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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레즈비언’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이야기하다

마음의 안정을 되찾고 다시 <일다>에 내 이야기이자 10대 레즈비언의 이야기를 기고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2008년은 내게 너무나 힘겹고 괴로웠던 시간이었고, 동시에 ‘레즈비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던 한 해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2학년이 될 무렵, 나는 한 여자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는 레즈비언이 아니었다. 지극히 여성스럽고, 좋아하는 이상형의 남자가 뚜렷한 이성애자였다. 나는 이런 사실을 모르는 척 뒤로하고, 나를 만나면서 조금씩 자신의 성 정체성을 혼란스러워하는 그 애와 1년여의 짧지도 길지도 않은 연애를 했다.
 
이 친구를 만나면서 나 스스로에게 믿음을 가졌다. 그 애가 레즈비언이 아니라는 사실이 나와 그 애의 관계를 유지하는데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하지만 내 믿음은 보잘것없이 무너졌다. 그 애와 사귄 지 1년이 다 되어갈 무렵이었던 작년 여름. 모든 문제는 학교에서 시작됐다.
 
같은 성별을 가진 이와 지속된 학교 안에서의 연애는 그 애와 나를 힘들게 만들었고,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해도 무성한 소문들을 만들어 냈다. 학교에서 그 애는 항상 무뚝뚝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 애에게는 최선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를 숨김없이 감정을 표현했기 때문에 같이 있을 때와는 너무 다른 태도의 그 애에게 서운함을 느끼곤 했다.
 
이러한 모습 때문인지, 다른 여자애들은 내가 멀쩡한 애를 이상하게 만들고 있다며 쑥덕거리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많은 이성애자 사이에서 조심성 없이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는 나로 인해 문제가 생기는 거라고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친구들이 내가 그 애와 주고받은 문자를 보게 되었고, 순식간에 일이 커지기 시작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둘러 쌓여 더 이상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숨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리고 절대 말해선 안 된다고 다짐했던 그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나 사실 레즈비언이야.”
 
내입으로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말했지만, 그건 절대로 ‘커밍아웃’이라고 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나 스스로를 아웃팅시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 애와의 관계를 유지시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나의 학교와 일상에서의 생활은 빠르고 불안정하게 변해갔다. 혼자가 된 것은 물론, 내게 모욕감을 주는 말들을 그저 가만히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사실보다 더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것은, 그 일 이후 결코 내편을 들어주지 않는 그 애 때문이었다. 나는 졸지에 멀쩡한 애를 레즈비언으로 만들려 했던 변태취급을 받았고, 그 애는 가엾은 피해자가 되어버렸다. 점점 그 애는 나를 멀리했고, 학교에는 그 애가 나와의 관계를 부인했다는 믿지 못할 소문만이 돌고 있었다.

그 사건 이후 달라진 나의 삶

 
나는 무서운 속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활동적이고 낙천적이었던 아이는 이제 말이 없고 소극적인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결국 학교에서의 생활이 힘들다고 판단한 나는, 이전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바로 엄마에게 커밍아웃을 하고 모든 사실을 털어 놓은 뒤 학교를 자퇴하는 일이었다.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나는 엄마에게 모든 사실을 말했다. 엄마가 나를 이해해주길 절실히 바라면서. 그리고 몇 일 뒤에, 아무 말이 없이 울기만 하던 엄마는 나를 정신과에 끌고 가셨다. 순식간에 나는 정신병자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처음부터 엄마에게 이해 받길 바랬던 나의 잘못이었을까? 치료받을 것을 요구하는 엄마의 말에 말없이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심리치료를 하는 내내 의사의 진료카드에는 영어로 “homo”가 들어간 알 수 없는 병명이 적혀있었다. 병원에서 나는 의사의 의도대로 말했다. 여자를 좋아하는 이유를 내 어릴 적 성장배경과 연관시켜 거짓으로 말할 때마다, 진료카드의 메모란에는 ‘병세 호전’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글자가 적혀있었다.
 
나는 무의미한 심리치료와 벼랑 끝에 서있는 듯한 학교생활을 지속해나가면서 조금씩 독립하는 방법을 익히고 있었다. 내가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은 채로. 그러는 사이 시간은 흘렀고, 하나 둘씩 내게 다시 손을 내미는 친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이제 그 여자애들이 나를 이해해주길 바라지 않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애들은 나를 이해하게 된 것일까? 아니다. 단지 이해해주기를 원하지도, 강요하지도 않은 내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준 것뿐이었다. 그 차이는 너무나 큰 것이어서 나는 혼자일 수밖에 없었다. 결코 나를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친구들을 원망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쩌면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를)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레즈비언임을 숨겼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애와의 관계 때문에? 아니면 모두들 동성애자를 경멸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비록 나는 아직도 불안정하고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나는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고, 나를 인정해주는 친구들을 얻었으며, 무엇보다 지금까지의 내 자신을 더 이상 숨기지 않게 되었다. (지금은 남자와 사귀고 있지만, 그 애 역시 스스로에 대해 진심으로 솔직해지길 바란다.) 앞으로 레즈비언으로서의 내 삶은 독립투쟁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정말로 레즈비언이라고. [일다] 제나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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