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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일’을 논하다> 아웃사이더로 살아가기 
 

2014년 <일다>는 20대 여성들이 직접 쓰는 노동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경험을 토대로 ‘일’의 조건과 의미, 가치를 둘러싼 청년여성들의 노동 담론을 만들어가는데 함께할 필자를 찾습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지원을 받습니다. www.ildaro.com 

 

‘그렇게 아웃사이더로만 살 순 없지 않니?’

 

엄마에게 연락이 왔다. 청소년상담사 자격증이란 것이 있단다.
“그것을 따보는 게 어때? 계속 이렇게 아웃사이더로만 살 수는 없지 않니.”
“엄마 나 요즘 행복해.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면서 기분 좋게 살아. 돈은 못 모아도 밥은 안 굶고, 월세도 제때 내면서 살잖아.”
“하고 싶은 것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거, 그래 정말 중요하지. 하지만 자격증을 따 둬야 나중에 더 큰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지 않겠어?”
“…. 그래, 알았어. 알아볼게.” 
 


올해로 24살, 더 이상 어리다고만 할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또래들은 이제 거의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들거나,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아니면 아직 선택을 유예하는 중이다. 나는 방송대를 다니고 있다. 방송대는 한 학기에 40만원이면 다닐 수 있는데, 일반대학보다 무려 열 배는 싸다. 빚을 지지 않고서도 공부하고 돈을 벌어가면서 학비도 낼 수 있다.

 

나는 빚을 내서 가야 할 만큼 대학에 대한 열망이 있지 않았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는 삶을 살고 싶지도 않았다. 한때, 대학에 아예 가지 말아야지 생각도 했었다. 허나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원하는 것을 하고자 했을 때 걸려 넘어지는 문턱들이 있다는 사실을 맞닥뜨리다 보니, 방송대는 그 사이의 타협점이었다.

 

열일곱 즈음부터 용돈은 스스로 일을 해서 벌기 시작했다. 일을 한다는 것은 ‘독립’을 의미했다. 돈을 버는 것과 나 자신으로 서는 것, 그리고 다른 모든 간섭들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내 모든 인생의 초점은 거기에 맞춰져 있었다. 일찍이 학업에는 충실하지 않았고, 사회에서 정해놓은 순서를 밟아 성장하려 하기보다는 급하게 다른 길을 찾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책을 보는 것보다는 다른 일을 도모하는 데에 더 흥미를 느꼈다. 일찌감치 아웃사이더의 길을 택한 셈이다.

 

그러나 아웃사이더로 살아내기 위해서는 스트리트파이터 정신이 필요하다. 길에서 몸소 부딪혀 겪어내야 하는 것이니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첫 일자리

 

대학졸업장이고, 자격증이고, 뚜렷하게 드러나는 스펙 하나 없는 무지렁이가 일을 구한다고 했을 때, 최저시급의 아르바이트들만 반겨주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현실을 인정하고 나서, 이런저런 알바 사이트를 뒤지고 또 뒤지다 보면 해봄직한 일들도 많았다. 혹은 운이 좋게 지인들을 통해 돈만 버는 일보다 의미 있는 일자리를 얻을 수도 있었다.

 

지나온 노동의 과정을 돌이켜보니, 이제 어떤 선택들에 내가 만족을 하는지 알았다. 과거의 노동들과 현재를 대비시켜보면, 나 자신이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에 많이 다가온 느낌이 든다.

 

내 의지로 시작한 노동은 17살 파리바게트 아르바이트부터였다. 당시 그곳의 시급은 2,800원이었다. (2007년 법정 최저시급은 3,480원이었다.) 시골은 암암리에 최저시급이 지켜지지 않았다. 많은 업주들이 ‘너희들 아니어도 사람은 많다’는 식이었음에도, 그 사실에 부당함을 외치고 권리를 찾으려는 젊은이들도 없었다.

 

최저시급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데다가, 스스로 일해서 돈을 번다는 것 자체에 두근거려 하고 있었던 나는 바보온달처럼 우직하게 일했다. 3달마다 200원 정도 시급이 올라 1년이 지나서야 법정 최저시급을 받으면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다행히 점장님과 일하는 친구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여 길게 일했고, 가게에서 남은 빵을 여기저기 나누어먹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나의 첫 노동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마 노동이 전적으로 돈벌이가 아닌 ‘경험 쌓기’의 수단이었기 때문이리라.

 

돈이 절실했지만 관계는 더 절실했다

 

서울에 와서 자취를 시작하면서는 노동이 용돈벌이 정도가 아닌 생업의 수단으로서 필수적이 되었다. 한 달 생활비(월세, 식비, 교통비, 통신비 등)로 약 60만원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고 시급 6,500원의 고기집 서빙 일을 시작했다. 적어도 3개월은 하리라 맘먹었으나 1개월 만에 그만두고 말았다.

 

하루에 5시간. 10시부터 3시까지 열심히 일하고 저녁에는 내 시간을 가지자 생각했지만,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몸도 마음도 다 지쳐버려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6,500원의 짭짤한 시급을 버느라 겨울의 추운 날씨에도 땀을 흘려야 했다. 허나 그 땀이 열심히 일하는 나 자신을 위로해주지 못하고 무가치하게 느껴졌다. 함께하는 사람들과 아무런 대화도 나눌 수 없었다. 돈도 절실했다. 하지만 덜 벌더라도 같이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관계 맺는 기회가 내겐 더 절실했다. 


▲ 한 마을공동체 카페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곳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기회가 풍부했지만, 돈을 벌기는 어려웠다.  © 강가 
 

고기집 서빙을 그만두고, 한 마을공동체 카페에서 일을 시작했다. 정식 협동조합은 아니지만 협동조합을 지향하는 카페다. 알바 개념이 아니라 ‘카페 마스터’라 불리며 일하는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메뉴를 개발할 수도, 모임을 만들 수도 있다. 이곳에서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관계 맺을 수 있는 기회는 풍부했지만, 월 활동비가 40만원 정도에 불과했다.

 

사람이 궁하면 뭐라도 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작년부터 나는 마을공동체 카페 안에서 ‘강가상담소’를 꾸려오고 있다.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 생각해보았을 때, 답은 ‘상담’이었다. 사주팔자, 애니어그램, MBTI, 타로 원형 등 개인의 기질과 성향을 파악하고 이해하는 일에 관심이 많고,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상담가가 되는 것이 나의 궁극적 목표이다.

 

지금은 4년전 한 인문학공동체에서 사주명리학을 공부했던 것을 바탕으로, 사람들의 사주팔자를 풀이해주는 상담 일을 하고 있다. 사실 사람들이 사주팔자에 대해 미신이라느니,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느니, 막연히 어려운 공부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견의 벽을 허물어보고자 시작하게 된 일이다. 사람들은 확신이 필요하거나 불안할 때 점집을 찾는다. 역학을 공부하면서, 그런 확신이 남의 입에서 오는 것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주팔자를 일방적으로 풀이해주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 공부해보자는 방식으로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강가상담소’를 시작하고 이제 1년 정도 되어가는데, 상담이라는 것이 꼭 자격증이 부여되어야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주위에 불만, 슬픔, 걱정, 혹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눌 창구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어린 친구들을 만나는 일은 기쁘고 힘이 난다. 그들이 겪는 불안을 공감할 수 있고, 내가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는 것, 그들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해내는 것은 내게도 기대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가상담소’만으로는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

 

지금은 공동체 카페 일을 그만두고 장애인 활동보조를 하며 한 달에 30만원을 벌고, 강가상담소를 통해 한 달에 스무 명을 만나면 약 20만원을 번다. 거기에 요가를 가르치며 5만 원 정도를 번다. 내 안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노동력은 다 끄집어내어 현장화시키고 있다. 내가 할 줄 아는 것 중 돈 되는 것은 다 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열심히 살고 있고, 충분히 성공했어’  


▲ 사주팔자를 일방적으로 풀이해주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 공부해보자는 방식으로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강가 
 

딱 한 달 벌어 한 달을 쓰는 요즘, 가끔 내 미래가 불안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엄마의 자격증 독촉 전화를 받는 날에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미래가 불안한 이유를 살펴보면, 남들과 자꾸만 비교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기준으로 성공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성공했다고 인정하는 것을 나의 성공으로 연결시키기 때문에 불안한 것이다.

 

나중에 엄마의 말씀대로 더 큰 일을 하기 위해 자격증이 필요할 때가 온다면, 그 때는 노력할 생각이다. 하지만 오늘처럼 장애인 활동보조로 일하고 ‘강가상담소’에서 사주팔자 풀이를 해주고 나서, 마지막에 요가까지 마치고, 온 힘을 다 소진시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나는 열심히 살고 있고, 충분히 성공했어’ 라고 스스로에게 되새긴다.

 

돈이 풍족하진 못해도 충분히 넉넉한 삶이고, 크진 않아도 내가 실현시키고자 하는 일과 삶에 한 걸음 가까워지는 날이었다는 것이 만족스러워 입가에 웃음이 난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제 멋대로 사는 아웃사이더처럼 보일지라도, 난 참 행복하다. ▣ 강가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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