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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여성 ‘일’을 논하다> ‘삶보다 일이 우선’으로 살지 않을 거야 
 

20대 여성들이 직접 쓰는 노동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경험을 토대로 ‘일’의 조건과 의미, 가치를 둘러싼 청년여성들의 노동 담론을 만들어가는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지원을 받습니다. <일다> www.ildaro.com

 

내가 '구직과 취업의 요정'이라 불리는 이유

 

친구들 사이에 내 별명은 ‘구직과 취업의 요정’으로 통한다. 대기업 생산직에서 동물병원 간호사, 삽화 회사의 사무직 겸 일러스트레이터. 협동조합의 사무직, 그리고 학습지 삽화 회사의 일러스트레이터까지. 다양한 일을 잘 찾아서 하기 때문이다. 여러 직종의 일을 해오다 보니, 어쩌다 내가 해온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굉장히 신기해한다.

 

내가 다양한 노동들을 경험해보고자 굳이 이러한 직업을 선택하게 된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필요에 의한 선택이었을 뿐.

 

나는 대학 졸업장도 없고, 내놓을만한 전문적인 스펙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그때그때 내가 할 수 있을 만한 일들을 최대한 찾되 일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호기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시도하는데 스스럼이 없는 부분도 여러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인 것 같다.

 

물론, 내가 다닌 모든 직장이 좋은 곳이라고 할 순 없다. 하지만 해보지 않았을 때는 좋은지, 내게 맞지 않는지조차 알 수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일을 해본 경험은 나에게 ‘어떠한 일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과, 노동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었다. 그것이 좋은 경험이었든 나쁜 경험이었든, 나는 내 경험들을 나름대로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러한 나의 다양한 노동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으레 돌아오는 말들이 있다. ‘왜 그 직장을 그만두고 이 일을 하느냐’, 혹은 ‘이제 나이도 점점 들어가는데 너무 정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것이 아니냐’ 식의 말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조금씩 불안해지기도 한다.

 

대부분은 사람들은 한 직장을 오래 다니며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데, 또 그게 맞는 거라고 하는데, 나이를 점점 먹어가는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어떤 직종들은 나이가 취업의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하는데….

 

그렇게 고민을 하다 보면 결국엔 항상 떠오르는 질문이 있다. ‘그게 어떠한 일이든, 그저 참고 오래도록 일하는 게 정말 맞는 걸까?’

 

3교대, 야근, 특근에 편법 난무했던 대기업 생산직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시작해 4년 반 동안 대기업 생산직에서 일했을 때, 수당을 챙겨주긴 했지만 일주일 단위로 바뀌는 3교대 근무에, 야근, 주말 특근 등 바쁠 때는 한 달에 하루도 채 쉬지 못할 정도로 막대한 업무량이 주어졌다.

 

한번은 지나치게 많은 잔업으로 노동부에서 감사가 내려와, 잔업을 두 시간 이내로 줄이라는 상부의 명령이 떨어졌다. 그것은 말뿐인 명령으로, 일은 일대로 하고 두 시간 이후로는 잔업수당을 쓸 수 없는 불합리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어디 그뿐인가? 여직원들은 결혼하거나 애를 가지면 금방 그만둔다는 식의 이유로 일정 직급 이상 승진이 되지 않는 ‘유리천정’이 당연하게 존재했다. 일 년에 한번 열리는 회사 축제의 미인대회에서 입상한 ‘예쁜 여직원’은 사무직으로 이동이 되기도 했다.

 

당시 사회초년생이었던 나는, 거기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한 상황들이 뭐가 옳은지 그른지도 모른 채 그저 시키는 대로 일만 했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이 그랬다. 주변에는 ‘그게 원래 그렇다, 어쩔 수 없는 거다’ 라고 말하는 어른들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대기업’이니까 그저 맞고, 내가 돈을 모아 상경할 수 있게 되었으니 좋은 회사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내 머릿속이 바뀌게 된 것은, 회사를 그만두고 급여는 더 적었지만 사람에 대한 취급은 훨씬 좋았던 동물병원에서 일을 시작하고 난 이후였다. 다른 종류의 일을 해보고 나서야, 그간 내가 했던 일이 힘든 일이었고, 기계처럼 혹사당했으며, 성차별을 비롯해 여러 종류의 차별이 있었다는 인식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80만원 ‘사무직 알바’의 늘어나는 일감
 

▲  삽화 회사 알바는 최악의 일자리였다.   © 박은아 
 

그러다 작은 접촉사고를 겪은 이후 급격히 몸이 나빠져 2년 만에 동물병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한동안 쉰 나는 또다시 다른 직업을 찾아보았다. 취미로 쭉 그려오던 그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이리저리 찾아본 끝에 아르바이트 형태로 일하게 된 삽화 회사는 지금껏 해왔던 일 중 단연 최악으로 꼽을 수 있을만한 직장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월 80만원을 받으며 처음엔 사무직 업무만 했지만, 조금씩 맡겨본 스케치가 괜찮았는지 점점 그림 일감이 넘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림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기뻐서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여전히 사무직 아르바이트인데 내 본 업무마저 못할 정도로 그림 일은 점점 늘어나고, 수당도 나오지 않는 야근까지 하는 상황이 되자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많은 고민 끝에 사장님께 월급을 올려달라고 요청을 했더니, 돌아온 대답은 ‘사무직 알바에게는 다른 데선 이보다 적게 준다’는 말이었다. 나는 계속 그림 일감이 넘어오길래 작업자로 아예 내 위치를 바꿔주거나, 이 회사의 ‘직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조금 했었다. 그러나 사장님에게 나는 조금 쓸모 있는 사무직 알바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국 10만원을 올려 받게 되었지만, 내 근무 시간을 계산해보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었다. 그림을 잘 그리게 되면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싶어 억울함을 참고 1년을 일했다. 그러나 여전히 나의 위치는 ‘사무직 알바’에 월급은 그림 일을 많이 했을 때나 겨우 100만원이 되었다.

 

그때만 해도 회사에 대한 애정이 있었고, 말하면 바뀔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사장님께 이런저런 요구를 했다. 내가 하는 두 가지 업무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면 ‘사무직도, 그림 일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너에게 무엇을 기준으로 돈을 더 줘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4대 보험에 가입시켜달라고 하니 ‘세무사를 바꾸면 들어주겠다’는 둥 ‘지금은 바쁘다’는 둥 흐지부지한 말만이 돌아왔다.

 

함께 다니는 직원들에게도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아무도 감히 사장님에게 말하지 못했다. 구하기 힘든 게 그림 일이고, 사장님은 늘 한 사람의 역할을 채 못하는 이 직원들을 자신이 적자를 감수하며 일을 나눠주어 ‘먹여 살리고 있다’는 식으로, 직원들의 자존감을 깎아놓았기 때문이다.

 

공정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일터는 없는 걸까?

 

사실 그렇게 불만을 가지며 회사를 다니고 있었지만, 다니는 동안 얻은 것은 분명히 있었다. 내가 그림을 그려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 것과, 협동조합 공부가 그것이다.

 

그 회사를 다니는 동안, 사장님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할 때 나는 어떤 의문이 생겼다. 모든 사람이 사장의 위치에 가게 되면 저렇게 되는 걸까? 모두가 공평하고 정당하게 대가를 받을 수 있는 회사란 없는 걸까? 없다면 내가 만들면 되지 않을까?

 

그런 의문이 계속될 즈음, 좋은 분의 소개를 통해 협동조합에 대한 교육을 받게 되었다. 강의를 통해 내가 원하는 회사의 꿈을 이룬 것은 아니지만, 협동조합이라는 개념을 알게 된 것, 그리고 교육 과정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교류는 내가 ‘노동’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게 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겪고 느낀 부당함이 왜 생기게 되었는지.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 사상이 숨 쉬는 공기처럼 빼곡히 들어차있는 사회에서 생산성과 경쟁 위주 사업 형태만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만드는 회사가 사람을 도구화시키기 얼마나 쉬운지. 거기에서 나는 어떤 행동을 취하면 좋을지.

 

회사를 바꿔보고 싶어 직원들에게 무수히 이야기해보고, 사장님에게 많은 주장을 해봤었다. 그러나 바뀌는 것은 없었고, 참으며 회사에서 버티던 내 모습이 바보 같아졌다. 나는 곧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더 이상 참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당한 대우를 참고, 힘든 것을 참고, 아픈 것을 참는 것이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을 참지 못하고 표현한다고 해서 큰일이 나지도 않는다.

 

회사 창립 이후 첫 ‘계약서’를 작성하다

 

최근 반년 정도 다른 그림회사에 다녔다. 월급도 좋고 내 능력을 높이 사주는 회사였다. 하지만 직원을 도구 취급하고 엄청난 양의 일을 시키며, 두 자리 수의 직원이 있음에도 계약서 한 장 작성하지 않는 곳이었다. 입사할 때부터 계약서를 써달라는 조건을 걸고 들어갔지만 지켜지지 않았고, 정직원 전환도 기존의 말과 달라져 바쁘다는 이유로 계속 흐지부지 되었다. 그래서 여차하면 그만둘 각오를 하고, 한번 참지 않아 보았다.

 

계약서를 작성할 것과 정직원으로 계약할 것 등의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하고, 허리가 좋지 않아 몸 관리를 위해 필요할 때 정시 퇴근을 한 것이다. (사실, 참고 말고 할 것이 아니라 지켜지는 게 당연한 권리이지만, 이곳에선 그것조차 용기가 필요했다.)

 

나 한 사람의 요구 때문에 바뀌었다고 할 순 없겠지만, 내 행동이 영향을 줬을 거라고 생각한다. 결국 입사 후 네 달만에, 회사가 만들어진 이후 처음으로 계약서라는 것이 생기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는 사과도 받았다. 간혹 직원들에게 말을 함부로 하던 회사 대표님들은 내 앞에선 그런 말을 절대 하지 않았다. 회사는 여전히 힘들고 빡빡한 곳이었지만, 약간의 변화는 생긴 것이다.

 

지금은 그 회사를 다니지 않지만, 다른 직원들도 참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불만을 표현해보라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했지만, 통하진 않았다. 강요할 순 없는 문제다.

 

여가 생활도 갖지 못하고 회사에 매달려 능력을 바치고 건강을 빼앗기는 것은 희생이라고 생각한다. 왜 그런 희생이 미덕처럼 포장되는 걸까. 묵묵히 일만 하는 것에는 어떠한 장점이 있을까? 참지 않았을 때 생기는 단점은 무엇일까? 내가 아직 사회를 몰라서 이상적인 말을 하는 것일까?

 

미리부터 재단하고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

 

나는 앞으로도 어떤 일을 하게 되건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불만을 터트릴 것이고, 그래도 변하지 않으면 그 직장을 그만둘 것 같다. 내가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말도 안 되는 어거지를 쓰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러나 이러한 나의 행동이 언젠가는 어떠한 불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나를 불안하고 우울하게 만든다.

 

그래도 ‘삶보다 노동이 먼저’가 되는 상황을 다시 만들고 싶진 않다. 모든 회사가 극단적으로 나쁜 것도 아니고, 일은 조금만 찾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분야에서 의외의 재능이나 흥미를 찾게 되는 경우도 있고, 그것이 또 다른 일의 가능성을 만들어주기도 하니까. 이런 일 저런 일 좀 하면 어떤가, 떠돌아 다니면 좀 어떤가. 미리부터 절망할 필요는 없다.

 

뭐가 맞고 틀린 것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지금은 세상을 넓게 보려고 애쓰며 맞게 가고 있다고 나 자신에게 우겨보고 있다. 좋은 노동을 해보고 싶다. 사람을 사람답게 대해주는 삶을 위한 노동. 그런 공간을 찾지 못하거나 그렇게 바꾸지 못하면 내가 만들어서라도.

 

내가 하는 말들, 내가 하는 생각들은 그저 사회에 불만이 많은 덜 자란 사람의 투정인 걸까. 모르겠다. ▣ 박은아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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