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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는 장애여성의 삶의 경험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통해, 사회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과 다양한 인생관을 배우는 칼럼을 연재합니다. 필자 김효진님은 <오늘도 난, 외출한다>의 저자이며, 장애여성네트워크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고, 지혜로운 노년을 꿈꾸는 장애여성입니다. –편집자 주]
김효진의 다른 생각: 장애가 뭐길래
천성이 그리 치밀하지 못한 탓에 차분하게 계획을 세우는 것과는 늘 거리가 먼 연말연시를 보내곤 하지만, 올 연말은 특히나 정신 없이 보냈다. 단체랍시고 운영을 하다 보니 한해 사업을 마무리하기 무섭게 새로운 계획을 짜야 했고, 이런저런 외부활동들을 마무리하느라 12월을 딱 1주일 앞두고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활동가들의 헌신성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우리네 NGO들 사정이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도 차분히 사색하는 연말연시와는 영영 거리가 멀 것이리라.
그런데 겨우 여유를 찾아 그동안 고마웠던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라도 나누어야겠다고 마음먹기 무섭게, 남편이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집안에서 짚던 목발이 부러지는 바람에 한쪽 발 뼈가 세 군데나 금이 간 것. 남들에게는 별것 아닐 수도 있는 이 부상으로 인해 남편은 졸지에 ‘재가(在家)장애인’이 되어버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한쪽 발을 다칠 경우 깁스를 한 채 다른 쪽 다리로 걸을 수 있으련만, 평소 목발을 짚고 한쪽 다리로만 걷던 우리들에게는 그나마 기능이 남아있던 발의 부상이 치명적일 수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남편은 지금 2주 가까이 출근도 못하고 칩거 중이다.
거의 중증장애인이 되어버린 남편의 수발은 당연히 내 차지건만, 일년 동안 쌓여왔던 긴장이 한꺼번에 풀린 탓인지 심한 몸살감기에 걸려 드러누워버렸다. 일주일 가까이 꼬박 앓는 통에 지난 한 해를 어떻게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어찌 맞이했는지 아무 경황이 없었다. 남편은 자립생활센터를 통해 알선 받은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겨우 통원치료를 했고, 나는 세수나 머리 감을 물을 받아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일주일 정도 지나 지독했던 몸살감기를 툭툭 털고 일어나 보니, 남편은 어느덧 예전보다 훨씬 심해진 장애에 익숙해져 있었다. 세수와 머리 감는 일, 변기에 앉는 일 등에서 차츰 나름의 노하우를 찾아 스스로 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와, 대단한데!' 나는 남편의 그런 모습을 보며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아주 오래 전부터 그런 모습으로 살았던 것처럼 매우 자연스럽고도 여유 있게 생활하고 있다.
매일같이 야근을 해야 했던 남편은 몇 년 만에 맞이하는 휴식으로 인해 훨씬 여유로워졌고, 아빠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여섯 살 난 아들은 신이 나서 재잘거리고, 나는 저녁마다 남편이 아이와 놀아주는 덕분에 그간 미뤄두었던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그러면서 새삼 우리가 겪고 있는 장애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남편에게 평소에 아무런 장애도 없었다면, 과연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적응할 수 있었을까. 또 우리 가족이 장애에 익숙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부상으로 인해 겪게 된 불편함과 갑갑함을 이토록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별다른 흔들림 없이 잘 지내고 있는 우리 가족과는 달리 주변사람들의 반응은 달랐다. “어쩌다 그런 부상을…” “너무 충격이 크시겠어요.” “힘들어서 어떡해요?” 등등 하나같이 부상으로 인해 예전보다 더욱 힘들어지고 불편해진 상황에 대해 안쓰러워하는 반응들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걱정과는 달리, 일시적이나마 장애가 더욱 심해진 것은 우리 부부에게 그다지 큰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큰일은 다음주 초에 완전한 깁스를 한 뒤에라도 휠체어를 타고 회사에 출근할 수 없으리란 점일 것이다. 불행히도 남편의 회사에는 장애인용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이 거의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장애란, 어쩌면 누구에게라도 찾아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것일 게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를 대단한 비극이나 불행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장애 자체가 비극이나 불행이어서가 아니라, 장애를 이유로 차별하는 사회의 문제로 인해 사람들 뇌리에 장애인의 삶이 비극이나 불행으로 각인되기 때문이다.
장애가 있어도 소외되거나 배제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사실 장애란 모든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 안경을 낀 사람들은 모두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이며, 임산부도 일시적인 장애인인 것처럼. 그러므로 장애가 누구에게 찾아오든 (개인차는 있겠지만) 자연스럽게 수용될 수 있으려면, 장애인의 사회참여를 가로막는 장벽이 허물어져야 한다.
기축년 새해를 맞이해 다시 한번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장벽이 와르르 허물어지는 꿈을 꾸어본다.
김효진의 다른 생각: 장애가 뭐길래
천성이 그리 치밀하지 못한 탓에 차분하게 계획을 세우는 것과는 늘 거리가 먼 연말연시를 보내곤 하지만, 올 연말은 특히나 정신 없이 보냈다. 단체랍시고 운영을 하다 보니 한해 사업을 마무리하기 무섭게 새로운 계획을 짜야 했고, 이런저런 외부활동들을 마무리하느라 12월을 딱 1주일 앞두고서야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활동가들의 헌신성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우리네 NGO들 사정이 바뀌지 않는 한, 앞으로도 차분히 사색하는 연말연시와는 영영 거리가 멀 것이리라.
그런데 겨우 여유를 찾아 그동안 고마웠던 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라도 나누어야겠다고 마음먹기 무섭게, 남편이 부상을 당하고 말았다. 집안에서 짚던 목발이 부러지는 바람에 한쪽 발 뼈가 세 군데나 금이 간 것. 남들에게는 별것 아닐 수도 있는 이 부상으로 인해 남편은 졸지에 ‘재가(在家)장애인’이 되어버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한쪽 발을 다칠 경우 깁스를 한 채 다른 쪽 다리로 걸을 수 있으련만, 평소 목발을 짚고 한쪽 다리로만 걷던 우리들에게는 그나마 기능이 남아있던 발의 부상이 치명적일 수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남편은 지금 2주 가까이 출근도 못하고 칩거 중이다.
김효진님의 솔직한 장애여성 이야기
일주일 정도 지나 지독했던 몸살감기를 툭툭 털고 일어나 보니, 남편은 어느덧 예전보다 훨씬 심해진 장애에 익숙해져 있었다. 세수와 머리 감는 일, 변기에 앉는 일 등에서 차츰 나름의 노하우를 찾아 스스로 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와, 대단한데!' 나는 남편의 그런 모습을 보며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아주 오래 전부터 그런 모습으로 살았던 것처럼 매우 자연스럽고도 여유 있게 생활하고 있다.
매일같이 야근을 해야 했던 남편은 몇 년 만에 맞이하는 휴식으로 인해 훨씬 여유로워졌고, 아빠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 여섯 살 난 아들은 신이 나서 재잘거리고, 나는 저녁마다 남편이 아이와 놀아주는 덕분에 그간 미뤄두었던 책 읽는 재미에 푹 빠져 지내고 있다.
그러면서 새삼 우리가 겪고 있는 장애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남편에게 평소에 아무런 장애도 없었다면, 과연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적응할 수 있었을까. 또 우리 가족이 장애에 익숙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부상으로 인해 겪게 된 불편함과 갑갑함을 이토록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별다른 흔들림 없이 잘 지내고 있는 우리 가족과는 달리 주변사람들의 반응은 달랐다. “어쩌다 그런 부상을…” “너무 충격이 크시겠어요.” “힘들어서 어떡해요?” 등등 하나같이 부상으로 인해 예전보다 더욱 힘들어지고 불편해진 상황에 대해 안쓰러워하는 반응들이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걱정과는 달리, 일시적이나마 장애가 더욱 심해진 것은 우리 부부에게 그다지 큰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큰일은 다음주 초에 완전한 깁스를 한 뒤에라도 휠체어를 타고 회사에 출근할 수 없으리란 점일 것이다. 불행히도 남편의 회사에는 장애인용 화장실 등의 편의시설이 거의 갖추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장애란, 어쩌면 누구에게라도 찾아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것일 게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를 대단한 비극이나 불행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은 장애 자체가 비극이나 불행이어서가 아니라, 장애를 이유로 차별하는 사회의 문제로 인해 사람들 뇌리에 장애인의 삶이 비극이나 불행으로 각인되기 때문이다.
장애가 있어도 소외되거나 배제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사실 장애란 모든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 안경을 낀 사람들은 모두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이며, 임산부도 일시적인 장애인인 것처럼. 그러므로 장애가 누구에게 찾아오든 (개인차는 있겠지만) 자연스럽게 수용될 수 있으려면, 장애인의 사회참여를 가로막는 장벽이 허물어져야 한다.
기축년 새해를 맞이해 다시 한번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장벽이 와르르 허물어지는 꿈을 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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