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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이유는

아이가 4살 때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만들어서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보냈고 현재는 경기지역에 있는 한 대안학교에 보내고 있다. 부모모임에서 내가 보는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아빠들은 축구, 엄마들은 부엌에서 수다 떠는 모습이다. 대안교육 공동체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명절에 모인 가부장공동체의 모습과 비슷해 보인다. 그런데도 우리는 대안교육을 하기 위해 모였다고 말한다.

우리는 무엇을 ‘대안’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축구 하던 아빠, 설거지하던 엄마, 운동장에서 뛰어 놀던 아이들이 다같이 모여 “그날”이 오기를 기원하며 어깨를 걸고 “아침이슬”을 부르면 대안인 것일까?

아이 맡기기에 급급한 나머지 차이를 봉합하다

아이를 공동육아와 대안학교에 보내면서 매 순간 충격과 갈등의 시간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구의 잘잘못의 문제라기보다 출발의 지점과 질문의 내용이 너무도 다른 사람들이 이를 문제삼지 않은 채 모인 데서 오는 필연적인 갈등이다. 정권과 민중, 자본가와 노동자, 보수와 진보 같이 우리가 가시적으로 상정하고 있는 ‘외부’와 ‘내부’의 차이보다, 사실은 드러나지 않는 ‘내부’의 차이가 더욱 심각하고 정치적인 것이라는 인식이 없었던 게 문제다.

부모도 아이와 같이 성장하는 존재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장했어야 한다. 어제의 ‘우리’가 더 이상 ‘우리’일 수는 없다. 나는 어제의 ‘우리’ 안에서 함께 하는 것이 고통스러운 오늘의 ‘너와 나’를 느낀다. 그런데 어떻게 쉽게 어깨를 걸 수 있겠는가.

공동육아 어린이집은 그렇게 함께 어깨를 걸었던 전형적인 ‘386세대’가 주축이 되어 설립하고 운영한 대안적 육아, 교육 운동이다.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어떤 사람의 육아관이나 교육관을 보면 그 사람의 가치관이나 본연의 모습을 바로 알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는데,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통해 우리들의 다양한 가치관과 본질을 확인하는 귀한 경험을 하게 됐다.

‘교육’보다는 ‘돌봄’이 초점인 공동육아 어린이집의 경우, 여러 차이에도 불구하고 구성원들이 돌봄 노동의 어려움을 공유하고 나누면서 위안을 받는 부분이 컸기 때문에 갈등이 무마되곤 했다. 이때도 공동육아를 ‘돌봄의 사회화’를 위한 초석이나 실험으로 생각하지 않고, 내 아이의 경쟁력을 키워주기 위한 정서발달과 ‘웰빙’에 좋다고 생각해서 보내는 부모들도 많았다. 하지만 아이를 맡기기에 급급한 부모들은 그야말로 ‘대안이 없기 때문에’ 갈등을 노출시키는 것을 자제하고 합의점을 찾곤 했다.

아이가 취학하는 순간 드러난 욕망과 갈등

그러나 아이가 취학하는 순간, 즉 제도에 편입되는 순간부터 부모들의 본질은 전면적으로 드러나고 잠복 되어 있던 갈등은 구체적으로 노출됐다. 어느 학교를 보낼 것인가, 모두 같은 학교를 보낼 것인가, 사립학교를 보내도 되는가 등의 문제부터, 공동육아 방과후 교실의 성격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어떤 활동이 이루어져야 하는가, 아이를 학원에 보내도 되는가 등등 의견이 분분해졌다. 그리고 예전과 달리 논의를 통해 합의점을 찾기 어려워졌다.

왜냐하면 교육제도와의 본격적인 대면은, 부모들로 하여금 그 동안 감추고 있던 욕망을 분명히 표명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이다. 어제의 우리들은 외부적 문제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입장을 표명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익숙했지만, 오늘 감추어진 자신의 내부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드러내야 하는 일은 익숙하지 않아서 당황했다. 모순적인 내면은 갈등으로 부글부글 끓고, 자존심은 상하고, 자기합리화는 해야겠고….

아니, 실제로는 스스로 자신이 모순적이라고 여기는 부모도 그리 많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를 테면 공동육아와 대안교육의 목표가 사립학교의 교육목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데도, 결국엔 아이를 사립학교에 보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분위기인 공동육아라면, 부모들은 일찌감치 자신들의 욕망에 대해 스스로 정리를 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후 논의 속에서 갈등하는 듯한 제스처만 취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갈등의 골은 시간이 갈수록 깊어만 갔고, 서로 다른 목표와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됐다. 따라서 점점 왕래는 줄어들고, 공동육아가 내세우는 생활공동체로서의 의미는 찾기 힘들어졌다. 오히려 비슷한 정체성, 비슷한 계급의식, 비슷한 생활환경을 가진 부모들끼리 뭉쳐 과외공동체로 성격변신(?)을 하며 더욱 활성화되는 경우도 많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내가 생각하는 ‘대안’은 무엇인가

첫번째 제도와의 대면과정을 거치고 나면, 크게 몇 갈래로 그룹이 만들어진다. 그룹들을 전체적으로 보면, 중등과정에서 대안학교를 보내는 부모들은 개중에 조금은 소박한 욕망의 소유자들, 세속적인 욕심이 덜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그룹 속에서도 다양하고 큰 차이가 존재한다. 여전히 교육관에서, 가치관에서, 그리고 문화에서 그 간극은 좁혀지지 않는다.

대안학교를 신 엘리트 코스로 생각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지역공동체 운동의 일부로 생각하는 부모도 있고, 치유와 정서순화를 위해 아이를 보내는 부모도 있으며, 아무데에도 적응을 못하는 아이를 받아만 주어도 만족하는 부모도 있다.

공동육아에서도 그랬듯이 대안학교에서도 나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이 차이들을 품고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혹시 다들 그런 것일까? 서로 참을 수 없을 만큼 다르지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여기 같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같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 이왕이면 어깨를 거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공동육아와 대안학교 경험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는, 당장 다른 대안이 없다 하더라도 서로의 ‘차이’에 대해 드러내고 이야기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대안이 아니라 ‘나’의 대안을 말해야 하는 시점이며, 그것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추상적인 ‘우리’에 추상적인 ‘나’를 맞추기보다는, 구체적인 ‘나’에 맞는 구체적인 ‘우리’를 찾는 것이어야 근본적인 대안, 혹은 지속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그래야 지금까지 일궈온 소중한 성과들을 제대로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엄마’라는 과도한 성역할에서 벗어나는 것

그렇다면 아이를 키우고 가르치는 데에 있어 ‘나의 대안은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된다. 사실 나에게 대안은, 이 사회가 내게 부여한 엄마라는 과도한 성역할 노동에서 육체적, 심리적으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면 된다. 나는 아이를 하루세끼 해 먹이는 것이 힘들어서, 또래 친구들을 사귀게 하고 싶어서, 내가 눈치 보지 않고 소신 있게 살고 싶은데 사람들이 그런 엄마를 흉보는 것에 아이가 스트레스 받을까 봐, 먹여주고 재워주는 대안학교에 멀리 아이를 보냈다. 나에겐 그것이 대안이었다.

만약 먹기에 안전하고 아이들이 혼자 가서 먹어도 불쌍해 보이지 않는 식당이 동네에 존재한다면, 아이 친구들이 학교 끝나고 사교육을 받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라서 우리 아이와 놀아줄 수 있다면, 내가 밤늦게 들어와도, 집안이 지저분해도, 며칠이고 밥도 설거지도 안하고 애를 씻기지도 않는다 하더라도, 술 먹고 담배피고 푼수 짓을 하더라도 사람들이 엄마자격 없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나는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내지 않을 수도 있다. 나에게 이 대안학교가 대안인 것은, 엄마로서 나에게 지워진 이 짐들을 나누어 가져가 주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겐 그런 ‘대안’에 장애가 되는 부분들이 심각하게 문제로 다가오는 것이다. 앞서 말한 예처럼, 부모의 남녀간 성역할 구분이 대안교육의 장에서도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거나, 아이들에게 성차별적 문화가 존재한다거나, 학교에서 여전히 아이의 보살핌을 엄마들의 몫으로 여긴다거나 하는 경우가 나에게는 학교 커리큘럼의 구성이나 개성탐구 수업 내용보다 중요한 문젯거리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축구하고 나서 시원한 막걸리를 마시며 아내들이 준비해 온 안주를 먹으며 학교의 재정과 운영에 대해 이야기하는 아빠들과 어깨를 걸고 민중가요를 함께 부를 수 없다. 차이에 대해 둔감한 사람들, 차이를 무시하는 사람들, 차이를 숨기는 사람들과 함께 할 “그날”이 상상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일다] 우기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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