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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연습] 죽음 이후 우리를 기다리는 것 

 

<철학하는 일상>의 저자 이경신님의 칼럼. 필자는 의료화된 사회에서 '좋은 죽음'이 가능한지 탐색 중이며, 잘 늙고 잘 죽는 것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www.ildaro.com  

 

장자가 해골에게 묻다

 

모든 사람이 죽지만 단 한 사람도 죽음에 대해 알지 못한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이니 죽어서 어떻게 될지 다들 궁금한 것도 사실이다. 죽음 이후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기원전 4세기경 전국시대의 사상가 장자는 우리가 죽음이 두려워서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치지만, 죽은 뒤의 삶이 더 즐겁다면 삶에 집착했던 것을 오히려 후회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장자의 해골 꿈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장자는 초나라를 가던 도중에 길거리에 뒹구는 해골을 발견한다. 그는 해골에게 도대체 왜 죽었는지 말을 건넨다. 굶어서 죽었는지, 얼어서 죽었는지, 살만큼 살다가 죽었는지…. 곧이어 장자는 해골을 베고 누워 깜박 잠이 든다. 꿈에 나타난 해골은 자기에게 성가신 질문을 던진 장자에게 투덜댄다. 장자는 해골에게 또 묻는다. 저승사자에게 부탁해서 되살아날 수 있다면 어찌 하겠느냐고. 이에 해골은 고통스러운 현생보다는 사후의 자유로운 이승이 더 낫기 때문에 다시 살아나고 싶지 않다고 답한다.

 

이 이야기가 들려주듯이, 사후의 삶이 생시의 삶보다 더 낫다면 반가운 소식이다. 죽음은 삶의 끝일 뿐, 더는 아무것도 없다거나 죽은 뒤 내세의 삶이 괴롭고 끔찍하다는 것보다 즐겁고 자유로운 또 다른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듣기에도 좋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온 사람들

 

긍정적인 사후가 옛 이야기 속에서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죽은 뒤, 매혹적인 경험이 우리를 기다린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실제 존재한다. 우리는 소위 죽었다 살아 돌아온 사람들로부터 그 경험담을 들을 수 있다. 죽어버린 사람은 사후의 이야기를 전해 줄 수 없으니까, 죽음의 문턱을 밟고 되살아난 사람의 입에서 전해 듣지 않는다면 달리 누구에게서 죽음의 체험담을 들을 수 있겠나.

 

과학자들은 이들을 ‘임사체험자’(Near-Death Experiencers, NDErs)라고 부른다. ‘임사체험’이란 의식이 없고 심장박동이나 호흡이 정지해 의학적으로 죽은 것으로 판정된 사람이 소생해서 생생하게 기억해낸, 죽음에 다가간 경험을 뜻한다. 21세기 초 네덜란드에서 진행된 연구에 의하면, 심폐기능이 중지된 후 소생술로 되살아난 환자의 12%가 임사체험을 했다고 한다.   

 

▲ 제프리 롱, 폴 페리 <죽음, 그후>(에이미 팩토리, 2010) 
 

임사체험 연구는 1970년대 레이먼드 무디(Raymond Moody) 박사에 의해 시작되었다. 무디 박사는 1975년에 출간한 책 <삶 이후의 삶>(Life after life)에서 임사체험이란 개념을 주창했고 이 책은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연구에 뛰어들었다. 의학박사 제프리 롱도 그 중 한 사람이다. 임사체험을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연구하기로 결심한 그는 지난 10여 년 전 임사체험연구재단을 설립하고 그동안 1천300여명의 임사체험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조사 결과를 분석해서 2010년에는 폴 페리와 함께 <죽음, 그후>(Evidence of the afterlife)란 제목의 책도 펴냈다.

 

이 책에 임사체험의 12가지 특징이 잘 정리되어 있다. ①의식과 몸의 분리 ②예민해진 감각 ③긍정적이고 격렬한 감정과 느낌 ④터널체험 ⑤빛의 경험 ⑥죽은 사람이나 신비한 존재의 만남 ⑦달라진 시공간 ⑧지난날의 회고 ⑨비현실적 영역 ⑩특별한 지식의 습득 ⑪경계나 장벽의 만남 ⑫ 자의나 타의에 의해 자기 몸으로 되돌아옴이 그것이다. 임사체험자는 이 12가지를 모두 경험하기도 하고 일부만 체험하기도 한다.

 

임사체험 연구자들은 의학적 죽음이 선고되었거나 전신 마취상태, 또는 혼수상태에 있어 의식 활동이 정지된 사람이 의식적인 이미지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관심을 보인다. 의학적으로 뇌 활동이 멈추면 의식이 없는 것이 당연하고, 의식이 없으면 의식체험 자체가 불가능하다. 의식체험이 없으니까 죽었다가 깨어나는 경우 아무런 기억도 존재해서는 안 된다. 전신마취 아래 수술을 받았던 과거 경험을 돌이켜보면, 마취상태에 있었던 3시간은 내게 온전히 백지상태로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완전한 기억상실인 셈이다.

 

그러나 임사체험자는 의식이 정지되어 있는 동안 경험한 것을 생생하고 체계적으로 기억해낸다. 기존 의학 상식과 불일치하는 이 같은 체험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임에 분명하다.

 

여전히 논란 중인 임사체험

 

그런 만큼 임사체험에 대한 논란은 여전하다. 모두가 임사체험을 신뢰하는 것은 아니며, 임사체험을 부정하는 의견들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도 뇌 기능 이상으로 뇌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해서 생기는 환각, 환시라는 주장이 있다. 산소가 결핍되어 질소와 탄산가스가 증가하면 중독 상태에 이르는데, 이때 행복감을 느끼면서 환상을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뇌의 특정 부위를 자극하면 임사체험과 유사한 것을 느낄 수 있다. 뇌 측두엽이 고장나면, 몸이 나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또 마취제 성분 가운데 마약 성분이 환상을 유발할 수 있고, 실제로 마약을 이용해서 임사체험과 비슷한 체험을 조장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 밖에도 목숨이 위태로운 순간에 죽음의 공포와 고통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심리적인 방어 기제로 (지난날을 회고하는 것과 같은) 임사체험을 설명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모든 입장이 한결같이 주장하는 것은 임사체험이 진짜 ‘현실 경험’이 아니라 의식이 조작해낸 ‘가짜 경험’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비록 죽어가고 있긴 하지만 죽지 않은, 즉 아직 살아 있는 상태에서의 경험으로 본다. 죽음에 이르기 직전, 의식을 잃는 순간이나 의식이 깨어난 직후의 기억들의 조합이 임사체험이 아닐까 의심하는 것이다.

 

임사체험의 신빙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강력한 증거는 바로 몸과 의식이 분리되는 체외 이탈 현상이다. 몸과 마음이 분리되어 자신의 몸을 허공에서 바라보면서 의료진의 이야기를 듣거나 육신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지는 일을 목격했다면 어떨까? 몸과 분리되었는데도 평소보다 더 선명하고, 더 밝고, 더 생생한 시각체험을 할 뿐만 아니라 시각 이외의 다른 오감도 더 예민해진다는 것을 어찌 설명할 수가 있을까? 만나 본 적도 없는 이미 사망한 친척, 수년 혹은 수 십 년간 떠올려 본 적도 없는 죽은 사람을 만났다면, 환각이나 꿈으로 치부하기 쉽지 않을 것도 같다.

 

그럼에도 개인적 경험에 대한 설문조사에 의존하고 있는 임사체험의 연구가 논란을 잠재우기는 힘들어 보인다.

 

임사체험 후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게 돼

 

임사체험이 참된 죽음 체험으로 증명되지 못했다고 할지라도, 임사체험자에게 그 경험이 자신의 삶을 뒤바꿔놓을 만큼 특별한 경험일 수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의미는 있다.

 

임사체험연구재단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임사체험자의 73.1%가 임사체험 결과 삶이 변화되었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들은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가치보다는 정신적이고 영적인 가치를 추구하게 되거나 삶을 더 긍정하고 사람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인생을 충만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려고 애쓴다. 치유 능력을 포함해서 초자연적인 능력을 갖게 된 사람도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임사체험을 한 사람들은 죽은 다음에도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에 안도하고 확신을 갖게 되었으며, 더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의식이 몸과 분리되고 신비로운 빛을 대면하고 과거의 삶을 되돌아보고 죽은 사람들을 만나는 등의 임사체험이 그 경험의 진위와 무관하게 우주와 인간의 삶 등을 새롭게 바라보는 각성의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죽음의 순간 강력하고 생생하게 맛본 긍정적이고 행복한 느낌 -충만한 사랑, 넘치는 평화, 강렬한 환희, 눈부신 아름다움 등-이 죽음의 두려움을 걷어간 것이 아닐까 싶다.

 

적어도 죽음의 공포를 벗어던지고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정신적으로 고양시켜낸 임사체험자는 참으로 운 좋은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살면서 추구하고 싶은 삶의 모습이 그런 것이어서인지 부러운 마음이 든다.
 
죽는 것은 두려운 게 아니라 ‘기쁜 일’

 

만약 임사체험이 “현재 삶의 ‘출구’이자 다음 삶의 ‘입구’”에 대한 경험이 아니라고 한다면, ‘죽음 이후’에 대한 우리의 무지는 여전한 셈이다. 일단 논란 중인 임사체험의 진위에 대해서는 옆으로 밀쳐두기로 하자. 과학에게서 답을 들을 수 없으니, 나는 다시 장자의 옛 이야기로 되돌아간다.

 

장자는 아내가 죽었을 때 노래하며 기뻐했다고 전한다. 왜 그는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고 그렇게 기뻐할 수 있었을까? 아내의 죽음 앞에서 울지 않는 장자를 보고 화를 낸 친구 혜시에게 장자가 한 대답을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자연을 떠돌던 기가 사람의 몸에 생명으로 들어왔다가 그 몸이 죽으니 다시 자연으로 되돌아 간 것인데, 결국 집으로 돌아간 것으로 봐야 하니까, 기쁜 일이라는 것이다.

 

 

개개인의 생명의 기운이 생명의 근원인 대자연, 우주의 기운과 합일하는 것이 죽음이라는 생각, 아름답다. 누구는 이것을 놓고 ‘영혼의 도약’이라고 표현했던가. 우리의 육신이 다시 자연의 흙으로 되돌아간다는 죽음에 대한 생각보다는 상상력이 넘친다. 죽어서 좀더 차원 높은 세계로 옮겨갈 수 있다면 기뻐하며 노래해야 할 만큼 멋진 일이리라. 죽음 이후 무엇이 우리를 기다릴지 지금으로서는 옛 이야기를 빌어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수밖에 없어 아쉽다. ▣ 이경신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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