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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연습>22. 우에쌍섬의 프로엘라(Le Proëlla) 의식 
 
<철학하는 일상>의 저자 이경신님의 칼럼. 필자는 의료화된 사회에서 '좋은 죽음'이 가능한지 탐색 중이며, 잘 늙고 잘 죽는 것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www.ildaro.com  

 

지난 해 마지막 날, 프랑스 교수님께 다친 발목은 나았는지 안부도 묻고 새해인사도 드릴 겸 메일을 보냈다. 교수님은 내게 몸은 회복되었지만 마음이 병들었다는 답신을 보내왔다. 알고 보니, 아들이 카리브 해 마르티니크(Martinique) 섬 트레킹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산에서 훈련하던 도중 지난 11월 말에 행방불명된 것이다.
 
시신을 대신한 ‘프로엘라 십자가’
 
살다보면 사랑하는 사람이 불현듯 우리 곁에서 사라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죽었다 생각한 사람이 우여곡절 끝에 살아 돌아온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시신조차 찾지 못하는 황망한 상황보다는 그나마 죽은 사람의 몸이라도 찾을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 것 같다. 가까운 사람이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맞는 것만으로도 억장이 무너질 텐데, 시신도 찾지 못한 죽음을 맞닥뜨리게 된다면 그 아픔을 감히 상상하기도 어렵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이 비극적인 죽음을 극복하기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들이 자기 삶을 계속해 나갈 힘을 얻으려면 적절한 애도의 과정이 꼭 필요하다.
 

▲ 프랑스 니우 에코박물관에 진열된 프로엘라 십자가   © 이경신 
 
프랑스 서쪽 끝에 자리잡은 우에쌍(Ouessant) 섬의 ‘프로엘라’(Le Proëlla)야말로 시신조차 찾지 못한 죽음 앞에서 상실감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독특한 장례의식이다. 이 섬에는 유달리 시신 없는 죽음이 빈번했다.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다 보니 섬의 수많은 남자들이 바다에서 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남자아이는 11살만 되도 머나먼 항해 길에 올랐고, 뱃사람은 2-3년, 혹은 그 이상의 기간 동안 선상 생활을 하다 육지로 되돌아오곤 했다. 이들에게 삶을 지탱시켜주는 것도 바다지만, 삶을 거둬가는 것도 바다였다. 어느날 풍랑을 만나 목숨을 잃고 육신이 바다 저 깊은 곳에 잠든다고 해서 특별할 것도 없었다. 뱃사람이 바다에서 인생을 끝내는 것이 뭐가 대수로운 일이겠나. 실제로 수많은 우에쌍 선원들이 이런 죽음을 맞았다.
 
그럼에도 예고 없이 들이닥치는 죽음, 시신조차 건질 수 없는 죽음이 언제나 그렇듯 남은 우에쌍의 여인들에게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안타깝고 비극적인 죽음이었다. 아들을, 남편을, 아버지를 잃은 여인들이 슬픔을 거둬내고 일상 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애도를 돕는 장례의식이 생겨났다. 바로 우에쌍 섬만의 가짜 매장의식, ‘프로엘라’가 출현한다. 교회기록에 의하면 ‘프로엘라’는 1734년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프로엘라’라는 말의 다양한 어원을 살펴보면, 매장 의식을 ‘대신한 장례’, ‘고향으로의 귀환’, 선원을 죽게 만든 난파를 야기한 ‘폭풍우’ 등의 의미를 담고 있다.
 
선원이 먼 바다에서 폭풍우를 맞아 갑자기 죽게 되면 고향 사람들은 매장할 시신 없으니 통상적인 장례식을 치를 수가 없다. 그래서 작은 십자가로 바다에서 사라진 사람의 몸을 대신하기로 한다. 이 십자가를 ‘프로엘라 십자가’(Croix de proëlla, 10cm*6cm)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나무로, 나중에는 두 개의 밀랍 심지를 이용해 만들었다고 한다.
 
이처럼 ‘프로엘라 십자가’를 동반한 ‘프로엘라’는 섬사람의 미신적 사고 방식을 담고 있기도 하지만 기독교적 성격도 띤다. 기독교에서는 예수가 우리를 대속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한다. 우에쌍 사람들은 죽은 자의 영혼이 이 속죄에 참여함으로서 영원한 삶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들은 바다에서 예기치 못한 죽음을 맞은 사람들의 혼이 평화를 얻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기를 원하지 않았다. 영혼이 이 세상을 배회하는 죽음을 나쁜 죽음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은 영혼이 ‘프로엘라’를 통해 안식을 되찾아 좋은 죽음이 되길 바랬던 것이다.
 
“오늘밤, 당신 집에서 프로엘라가 있다!”

 
그렇다면 ‘프로엘라’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 우에쌍 섬에 있는 교회묘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모습을 그대로 형상화한 묘지 십자가들이 인상적이다.   © 이경신 
 
선상에서 사람이 죽으면 선원 대표가 사망 소식을 행정당국에 전한다. 당국에서는 죽은 사람의 대부(혹은 집안의 최고령 남자)에게 사망 소식을 전한다. 소식을 전해들은 사람은 교회에 가서 프로엘라 십자가와 은 십자가를 받아와, 해가 저문 뒤 기도문을 암송하면서 죽은 사람의 집에 두 십자가를 가져다 둔다. 더불어 죽은 사람의 어머니나 아내, 딸에게 “오늘 밤 당신 집에서 ‘프로엘라’가 있다”고 알린다. 이렇게 유가족에게 사망 소식이 전해진다. ‘프로엘라’ 소식이 전해지면 이웃 여인들까지 함께 오열하고 신음한다. 소리 높여 애통해할수록 죽은 영혼을 기쁘게 만든다고 믿는다.
 
이런 풍경은 우리 장례식 때 곡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하지만, 우에쌍만의 독특함 점은 곡하는 사람들이 ‘여성’이라는 점이다. 대부분 남자들이 배를 타고 섬을 떠나 있거나 바다에서 죽었기 때문에 섬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아주 어린 남자아이나 나이든 남자를 제외하고는 여성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한편, 대부가 친척과 이웃에게 사망 소식을 전하면 이들은 죽은 사람의 집으로 속속 모여든다. 다음날에는 주임사제가 시신, 즉 흰 천위에 놓인 프로엘라 십자가를 찾으러 온다. 이어서 사자의 집에 모인 사람들이 장례행렬을 이뤄 교회로 향한다. 죽은 사람의 몸을 대신하는 십자가는 죽은 사람의 대부가 선두에 들고 간다. 이때 여자들은 검은 긴 망토 옷을 입는다.
 
장례의식이 끝나면 작은 십자가는 관을 대신하는 교회 안 나무함에 11월 1일까지 모셔둔다. 만성절에 죽은 자의 영혼이 성인(聖人)의 영혼과 만난다고 생각해서, 이 날 모든 프로엘라 십자가들을 교회 묘지의 중앙에 세워진 프로엘라 기념관으로 옮긴다. 이 기념관은 바다에서 사라진 모든 우에쌍 사람의 공동묘지라고 보면 된다. 이곳 사람들은 이 기념관을 두고 ‘프로엘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제 우에쌍 섬에서 더는 ‘프로엘라’를 찾아 볼 수 없다. 지난 1962년에 마지막 ‘프로엘라’가 있었다고 한다. 우에쌍 사람들을 지혜롭게 애도로 인도했던 이 독특한 장례식이 사라졌다는 것에 아쉬운 마음마저 든다. 도대체 ‘프로엘라’가 사라진 이유는 뭘까? 삶의 방식이 큰 변화를 겪은 오늘날, 우에쌍 섬에서 더는 난파로 인해 목숨을 잃은 사람들이 없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에쌍 섬에 갔을 때 니우(Niou) 에코박물관을 들렀었다. 그곳에서 프로엘라 십자가와 여인의 검은 상복을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 유리 진열장 속에 놓인 밀랍 심지로 만든 작은 십자가와 프로엘라 의식 때 여자들이 입었던 검은 망토를 바라보는데 마음 한 켠이 서늘해왔다. 존재하지 않는 시신, 밀랍 십자가를 앞에 두고 흐느끼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시커먼 옷으로 가린  여인들, 이 검은 옷의 여인들이 유령처럼 천천히 마을을 가로지르는 행렬이 바로 내 눈 앞에서 펼쳐지는 듯했다. 비극적인 죽음이 남은 여인들에게 안겨준 절망감과 비탄, 그 무거운 감정들이 내게 고스란히 전해져 온 탓인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전율이 일었다.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계실 교수님의 마음도 검은 옷의 여인들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생사를 확인하지 못한 채 40일이 넘는 시간이 흘러갔다.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수색중이다. 주검을 찾지도 못했고 그래서 죽음을 확인하지도 못한 지금, 혹시라도 살아 있을까봐 희망을 접지 못해서 애도할 수도 없는 무력한 시간이다. 그러다 영영 시신조차 찾지 못한다면 애도는 한동안 길을 잃을 것이 분명하다.
 
“팔다리가 잘려나간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 교수님께 더는 아무 말도 건네지 못했다. 그 고통을 어찌 감히 짐작할 수 있으랴.  ▣ 이경신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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