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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마시는 나이
<여라의 와이너리 시즌2> 어정쩡한 그 시기
와인의 나이는 그러하다 치자. 와인을 마시는 나이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 집 앞 마당에 자라고 있는 포도. © 여라
얼마 전 오랜 친구를 찾아가 함께 숲길을 걸으며 모처럼 긴 수다를 나눴다. 우리는 고1때 같은 반이었다. 첫눈에 반해(?) 입학 첫날부터 단짝이 되었고 좌충우돌 지랄 맞은 그 시기를 같이했다. 지금은 이 친구의 딸이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보다도 언니가 되어 고3이다. 딸 이야기에 우리가 함께한 시절이 겹쳐져 그날 집에 돌아오며 내내 어린이도 아니고 청년도 아닌 이 어정쩡한 시기에 대해 생각했다.
몇 년 전 개정으로 우리 민법 4조는 성년의 기준을 만 20세부터로 규정한 것에서 만 19세부터로 낮췄다. 성년은 ‘청소년 또는 미성년이라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해도 되는 나이’다. 사실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많다.
예전에 개정 전, 민법이 성인의 나이를 만20세 이상으로 규정했을 때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두 번째 해가 되도록 술집에서 민증을 보여달라 하면 뻰찌먹을 수도 있었다. 무슨 법이 그러냐.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에도, 그 뒤에도 그게 통 이해되지 않았다. 법규정이 이렇게 삶과 동떨어지다니.
의무와 권리 사이
현행법에 의하면, 만 18세가 되면 친권자의 동의 없이도 결혼할 수 있다. 야한 것도 볼 수 있다. 18세부터 노동으로 돈 벌어 국가경제에 이바지하고 가족을 일구어 국가의 미래세대 생산에 기여할 수 있다. 그렇지만 19세까진 아직 성년은 아니다.
17세부터 주민등록증을 발급받는데 19세가 될 때까지는 술을 살 수가 없다. 아무래도 주민등록증은 술 담배를 살 때 나이확인용인가보다.
생각할수록 참으로 어정쩡하다. 근로기준법 66조는, 도덕적 보건적으로 유해 및 위험한 사업(?)에 사용금지 나이 제한을 18세 미만으로 정했다. 다시 말해 19세부터 그러한 사업에 투입 가능하나 청소년보호법 2조에 의해 19세까진 미성년자다. 미성년자라고!
▲ 최근엔 갓 미성년을 벗어난 연예인이 소주 광고모델이 되는 게 괜찮은가 하는 논란도 일었다. © 여라
더 이상한 건 병역법이다. 대한민국 국민 남성 18세부터 제1국민역에 편입시키는데, 나라 지키는 책임은 막중한데 19세에 선거권이 주어지기 전엔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내 손으로 뽑을 수 없다. 그지 같다.
미국은 베트남전 당시, 선거권도 없고 술도 못 마시는 나이조차 군에 차출되는 나이에 포함시켜 논란을 빚었다. 결국 그것은 투표권과 음주 허용 나이 제한을 낮추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금은 음주 관련 제한이 강력해졌다.)
우리는 만 19세지만, 대부분 나라에선 18세가 되면 선거권이 주어진다. 어떤 나라들은 16세부터 선거권을 준다. 오스트리아, 아르헨티나 등이 그렇다. 그리고 거기서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 지는 좀 의문이지만, 우리의 북측은 17세에 선거권을 준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싱가포르, 파키스탄처럼 21세가 되어서야 선거권을 갖게 되는 나라도 있다.
음주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나이도 선거권처럼 대부분은 18세지만, 나라별로 다양하다. 옆 나라 일본은 20세, 우리는 19세, 중국은 18세, 미국은 21세,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영국 등 유럽은 알코올 농도에 따라 대략 16세가 되면 맥주와 와인은 마셔도 된다. 놀랍게도 캄보디아, 알바니아, 가나, 가봉, 키르기스스탄처럼 음주에 나이 제한이 없는 나라도 있다. 대부분 나라에서 음주해도 되는 나이와 술을 사고 팔 수 있는 나이가 일치하지만 또 다 그런 것도 아니다.
어정쩡한 게 또 있다. 미성년 시절부터 온 국민의 사랑을 받아온 유명연예인이 갓 미성년을 벗어나 국민알코올 소주 광고모델이 되는 것이 괜찮은가 하는 최근 논란도 음주 허용 나이 기준과 파급력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우리가 모르는 곳에 갖가지 인생이 있다
▲ 꺼내든 책에서 기차표를 발견했다. 30대 초가 되어서야 처음 혼자 여행을 떠났고, 나를 새롭게 알게 된 여행지에서 산 책이다. 뉴질랜드 소비뇽블랑을 사랑하게 된 여행이었다. © 여라
어정쩡한 시기를 보내는 또래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확실히 아는 것이다. 남들이 모두 가는 대로 가지 않아도 된다. 다른 길이 언제나 있고, 나의 방법은 내가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이 “와인은 레드지~” 하지만, 화이트와인의 세계도 드넓다. 레드도 아니고 화이트도 아닌 아주 근사한 드라이 로제의 세계가 있다. 그리고, 샴페인의 가격만큼이나 월등한 스페인 까바 잊었나. 이탈리아 바르베라와 바르바레스코 물론 말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온 국민 식탁에 매일 오르는 와인은 무얼까. 특별한 날은 와인을 통해서도 구별될 수 있지만, 똑같은 와인도 그냥 그런 와인일 수 있고 30년 뒤에도 두고두고 추억을 씹게 할 수도 있다.
와인을 마시기 시작한 청춘이여. 어디서 마셔본 와인이 괜찮으면 와인 이름과 종류를 익히며 배워나가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 보다 장기적으로 포괄적으로 즐기려면 그 와인이 왜 맘에 드는지를, 자신이 어떤 맛을 좋아하는 지를 기억해두는 것도 좋다. 나를 알아가는 여행 같은 거다. 단맛이 좋다든지 이 단맛이 다른 와인 단맛과 어떻게 다른지 자꾸 표현해보라. 단맛 말고 신맛이 좋은지, 과일 맛이 진해서 좋은지, 향이 강해서 좋은지, 묵직한 알코올의 기운과 강한 탄닌이 좋다든지. 이런 여행을 많이 다니라고 말해주고 싶다.
“너희가 모르는 곳에 갖가지 인생이 있다. 너희들의 인생이 둘도 없이 소중하듯, 너희가 모르는 인생 또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모르는 사람의 인생을 아는 것이다.” - 하이타니 겐지로 <태양의 아이>
여기에 ‘인생’ 대신 ‘와인’을 넣고 다시 읽어보는 것도 괜찮다. ▣ 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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