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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며 경계를 섞고 넓혀가야 할, 우리의 삶
<모퉁이에서 책읽기> 우리 모두 조금 낯선 사람들 
 

 

 

※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고 쓰는 사람, 안미선이 삶에 영감을 준 책에 관해 풀어내는 “모퉁이에서 책읽기”. 한국여성민우회 블로그 민우트러블’에도 공동 게재됩니다.

 

우리 동네 길 모퉁이에는 작은 미용실이 하나 있다. 그 미용실에는 가위를 든 정란(가명) 씨가 종종 사람을 반겨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한국인인 그이는 파키스탄에서 온 이주노동자와 결혼해 아이를 하나 두었다. 그 아이는 우리 아이와 동갑내기다. 붙임성 좋은 정란 씨네 미용실에는 다양한 손님들이 북적인다. 그날도 나는 미용실 앞을 지나가다가 정란 씨가 소리쳐 인사하는 바람에 미용실에 들어갔다.

 

“와서 외국 음식 먹어봐, 아가씨들이 만들어왔어.”

 

긴 머리를 염색한 아가씨 둘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에는 큰 접시가 놓여 있었는데 마카로니와 삶은 돼지고기, 감자를 기름지게 볶은 요리가 있었다. 아가씨들은 수줍어하며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내가 전에 아가씨들한테 요리를 한번 해줬더니 아가씨들이 자기 나라 요리라면서 들고 온 거야. 굿! 그러니까 어디 나라에서 왔지?”

 

정란 씨는 영어를 한두 마디 섞은 말과 몸짓으로 대화를 한다. 스마트폰 통역기를 사용해 자신이 묻는 내용의 문장을 보여준다.

 

“사하 야크티아.”

 

아가씨가 하는 말을 듣고 그녀는 얼른 핸드폰으로 검색해보았다. 러시아와 시베리아 쪽에 있는 나라다. 빨간 사자가 그려진 국기도 보인다. 아가씨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들은 자기들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흰 눈이 쌓인 들판, 흰 말을 타고 두꺼운 외투를 입은 사냥꾼, 커다란 물고기를 끌어안은 어부, 푸른 하늘에 섬광 같은 햇빛이 번쩍이는 설원.

 

정란 씨가 한국어로 나에게 말한다.

 

“열여덟, 열아홉 된 친구들이에요. 한국에 왜 왔는지, 무슨 일 하는지 그런 거 묻지 않았어요. 게스트하우스에 만 오천 원, 이만 원씩 내고 살고요. 저번에 나한테 만 원 빌려달라고 왔더라고요. 만 원 가지고 우리나라에서 뭘 하겠어요. 그런데도……이 음식 남은 거 하나도 버리면 안 돼요. 아가씨들이 힘들게 번 돈으로 재료를 산 거니까.”

 

그새 전화가 왔다. 미용실 위치를 묻는 전화였다. 한번 단골이 된 이들은 다른 데 안 가고 멀리서도 찾아온단다. 그이들 중 많은 이들이 이주노동자다. 유럽에서 살다 와서 아직 한국살이에 서툰 여자분 하나가 소문을 듣고 미용실을 찾아오겠단다.

 

정란 씨의 미용실, 낯선 손님들의 무대 

 

▲ <우리 모두 조금 낯선 사람들>(이주여성인권포럼 지음, 오월의 봄) 
 

미용실은 정란 씨의 일터이자 집이었다. 텔레비전과 책꽂이가 있고 아이의 사진과 그림이 벽에 나란히 붙어 있었다.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이는 이곳에서 엄마가 손님들 머리를 만질 동안 숙제도 하고 밥도 먹는다. 손님들은 아이의 안부를 묻고 남편도 잘 지내는지 물었다. 그럼, 정란 씨는 큰 소리로 “어휴, 남자들 어거지 쓰면서 소리치고 하는 거 있잖아요, 속 썩어요. 애도 요즘 아빠 닮아 그러대!” 하면서 웃기도 한다.

 

테이블에는 속을 파먹은 수박껍질이 있었는데, 그건 바쁜 정란 씨의 점심이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일하는 게 노는 거죠. 뭐, 전 종일 놀아요!”

 

전화 건 손님을 마중하러 정란 씨가 자전거를 타고 나가고 나서, 남은 우리는 다 같이 어색하게 모여 앉아 있었다. ‘천천히 식사하는 게 풍습인’ 나라에서 온 아가씨들은 젓가락을 든 채 서로 속살대고, 구석에는 한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할머니가 그런다.

 

“난 요 앞 빌라에 살아요. 정란 씨 가게 봐주러 가끔 오지. 내가 일이 있을 때 정란 씨가 내 일 봐주고 정란 씨가 일이 있으면 내가 봐주고. 정란 씨 혼자 가게 하니까 잠깐 화장실 가려고 해도 못 비우잖아. 정란 씨는 딸 같아. 그래서 내가 마음으로 돕고 하는 거지 뭐.”

 

금새 돌아온 정란 씨는 할머니에게 고맙다고 뺨에 뽀뽀를 했다. 할머니가 웃으며 행복해한다. 그녀는 염색약을 개고 일을 시작했다. 새로 온 중년의 여성 손님은 아직 우리말이 서툴다.

 

“오랜만이야, 정란 씨. 나 너무 뚱뚱해졌지?” “어머, 언니! 예뻐요, 예뻐.”

 

정란 씨의 한마디에 그 손님의 얼굴이 밝아졌다. 외국과 한국의 화폐 차이와, 한국의 낯선 풍습에 대해 말을 늘어놓기 시작하면 정란 씨는 주저 없이 그 말에 추임새를 넣어준다. 손님의 목소리가 더 활기차고 빨라졌다.

 

정란 씨가 스타가 된 건 이런 이유에서다. 동네 어르신이 와서 집에 손톱깎이가 안 보인다고 하면, 정란 씨는 일하다 말고 서랍에서 손톱깎이를 찾아 드리고 깎고 가라고 한다. 누군가가 집을 비우는데 야쿠르트 아줌마한테 전달할 돈이 있다고 말하면 정란 씨는 얼른 그 돈을 맡아 전달해준다. 네일아트를 받고 싶다는 외국인 손님이 있으면 매장에 전화해서 가격을 한국말로 물어봐 준다. 그래서 동네사람들은 불쑥불쑥 들어와 말없이 무언가를 주고 간다. 김치나 생활용품 같은 것들을 건네준다. 일하느라 반찬 할 새가 없겠다면서 반찬도 해 갖고 온다.

 

정란 씨는 스스럼없이 그 방문을 맞아들이고, 그 자리에서 신 김치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맛있다고 큰소리로 인사한다. 정란 씨의 미용실은 작은 놀이터고, 이곳에서 낯선 손님들은 발언권을 골고루 가진다.

 

나를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친구가 있을까요?

 

정란 씨는 누구에게나 친절하다. 이국에서 온 말 통하지 않는 젊은 아가씨들도 자기 나라 음식을 싸와서 종일 죽치고 있고, 딸과 며느리도 잘 못 만난다는 할머니도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폐품을 주워 파는 할아버지도 기분 좋은 대접을 받았다고 자기 물건 중에 좋은 것을 골라 답례로 갖다 주고, 살이 쪄서, 원형탈모가 와서, 갑갑해서 머리를 하러 온 이주민들도 주부들도 맞장구 치며 이야기하러 온다.

 

아침부터 문을 여는 미용실은 밤 열 시가 넘도록 불이 켜져 있다. 정란 씨는 그야말로 바지런히 일한다. 그이 말마따나 이따금 남편이 벌컥벌컥 화를 내고 속을 뒤집어놓는 일이 있다 해도 그녀는 풀이 죽는 법이 없다. 작은 가게 안에서 즐거운 배우처럼 움직인다.

 

정란 씨의 걱실걱실한 호의가 결국 단골의 비위를 맞춰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라 해도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 가게 안에 들어서면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으니까. 웃음과 호의가 나를 대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게 하니까. 자신도 즐거워져서 이 가게에 뭔가 기꺼이 내놓고 싶은 기분이 드니까.

 

이곳은 서울의 한복판에 있지만 시골 장터 같은 분위기가 있고, 낯선 사람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쓸쓸함을 조금씩 털어버리게 된다. 그게 정란 씨가 부리는 마술이었다.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우울할 땐 어떡해요?”

 

“난 안 우울해요. 병원에 있거나 감옥에 있는 거 아닌데 왜 우울하겠어요? 병원에 있으면 몸이 아프니까 움직이고 싶어도 못 움직이고, 감옥에 있으면 자유가 없으니까 마음대로 다니지 못하겠지만…… 난 우울하면 그냥 자요. 하지만 내 두 발로 움직이고 나가면 되는데 가만히 있으면서 우울해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나 안 바빠요’ 말하지만, 정란 씨는 종일 가게에 붙박여 있다. 곁에서 보면, 머리를 염색하고 자르고 파마하고, 청소하고 전화 받고, 손님을 데리러 가고, 손님을 맞고, 아이 숙제를 봐주고, 틈틈이 대화도 해줘야 하고, 밥도 챙겨줘야 하고, 돌아오는 남편을 맞아야 하고 쉴 새 없이 바쁘다.

 

자기 얘기를 무람없이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기색을 잘 살피고, 일할 때를 놓치지 않고, 딴 사람 마음속의 욕구를 재빨리 알아채어야 하고, 남을 재밌게 기분 풀어줘야 하고, 다음에 올 수 있게 머리도 잘 잘라줘야 하고, 시시콜콜한 집안 이야기도 들어줘야 하고, 부탁 받은 이런저런 소소한 일도 다 처리해줘야 하니 바쁠 것이다.

 

그리고 일하는 틈틈이 어린 아이가 어떤 학교에 입학할지 정해야 하고, 말마따나 ‘끼가 있으니 공부만 시키면 되는’ 아이가, 곱슬머리에 쌍꺼풀이 굵은 눈을 한 아이가 우리말도 서툰데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하고, ‘물려줄 것은 없으니 공부를 잘해서 자기 앞가림은 이 나라에서 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하고, 아이가 공부하겠다고 할 때를 대비해 한 푼이라도 아껴서 돈을 벌어야 하고, 친한 한국인 엄마가 딱히 없어 아이 숙제든 뭐든 혼자 처리해나가야 하니 고된 때가 왜 없겠는가.

 

집을 떠나 외국에 온 아가씨들의 사연을 묻지 않듯 그녀는 자기 얘기를 잘 하지 않는다. 정란 씨는 내 머리칼을 조심스럽게 가위질하며 말한다.

 

“나는 가까운 사람은 없는 거 같아요. 우리 아이 말고는 공유되는 사람이 없어요. 잘 안 되더라고. 다른 엄마들하고 가까워지지도 않고 공유되지도 않고. 나를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친구는 없죠.”

 

정란 씨는 ‘공유’라는 말을 썼다. 그녀는 늘 일하고 다문화가정의 엄마이고, 남 눈치 보지 않고 거침없이 말하고 예절에 얽매이지 않는 편이다. 또 뭐가 다를까. 치맛단을 훨훨 올리고 속치마를 바로 잡듯, 평소에 누르고 살아야 하는 욕망을 우리 앞에 거리낌 없이 보여주고, 사랑 받는 느낌, 우리도 사랑하고 싶다는 느낌을 되살려준다. 머리 염색 중이라 뒤에 꼿꼿이 앉아 있던 손님이 얼른 한마디 거들었다.

 

“정란 씨, 자식만큼은 아니지만 우리도 늘 여기에 찾아오고 정란 씨와 공유되는 사람들이잖아.”

 

정란 씨가 웃었다. 맞다. 하지만 때로 공유되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가슴에 있어서 정란 씨는 더 큰소리로 사람들은 불러 모으고 사람들은 미용실에 모이는지도 모른다. 사하 야크티아에서 온 아가씨들은 서로 작게 키득거리면서 외국어를 주고받고, 이웃 할머니는 지켜보며 구석에 손을 모으고 말없이 앉아 있다. 나는 정란 씨의 활달한 목소리와 신중한 가위질 소리를 들으며 몸이 문득 풍선처럼 가볍게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근래에, 길목의 미용실 유리문 앞에 점포를 세놓는다는 종이쪽지가 붙여져 있는 것을 보고 텅 빈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그 지난 풍경이 내 눈앞에 한꺼번에 떠오른 것이다.

 

다른 언어로, 목소리로, 웃음으로 ‘공유’한 순간들 

 

▲  김현미, 누가 100퍼센트 한국인인가, <우리 모두 조금 낯선 사람들> 중에서 
 

<우리 모두 조금 낯선 사람들>(이주여성인권포럼 지음, 오월의 봄)은 우리 안에 있는 다양한 얼굴들을 마주하게 하고 말을 거는 책이다. 수업 시간에 태극기를 그리고 애국가를 부르며 단군의 한 자손이라고 교육받은 우리에게 ‘단일민족’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주민의 권리는 어떤 것인지, 그것이 우리의 권리와 어떻게 맞닿아 있으며, 우리는 서로 환대함으로써 어떻게 인간다움을 지킬 수 있는지 알려주는 책이다.

 

‘국민국가 정체성은 경계를 설정하고 범주를 구성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한국인이란 출생지, 혈연과 언어를 기준으로 결정된다. 우리 내부의 차이 없음은 사회적 갈등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고, 이 때문에 정치 지도자들은 의도적으로 단일민족주의의 신화를 강조했다.

 이런 원칙들은 이상적인 한국인의 기준에 부합되지 않는 사람들을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데 사용되었다. 한국의 부계혈족 단일민족주의는 한국인의 동질성을 지나치게 강조함으로써 우리 내부의 차이들에 대한 배제를 정당화하고 그 과정에서 폭력을 양산해왔다.

  이주자가 일방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영향을 받아 적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인 역시 다양한 국가 출신의 이주자들에게 영향을 받아 자신의 편협한 국민국가 정체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김현미, 누가 100퍼센트 한국인인가, <우리 모두 조금 낯선 사람들> 17-35p

 

이 책에는 오랫동안 우리 안의 타자로 존재해왔던 이들의 삶을 드러내고 그 목소리가 사회에 주는 다양한 울림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사라지는 기지촌의 혼혈인, 트랜스젠더 이주노동자, 귀환 이주노동자, 필리핀 이주여성들의 ‘home' 만들기, 소수자의 공론 장 사례, 이주여성의 모성과 양육권, 미등록 이주민 정책 등이 내용으로 담겨 있다. 한국이 환대하지 못했지만 이미 우리와 함께하고 있고 앞으로 더욱 서로 인정하고 관용을 가지며, 그리하여 우리와 그들 모두 서로 변화되고 경계를 섞고 넓혀야 할 삶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책을 읽으며 지금은 사라진 미용실을 떠올린다. 정란 씨의 큰 웃음소리와 벽에 붙어 있던 남편과 아이의 사진과, 고향의 음식을 수줍게 권하던 아가씨들과, 영어를 못해도 손짓, 발짓으로 다 통하던 말들과, 싹둑싹둑 잘리고 염색되던 머리칼처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던 시름, 서로 기적처럼 ‘공유’할 수 있었던 순간들을. 세상에서 아직 ‘공유’되지 않았기에, 더 ‘공유’할 수 없는 것들을 그리워하며 오롯이 각자의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그곳의 시간을.

 

삶이 잊히고 차별 받고 견뎌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삶과 연결되고 어떤 식으로든 소속감을 느끼고 공동체를 만들 수 있기를, 누구나 가슴 깊은 곳에서는 바란다. 그래서 현실보다, 책보다, 결심보다 더 빨리 우리 곁을 스치며 존재하는 아름다운 순간이 때때로 있는 것 같다.

 

골목 안 미용실은 어쩌면 그런 곳이었다. 모두 달랐던 우리는 그곳에서 한 번도 서 보지 못한 무대에 선 기분을 느꼈으니까. 세상 사람들이 쳐주는 박수가 없었기에 조금씩 그리운 우리는 서로 다른 언어로, 목소리로, 웃음으로 자기 자신이 되며 박수를 쳐주었다. 그렇게 소리 없이 ‘공유’한 반짝이는 순간들은 더 큰 ‘공유’를 꿈꾸며 하루하루 살아갈 힘이 되어주었을 게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안미선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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