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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에서 책읽기> 아니 에르노 “남자의 자리”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고 쓰는 사람, 안미선이 삶에 영감을 준 책에 관해 풀어내는 “모퉁이에서 책읽기”. 이 칼럼은 한국여성민우회 블로그 ‘민우트러블’에도 공동 게재됩니다. www.ildaro.com 

 

아버지의 경기장

 

우리 아버지는 김연아 선수를 좋아한다. 마흔이 된 나는 일흔이 넘은 아버지 옆에서 텔레비전을 본다. 퇴직을 한 아버지에게 텔레비전은 한 세상이다. 소치올림픽 중계를 밤새 보고 낮에도 채널을 바꾸어가며 보고 또 본다.

 

벽에 걸린 액자 속에는 젊을 때 아이들과 찍은 가족사진이 있다. 이제 집을 사느라 진 빚을 갚지 않아도 되고, 학비며 부양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아버지는 노년의 시간을 보낸다. 다리는 걷기 불편해지고 혈압약을 먹어야 하지만 아버지에게는 소중한 시간이다. 이 시간에조차 불쑥불쑥 찾아와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자식은 솔직히 떨쳐버리고 싶은 짐일 것이다.

 

1970년대의 ‘하면 된다’와 ‘세계 최고’의 기치 아래 평생 자신과 남을 다그치며 일해온 아버지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내심 알고 있다. 그래서 아버지는 김연아에게 열광한다. ‘하면 되는’ 연기를 펼치는 ‘세계 최고’의 김연아는 꿈이 현실이 되는 유일한 순간이다. 그렇게 완벽한 목표가 필요했다. 현실의 골치아픔도 복잡함도 남루함도 외면할 수 있는 그 무언가가. 클린연기에 기뻐서 박수치는 아버지 옆에 나는 팔짱을 끼고 묵묵히 있다. 우리가 바라볼 이상 같은 건 없어도 좋다.

 

서로를 바라보는 걸 방해하는 것은 또 있다. 강박이다. 아버지는 간간히 말한다. 문을 잠그지 않으면 집에 도둑이 든다, 가스불을 켜놓고 잊어버리면 집이 불탄다, 남한테 원한을 사면 끔찍한 일을 당한다, 택배기사가 어떤 범죄를 저질렀단다, 늙은 부모가 자식에게 어떻게 버림당했는지 기사에 나왔다 따위를 이야기한다. 끝없는 걱정과 두려움, 염려와 애착과 불안으로 뒤범벅된 것들.

 

나이든 엄마가 뒤늦게 외친다. “박정희만 독재를 한 게 아니라 당신도 이 집에서 독재를 했어!” 휴전선이 그어지자 집집마다 분단의 선이 소리 없이 아로새겨졌듯, 독재 개발 시대의 가장들은 집에서 독재자와 닮아갔다. 아버지의 잔소리는 지독한 소외감을 느끼게 한다. 언제나 자신만을 바라보는 독백이기에. 아버지, 생각만 좇지 말고 우리를 봐주세요. 세상에 무서운 일은 그렇게 많이 일어나지 않아요.

 

박수치지 않는 나를 힐끔거리며 아버지는 실망한다. 오랜만에 함께 앉은 자식의 냉랭한 태도에 상처받는다. 아버지가 문득 말한다. “너희들은 나보다 잘생겼어, 나는 키도 작고 이렇게 생겼는데…” 갑작스런 말에 나는 당황했다. “너는 글도 잘 쓰지, 어떻게 하면 그렇게 쓸 수 있을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

 

김연아의 마지막 경기라며 아버지는 눈물을 훔쳤다. 아버지가 눈물을 손등으로 닦는 모습이 모니터 화면에 비친다. “쟤 때문에 즐거웠는데, 정말 행복했는데. 이제 다시는 저 경기를 못 볼 테지. 우리 나라는 이제 피겨스케이팅에 출전도 잘 못하고 저기서 금메달을 딸 수 없을 거야.” 아버지는 아쉬워한다. 이십 년 전, 내가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아버지가 그랬다. “너희가 나보다 공부를 더 잘해. 나도 그만큼 공부하지 못했어.”

 

그때 나는 외로웠다. 아버지가 나를 보아주기를 바랐다. 누구보다 더 잘하고 못하는 자식이 아니라 당연히 못하기도 하고 어쩌다 잘하는 것도 있는 그런 딸로, 그래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딸로 받아들여지기를 얼마나 원했던가. 평가를 받는 것을 애정이라 생각하고 맹렬하게 1등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버지는 모를 것이다.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난 다음에도 나는 아버지의 경기장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 혼자 미친 듯이 휘몰아치는 선수였다는 것을. 나도, 남도 사랑하지 못하고 아무도 없는 경기장에서 심판관도 없는 그곳에서 자신을 채찍질했다는 것을.

 

나는 아버지가 심판석에 앉아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건 나 자신이었다. 그래서 그곳을 떠났을 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내가 마흔이 되어서야 그 경기를 포기했다는 것을 아버지는 까맣게 모를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원흉이 아버지인 것만 같아 몹시 미워했다는 것은 더더욱 모를 것이다. 우리 모두 떠난 경기장, 그것은 본디 없었던 것처럼 시간에 묻혀 버렸다.

 

무엇이 남았을까요, 우리가 지나온 자리에

 

지금 아버지는 심판관이 아니라, 같이 소파에 앉아 남몰래 울고 있는 늙은 남자다. 요새 아버지는 부쩍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죽어 시체가 상하면 고기 썩는 거랑 똑같단다” 거듭 말한다. 잘 움직여지지 않은 다리 탓에 차가 와도 피하지 못하는 노인들을 보며 마찬가지로 가슴을 졸인다. 옆집 누구는 부인이 죽은 다음 딸이 반찬을 매주일 가져다준다고 부러워하고, 김치 한쪽도 버리는 게 아까워 어떻게 하면 냉장고의 음식을 날마다 깨끗이 먹어치울 수 있을지 전전긍긍한다.

 

지나간 이야기, 조상이며 고향 이야기, 어린 시절 소꿉놀이 이야기, 죽은 동무들, 전쟁 이야기, 가난했던 이야기, 군대 이야기, 돈 벌던 이야기를 자꾸 말하고 싶어한다. 아버지도 아버지 노릇이 지치고 싫다. 한 사람으로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말하고 싶은데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른다. 잔소리로, 되풀이 반복되는 말로, 경멸적인 어조와 비하적인 어조를 오가며 말한다.

 

그렇게, 자신을 보아주기를 바란다. 말로 표현해본 적도, 글을 써본 적도 없지만 혹독한 세상에서 얼마나 자신이 안간힘을 써서 책임을 다하고자 했는지, 무너지는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는지, 무턱대고 자식에게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는 것으로 애정을 표현해왔는지, 겁이 나고 무서운 걸 참았는지, 달아나버리고 포기하고 싶은 삶을 얼마나 혼신의 힘으로 버텨왔는지, 아버지는 말하고 싶다. 표현하고 싶다. 인정과 위로를 받고 싶다. 지나간 시간이 헛되거나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이 안락한 소파와 늙은 몸 이외에 무엇이 남아 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이 아니고도 사랑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이즈음에야 떠올린다. 아버지가 자식의 학비를 대려고 동분서주 애쓰며 내색하지 않으려 하던 모습을 기억한다. 무조건 서울로 가서 고향에 돌아오지 말라고 닦달하면서 숨긴 감정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일터에서 받는 모멸감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애써 참았다던 말마디를 떠올린다. 실은 가난하고 자신이 없었기에 몸에 붙은 끊임없는 걱정과 불안, 강박을, 다시 방패처럼 두르고 살았다. 지켜주는 것 없고 울타리 없는 사회에서 떠메고 와야 했던 생존의 짐. 그리고 더 나은 곳으로 자식들을 떠나보내고 싶은 갈망.

 

무엇이 남았을까요, 우리가 지나온 자리에. 세월이 지나고, 그 강박과 갈망의 시간, 아버지가 떠나고, 내가 떠난 자리에. 우리를 여기까지 끌어당겨온 힘이 마치 제 할 일을 다했다는 듯 어이없이 풀썩 사라지고 만 이때, 지나간 것은 온데간데없고 이렇게 죽음을 생각하는 아버지와 어찌 살아야 할지 우왕좌왕하는 딸 앞에 지난 것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아버지는 웃고 있다. 이 혹독하고 덧없는 삶의 시련 앞에서, 무너지고 주저앉고 싶은 고비고비를 넘기며 여태껏 웃음을 지키고, 웃을 수 있어서, 지난 시간이 경이롭게 빛난다. 오랜 싸움에 지지 않은 켜켜이 주름잡힌 웃음이 나를 본다. 내가 그 웃음들을 본다. 나는 지금 아버지 곁에 오랜만에 돌아와 앉아 있는 것이다.

 

자기를 바친 것이 아니라 없애버린 사람들의 운명

 

▲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 
 

아니 에르노의 <남자의 자리>(임호경 옮김. 열린책들, 2012)는 원제가 ‘La place’(자리)다. 나는 이전에 <아버지의 자리>(홍상희 옮김, 책세상, 1988)로 이 작품을 읽었다.

 

‘작가의 아버지는 소를 치는 목동에서 공장 노동자로, 또 소상인으로 조금씩 신분을 높여가기 위해 술도 입에 대지 않고 착실하게 살아왔다. 그는 지식인에 대한 막연한 경외감과 열등감을 품고 살아간다. 다행히 자신보다 배움의 기회가 많았던 딸은 점점 그가 동경하던 세계에 다다르지만 그럴수록 그들 사이의 거리는 더욱 멀어진다. 딸에게는 잊혀 가는 존재이지만, 오히려 그는 많이 배운 딸은 자신보다 나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책 소개에서)

 

에르노는 아버지에 대한 자전소설을 쓰면서 “이것은 전기도 아니며 소설도 아니다. 아마 문학, 사회학, 그리고 역사 사이의 그 무엇일 것이다”는 글쓰기의 원칙을 지켰다. 한 사람을 그려내기 위해, 문학의 수사와 사회학의 분석과 역사의 성긴 틀에서 벗어나면서, 한편 문학의 인간애와 사회학의 객관성과 역사의 인식을 견지하면서 그녀는 아버지에 대해 썼다. 자리들은 흘러가고 다르게 배치되고 사라지는 것이므로, 이 한때의 기록을 남기기 위해 그녀는 얼마나 치열하게 시간들 사이의 간극과 긴장을 의식하고 노력했을까.

 

현실에 여전히 놓인 굴욕의 징표에 대한 기억, 또는 행복과 소외를 느끼며 흔들흔들 부딪히는 삶에 대한 기억은 깊은 사랑만이 해낼 수 있는 작업이다. 문학평론가 황현산 씨의 말처럼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삶과 문화를 위해 자신이 살아온 삶과 몸담았던 문화를 하나씩 하나씩 부정해야 했던, 자기를 바친 것이 아니라 없애버린 사람들의 운명’을 그린 작품이다.

아버지는 나를 당신의 자전거에 태워 집에서 학교까지 데려다주셨다. 비가 오나 해가 쨍쨍하나 아버지는 이 기슭에서 저 기슭으로 강을 건네주는 뱃사공이었다. 아마 그의 가장 큰 자부심, 아니 심지어 그의 생을 정당화하는 것, 그것은 바로 그를 무시했던 세계에 내가 속해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는 이런 노래를 부르곤 했다. “한바퀴 돌아 우리를 제자리로 오게 하는 것, 그건 노(櫓)라네.”

 

나는 <극한의 경험>이라는 책제목을 기억한다. 그 시작 부분을 읽으면서 느꼈던 나의 낙담이란. 거기에서 문제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철학과 문학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내내 숙제를 채점하고, 논문작성의 모델을 제시하는 일도 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 일로 월급을 받고 있는 사람이니까 말이다. 이런 사고의 유희는 사치가 내게 불러일으키는 느낌과 똑같은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비현실적인 감정, 울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다.

 

작년 10월이었다. 막내아들과 함께 계산대 앞에 줄을 서 있다가 나는 계산대에서 일하는 여자가 나의 옛 제자임을 알아보았다. 다시 말해서 5년 아니면 6년 전에 내 학생이었음을 내가 기억해낸 것이다. 그녀의 이름도, 어느 반이었던가도 이젠 기억나지 않았다. 내 차례가 돌아왔을 때, 무언가 말을 해주기 위해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잘 지내요? 여기서 일하기는 재미있구요?” “네네.” 하고 그녀는 대답했다.

 

통조림들과 음료수들을 계산기에 찍고 나서 그녀는 거북해하며 이렇게 말했다. “기술교육중학교 시험이요, 잘 안됐거든요.” 그녀는 내가 아직도 자기가 어느 계열반이었는지, 어떤 길로 나가려고 했는지를 기억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그녀가 왜 그 중학교로 보내졌는지, 또 어떤 계열인지도 잊어버렸다. 나는 그녀에게 “안녕, 또 봐요.”라고 말했다. 벌써 그녀는 왼쪽 손으로는 그 다음 손님의 물건들을 집어들고, 오른손으로는 쳐다보지도 않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아니 에르노, <아버지의 자리> 마지막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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