아이들이 철이 없어서” 구조를 못했다는 망언도 했습니다. 승묵 어머니 은인숙씨는 “그럼 아이들을 통솔하고 해경의 도움을 기다렸던 선생님도, 희생자 어른들도 다 철이 없어서 죽은 것이냐”고 반문합니다. 승묵이와 마지막 통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모두들 해경의 ‘나오라’는 지시만을 차분하게 기다렸다고 말입니다.

 

윤옥희씨는 세월호 청문회 때 자료로 제시된 사진과 영상들 중에는 너무 힘들어서 그동안 보지 못하셨던 것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상처를 들쑤시는 고통을 참으며 자료를 힘겹게 보셨는데도, 증인들이 다 모른다고 하는 걸 보면서 “뭔가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얘기합니다.

 

윤옥희씨는 <나쁜 나라> 다큐멘터리라도 국민들이 많이 보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편집되고 또 편집되어 희생자 가족들이 전하고 싶은 생생한 현장의 진실은 많이 양보하게 되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세월호 사건에 대해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고요.


▲  크리스마스 이브에 광화문 광장을 찾은 학생들이 희생자를 추모하며 분향한 후 사진을 찍고 있다.  © 전춘자

 

희생자 가족들이 이렇게 버티는 이유는요

 

그동안 제가 만나온 세월호 가족들은 많은 언론에서 보여주듯 희생자로서 무기력하게 슬퍼만 하거나 이성을 잃고 울부짖는 분들이 아니라, 점점 힘을 만들어가는 단단한 분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희생자 가족들에게 새해의 소망을 들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웅기 어머니 윤옥희씨는 희생자 가족들이 이렇게 암울한 상황 속에서 어떤 희망을 가지고 있는지 얘기하셨습니다.

 

“지금보다는 조금 더… 진실이 밝혀질 수 있을까요? 길게는 생각했어요. 엄마들 활동하다보면 정부가 쉽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문제가 아닐 것이다, 길게 간다는 걸 알게 되거든요. 진짜 끝까지 간다, 이런 마음이에요. 내년에도 별다른 것 없이 이렇게 될 것 같아요. 희생자 가족은 죽기 살기로 싸울 것이고, 변하는 것은 없고요. 그래도 조금이나마 희망을 갖는다면, 그 싸우는 와중에 조금의 진실이라도 더 드러났으면… 또 그 진실을 더 많은 분들이 알게 되셨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싸우는 이유, 희생자 가족들이 이렇게 버티는 이유를 조금만 더 아셨으면! 그 이상의 바람은 더 없어요.”

 

승묵 어머니 은인숙씨는 진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응원해주길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모든 국민에게 생중계 된 사건이기 때문에, 긴 시간 아이들이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믿고 나오지 못해 죽어가는 것을 국민 모두가 보신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세월호 가족들이 진실규명 활동하는 데에 ‘지겹다, 그만 좀 하라’ 그런 이야기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다른 것을 바라는 건 아니고요, 따뜻하게 ‘힘내라’는 말과 함께 저희들 지켜봐주세요. 응원해주시면 저희들은 정말 힘이 나거든요.”

 

“우리 국민들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에 가만히 있을 국민이 아닌데…”라고 말을 이은 은인숙씨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언론이 다 숨기고 왜곡하고 있으니, 좀 더 관심 가지고 진실의 이야기들을 듣고 같이 행동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제일 중요한 것은 우리 아이들 이후에 커다란 사고가 없었으면 하는 거예요.”


▲  웅기 어머니 윤옥희씨가 만들어주신 실반지. 약한 실이지만 수백번의 매듭으로 매우 단단하다.  © 화사

 

이야기를 나누며 윤옥희씨는 아주 작은 매듭들로 반지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수많은 작은 매듭으로 만들어진 반지는 정말 단단해 보입니다. 진실을 감추려는 정부와 권력 눈치보며 생존만 꾀하는 언론이라는 거대한 벽도 희생자 가족들과 시민들이 뜻을 합쳐 단단한 동아줄을 만든다면 반드시 타고 넘어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져봅니다.

 

새해엔 이런 상상을 해봅니다. 예산도 없는 특별조사위원회지만 세월호 가족들과 시민들이 힘을 모아 특조위 활동을 지지해주어 다시 청문회가 열리고, 그때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공중파 방송국에 생중계 요청을 해서 방송국도 여론을 무시할 수 없어 생중계를 하고, 그래서 얼마나 세월호의 수많은 의혹들이 하나도 밝혀지지 않은 채 해경, 정부에서 무책임하고 안일하게 대처하고 외면해왔는지 만천하에 드러난다면, 오늘로부터 624일 전 온 국민이 슬퍼하고 분노했던 그 힘을 다시 되찾아서 이제라도 진실을 밝힐 수 있는 동력이 되지 않을까요?

 

새해에는 광화문 세월호 광장이, 청운동 주민센터 앞 사거리가, 홍대 전철역 앞이, 안산 분향소가, 팽목항이, 무엇보다 단원고 아이들의 교실이 외롭게 투쟁하는 섬이 아니라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한 사회를 희망하는 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서로 힘주고 받을 수 있는,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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