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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면서, 뮤지션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20대 여성 ‘일’을 논하다> 인디뮤지션의 고민
2014년 <일다>는 20대 여성들이 직접 쓰는 노동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경험을 토대로 ‘일’의 조건과 의미, 가치를 둘러싼 청년여성들의 노동 담론을 만들어가는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지원을 받습니다. www.ildaro.com
인디뮤지션, 음악 활동의 수입은 ‘제로’
▲ 나는 인디뮤지션이다. 그러나 살면서 이제껏 음악에 집중한 적이 별로 없다. © 차연지
나는 경상도에서 서울로 상경한, 20대 후반의 소위 말하는 인디뮤지션이다. 그러나 공연도 몇 번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나를 잘 알지 못하며, 앨범은 커녕 음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 그리고 그걸 해보자고 당장 열심히 무엇을 해보고 있지도 못하는 게으른 뮤지션이다.
이러한 게으름에 대해서 조금 변명을 해보려 한다. 나는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고자 마음 먹은 후부터, 아니 음악을 하기 위한 준비 과정부터 음악에 집중한 적이 별로 없다. 정확히 말해서 집중한 적이 별로 없다기보다, 집중할 수 없었다.
요즘 SNS에서 도는 말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서울에 태어나서 서울에 본가가 있는 것도 스펙이다.’ ‘서울에서 숨쉬려고 돈을 번다.’ 현실적으로 나에게 딱 와닿는 말이다.
서울에서 살기 위해 월세 35만원, 공과금 십여만원에, 세금과 인터넷 티비 요금, 휴대폰 요금만 해도 적어도 60-70만원은 있어야 생활할 수 있다. 겨울에는 가스비가 많이 나오니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여기에 교통비, 식비를 포함하면, 월 백만원을 벌어야 빠듯하게 살 수 있다. 살짝 더 벌 수 있다면 양말 한 켤레라도 새로 사 신을 수 있겠다.
그럼 과연 백 만원 남짓한 돈은 어찌 버느냐?
사람들은 뮤지션에 대해서 ‘배고파도 되는 직업’, ‘공연하면서 어느 정도 먹고 살 수 있겠지’ 라고 오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절대 그렇지 않다. 특히 인디뮤지션의 음악 수입은 제로에 가깝다. 대부분 돈을 벌기 위해 음악 외 일을 하고 있다. 주5일 회사에 다니기도 하고, 음악외 다른 전공을 살려 프리랜서를 하기도, 학원강사나 개인레슨을 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많이 알고 있는, 유명해진 뮤지션이 아닌 이상 아무리 노력해도 음악만으로 먹고 사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한국의 음원 가격과 수익 구조만 생각해봐도 이런 상황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인디뮤지션의 열악한 현실에 대해 예를 들어보자면, 이런 경우도 있었다. 어느 날 친구가 카페에서 일을 하다가 식사를 주문했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밴드 멤버가 배달을 와서 친해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배달을 온 사람은 이 바닥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사람이었는데, 배달 일도 여느 다른 아르바이트와 다르지 않지만 마음이 헛헛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불규칙적으로 긴 시간 일하는 임시직을 전전하며
나도 음악을 하기 위해서, 혹은 음악을 하면서 먹고 살기 위해서 다른 일을 해야 한다. 지금은 카페에서 일하고 있다. 전에는 은행서비스센터에서 일했다. 더 이전에는 강남 길 한복판에서 타로 마스터를 한 적도 있고, 그보다 전에는 텔레마케팅 보험설계사로 일했다.
그 외에도 단기로 인형을 팔고, IT계열회사 고객센터에서 일하고, 다들 한 번쯤 해보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서빙도 했었다. 한 번은 새로 나올 휴대폰 오류를 점검하는 일을 했는데, 하루종일 작은 기계가 버벅거리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내 인생이 버벅거리는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아 견디기 힘들어 보름만에 그만두었다.
운이 좋을 땐 주5일 평일 낮에 일할 수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했다. 불규칙적으로 긴 시간을 일주일에 고작 하루 쉬면서 일하는 직업을 많이 선택했는데, 그 이유는 물론 돈 때문이었다.
몇몇 뮤지션들은 어느 정도 시간을 투자해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고, 남은 시간을 쪼개어 음악활동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학 과정을 3학기만에 그만두고 중퇴한 나로서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운이 좋아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오래했고, 좋은 기회로 무료로 커피 직업교육을 받고서 좋은 조건의 일자리를 제안 받았다. 카페 일도 시간이 불규칙적이고 체력 소모가 많이 되는 일이라서,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는데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도 금전적인 여유가 생기면 심적인 안정을 가질 수 있었는데, 그러자 비로소 음악을 시작할 수 있었다. 기타를 살 수 있었고, 음악학원을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다닐 수 있었다. 곡을 쓸 여유가 생겼고, 조금 덜 우울해졌다.
안타깝지만 실은 그도 잠시뿐이었다. 나는 외과 수술이 필요한 병이 생겼고, 수술을 하고 난 후 체력이 급속도로 약해졌다. 한동안 카페 일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이곳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다시는 카페에서 일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불안하고 초조한 시기를 보냈다.
수술을 하고 나서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음악을 놓지 않으리라 다짐했다는 것과 나름 내 음악 인생에서 많은 것을 시도했다는 것이다. 곡을 썼고 공연을 했다. 다른 뮤지션들을 만나고, 예전에 했던 악기를 살려 밴드 세션도 했다.
‘음악하면서, 먹고살 걱정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 많은 20대들이 나처럼 음악을 하지 않더라도 나와 비슷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 차연지
이런 내 이야기를 풀기 전에 나에게 가장 먼저 질문한 것이 있다. ‘나에게 일이란 무엇인가?’ 나에게 일이란 돈을 벌기 위한 노동이다. 생존을 위한 것, 고된 것, 힘든 것, 하지 않아도 된다면 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음악을 하면서 먹고 살 걱정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많은 돈이 아니더라도 기초적인 생활만 된다면 음악에만 집중할텐데’ 생각한다. 뮤지션 지인들도 매번 같은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때마다 마음이 물먹은 듯 먹먹해진다.
나는 다시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고, 음악적인 활동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곡을 쓰고 싶고, 연습하고 싶고, 활동하고 싶지만, 아직 마음의 여유가 없다. 작년 하반기부터 카페 오픈을 도왔는데 지금은 매장이 자리 잡는 중이라 시간적인 여유도 가지지 못했다. 이제서야 조금씩 안정을 찾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도 몸이 아파서,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스트레스가 심해서, 혹은 음악에 집중할 수 없어서 일을 중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알고 있다. 내가 음악을 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일을 해야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부디 내가 고된 노동을, 피하고 싶어하는 노동에서 오는 어려움을 잘 견딜 수 있기를 빈다. 그러면서 내가 지속적으로 음악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많은 20대들이 나처럼 음악을 하지 않더라도 나와 비슷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먹고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일을 선택하고 있다고. 세상과 어느 정도 타협하면서 살고 있다고. 그리고 그것이 잘못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사회가 일을 하면서 자아실현이 가능한 곳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 자아실현의 기회는 쉬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꼭 자아실현을 해내야 하나? 그냥저냥 평안하고 행복하게만 살면 좀 안되나?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한다면, 매일 야근하지 않는 일, 조금 더 느긋한 일, 좀 더 느린 일을 하면서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내고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것이 다른 직업이든, 취미든, 연애든, 여행이든 그 누군가도 그 무언가도 아닌, 자신을 위한 것, 자신을 위해서. 결국 나에게 일이란,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한 수단일뿐이다.
나는 일하면서 뮤지션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한다면, 나 자신을 잃지 않고, 잊지 않고, 나를 위해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 ▣ 차연지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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