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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에서는 아파도 안 되나요? 
<20대 여성 ‘일’을 논하다> 출판노동자로 5년째 
 

20대 여성들이 직접 쓰는 노동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경험을 토대로 ‘일’의 조건과 의미, 가치를 둘러싼 청년여성들의 노동 담론을 만들어가는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지원을 받습니다. <일다> www.ildaro.com 

 

‘밥 먹듯’ 야근을 하며 혹사시킨 나의 몸

 

나는 출판사에서 편집일을 하고 있는 ‘출판노동자’다. 2010년 4월부터 (지금 일하고 있는) 출판사에서 일하기 시작했으니, 일한 지 올해 만 4년이 넘었고 햇수로는 5년이 되었다. 20대 중후반을 편집일을 하며 보냈고, 생각하기로는 아마도 한동안 이 일을 계속하지 않을까 싶다. ‘생각하기로는’이라고 조건을 붙이는 이유는, 내 몸이 이 일을 계속하도록 버텨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스물아홉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언제부턴가 내 몸에는 크고 작은 이상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목 디스크, 허리 관절에 찾아온 연골퇴행, 척수공증, 고지혈, 잇몸에서 고름이 흐르는 누공, 자궁과 난소에 자리 잡은 여러 개의 혹, 악성으로 번지지 않아 다행이라던 자궁 내벽의 질병 흔적,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극심한 우울감…. 이 모든 게 내 몸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게 가끔은 놀랍기도 하다.

 

이런 몸으로도 꾸역꾸역 직장에 다니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아픈 몸을 이끌고 회사에 다니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멀리서 찾을 것 없이 내가 다니고 있는 일터만 하더라도, 나보다 건강해 보이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

 

“몸을 혹사시켜서라도 일을 하라”고 명시적으로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힘들게 일을 해야만 제대로 일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언제부턴가 내 몸에 각인이 된 듯하다. 초반에 (할 줄 아는 것도 없으면서 상처만 쉽게 받는) ‘어린’, ‘여자’라는 정체성이 동시에 덧씌워지면서, 더 이를 악물게 되었던 것도 있었다. 그렇게 내 몸 병드는 줄도 모르고, 내 곁의 동료들 병드는 줄도 모르고, ‘밥 먹듯’ 야근을 하고 휴일에도 나와 일하며 몇 년을 지냈다.

 

기다려 주지 않는 마감

 

5년차가 된 지금도 마감은 늘 힘들다. 농담 반 진담 반 “딱 죽고 싶다”. 그러니 1~2년차에 겪었던 마감의 고단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2011년 가을이었다. 마감을 하느라 며칠을 자는 둥 마는 둥했다. 아침 7시에 집에 들어가서 얕은 잠을 자고, 간단히 씻은 후 다시 오전에 나온 적도 있었다. 인쇄소에 데이터를 넘긴 다음날(금요일) 퇴근시간 무렵, 갑작스런 비보가 있었다. 같은 시리즈를 마감했던 선배와 보도자료(책 소개글)를 합본으로 작성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제작처 사정상 내가 편집했던 책만 시일까지 제작이 가능했고, 주말까지 나 혼자 보도자료 세 페이지를 작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제대로 된 컨디션으로 작성해도 이틀 만에 컨펌(승인)받기가 어려운 글인데, 며칠째 제대로 잠도 못잔 상태에서 그 글을 어떻게 써야 할지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간 마감을 일주일만 늦추면 안 되냐는 요청을 묵살했던 윗선도, 그 이야기를 나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전하는 선배도 너무나 야속했다. 너무 힘들어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속을 게워냈다. 그리고 보도자료는 집에 가서 써야겠다며 퇴근했다.

 

집에 들어가 깜빡이는 커서를 보며 늦도록 울었다. 며칠 밤을 샌 정신으로 책 내용을 요약하고 소개글을 쓴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결국 몇 줄 쓰지도 못한 채 기절하듯 잠이 들었는데, 다음날 일어나 보니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가 있었다. 전화벨이 울리는 줄도 모르고 잤던 것이다. 편집부 윗선들이었다. 전화를 못 받아 다들 걱정을 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도 찰나, 장문의 문자를 발견했다. 그 긴 문자에 어떻게 몸은 괜찮냐는 말 한마디 없었는지,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목구멍이 뜨거워진다. 내가 잠수를 탄 줄로 알았던 모양이다. 기가 막히게도 문자의 내용은 ‘성인이라면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고, 결론은 보도자료를 어서 써서 보내라는 것이었다.

 

떨리는 눈을 감고, 그냥 그대로 쉰 다음 월요일 아침에 보란 듯 사표를 던지고 나오는 장면을 상상해 보았다. 상상만으로도 잠시잠깐 날아오를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또 우울해졌다. 귓가에 “어린 여자애들은 책임감이 없다”는 말이 들리는 듯했다. 그날 밤 이를 악물고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결국 일요일 밤까지 밥도 책상머리에 앉아서 먹으며 다 써냈고, 갚지 못한 학자금 생각에 사표는 다시 고이 접어 두었다. 그렇게 수차례의 마감을 거쳐 5년차가 되었다.

 

근성과 열정을 증명해야 했던 시간들 

 

▲ 대부분 일터에서 ‘사람의 몸이 때로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프기도 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척하는 것 같다.  © 고온 
 

나는 내가 일하기 싫어 아프다고 엄살을 피울 정도로 무책임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렇다고,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대부분의 일터에서 ‘사람의 몸이 때로 견디기 힘들 정도로 아프기도 하다’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모르는 척하는 것 같다. 몸이 힘든 걸 참고서라도 열심히 일하는 걸 미화하고, 그렇지 않으면 마치 엄살을 피우고 있다는 듯이, 일에의 열정이 없다는 듯이, 근성이 없다는 듯이 생각하는 것 같다.

 

하루는 생리통이 심해 야근을 하지 않고 정시에 퇴근을 하려 했다. 허리가 아파서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다는 나에게 “벌써 퇴근하면 언제 마감을 하느냐”, “허리가 아프면 허리를 자르면 되겠네”라고 천연덕스럽게 농담을 던지던 한 ‘남자’선배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그는 그걸 채근 혹은 농담이라고 던졌을 것이다. 그 말에 더 이를 악물고 일했던 내가 몇 년 후 산부인과 치료를 받게 되리라고 그는 상상이나 했을까.

 

이렇다 할 스펙이나 경력도 없고, 뾰족하게 잘하는 것도 없는 ‘어린 여자’였던 나는 그저 참고 견디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견디지 못하고 회사를 그만둔 ‘어린 여자’들에 대해 뒷담화하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접했기에, 무의식적으로 오기를 품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습지만, 마치 나 자신이 어린 여자를 대표하는 것마냥, ‘여기서 살아남아서 근성과 본때를 보여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남은 건 출판계에서 쌓기 어렵다는 ‘5년차’라는 훈장(?)과 각종 질병들뿐이었다.

 

우리 몸은 소모품이 아니라는 깨달음

 

고된 노동 강도만큼이나(어쩌면 그보다 더) 내가 참기 힘든 건, 아픔에 대한 조직의 무감각과 무례였다. 그리고 아픈 것만으로도 힘든 사람에게 덧씌워지는 낙인 같은 것이 더 아팠다. 생리통이 있는데도 감춰야 하고, 아픈데도 웃으며 열심히 일을 해야 하고, 그게 마치 성숙한 존재이고 ‘프로’인 것처럼 통용되는 묘한 공기가 나를 더 숨막히게 했다.

 

아프다고 했을 때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그게 단 하루더라도 마음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공간을 만드는 것.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일터의 모습 중 하나다. 다행히 동료들과 함께 회사에 건의하고 논의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든 덕분에, 부족하지만 조금씩 실현해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생리휴가가 생겼고, 짧지만 유급 병가도 생겼다. 여전히 마감은 힘들지만, 휴가 때는 마음 편히 쉴 수 있으니 한편으로 든든하다.

 

그렇지만 제도의 문제 이전에, 나 스스로 몸이 아픈 동료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은연중에 ‘아파도 좀더 참아’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지는 않을지 종종 의식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나도 어느덧 이곳에서 ‘선배’라는 사람이 되었다.

 

처음 몸이 아팠을 때는 자책도 많이 했다. 그렇지만 후회해 봤자 돌이킬 수 없는 일이고, 이곳을 그만두었어도 비슷한 곳에 들어가지 않으란 법은 없었다. 차라리 어쩌면 일찍 아팠던 게 다행일 수도 있다. 내가 소모품처럼 다루어져 왔고, 스스로도 소모품처럼 일해 왔고, 그러다 보면 결국은 탈이 난다는 깨달음이 남들보다 빨리 왔으니 말이다.

 

요즘은 되도록 무리하지 않으려고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몸에 박힌 게 무리하던 습관이라 하루아침에 잘 바뀌진 않지만, 길게 내다보고 한평생 같이할 몸을 소중히 다루려고 애쓰는 중이다. 어디선가 이 악물고 있을 이름 모를 ‘어린 여자’들도 부디 그러했으면 좋겠다.

▣ 고온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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