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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간 그녀들과 거침없이 웃으며 이야기하고 싶다
<모퉁이에서 책읽기> 마르얀 사트라피 “바느질 수다”
※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고 쓰는 사람, 안미선이 삶에 영감을 준 책에 관해 풀어내는 연재. 한국여성민우회 블로그 ‘민우트러블’에도 공동 게재됩니다. ▣ 일다 www.ildaro.com
추억의 사금파리 속 아른거리는, 젊은 그녀
생각보다 일찍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있다. 함께 할 젊은 날이 아직 많다고 여겨 안부도 제대로 묻지 않고, 같이 밥 먹지 않고, 초대한 적도 없는 이들이 갑자기 떠났을 때, 낙관하던 시간이 후회스러워지며 그 낙관의 근거 없음을 두렵게 깨닫기도 한다. 그들이 떠오를 때면 속으로 물어본다. 그때, 떠나 보내는 자리에서 실컷 울었더라면 잊을 수 있었을까. 큰소리로 울지 않아서 이렇게 오래오래 떠오르는 것일까. 그들과 있었던 아주 사소한 풍경들을 기억한다.
이를테면 뮤지컬 극작가였던 대학 후배와 마지막으로 통화했을 때, “혜화동에서 만나요.” 하고 웃던 목소리와 그러마 해놓고 미처 가지 못한 일이라든가, 그이가 내 하숙방에 왔을 때 아침상에서 미역국을 남겨 아까웠는지 냄비에 도로 부었다가 주인아줌마에게 잔소리를 듣던 무르춤해 하던 풍경이라든가, 써서 보여주던 시 한 편이라든가, 만나면 으레 쓰고 있는 작품 이야기부터 늘어놓던 달뜬 모습이라든가…. 그런 기억을, 나는 움켜쥔 치마 속에 있는 사금파리 조각처럼 그러안고 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사소한 일을 되새긴다.
그러면 서른을 갓 넘겨 죽어버린, 작가라는 이름을 얻자마자 떠난, ‘시키는 대로 일한 우리는 미친 바보들’이라는 글귀를 임종 전에 트위터에 남긴 그 쓰디쓴 시간도 위무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장례식장에서 “가버렸어! 가버렸어!” 하고 울던 그이 어머니의 모습도, 내 손에 뺨을 비비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던 그분의 묵묵한 오열도, 영정 속의 웃고 있는 사진도, 무력함도 모두 감침질하듯 눙칠 수 있을 것 같았다.
추억의 사금파리 속에서 영롱하게 아른거리는 그녀는 여전히 스무 살 적 모습이다. 가지를 뻗고 싱그러운 잎을 틔우는 나무처럼 당당하다. 나는 잠시 시간을 함께 보냈다는 인연만으로도 그 청춘을 여전히 지켜봐 주고 싶다.
작가가 되기를 꿈꾸었는데 작가가 되자마자 그녀는 떠났다. 신문기사에 짤막하게 나왔듯 창작자의 고된 현실을 질타하며 떠난 그녀가, 죽은 것인지 죽임을 당한 것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꿈을 꾸고 젊었기 때문에 변변한 대가 없이 노동 환경도 보장받지 못하고 ‘네가 원하는 예술 일을 하잖아’ 하고 안팎에서 마구 갈취 당했다고 뒤늦게 항변하고 싶다. 그녀의 꿈은 그런 대접을 받기에는 너무 소중한 것이었는데.
근래에 서점에서 그녀가 남긴 유고 작품집을 보고 한참 서 있었다. 드디어 작가가 된 것인지, 이제 작가가 되기를 그친 것인지, 그녀는 꿈을 이룬 것인지, 꿈을 꺾인 것인지 알 수 없다. 나는 반가웠고, 조금은 가슴이 아팠고, 아마 그녀도 숱한 밤을 새워, 어쩌면 목숨과 맞바꾸어 창작해낸 단 한 권의 작품집을 품에 안았다면 웃었을 것이고, 조금은 쓸쓸했을 것이다. 보고 있을까? ‘너는 그렇게 원하던, 작가가, 영원히 되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란 여성들의 은밀한 공감과 연대, 깔깔거림
▲ 마르잔 사트라피 글,그림 <바느질 수다> 중에서
<바느질 수다>(원제: Broderies, 휴머니스트, 2011)는 이란 여성들이 벌이는 한 판 수다를 그려낸 만화책이다. 이란 출신의 만화가 마르얀 사트라피는 국내에서 개봉한 적 있는 만화영화 <페르세폴리스>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거실에 모인 다양한 여성들은, 남자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그 오롯한 자리에서 거침없이 속 얘기를 한다. 남자들과의 섹스 때 벌어진 긴장된 이야기, 이혼을 해주지 않는 남편을 죽게 해달라고 날마다 기도했다는 이야기, 공산주의자와의 불유쾌한 연애, 유부남과의 사랑, 순결을 입증해야 한다는 문화적 압박 속에 몰래 행하는 수술과 술수, 거짓말과 풍자, 가부장적 사회에 적응해 살면서 생긴 은밀한 공감과 연대, 깔깔거림이 책에 담겨 있다.
그들의 깔깔거림은 남성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고, “쳇, 늙은 할망구들!” 하고 경멸로 지나치게 되는 것이지만, 그녀들은 거리낌 없이 털어놓은 이야기 속에서 하나가 된다. 그 속에는 살면서 숨겨야 하는 통찰력과 강인함, 유머, 지혜가 있다. 마르얀 사트라피는 그녀들의 짤막한 이야기를 흑백의 그림으로 인상 깊게 기록하고 그려놓았다.
<바느질 수다>는 또 한 명의 떠난 친구에게 내가 선물로 준 책이다. 아파서 휴직한다는 말을 듣고 동료로서 뭔가 주고 싶어서 두리번거리다 책상 위에 마침 있던 책을 건네주었다. 책을 받고 그녀는 활짝 웃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가 계단을 내려갔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고마워요, 다음에 더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요.’ 그녀가 보낸 문자가 핸드폰에 남아 있었다.
뜻밖에 하나씩 떠나간 친구들은 질문을 남기고 간다. 자신들은 정말 사라져버린 것인지? 이 세상은 너에게 살 만한 것인지? 세상은 여전한 모습인지? 엄밀히 말하면, 떠나고 싶어서 떠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젊은 나이에 세상을 등진 친구도, 꿈을 향해 질주하다 쓰러진 친구도, 가난에 힘겨웠던 친구도 마지막까지 삶을 바랐을 것이다. 청춘이었을 것이다.
나중에 나는 ‘더 건강한 모습으로’ 그들을 만나고 싶다. 이것이 그녀들이, 산산조각 난 채로 여전히 내 가슴에서 빛을 뿜으며 떠오르는 이유일 것이다.
그녀들을 만난다면 다시 이야기하고 싶다. 못다 한 이야기들, 겉치레의 인사 속에 묻혀 있던 속 얘기들, 때로 세상에서 다 풀 수 있는 자리가 없어서 마지막까지 푸듯이 속으로 뇌었을 이야기들, 진짜 속상했던 일은 무엇이었고, 자신이 사랑한 사람은 어떤 사람들이었고, 혼자만 아는 재미난 일은 어떤 일이었고, 꾹꾹 눌러쓴 비밀일기의 한 대목은 어떤 내용이고, 이 세상에 성이 차지 않아 짜증났던 건 무엇이고, 어떤 친구가 필요했고, 어떤 포옹을 꿈꾸었는지 신나게 거침없이 깔깔거리며 이야기하고 싶다.
얼마나 즐거워할까. 얼마나 눈빛을 반짝이며 활짝 웃을까. 둘러앉아 낮도 밤도 없이 이어지는 그런 수다가, 조각난 시간을 꿰매주고, 이것과 저것을 드르륵 박아주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사이를 맞추어주고, 끊어진 길과 길을 꼼꼼히 기워줄 수 있다면…. 우리는 함께 언제까지나 웃고 있을 것이다. ▣ 안미선
<여성주의 저널 일다> http://www.ildaro.com <영문 사이트> http://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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