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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에서 책읽기> 아가야, 너는 태어나고 싶니?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고 쓰는 사람, 안미선이 삶에 영감을 준 책에 관해 풀어내는 “모퉁이에서 책읽기”. 이 칼럼은 한국여성민우회 블로그 ‘민우트러블’에도 공동 게재됩니다. www.ildaro.com 

 

너를 낳을까, 말까?

 

이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젯밤 나는 네가 존재한다는 걸 알았다. 생명의 한 방울이 무(無)로부터 나온 것이다. 나는 어둠 속에 두 눈을 크게 뜨고 누워 있었고, 갑자기 네가 거기에 자리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오리아나 팔라지, 태어나지 않은 아기에게 보내는 편지

 

▲  이탈리아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오리아나 팔라치 (Oriana Fallaci) 
 

이탈리아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종군 기자인 오리아나 팔라치(Oriana Fallaci, 1929-2006, 이란의 호메이니, 중국의 덩샤오핑, 미국의 키신저 등의 인물을 인터뷰한 것으로 유명하다.)는 실제로 자신이 경험한 임신을 주제로 이 책을 썼다. 책은 1975년 이탈리아에서 출간되었다. (우리나라에는 1993년에 베틀출판사에서 나왔다.) 당시 이탈리아는 임신중절이 합법화되지 않았다. 1977년에야 이탈리아는 임신중절법안을 가결시켰다. 이 책은 뱃속에 있는 태아와 나누는 긴 대화이다.

 

팔라치는 묻는다. ‘너는 과연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 생명인가? 그리고 이 세상은 네가 나와 살아도 될 의미 있는 곳인가? 나는 너를 죽이고 싶은데 살리고 싶기도 하다. 이제 나는 너를 어떻게 하면 좋은가?’

 

팔라치는 자신의 인생을 되짚으며 이 세상에 대한 이야기들을 태아에게 들려준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파시스트에 맞선 경험이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독재에 찬성하며,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을 오히려 학살하는지 익숙히 보아왔다. 이 세상엔 폭력이 지배하고, 사랑을 갈구하는 마음처럼 정의를 위한 싸움도 끝이 없으며 영원한 굶주림이 함께 있다는 것을 미리 태아에게 이른다.

 

그리고 어느 날은 문득 말한다. ‘너를 없애야겠다. 너와 나는 별개의 것이니 나의 삶을 너는 방해할 권리가 없다’고. 다음날 팔라치는 아이를 위한 요람을 사고 아이가 생존하기를 바란다. 아이의 아빠가 될 이는 결혼도 하지 않고 불안정한 현실 속에서 그녀가 아이를 낳으려 한다고 비난하고 발뺌한다. 팔라치는 분노하고 그를 욕하며 이번에는 혼자서라도 이 세상과 맞서 아이를 지키겠다고 외친다.

 

오리아나 팔라치의 산부인과 경험

 

오리아나 팔라치도 산부인과에서 불쾌한 일을 겪었다.

 

<엄숙함과 명랑함 사이의 넘실대는 톤으로 종이보를 들치며, “축하합니다, 부인.” 의사는 말했다. 동시에 난 그의 말을 고쳐주었다 “미스예요.”

 

그것은 마치 그에게 따귀를 친 것 같았다. 엄숙과 명랑은 사라지고 계산된 무관심으로 나를 응시하며 그는 ‘아―’ 하고 대꾸했다. 그리고선 펜을 들어 ‘미세스’를 지우고 ‘미스’로 썼다.

 

차고 하얀 방에서 하얀 옷을 차갑게 입은 남자의 목소리를 통해, 과학은 네가 존재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 훨씬 이전에 이미 알았기에 그것은 특별한 감명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나의 결혼 상황이 강조되어지고 종이에 정정을 해야만 한다는 것에 적이 놀랐다. 그것은 경고 그리고 미래에 대한 복잡성을 암시했다.

 

그때 과학이 내게 옷을 벗고 테이블 위에 누우라고 말한 것조차 마음내키는 것은 아니었다. 의사나 간호사도 마치 내가 불쾌한 듯이 다루었다. 나를 얼굴 정면으로도 보지 않는 채, 한편 저희끼리 의미 있는 눈짓을 보냈다. 내가 테이블 위에 있을 때 간호사는 내가 다리를 벌리지도, 두 개의 금속걸이에 올려놓지도 않는다고 화를 내었다.

 

신경질을 내며 ‘여기요, 여기!’ 나는 바보 같았고 막연히 불쾌하기까지 했다.

 

그녀가 타올로 나의 벗을 몸을 덮어주었을 때는 고맙기까지 했다. 그러나 더 불쾌했던 것은 의사가 고무장갑을 끼고 화를 내며 손가락을 내 속에 넣었을 때였다. 손가락을 누르며, 들여다보며 또 눌렀다. 그것이 아픈 것 때문이 아니라 내가 결혼을 안 했다는 이유로 너를 찌그러뜨릴까 나는 겁이 났다. (중략) 그는 나에게 범죄행동은 생각지도 말라고 했다.

 

“범죄요?” 놀라서 되물었다. “법이 금지하고 있어요. 기억하시오!” (중략)

 

두렵기는 하지만 우리는 그런 것에 이제 익숙해져야만 할 거다. 네가 들어오려는 이 세상에는 시대가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가진 결혼 안 한 여자는 흔히 무책임한 것으로 간주된단다. 기껏 잘 봐줘야 괴짜거나 사고덩어리로, 아니면 여걸로나, 결코 남들 같은 엄마로선 받아주질 않겠지.>

 

의사는 팔라치에게 몸이 약하니 일을 하지 말라고 경고했고, 팔라치는 한 인간으로서 자신의 일을 멈출 수 없다고 선언하고 달리는 차를 타고 현장을 취재한다. 태아가 죽었을 때 팔라치는 기진한 채 누워 꿈을 꾼다. 그리고 꿈속에서 자신을 보고 ‘살인자!’라고 매도하는 의사와 법조인들 틈에서 자신을 변호해보려고 한다. 아이가 죽을 줄 알면서도 자신의 일을 멈추지 않은 여자라고 비난받는다. 그녀는 꿈에서 자신을 비난하거나 두둔하는 그 모든 목소리가 자신의 안에 함께 있는 목소리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마지막에 그녀는 자신을 긍정한다. ‘생명은 너나 나를 원하지 않아. 너는 죽었어. 아마, 나도 죽어가고 있겠지. 그러나 아무 상관은 없다. 생명은 결코 사라지지 않으니까.’

 

이 편지는 결국 태어나지 못한 태아에게 쓴 것이면서, 죽어가는 생명인 팔라치가 모든 반복되는 죽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이어짐과 진보를 긍정하는 편지이다.

 

세상에 대한 연서- ‘삶은 이어진다’

 

<너는 남자일까, 여자일까?

 

네가 만약 남자로 태어난다면 나는 내가 항상 그려오던 그런 남자이기를 바란다. 약한 자에게는 친절하고 오만한 자에게 사납고, 너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관대하고, 네게 명령하는 자에게 무자비하기를, 그리고 예수가 거룩한 아버지와 성령의 아들이지, 절대 여자의 아들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의 적이기를.

 

나는 네가 여자였으면 좋겠다. 나는 네가 어느 날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일을 겪었으면 좋겠다. 나는 여자로 태어나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내 엄마와는 전혀 생각이 다르다. (중략) 싸운다는 건 이긴다는 것보다 훨씬 아름다운 것, 한번 이기거나 도착한 다음 느껴지는 건 공허일 뿐, 그 공허를 극복하려고 다시 여행을 시작하고 새 목적지를 정해야 하니까.>

 

이 책은 이 세상의 지속에 대해, 아름다운 꿈을 계속 꾸어도 되는지에 대해, 부정의와 폭력의 무한함 앞에서 한 인간으로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그녀가 나름대로 쓴 연서(戀書)다. 그녀는 말한다. ‘인간의 삶은 불의와 싸우는 것, 목숨을 기꺼이 버리면서까지 그에 맞서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 너도 태어난다면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태아는 태어나지 못했지만 삶은 이어진다는 그녀의 믿음은 살아남아 지금 이곳에서 글로 읽힌다. 그녀는 ‘세상이 변하고 있지만 사실은 아무런 변화가 없이 여전히 똑같을 뿐이고, 태어난다는 것은 가치 없을지 모른다’는 처음의 의심을, 태아에게 들려주던 비관적인 생각을, 태아가 죽은 후에 강하게 부정하고 꿈꾸기를 더욱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그녀가 들려주는 성장담, 세상에 대한 무서울 정도의 낙관은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 사는 여성들, 누군가의 아픔과, 같은 고민을 곧추세우고 죄의식 없이 성장할 수 있는 씩씩한 격려가 될 것이다. ▣ 안미선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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