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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치를 만나는 세 가지 방법
그림동화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 읽기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는 ‘이야기 채집단’ 줄여서 ‘이채’라는 모임이 기록해 출판한 첫 번째 책입니다. 이채는 지금껏 기록되지 않았던 사람들의 삶을 채집해서 그들을 위한 피난처, 보금자리, 장소를 만들기 위해 모였다고 합니다. 이채는 엄과 숑과 명, 세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더불어 그림작가 간올(이한솔)은 꽁치라는 이름에 지금 우리가 함께 보고 있는 몸을 입혀낸 인물입니다.
▲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 이채 글 기획, 이한솔 그림, 리젬. 2015
처음에는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이하 ‘꽁치’)를 소규모의 독립출판물로 계획했는데,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텀블벅(tumblbug.com) 후원 100%를 가뿐히 달성하고 주변인들의 강력한 지지와 호응을 얻게 됩니다. 성원에 힘입어 2015년 6월, 리젬 출판사를 통해 정식 출판이 되었답니다.
서점에서 친구들이 만들어낸 책을 사보는 것은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무척 떨리고 흥분이 되었는데, 이렇게 서평을 통해 소개할 수 있다는 것에 감개가 무량합니다. <꽁치>를 기록하고 출판한 사람들의 인연이 그러했듯이, <꽁치>가 읽히고 알려지는 과정에도 개인적인 역사들과 친밀한 애정들, 현실을 살아있을 만하게 만들어주는 우연한 마주침이 개입했으면 하고 바랍니다.
프로젝트의 이름이 <꽁치 그림동화책 시리즈>이며 첫 책은 치마를 좋아하는 남학생 꽁치가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꽁치>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꽁치 주변인들의 모습입니다. 이들이 꽁치를 만나는 방법에 관하여 서술해보겠습니다. 자연스럽게 이채가 채집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이채가 만들고자 하는 장소가 무엇인지, 조금 더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랍니다.
방법 하나, 이상하게 만나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옷장에 치마가 모두 사라졌어. 그래서 학교에도, 사과소녀 선발대회에도 나갈 수 없게 됐어.”
꽁치를 찾아온 친구들에게 꽁치는 설명합니다. 친구들은 “바지를 입으면 되잖아?”라고 묻지 않습니다. 그 대신 즉각 “우리가 치마를 찾아 줄게!”라고 외칩니다. 친구들은 여자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싶어하는 꽁치에게 “그냥 남자탈의실에 가면 되잖아?”라고 묻지 않습니다. 대신 꽁치를 여자탈의실로 옮겨주지요.
이 친구들은 도무지 “넌 왜 이렇게 해/안 해?”라는 물음이자 명령인 말의 형식을 모르는 바보인 것 같습니다. 자신들이 그런 화법을 모른다는 것조차 모르는 채, 다만 꽁치가 꽁치인 채로 가능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데만 역량을 투입합니다. ‘꽁치를 꽁치이게 하기’, ‘이 공간을 꽁치가 있는 공간이게 하기’만이 이들의 관심사입니다. ‘뱀’은 그 여정에 제 몸을 사다리, 탈 것, 길로 제시하고요. 어찌 보면 참 신기하고 이상한 애들이에요.
▲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 이채 글 기획, 이한솔 그림, 리젬. 2015
여기엔 꽁치의 설명에 응당 뒤따를법한 세상의 판단과 평가를 가볍게 건너뛰어버리는 어떤 논리가 있습니다. 친구들은 이 ‘꽁치-논리’만을 공유합니다. 꽁치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논리이지요. 친구들은 꽁치와 축구를 하고 싶고, 공기놀이를 하고 싶습니다. 매일매일 꽁치를 만나고 싶습니다. 그래서 꽁치에 관해서 이러쿵저러쿵 평하는 권력을 기꺼이 포기합니다. 까먹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꽁치와 친구들의 관심사는 함께 즐거운 모험을 하는 데만 ‘편파적으로’ 기울어져 있으니까요.
그러므로 이 친구들에게 꽁치를 되찾는 모험은 곧 치마를 찾아내는 일입니다. 이들이 꽁치의 치마를 찾아낸 장소는 바로 자신들의 옷장입니다. 그렇게 꽁치의 옷장을 새로이 채울 백 벌의 치마가 꺼내어집니다. 그 치마를 입고 꽁치는 낯선 군중들의 수군거림과 흘깃거림 위로 한 발짝 두 발짝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제 치마는 꽁치가 좋아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역설적으로 꽁치를 지켜내고 지속시키는 것입니다. 꽁치가 군중들 앞에 나타나기까지 꽁치에게 덧대어지고 포개어진 시간들입니다. 꽁치의 몸은 친구들과의 모험을 통해 형성된 장소의 일부로, 장소의 한 상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군중들은 그 장소로부터 꽁치만을 억지로 떼내어 벌거벗기려 할 테지만, 결국 그러지 못할 거예요.
방법 둘, 서투르게 만나기
한편 꽁치의 가족들은 엉엉 울면서도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일부터 치마는 입지 않기로 약속해 줄래?” 꽁치의 엄마는 눈물을 흘리면서 꽁치에게서 치마를 빼앗고 옷장에 바지를 걸어 놓습니다. 꽁치가 그 바지를 입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양 일상을 살아가기를 바랐겠지요. 꽁치를 계속 만날 수 있을 거라 여겼을 겁니다.
그러나 꽁치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치마가 사라지자, 꽁치도 사라집니다. 치마를 빼앗긴 꽁치는 몸을 빼앗긴 꽁치, 몸을 빼앗긴 꽁치는 일상을 빼앗긴 꽁치입니다. 꽁치는 더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더이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꽁치는 맨몸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있습니다.
가족들은 몰랐을 것입니다. 꽁치가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요. 꽁치가 잘 살았음 해서 그랬겠지요. 가족들이 자신들이 꽁치에게 한 요청의 효력을 깨닫는 것은 꽁치의 ‘부재’로 인해서입니다. 내가 한 말이 꽁치를 사라지게 하는 말이었음을 이들은 이후에야 깨닫습니다. 그래서 다시 저울질을 합니다. 꽁치가 치마를 입지 못하게 하는 것이 꽁치를 못 보게 되는 것보다 중요한 일일까?
가족들이 꽁치를 만나는 방법은 친구들의 그것에 비해 참 많은 망설임과 두려움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민의 끝에 찾아 오는 행동은 같습니다. 가족들은 치마를 들고 꽁치의 방을 찾아가고 치마를 입고 꽁치를 응원합니다. 꽁치의 편이기를 선택합니다. 일상을 반짝이게 하는 꽁치의 예쁨을 계속 보고 싶으니까요. 꽁치는 그 서투른 응원에 활짝 웃는 것으로 응답합니다.
방법 셋, 수수께끼를 풀며 만나기
▲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 이채 글 기획, 이한솔 그림, 리젬.
<꽁치>에서 꽁치의 발화는 단 두 마디입니다. “저, 사과소녀 선발대회에 나가고 싶어요”, “치마가 사라졌어. 그래서 나갈 수 없게 됐어.” 이외의 장면들에서 우리는 꽁치가 던진 말로 인하여 움직이고 있는 친구들과 가족들을 봅니다. 꽁치는 다만 상황을 주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꽁치를 바라보게 만들죠. 꽁치가 사라졌다는 걸 의식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꽁치를 찾아 나서게 만듭니다.
꽁치가 준 상황에 꽁치 주변의 사람들은 충실합니다. 이야기의 잠정적 엔딩을 보기까지 꽁치 주변의 사람들은 부지런합니다. 꽁치의 이야기는 우리가 그를 가만히 듣고 바라보게 하는데 멈추지 않고, 우리를 무언가 하는 존재로 만드는데 기여합니다.
꽁치의 몸과 얼굴과 행위는 덜 구체적이고, 덜 설명적이며, 비어있는 채로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계속 진행시키려면 꽁치의 속내를 상상해야 하고, 꽁치라는 빈 공간을 채워 넣어 계속 굴러가게 하기 위하여 직접 움직여야 합니다. 이야기를 밀고 나가는 행위와, 꽁치가 존재할 수 있는 장소를 지켜내고 만들어나가는 행위가 포개어집니다. 언어와 실재, 두 차원의 행위는 꽁치를 이해하고 꽁치에게 일상을 부여하는 유일한 목적 아래에 정렬됩니다.
수년 전, 이채의 ‘명’과 함께했던 작업에서 x라는 가상의 존재를 탄생시킨 적이 있습니다. x는 태어날 때부터 남성이거나 여성일 필요가 없는 존재였고, 누구도 그에게 성별을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x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저는 꽁치에게서 x의 기억을 봅니다. 하나의 개념을 주장하기 위하여 한 인물을 탄생 시키고, 그 수수께끼를 푸는데 자신의 생을 투여하는 방식을 봅니다.
심지어 꽁치는 하나이자 여럿의 동일한 이름입니다. 앞으로 출판될 책들에서 꽁치는 다른 나이, 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 다양한 계급의 몸으로 나타날 예정입니다. 이렇게 꽁치는 생에 출현하는 하나이자 여럿인 타자의 이름, 우리가 아직 이 타자를 모른다는 것만을 선명하게 표시하는 이름입니다.
이 책의 독자가 될 어린이들은 꽁치가 치마를 빼앗긴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까요? 양치하기 싫은데 엄마가 양치하라고 하거나 게임하고 싶은데 선생님이 못하게 하는 것 이상의 상징적인 의미를 알까요? 꽁치의 치마는 최고의 골키퍼가 되기도 하고 공기놀이에 제격이기도 하지요. 독자들은 언제부터 양자의 차이를 구분해야만 할까요? 언제 양자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할까요? 몸을 가지고 태어난 그 순간부터인가요? 왜 그래야만 할까요?
독자들의 인식 안에서 이런 질문들이 시작되는 그 순간, 꽁치의 생과 그의 생은 얽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한 친구는 이 책을 두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 읽어야 하는 책인듯하다”고도 평했습니다.
꽁치와 만날 수 있는 장소를 함께 만들어요!
▲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
‘이채; 이야기 채집단’의 이러한 서사 전략은 흥미롭습니다. 소수자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소수자 운동은 어떤 이야기를 펼칠 것인가에 대한 이채의 대답이라고 여겨집니다.
이채는 꽁치를 어떤 모습으로, 얼만큼의 분량으로 보여줄 것인지를 두고 고민했을 것입니다. 이채는 꽁치의 기원을 분석하거나, 꽁치의 고통을 호소하거나, 꽁치의 보편적 인간성을 구성해내는 데는 말을 아낍니다. 다만 치마를 좋아하는 꽁치를 던집니다. 그런 꽁치와 앞서 만난 이들을 소개하며, 당신은 꽁치와 어떻게 만날지를 생각해보라 합니다.
어쨌든 꽁치가 존재하는 이상 꽁치는 장소를 요청합니다. 꽁치 혼자만의 독백과 노력으로는 장소가 열리지 않습니다. 꽁치를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꽁치를 기록하고, 받아 적고, 번역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공동의 작업을 통해서만 그 장소는 열립니다.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100개>를 읽은 우리는 사랑스러운 꽁블리, 꽁치를 아는 사람들이자 꽁치를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 전과 후는 다릅니다.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은 보수적인 정치 세력과 일부 보수기독교 세력의 합작 아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6월 28일 서울광장에서 진행될 ‘퀴어 퍼레이드’에는 이채와 간올이 꽁치 홍보 부스를 운영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곳에서 꽁치를 무사히 만날 수 있기를, 책 안팎에서 꽁치들을 채집하고 꽁치들의 장소를 꾸려 나가는 작업이 계속되기를 희망합니다. ▣ 별 | 여성주의 저널 일다
* 이채 블로그 http://blog.naver.com/chaezipdan
* 이채 트위터 @chaezipd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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