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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픈 현대사에서 ‘반공’과 ‘경제성장’의 기치아래 군부독재정치가 자행됐다는 것을 배웠다. 그러나 ‘독재’가 남긴 유산은 과거의 것에 머물지 않고 지금도 계속되는 역사이며, 국가권력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사회 곳곳의 문화 속에 스며들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런 사실을 간파하고 있는 이는 드물다. 보수정당과 보수언론의 공세에 밀려, ‘독재’가 실제로 어떤 것인지 제대로 판단할 기회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는 뿌리깊게 자리하지 못했다. 민주주의가 성숙하려면 ‘독재’의 유산을 청산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 내가 기억하는 독재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80년 광주와 삼청교육대: 말할 자유가 없다는 것
독재 하면 떠오르는 것은 선거다. 박정희 군사정권시절 공무원들은 줄을 선 순서대로 누가 누굴 찍었는지 다 알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선택의 권리가 없었다. 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감시와 통제, ‘100%’라는 결과, 형식만 있는 정책 등은 군사독재의 표상 같은 것이었다. 하긴 형식적으로도 직접 대통령을 선출하지도 못했던 적도 있었으니.
말할 자유가 없다는 것, 과연 과거의 일일까.
당시 광주 부근의 전라도 일대는 전기도 끊기고 전화도 끊겼다. 그리고 내가 사는 서울에선 누구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단지 사회를 위협하는 ‘폭도’들이 난동을 부린 것이라 했다. 이 작은 땅덩어리에서 사람들의 소통과 정보를 차단하고 통제할 수 있는 힘이 정권에게 있었던 것이다.
전두환 전대통령의 집권과 더불어 공포정치는 계속됐다. 지금은 사람들에게 전설처럼 전해지는 삼청교육대와 관련한 사건도 접했다. 당시 고모부가 동네 청년들과 바둑을 두다가 끌려가서 연락이 두절됐는데, 돌아왔을 땐 무슨 일을 겪었던 것인지 1년 넘게 병원신세를 졌다.
그 때는 쥐도 새로 모르게 끌려가는 시절이었다. 택시를 타고 입 한 번 잘못 열었다간 언제, 어떻게 잡혀갈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리고는 어느 날 정체 모를 차 한 대가 집 앞에 만신창이가 된 사람을 던져놓고 가버리는 것이다.
말할 자유가 없다는 것, 숨쉬는 공기 속에 국가권력의 지배와 공포감이 깔려있다는 것, 그것이 어떤 것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모를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무서운 독재정권 시절을 많은 사람들이 너무 쉽게 잊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 지난 시절의 일일 뿐이라고 말이다.
독재정치는 과거의 일? 독재의 인맥은 계속된다
공기업 매트릭스: 독재의 인맥은 계속된다
독재를 기억한다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 과연 얼마나 민주적인 사회이며,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천해가고 있는지 돌아본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나는 노무현 전대통령 시절, 사람들이 불과 20~30년 전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는 것에 대해선 별로 돌아보지 못한 채 오히려 과거 독재정권과 독재자를 그리워하며 그에 대해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 걱정되었다. (그 결과는 선거를 통해 드러났다.)
독재탄압과 민주화 운동이 까마득히 옛날 일인 줄로만 아는 요즘 젊은 사람들을 보며 더욱 위태로운 마음이 든다. 과거와 같은 군부독재는 더 이상 이 땅에서 자리잡지 못할 것처럼 보이겠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독재의 잔재와 그 인맥들은 여전히 위세 등등하게 세력을 떨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독재의 시절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일다] 이순진 ☞ 일다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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