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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을 파는 노년여성의 삶을 이해하기 위하여

<내 목소리를 들어라> 1탄. 순자의 이야기



성매매를 하는, 그 중에서 성을 파는 사람은 젊고 화려한 20-30대 여성으로 상상된다. 하지만 성매매 현장에는 언제나 노년의 여성들이 있었다.

 

‘박카스 아줌마’는 빈곤층 노년여성의 문제

 

올해 3월 서울 종묘공원과 탑골공원 등지에서 이뤄지는 성매매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이 있었다. 일명 ‘박카스 아줌마’에 대한 단속으로, 언론의 관심도 높았다. 그러나 ‘박카스 아줌마’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 무색하게도, 이 문제에 관해 이뤄진 논의에서 여성들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는 듯했다. 구매층인 남성들의 욕구와 행태에 집중하여 이를 노인들의 ‘일탈적인 성’ 문제로 보거나, 남성노인의 ‘소외된 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박카스 아줌마’는 빈곤한 노년인, 여성의 문제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녀들의 이야기는 없다.


▲  올해 9월 23일 보신각 앞, 성매매특별법 폐지 촉구대회 참여자 모습을 찍는 카메라 기자들.  © 이룸

 

9월 23일에는 성매매특별법을 폐지하고 생계형 성매매를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성매매종사자 모임인 한터전국연합과 한터여종사자연맹 소속 1천여명이 보신각 앞에 모였다. 전국 9개 지역의 성매매 집결지에서 온 사람들이다.

 

대부분의 성매매 집결지에는 나이든 여성들이 일하고 먹고 자고 생활하는 구역이 따로 형성되어 있다. 이날 집회 현장에도 상당수 나이든 여성들이 있었다. 하지만 언론의 카메라는 역시 젊은 여성들을 비출 뿐, 나이든 여성들의 존재엔 별 관심이 없었다.

 

성산업 안에는 많은 노년의 성판매 여성들이 있다. 수십 년 세월을 “가정동네”가 아닌 “이런 거 하는 동네”에서 흘려 보냈음에도, 이들의 경험은 성매매 논의에서 집중적으로 다뤄지지 않았다. 성을 파는 노년의 여성들이 있다는 사실을 감당할 수 없어서 우리 사회는 시종일관 무관심했나 보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의 활동가들은 60-70대의, 성판매를 하고 있거나 쉬고 있는 세 명의 여성을 만났다. 이분들은 서로 다른 성매매 집결지에서 일하고 생활해왔다. 세분께 당신들의 일과 삶, 그리고 동네 이야기를 청했다. 닮은 듯 다르게 이어져있는 이 이야기들은 별로 부드럽지 않고 거칠다. “내 목소리를 들어라”라는 다소 호전적인 제목을 붙여 이분들의 목소리를 기록하였다. 이 거친 이야기를 좀 참고 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 명의 여성들이 들려준 이야기들이 노년의 성판매 여성들의 삶을 이해하는 작은 단서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첫 기록은 순자(가명) 언니의 이야기이다.


▲ 순자 언니의 방.  텔레비전은 평상 시에 주로 켜져 있다.   © 이룸

 

-지금 성매매 집결지에서 일하고 계시잖아요. 언제부터 이곳에서 일을 하신 건지, 여기 오기 전에 다른 일도 하신 적 있나요?

 

“내가 지금 육십네 살이니까 여기 온 지는 거의 30년은 될 거야. 딴 데는 이런 데 안 있어봤어. 내가 OO(다른 지역의 성매매 집결지)서 살았다 했잖아. 거기서 애들 다섯 다 낳았어. 이 장사 저 장사, 튀김장사, 순대장사 별 거 다했지. 그러다 애기 아버지 잃고, 장사도 못 하게 되고 하니까는… 나도 가서 이런 일을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거기도 이런 데니까 다 보는 거야. 장사하면서. 펨푸(pimp, 집결지 골목에 나와 있으면서 쪽방의 성판매여성과 손님을 연결해주는 사람. 주로 중장년 여성임)들이 끌고 가고 손님 갖다 주고 하는 걸 내 눈으로 다 봤잖아. 다 똑같어. 어떡해, 애들 밥 굶길 수는 없잖냐 이렇게 된 거야. 내가 저기하면 내 새끼들은 다 깡통 들고 나가지 않으면 고아원 신세밖에 더 지냐.”

 

-처음에 이 동네는 어떻게 오게 되신 거예요?

 

-OO은 내가 거기서 자식 낳고, 또 애기 아버지도 있었고, 몇 년을 살았던 덴데 차마 이 짓은 못하잖아. 내가 아는 여자가 있었어. 그 여자가 인제 펨푸 식으로 삐끼인 거야. 그 여자한테 이런 일 소개해달라고 붙들고 늘어지니까는 날 여기로 데려온 거야. 저 밑에 이형사네 집에다가 소개를 해주더라고. 지 신랑이 형사였대. 이형사 마누라, 이형사 마누라 하지. 그래 갖고 거기서 나 데려다 주고 소개비 식으로 십만 원 받아먹고 가버리고. 말할 것 같으면 펨푸비야 펨푸비.

 

거기서 있는데 막 술 먹은 사람들에, 쌈만 하고, 돈 도로 받아가고, 막 그 난리를 치고. 하다 하다 못 하겠어 도대체. 겨우겨우 빚만 갚은 거야, 그 여자가 소개비 10만원 받아간 거. 그것만 갚아버렸어. 몰라, 주인이 얼마나 먹었는지는. 너무 악질 짓을 하니까 못살겠는 거야. 그래서 딴 집으로 갔어. 거긴 좀 낫더라구. 거기서 하다가 30년이 넘은 거야. 서른셋에 혼자 되구선 지금 육십네 살 먹도록 쉴 새가 없는 거야. 이십 년 삼십 년.”

 

-애들 다섯 낳고 남편과 사별하면서 여기 일하러 오게 되신 거네요. 언니가 일하는 동안 애들은 누가 봐준 거예요?

 

“그 때는 주인(포주)한테 매여있으니까, 집에는 일주일에 한 번 이렇게밖에 못 가. 집에 갈려면 주인한테 허락을 받아야 가는데. 방세니, 먹을 거니, 애들 먹는 거 갖다 대주고, 다 사서 해주고 다시 오는 거지. 한 푼이라도 벌어야 애들하고 먹고 살 형편이니까. 애들은 내가 넘의 집 일하는지 아는 거야. 지금까지도 그런 줄만 알어. 남의 집 밥해주느라고 못 온다 그니까, 그런 줄만 알았지. 애들이 뭘 알어. 다 쪼끄만 것들이. 그래 갖고 점점점점 커간 거야.

 

여기 나와 가지고 그럭저럭 벌어가지고선 지금 버는 식으로 그런 식이지. 한푼 한푼 벌어가지고 주인하고 노나먹고. 여기 방세가 한 달에 40만원이야. 지금은 주인 없이 혼자 하니까 괜찮아. 그때는 주인하고 반반씩 노나놓고도 방세는 방세대로 내야 돼. 그러니까는 내게 돌아오는 게 얼마가 돌아오겠니? 몇 만원 돌아오는 거야, 몇 만원. 그걸 갖고 집에 가서 애들 먹을 거 라면이라도 사놓고. 쌀이라도 사놓고. 밥은 해먹으니까. 국민학교 다니는 큰 애가 밥은 해 먹고 나가니까. 김치 같은 거 사다가 놓고. 애들은 학교도 알아서 그래 갖고 가는 거야.

 

우리 머슴애 국민학교 들어가는 데도 지 누나가 데리고 갔어. 내가 미쳤어, 그걸 잊어버린 거야. 입학하는 거를. 여기 정신이 팔려가지고 애들 학교 갈 거는 다 사줘 놓고 그날 딱 날짜를 잊어버린 거야. 한 이틀 있다 생각이 나는 거 있지. 내가 오니까는 막 우는 거야. 엄마는 나 학교 가는 것도 모르고, 그걸 까먹었냐고. ‘아니야. 엄마가 일 있어서 그랬어.’ 그짓말 해야지 어떡해. 이틀 만에 부랴부랴 가는 거야. 선생한테 인사하고. ‘죄송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가서 인사는 해야지. 애들 갖다 맽기는데.” 


▲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 기록화 작업 <불온한 확신, 끝나지 않은 천일야화> 중에서    © 이룸

 

-손님들은 주로 어떤 사람들인가요? 나이 대라든가 직업이라든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할아부지들도 있고. 오십 육십된 중찔들도 있고. 그리고 그냥 뭐 칠십 팔십. 걔네들도 늙은 사람한테 올 때는 돈이 없으니깐 우리한테 오는 거야. 우리는 나이 먹었으니까 삼십 분에 2만원도 받고, 3만원도 받고, 만5천원도 받고 그러니까. 젊은 애들은 5만원도 받고, 저 유리방(구매자가 여성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전면이 유리로 되어 그 안에 여성들이 배치된 업소) 애들은 7만원도 받고 그래. 암만해도 이쁘고 젊고 지네들 맘에 쏙 드는 애들한테 가면은 돈 십만 원만 주면 잠깐 놀고 나오는 건데. 그게 좋지. 누가 나이 많은 사람이랑 놀려고 하겠어! 

 

제일 어린 거는… 나 스무 살짜리도 따먹었다. 어뜩해, 그러면. 지가 좋다고 와서 돈을 주는디. 어떻게 할 수 없잖아. 아니, 내가 강제로 끌어서 하는 것도 아니고. 지가 좋다고 하자는디… 갸는 학교 다니면서, 어디 다닌다고 그랬어.

 

내가 그때 오십도 안 됐는데. 노인네가 키가 큰데 허리가 굽어져 갖고 이러고 다녀. 75세야, 그 남자가. 허리는 꾸부러 가지고서는 아 그 영감이 날 좋아한 거야. 그러고 와 갖고 날보고 1억을 줄 테니까 우리 애들하고 지네 애들하고 다 만나서 저기를 하자고. 결혼을. 나는 이제 그 영감 밥해주고 빨래해주고 다 해서 부부로 살자고. 놀러나 다니고. 말은 좋지. 근데 오면은 돈이나 많이 주냐. 이만원 준다. 나랑 살 놈 같으면 돈 이만원 주냐?

 

여기서 시간 끌고 그러면, 배도 고프고 그러면 내가 ‘우리 저거 한 그릇씩 시켜먹읍시다’ 그러면 그 사람이 부자로 살아가지고. 갑부로 살았대. 지 마누라 살았을 때 갑부로 살고, 자식들도 막 칠 팔 명씩 놔놓고. 그러니까 맨 또 그런 것만 좋아하드만. 그 뭐야, 탕수육. 그걸 하나 시켜서 놓으면은 홀딱 벗으라 그래 나보고. 그래 놓고서는 그거를 즐기는 거여. 처먹어가면서 술 처먹어 가면서!

 

죽겠는 게 그거다. 야, 진짜 애들만 아니면 그냥 혓바닥 깨물고 죽고 싶은데. 내가 탕수육 그게 씹어지냐? 나랑 살 생각이 있으면 그딴 짓을 하냐? 그 지랄 해가면서 사람 약을 올리는데 아주 미치겄는 거야. 딱 시간을 놀았으면 저도 옷을 줏어입고 나도 옷을 줏어입고. 인제 깔끔하게 해서 저기를 해야지, 옷을 홀랑 못 입게 해. 그 지랄을 하고 그걸 즐긴다니까는. 아이고 내가. 그럴 때는 눈물도 저절로 뚝, 뚝 떨어져.

 

-그렇게 무시하거나 속상하게 하는 손님들이 많았나요?

 

▲ 순자 언니는 인터뷰 중에도 참 많이도 담배를 피웠다.    © 이룸


되게 많어. 괜히 저기 하면 ‘야, 이 씨팔년아. 개 같은 년아. 우리는 너 돈 주고 하는 거여. 너 우리 그냥 해주는 거 아니야, 이년아.’ 인제 참다 참다 못하면 우리도 폭발해 나오는 거야. ‘이 씨팔놈아. 잘나빠진 돈 이만 원 줘놓고선. 니는 애미도 없어? 마누라 없어? 좆같은 새끼가 지랄하고 앉았네 씨발. 참을라니까 배창수가 터져서 나올라 그러네. 야, 돈 그까짓 거 이 만원 있어도 살고 없어도 살아. 잘 처먹고 잘 살어 개새끼야. 아주 꺼져.’ 나가는 등짝을 팍! 쌔려버려 내가. 나는 당했으니까! 당하고서 돈을 안 주니까. 이제까지 나를 갖구 놀구서는. 내가 막 꼬집고 할퀴기도 그래. 우리야 속이 상하니까는. 실컷 쑤셔놓고서는 아오 진짜 속상해.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 아유, 나 담배 하나 필래.

 

종로에 ‘박카스 아줌마’들 있잖아. 나는 보지는 않았는데 손님들이 와서 얘기해. 우리가 ‘이 만원만 주세요’ 이러면 종로가면 만원이면 하고 만 오천원이면 하는데 그렇게 달라고 한다고. 그거를 깎을라고 그러는 거야. 그러면 나는 ‘그런 데로 가요. 나는 못하니까. 가시면 되잖아요. 가서 술 팔아주고 가서 재미 봐요.’ 그러면 가는 놈도 있고. 딴 데 가서 노는 놈도 있고. 남의 속만 상하게 해놓고 가는 거야. 그럼 나 혼자 훌쩍훌쩍 우는 거야. 속이 상해서. 

 

여기 와서 재미가 없다는 둥, 크다는 둥, 뭐가 어떻다는 둥. 나 이 밑구녕으로 애 다섯을 낳았어. 다섯 낳는데 안 크겄어? 이런 데 와서 어린 것들 찾는 것들, 와서 뭐 열다섯 살짜리 열일곱 짜리. 나이 먹은 사람들이. ‘아저씨, 아저씨가 애 빨리 만들어가지고 길러가지고 뻥튀기로 튀겨가지고 잡아먹어!’ 그런 소리도 했어. ‘개 같은 년, 말하는 싸가지 좀 보소.’ 그러면 ‘야이 싸가지 없는 놈아. 너 말하는 건 싸가지가 있고 나 말하는 건 싸가지가 없나? 열일곱 짜리 열두 살짜리가 어디 있어 이 씨부랄놈아. 아무리 이 바닥에서 이런 생활해먹는다고 그따구로 말을 해야겄어?’ 그러면 미안하다 그래. 어떤 놈은 돈 방바닥에 내놨던 거 그냥 가지고 가는 놈도 있고. 나가면서 ‘개 같은 년, 씨부랄 년아. 평생 뒤질 때까지 씹이나 팔아먹고 살아라.’ 아효, 여자보다도 사내새끼들이 더 해. 때려 치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냐.”

 

-일하면서 폭력을 당한 적도 있어요?

 

“애들이 어렸을 땐데, 내가 손님한테 맞았어. 하다가 맞았어. 맞아가지고 울고 앉았는데 주인이 들어왔어. 왜 그러냐고. ‘이 새끼가요, 나를 이렇게 때렸어요. 빨아달라는데 오줌 싸놓은 거 더러운 걸 어떻게 빨아요. 난 못 빤다 그랬더니 이 새끼가 날 두드려 패요.’ 그 아줌마가 ‘당신 마누라보고 와서 빨아 달라 그래! 이런 데 있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야? 그런 걸 갖다 빨으라 그러고! 오줌 싸고 똥 싸는 데를 어딜 빨으라 그래! 니가 빨아!’ 우웩 우웩, 아하하캬캬. 지들은 못 빤다 그거여. 그러면서 왜 우리보고는 빨으라 그러냐고.

 

여기서 보면 별 오만 가지가 다 나와. 말을 안 하고 참고 다 이해를 하고, 사는 게 다 그래. 그냥 허덕허덕 허덕허덕. 그러니까 남은 거라곤 병밖에 없지. 병밖에 남은 게 없어. 화병에 뭔 병에… 남은 거라곤 병밖에 없어.

 

하아~ 나는 진짜로 아주 괘씸한 일도 있었어. 그 때는 이런 생활을 안 하고 이 동네에서 비디오방을 했어. 영화 빌려주고 하는 거. 근데 그걸 하고 있는데 나랑 시댁 쪽으로 오촌쯤이나 되나 그 아저씨가. 어느 날 나를 끌어들여 방으로. 그래서 ‘왜 그래? 사람을 끌어들이고’ 내가 신경질을 확 부리면서 인상을 팍팍 쓰니까 갔어. 사람들이 쳐다보고 하니까. 다 문 열고 쳐다볼 수도 있었지. 아, 나를 따 먹을라고 하는 거야. 날 따먹을라고. 차라리 모르는 사람이 날 따 먹을라고 했으면 내가 떳떳하게 돈 받고서 했을란지도 몰라. 오촌이면 나하고 아주버니 뻘이여. 인제 애기아버지가 없다 해가지고 나를 따먹을라고 그 지랄들을 한다니깐.

 

한번은 또 술을 잔뜩 처먹고 왔어. ‘아주머니. 나하고 말 좀 합시다.’ 정말 내가 뭐를 잘못했길래 자꾸 보자고 하느냐고. 나도 새끼들이랑 먹고 살라니까 힘들어 죽겄어. 울지 못하고 죽지 못해서 살어. 왜 그래. 도와주질 못할망정 왜 이렇게 괴롭혀. 딴 사람들이 그런다 하더라도 못하게 해야 되는 판에, 어떻게 시집 식구가 그럴 수가 있느냐 말이야. 응? ‘진짜 나하고 두 번 다시 만나지 마. 어디서고 만나도 이야기도 하지 마. 내가 폭파를 해버려. 너네 집 폭파를 해버려. 너 엄마 아버지 앞에 가서 폭파해버려 내가. 니 엄마가 칼 물고 죽을런지 내가 칼 물고 죽을런지는 몰라.’ 혼을 내부렸어. 서방이 없고 이러니까 무시를 하는 거지. 심심하면 오는 거야. 심심하면은 저희 집에서 쌈박질이나 하든가 어쩌든가. 심심하고 갈 데 없고 하면 술 처먹고 술 핑계 대고 기어오는 거야. 오면 여기서 자빠져 자고 가고 그런 식이야.” 


▲  성매매 집결지 현장 방문(out-reach, 아웃리치)중인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활동가들   © 이룸 제공

 

-이 일을 처음 시작했던 때로 돌아간다면, 언니는 같은 선택을 할까 아니면 다른 일을 할까 생각해 본 적 있는지.

 

“아, 이 생활 안 해도 어떻게 뭐래도 할 수만 있으면! 솔직히 말해서잉, 딴 거를 할려면 돈이 있어야 되잖아. 돈이 있어야 방이라도 하나 얻던지, 가게 터라도 얻던지. 얻어야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보지. 암 것도 없는데 맨 땅에서 해? 뭐 갖다 팔어? 나 갖다 나 팔어? 안 그래? 현실이 그렇잖아. 여기 있는 아가씨들이고 아줌마들이고 다 그런 형편이야. 가진 게 너무 없으니까 할 수 없는 거야.

 

돈이래도 모아놓은 거래도 있고 몇 십만 원이래도 몇 백만 원이래도 있고 그렇다고 하면, 맘이 또 틀려질 수가 있지. 나도 혹 가다가 응? 아는 사람들도 만날 거고. 만나면 씁스름하잖아 서로. 그러면 이제 내가 딴 사람을 소개시켜 줘버리지. 그러고 나는 소개만 하는 사람인 척하는 거지. 그 사람들도 혹시나 이런데 와서 있을 사람은 아닌데 하지. 만약 그 사람을 받아 봐. 그러면 가서 당장 지네 엄마 아버지한테 가서 일러. 저기서 저런 짓하고 있더라. 금방 탄로나. 소문은 금방 퍼져.

 

우리도 반성해야 되겠지만은 남자들도 반성 많이 해야 돼. 후미진 데 가보면 막 뒤따라 와가지고서는 끌고 들어가서 조져놓고 도망가 버리고. 여자만 억울하게 당하는 거야 찢어지고. 그러면 뭐 울고불고 해도 어디가 잡아? 나중에 잡힐 때도 있기는 있더라고. 그럴 때도 있긴 있는데. 이런 데가 전혀 없어질 수는 없어. 가정부인들 못 다녀. 진짜야, 못 다녀. 아오 나는 그냥 안쓰러워 죽겄어. 텔레비에서 남자한테 당하고 하는 거 보면 눈물이 쫙 나와 버려. 나도 모르게. 그래 않고도 얼마든지 살 수가 있는데 저러고 살아야 되나 참. 남자들 반성 많이 해야 돼.” 

 

-자녀들은 이제 다 커서 분가해서 살고 있고 언니는 혼자 살고 계시잖아요. 이곳에 자식들이 와본 적이 있나요? 엄마가 사는 지역에.

 

“우리 애들이? 여기를 어디라고 와. 밥해놓고 치우는 줄 안다니까. 이 동네인줄은 알아도, 와도 저기 바깥에서 보지. 어디라고 여기를 데리고 와. 이 집 밥 해주고 저 집 밥 해주고 이렇게 해서 먹고 사는 줄 알어. 친정 식구들도 다들 그런 줄 아는 거야. 속여야지 어떻게 해. 여기는 다들 핑계로 하는 거야. 어뜩해. 톡 까놓고 말할 수가 없는데 나부텀이라도.

 

인제는 애들이 알아도 할 수 없어. 솔직히 말해서 왜 할 수 없냐면! 지네들 내버리지 않고 고아 안 만들고 솔직히 잉? 넘들마냥 바깥에 갖다가 내버려놓고서는 도망 안가고. 어떻게 됐든 간에 내가 끌어안고서는! 나는 속이 터져서 나 울고불고 할 때 애들은 몰라 그거. 울기도 많이 울었어 나. 많이 울었는데. 무슨 팔자가 이렇게 더러워서 이렇게 태어나가지고. 왜 이러고 사는가 싶은 생각도 들고. 

 

(인생에서) 전성기고 뭐고, 나는 그런 것도 몰라. 재미지게도 못 살아보고, 친정이 어렵게 살아가지고 재미지게 살았던 게 없네. 나는 진짜 아구다구 재밌게 한번 살아본 게 없는 것 같애. 재밌게 좀 살아봤으면 좋겠어. 그럴라면 한 이십 대 돼야 되겠지? 나이 더 많이 먹어갖고 가면 안 되고, 한 이십대 정도 돼서.”


▲ 청량리 성매매 집결지 기록화 작업 <불온한 확신, 끝나지 않은 천일야화> 중에서    © 이룸

 

-이런 저런 얘기들을 들려주셔서 감사해요. 인터뷰 마치며 드는 생각이나, 언니가 지금 사는 이야기를 해주실 게 있을까요?

 

“인제는 내가 안 울고 살라고. 막 많이 참고 사는데, 그 전에는 누가 이런 일 비슷한 말만 해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쫙 나와. 내가 이런 바닥에만 안 있어도, 내가 저런 것들한테 왜 이런 소리를 듣고 살아야 되나 생각하면은 불쌍하고. 나도 애들 데리고선 방에다 불 켜놓고서는 죽으려고 막. 인제니까 내가 말을 하지. 더 이상 살 수가 없고, 돈은 안 벌리고. 주인은 돈 달라고 쨍알쨍알 거리고. 하아, 나 혼자만 죽으면 되는데 왜 쟤네들까지 죽이나. 쟤네들이 뭔 죄가 있어. 부모들 잘못 만나 그런 거지. 애기들이 있으니까 살아 나온 거지, 그렇지 않았음 진작 죽었을 거야.

 

맨날 전화해. 막내한테. 막내손녀. ‘난중에 할머니 만나면 내가 돈 줄게.’ 얘네가 십 얼마씩 모았대. 내가 주는 돈을 안 쓰고 모았대. (어려서) 돈을 쓸 줄을 모르니까. 엄마가 다 사다 주고 하니까. 지 친할아버지 할머니한테 가면 돈을 안 준대. 먹을 거나 사주고. 나는 만나면 자꾸 주니까. 거기 가서도 그런대. ‘우리 외할머니는 오면은 만원도 주고, 또 만원도 주고 그러는데.’ 그래갖고 쫑알쫑알 대는 걸 보면 웃겨 죽는 거야. 나는 이제 그게 위로가 되니까. 그렇게 하고 있으면은 몇 시간은 내 맘에 위로가 되잖아.

 

지나가는 애들도 아까 어떤 가시내 하나가 지 엄마 손 붙들고 가더라고. 그러게 내가 ‘몇 살?’ 그러니까 지 엄마 손을 딱 빼더니 ‘세~~ 살.’ 아유 좋아죽겄다고 뛰어가. 지 엄마 손을 딱 빼더니 손을 요렇게 해 갖고. 아이고. 또 우리 손주 생각이 나는 거야. 

 

근데, 자꾸 이런 것만 적어가서 뭐에다가 쓰게? 나올 게 뭐가 있어. 내가 한심해서 그래. 너도 뭐 쓸게 있어야 될껀데. 집으로 막바로 가? 가서 (녹취한 거) 들어보면 시원도 안 할 거다. 이걸 저기(기록) 할라고 들춰볼 때, 그걸 보면은 시원도 안 할 거야.”

 

순자 언니와 인터뷰를 마치고

 

순자 언니와 이야기 나눈 건, 메르스가 한창이었던 더운 여름 날이었다. 한 차례 비가 온 탓에 방안에는 습한 기운과 언니가 피운 담배 냄새가 남아있었고, 털털털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던 참이었다. 이제 녹음기는 꺼졌고, 언니나 우리나 약간은 지쳐있었다. 서로 말이 없는 가운데, 언니는 더듬더듬 한탄을 했고 낮은 한숨을 쉬었다. 혹시 얘기하기로 한 것이 후회되는지 물었더니, 그럴 것도 없다고 하셨다.

 

이 인터뷰는 언니로서는 굳이 내키지는 않지만 거절하기는 곤란한 제안이었을 것이다. 때 되면 들러주고 병원도 같이 가주며 도와주는 아이가 뭔 얘기를 좀 해달라고 하길래 ‘그러마’ 하고서는, 자꾸 뭘 물어보길래 답변했고, 하다 보니 줄줄 늘어놓았는데 이제와 뒷맛이 씁쓸한 그런 기분이랄까. 뭐라 구체적으로 말씀하진 않았지만 결혼도 안 해본 새파란 애 앞에서 뭐 하러 내가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늘어놓았나 하는 마음이 든 건 아니었을까?

 

언니의 한탄에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자신을 포장하거나 부풀릴 능력이 별로 없는 순자 언니는 초라하고 보잘 것 없다고 말하는 삶을 내보일 수밖에 없었고, 몇 번을 스스로 한심하다고 하셨다. 우리는 어쩌자고 이 이야기를 청하고 들어버렸을까. 별로 자랑할 만한 것이 없고 특별히 내보일만한 것도 없어 보이는 언니의 삶을 여기에 내어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눠주신 이야기를 받아 안은 채, 이야기를 청하고 들은 자로서의 책임을 고민해본다.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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