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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시간을 되살려내는 ‘언어’
<모퉁이에서 책읽기> 나탈리 사로트 “어린 시절” 

 

※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고 쓰는 사람, 안미선이 삶에 영감을 준 책에 관해 풀어내는 연재. 한국여성민우회 블로그 민우트러블’에도 공동 게재됩니다. ▣ 일다 www.ildaro.com 

 

지나온 여러 시간들이 일제히 일깨워질 때

 

매미는 다섯 시가 지나면 운다. 비가 내리는 새벽에도 운다. ‘맴맴맴매애앰……’ 문득 시작해서 익숙하게 대기 중에 자리를 잡는다. 그 소리는 허공에 전류를 일으켜 사물을 감전시키는 듯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만그만한 사물에 덧입혀지는 그 음색은, 모든 것이 그대로라거나 모든 것이 그대로일 수 없다는 상반된 뉘앙스로 다가온다.

 

매미 소리가 없다면 여름 풍경은 묵묵하겠지만 돌연하고 끈질긴 매미 소리로, 사물들은 존재가 부각되고 덧없게 되고 또 맹렬하게 된다.

 

매미 소리는 지난날 내가 사무실에서 우두커니 창 밖을 내다보았을 때 쏟아져 들어와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해주던 유일한 것이었고, 어린 날 마당의 라일락 나무의 어른대는 잎사귀처럼 빛나 춤추던 것이었고, 더 어릴 때는 시골 큰집의 뒷마당에 있던 그늘 깊은 감나무가 품고 있던 웅숭깊은 비밀이었다.

 

매미 소리는 여러 시간을 일제히 일깨워 나를 어린 시절의 골방으로 돌아가게 한다. 방문을 열면 지금은 돌아가신 어른들이 허리 굽은 모습으로 주억대며 인사를 건넬 것 같고, 젊은 부모가 활기차게 요리를 하거나 출근 준비를 하며 잔소리를 할 것 같다. 변하지 않는 음식 맛에서 어린 시절의 맛을 떠올려 단박 그 느낌으로 돌아가듯 매미 울음소리도 시간을 이어주며 안도감을 들게 한다.

 

가만히 지켜본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부는 바람과, 그렇게 흘러가는 구름, 때로 주황색으로 밝아오는 새벽과 때로 푸른빛으로, 회색빛으로 밝아오는 새벽들, 북을 두드리듯 탄력 있게 들리는 낙숫물의 장단 소리, 가로등 아래 몰려드는 하루살이 떼처럼 작렬하는 한밤의 빗줄기, 도로 블록 사이에 자리 잡고 흔들리는 푸른 강아지풀과 바랑이 들, 오래된 마로니에 나무가 품은 알 수 없는 그늘, 어렴풋이 들려오는 산비둘기 소리, 꼬리를 치켜들고 문 앞을 지나가는 고양이와 그와 반대편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나이든 여자, 이런 풍경은 이곳뿐 아니라 저곳에도 있었던 풍경을, 그 속에 있었던 어린 나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을 되살려준다.

 

쏜살같던 시간이 천천히 유영하고 발걸음이 느려지다가 멈추면 윤색되지 않은 날것의 시간이 다가온다. 한여름의 땡볕 아래에서 이십 원을 꼭 쥐고 종이인형을 사러 문방구로 가던 예닐곱 살의 내가 저 아래의 길로 걸어간다. 아버지에게 무서운 꾸지람을 듣던 날, 울면서 걸어가던 그 길고 긴 횡단보도가 저기에 있다.

 

지금은 돌아가신 큰어머니가 가마솥에서 갓 쪄낸 달콤하고 짭조름한 감자 한 알이 내 손에 들려져 있다. 저 버스에는 죽은 외삼촌의 장지에 가느라 하얀 소복을 입고 내려서는 젊은 어머니가 있다. 그 옆에는 엄마와 영영 헤어질 것 같아 안간힘을 써서 붙들며 울고 있는 어린 내가 있고, 마당에서 태우는 옷가지의 연기가 그 위로 피어 오른다.

 

이런 일도 있었다. 엄마가 수술 받으러 가던 날, 아버지가 노란 셀로판지에 포장된 크래커와 보통 때 같으면 비싸서 사주지 않던 무선 비행기를 선물로 주었고 그 비행기가 마당을 빙글빙글 돌 때 아버지의 쓸쓸한 표정을 눈치 챘으면서 마냥 즐거운 척 하느라 웃었더랬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았지만, 기억은 시간의 지층 속에서 화석이 되거나 녹아 사라져버린 양 했지만, 때로 눈여겨보지 않았던 것, 어린 나의 걸음을 따라 왔던 햇볕이라든가, 매미 소리라든가, 구름의 모양 같은 것, 빗소리라든가, 녹음이라든가, 녹음이 풍기는 냄새 같은 것, 과자의 맛이라든가, 색종이의 무늬라든가, 리코더 소리라든가, 자지러지는 아이의 울음 소리라든가 고양이 소리 같은 것으로 그 벽은 간단없이 허물어져버리곤 했다.

 

그럴 때 나는 혼자 꾼 꿈을 되작이며 세상에 남한테 말을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아이로 돌아간다. 그건 놀라움이었고, 경탄하며 배워가는 사물의 이름과 함께 그런 놀라움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게 ‘슬픈 것’이라고 이름을 붙였을 때, 어린 시절은 그렇게 끝났는지 모른다.

 

‘추억을 회상한다고? 정말 그걸 할 거니?’ 

 

▲  나탈리 사로트의 자전적 산문 <어린 시절> 
 

<어린 시절>(권수경 옮김, 문학과 지성사)은 나탈리 사로트가 83세에 쓴 자전적 산문이다. 러시아에서 태어나 망명한 아버지를 따라 프랑스에 살게 된 그녀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언어화하는 실험적인 작품을 쓴다. 이 작품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럼 너 그걸 정말 할 거니? ‘어린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는 것’ 말이야…”

“-그래, 나로서는 어쩔 수 없어. 그러고 싶어, 왠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은 작가와 그의 분신이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그 둘은 의견이 대립하며 다른 관점을 제시하지만 그 때문에 이야기가 전개된다. 가물거리며, 복원할 수 없는 어린 시절을 미화하지 않으며 그 기억과 느낌을 되살려 내려 한다. 삶이 언어로 완전히 표현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삶에 한층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언어도 있는 법이다.

 

그녀는 부모의 이혼과 재혼, 그로 인해 변한 주변의 것들, 경멸과 찬탄으로 자신을 둘러싸던 말들, 그리고 그 속에서 익힌 거리를 두고 바라보았던 것들, 그리고 표현할 수 없는 진짜 슬픔, 혹은 자신의 밖에서 요동치는 진짜 세계의 느낌. 그런 것을 오롯이 그려내고자 했다. 언어. 무한한 세계 앞에서 자신의 손에 들린 유일한 도구, 그 유한하고 끊임없이 요동치는 것으로써. 아마 무한한 용기를 가지고.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것이 왔다… 이제 결코 다시 그런 식으로 되돌아오지 않을… 유일한 어떤 것이… 그토록 강렬한 느낌이었기에, 아직까지도, 그토록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도, 약해지고, 일부는 지워진 채 그것이 내게서 되살아날 때면, 나는 느낀다… 그러나 무엇을? 어떤 단어가 그것을 포착할 수 있을까? 그것의 전부를 표현하는 단어는 없다.

 

‘행복’이 제일 먼저 얼굴을 내민다. 아니다. 그건 아니다… ‘지복’과 ‘고양’은 너무 추하다. 거기에는 사용되지 않는 게 좋겠다… 그러면 ‘황홀’은 어떨까… 거기 있는 것이 이 단어 앞에서 움츠러들고 만다… ‘기쁨’, 그래, 아마도… 겸손하고 지극히 소박한 이 작은 단어는 큰 위험 없이 스쳐갈 수 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담을 수는 없다.

 

나를 가득 채우고 내 밖으로 넘쳐흘러 분홍빛 벽돌과 꽃이 만발한 과수 시렁, 잔디밭, 분홍색, 흰색의 꽃잎들 속으로, 감지될 듯 말 듯 한 떨림과 물결… 삶의 물결, 그저 삶… 다른 어떤 단어가 가능할까…? 순수 상태의 삶의 물결이 지나가는 진동하는 공기 중으로 퍼져나가고 사라지고 스며드는 것을 말이다…

 

그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위협도, 아무런 섞임도 없다. 그것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강한 강도에 별안간 도달한다… 이와 같은 강도는 결코 다시없을 것이다. 그 무엇으로도. 그것은 거기 있고, 나는 그 안에, 작은 분홍빛 담장과 과수 시렁의 꽃, 나무, 잔디밭, 진동하는 공기 안에 있다… 나는 그것들 안에 있을 뿐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들에 속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내게 속하지 않는 것 또한 아무것도 없다.” -<어린 시절>(64~65p)에서  ▣ 안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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