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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 물 같고 풀 같은 데모를 하십니다”
<모퉁이에서 책읽기> 공선옥 “꽃 같은 시절”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고 쓰는 사람, 안미선이 삶에 영감을 준 책에 관해 풀어내는 “모퉁이에서 책읽기”. 이 칼럼은 한국여성민우회 블로그 ‘민우트러블’에도 공동 게재됩니다. www.ildaro.com
‘우리는 단 한 번도 송전탑을 허락한 적이 없다’
밀양에 갔을 때, 함께 간 친구 고즈가 이 책이 자꾸 떠오른다는 이야기를 했다.
송전탑 공사가 막 시작되는 현장에서, ‘할매’들은 공사를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경찰들이 수십 명씩 마을 길목으로 올라왔고 할매들은 그 앞을 팔을 벌리고 가로막았다. 경찰들 뒤에는 한전 직원들이 있었다. 공사를 강행하느라 헬기가 굉음을 내며 날아다니고 산꼭대기에는 불빛이 휘황했다.
“못 간다, 이놈들, 여기 너네 다니라고 우리가 만든 길 아니다, 썩 내려가라!”
호통에도 경찰은 꿈쩍 않고, 막고 선 이들을 되레 빙 둘러싸 꼼짝달싹 못하게 했다. 발버둥을 치는 사이에 한전 직원이 경찰의 호위를 받고 도둑질하듯 후다닥 산으로 올라갔다.
“나쁜 놈들! 분하고 원통하다!”
한겨울 추위에 새벽잠을 설치며 할매들은 마을 어귀에 모였고 번번이 실랑이를 해야 했다. 경찰에서 채증을 해대는 바람에 얼굴을 가리고 눈만 내놓고 모자를 쓴 할매들은 우리보고도 그렇게 하라고 했다.
© 밀양 765kV송전탑 반대 대책위
고향 산천이 눈앞에서 망가뜨려지고 송전탑이 척척 올라가는데, 날마다 절규하고 삿대질을 하며 막지만 비웃듯 복장을 떠밀며 가뿐히 올라가는 경찰의 뒷모습을 늘 뒤에서 지켜보아야 했다. 경찰에게는 반복되는 일상이겠지만 토박이들에게 그것은 매번 가슴을 저미는 아픔이었다. 지금 막아야 하는데, 저 무서운 것이 행여 정말 완성되어버리기라도 한다면… 공사가 진행되는 산꼭대기를 올려다볼 때마다 두려움과 절박함이 울컥 올라왔다.
조용한 산속이었다. 짓밟혀도 고요했다. 이 산 밖에서 사람들은 우리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다시 찾아올는지. 언제까지 싸워야 하는지. 이렇게 싸우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 건지. 아무 것도 모르고 청명한 밤공기가, 여전히 땅에 뿌리박고 자라는 작물이, 우짖는 새소리가 더 위태롭고 서러웠다. 평생이 눈앞에서 허물어져갔다.
땅을 일구고 노동한 세월을 걸고 싸웠다
[할머니들 물 같고 풀 같은 데모를 하십니다.
이름 석 자도 잘 못 쓰시지만 시절인연과 사람의 도리는 잘 아십니다. 애기 낳은 다음날에도 논밭에 나가야 했던 서러운 일생이었지만 내 삶터는 내가 지킨다는 일념으로 오늘도 아픈 다리 이끌고 모이십니다. (중략) 밤낮 시끄럽고 먼지 나서 못 살겠는데 그것을 단속하는 공권력은 없고 항의하는 주민들을 죄인 취급하는 공권력만 있으니 천불이 났습니다. 불법을 저지른 자들은 점령군처럼 군림하는데 수많은 민원에도 불구하고 주민의 손에 의해 뽑힌 국회의원, 도지사도 외면을 합니다. (…)
약자의 고통을 마음에 담아주지 않아 고아처럼 외로웠습니다. 심지어 진보적인 인사나 단체마저도 지역의 작은 사건이라고 무관심하기 일쑤였습니다. 지금 이 순간, 숨 쉬고 살아 움직이며 아프고 고통 받는 구체적인 삶에 기반 하지 않은 생각이나 활동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 이 봄날, 단단한 아스팔트를 뚫고 올라오는 여린 풀들처럼 영차영차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생명을 유린하고 이를 묵인 방조하는 강자들의 세계에 맞서 만만한 사람끼리의 끈질긴 연대의 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꽃 같은 시절> 86p~87p
▲ 공선옥 장편소설 <꽃 같은 시절>(창비)
<꽃 같은 시절>(공선옥, 창비)은 불법적인 쇄석기 공장 운영에 대해 주민들이 맞서 싸우는 과정을 다룬 것이지만, 공권력에 맞서 싸우는 민초들의 아픔과 희망을 차근히 그려낸 책이다.
밀양에서 돌아온 다음, 고즈가 책을 빌려주어 읽게 되었다. 둘러앉아 서로 먹을 걸 챙겨주는 장면에서, 나는 마을회관에 모여 앉아 구운 냉동만두를 우리 앞에 내어놓고 손님을 위해 일찍 젓가락을 놓던 할머니들을 떠올렸다. 나이를 묻자 여든 다섯이 되었다던 한 할머니는 웃지 않고 혼잣말하듯 되뇌었다. “허망하다, 허망…”
인생의 마지막 자리에서 송전탑과 싸워야 했다. 그 혼잣말에는 가늠할 수 없는 비애가 담겨 있었다. 두려워하기도 하셨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고 전과 달리 욕을 하고 싸움을 하는 데 이골이 난 자신이 낯설기도 했다. 사람들이 땅에서 강제로 쫓겨났다. 더 필요하지 않은 전기를 서울로 끌어올려 보내야 한다는 이유로. 초고압 송전탑을 세워, 산 것이 발을 못 붙이는 땅으로 탈바꿈시키려 했다.
새벽에 나와 앉은 할매들은 모닥불 앞에서 말이 없었다. 경찰차가 한대 두대 올라가고, 삿대질하고 싸우고 호통치고, 경찰이 올라가고, 하루치 공사가 억지로 또 시작된 자리에서 할매들은 떠나지 않았다. 고개를 들지도 않았다. 불이 붙은 나무가 하얗게 굳고 불씨가 다 사그라질 때까지 할매들은 묵묵히 그것을 지켜보았다. 날이 희붐해질 때까지, 별이 자취를 감출 때까지 그렇게 있었다.
땅을 일구고 노동한 세월을 걸고 싸웠다. 가족을 지키고 이웃과 함께한 시간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살아낸 평생을 헛된 것으로 만들 수 없어서 싸웠다. 자신을 살게 한 것이 국가가 아니라 이 땅이었기 때문에 싸웠다.
“내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고 지팡이를 내저으며 한 맺힌 고함을 지를 때, “어이구, 그러심 안 되지요, 어르신.” 느물거리며 맞받는 경찰의 말은 모욕이었다. 가끔 할매들은 억장이 무너져 소리쳐 울기도 했다. 그 눈물을 이해할 수 있는 이는 이제 세상에 많지 않았다.
[“첨에 쿵쿵 허는 소리가 나길래 다시 인공이 되얐는가, 혔는디 그것이 아니고 독공장에서 독 깨는 소리여. 독 깨는 소리가 어뜨케나 큰지 인공 때 대포소리 같애. 그 소리에 놀래서 어미 뱃속에서 소새끼가 죽고 염생이가 죽고 갱아지가 죽고 닭이 알을 안 낳고 천지사방이 문지투성이라 깻잎삭 한나를 못 묵어. 그런디도 나랏님들은 ‘돈을 벌어야’ 쓴다고 독공장 돌리는 것을 안 막어. 그렁게 디모를 한 거여. 디모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여. 못살겄다고 악을 써도 암도 들어주는 사람이 없고 암도 들어주는 디가 없으면 가서 악을 쓰는 것이 디모여. 디모를 다 해보고, 경찰서를 가보고 이 오맹순이가 말년에 꽃시절을 보내고 오네, 시방.”
듣다보니 얼마나 꽃 시절 한 번을 못 보고 살았으면 ‘디모’를 하고 경찰서에 간 것을 두고 꽃 시절이라 하나, 눈물이 포옥 나올 뻔한 것을 겨우 틀어막고 “그런디 그 좋은 꽃 시절을 누가 보게 해줍디여.”] -<꽃 같은 시절> 254p~255p
‘지난 싸움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던 것인가’
3월 8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탈핵문화제’에서 밀양의 구미현 씨가 무대에 서서 이렇게 발언했다.
“밀양에서 왔습니다. 밀양은 지금 전기를 보낸다는 명분으로 6개월째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혹독한 겨울이었습니다. 얼마나 폭력과 공권력에 저항하며 싸우고 다쳤는지 모릅니다. 송전탑 52기 중 11개가 올라갔습니다.
우리는 단 한 번도 그 송전탑을 허락한 적이 없습니다.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 송전탑은 저희 모두에게 절망을 안겨줍니다. 귀한 목숨을 끊은 분도 있습니다. 부도덕한 기업 한전은 그 목숨을 끊은 것을 은폐하고 폄하했습니다. 이중 삼중의 고통을 더 받았지만 우리는 거기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새벽에 산을 오르며 송전탑을 짓지 못하게 지켜왔습니다. 새벽마다 거리에 나와 공권력과 한전의 불법적인 행동을 막느라고…”
그 말을 하면서 그녀는 눈물을 흘렸다. 말이 잠시 끊어졌다. 무수한 새벽과 걸음들이 사무치는 고통과 폭력을 견뎌내며 소리 없이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당신들도 모르게.
© 밀양 765kV송전탑 반대 대책위 (촬영 - 이상범)
“너무 많은 어르신들이 힘든 것을 보며 가슴이 아팠습니다. 송전탑이 들어선 지역, 싸우고 있는 지역, 들어서지 않은 지역 모두, 우리는 송전탑을 허락한 적이 없습니다. 앞으로도 힘을 합쳐 농사를 지으며 송전탑을 막겠습니다. 송전탑이 뽑힐 때까지 우리는 싸웁니다.”
3월 27일자 <한겨레> 세상보기에는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부끄럽습니다” 라는 제목의, 이계삼 밀양대책위 사무국장의 글이 실렸다.
주민들은 지금 실존적인 질문 앞에 놓여 있다. ‘지난 싸움은 나에게 무엇을 남겼던 것인가.’ 끝도 없이 이어진 싸움으로 몸도 마음도 성치 않은데, 이제는 마을 사람들이 돈으로 찢기고 원수가 되어간다. ‘것 봐라! 이리될 줄 몰랐더냐?’ 이런 소리에 악다구니가 치받아 오르지만, 예사롭게 들리지도 않는다.
우리는 잘못했던 것인가? 생존권을 지키고자 공권력에 맞섰던 일이, ‘돈’이 아니라 송전선 지중화와 핵발전소 증설 중단과 전력 정책 재검토를 요구한 일이 과연 쓸데없는 몸부림이었던 것인가? 금전이 동원된 위력 시위 앞에서 한없이 쪼그라든 노인들은 지금 날마다 스스로를 향하여 이렇게 묻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이어진다. 그 새벽에, 더 이상 소리가 나오지 않는 쉰 목소리로 외치는 고함이 있었다. 마을회관에서 다리 쪽을 가리키며 송전탑을 막기 위해 목숨을 끊은 이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던 목소리가 있었다. 반대한다고 외치는 것과 침묵하는 것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고 믿는 눈빛이 있었다. 변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여 오던 눈물이 있었다. 가난했으나 꽃 같았던 한평생을 외면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이 있었다. 삶이 뭉텅 잘려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어지는 것이라고 믿고 싶은 희망이, 그곳에는 있었다. ▣ 안미선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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