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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연습 (24) 프랑스 17세기 납골당 앞에서 
 
<철학하는 일상>의 저자 이경신님의 연재 ‘죽음연습’. 의료화된 사회에서 '좋은 죽음'이 가능한지 탐색 중이며, 잘 늙고 잘 죽는 것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지난 해 여름, 프랑스 서북부 지역을 여행하다가 아주 우연히도 17세기 납골당(L'ossuaire)을 두 차례 본 적이 있다. 한번은 미니악-수-베슈렐(Miniac-Sous-Bécherel) 지역 둘레길을 걷다가 한 성당 울타리 안에서 쉴 때였다. 또 한번은 랑데르노(Landerneau)라는 도시를 지도 한 장 없이 배회하며 두리번거리다가 딱 마주쳤다. 이렇게 오래된 ‘납골당’은 직접 본 것도 처음이었지만, 내게는 참으로 낯선 무엇이었다.

 

수백 년 전 유럽 납골당의 풍경

 

  미니악-수-베슈렐의 셍 피에르 성당 출입문 위쪽에 자리잡은 납골당(1625년)   © 이경신 
 
현대의 납골당은 화장한 유골을 담은 유골함과 유품 등을 안치하는 곳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수백 년 전 유럽 납골당은 묘지에서 파낸 인골을 분류, 정리해서 보관한 곳이라는 점에서 오늘날의 납골당과는 현저한 차이가 난다. 무엇보다 납골당에 안치된 인골을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전시했다는 것이 인상적인 대목이다.

 

어떤 광경이 펼쳐졌을지는 충분히 상상이 간다. 지난 1990년대 중반, 파리 지하묘지 ‘카타콤’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사람의 두개골과 다른 뼈들을 구분해서 좁고 어두운 길의 벽면을 따라 질서정연하게 정리해 둔 것을 보고 놀랐다. 그 인골들은 파리 공동묘지에서 나온, 이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많은 두개골, 인골을 눈으로 직접 목격한 것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소름이 돋는 엽기적인 풍경이라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아마도 과거 납골당의 풍경도 그와 비슷하지 않았을까?

 

납골당에 인골을 옮겨두는 관행은 중세 중기부터 18세기까지, 프랑스만이 아니라 로마나 나폴리 같은 이태리 지역에서도 성행했다고 한다. 특히 프랑스 서부, 브르타뉴 지역은 그 어떤 곳보다 늦게까지, 20세기 초까지 이러한 관행이 계속되었다.

 

프랑스 사회학자 필립 아리에스에 따르면, 인골을 분류하고 정리하기 시작한 것이 15세기 전후이다. 도시화가 진행되어 인구가 급증했을 뿐 아니라 빈번한 전염병으로 한꺼번에 많은 사망자가 속출하자 묘지가 부족해졌다. 그래서 수백, 아니 천 구 이상의 시신을 함께 묻을 수 있는 거대한 구덩이, 즉 공동묘가 등장했다. 또한 육탈된 뼈를 묘지에서 주기적으로 파내어 납골당에 따로 보관하게 되었던 것으로 설명한다. 새로운 시신에게 자리를 양보한 유골들은 성당의 아치형 회랑 위 진열대나 성당 출입문 위, 아니면 성당 곁에 마련된 작은 예배당에 안치되고 전시되었다.

 

내가 마주친 납골당은 뒤의 두 가지 사례에 해당한다. 미니악-수-베슈렐에 있는 셍 피에르 성당(l'église St. Pierre)의 납골당은 1625년 출입문 위에 만들어진 것으로, 문보다 앞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또 1635년에 지어진 랑데르노의 셍 카두 납골당(Ossuaire Saint Cadou)은 셍 토마 드 칸토르베리 성당(L'église St-Thomas-de-Cantorbery)의 서쪽 편에 위치했다. 이 납골당은 성유물함이 있는 예배당으로 추정된다. 그곳에는 두개골이 들어 있는 유골함들이 놓여 있었고, 미사도 집전되었을 것으로 본다.

 

시청광장 같았던 교회 공동묘지  

 

랑데르노의 셍 토마 드 칸토르베리 성당(L'eglise St-Thomas-de-Cantorbery) 서쪽에 지어진 셍 카두 납골당(Ossuaire Saint Cadou) 1635년. © 이경신 
 
두 납골당 모두 굳게 문이 잠겨 있었다. 그래서 겉만 바라보았을 뿐, 내부를 구경할 수는 없었다. 그곳에 아직도 인골이 진열되어 있을까? 지하묘소도 아니고 지상의 건축물, 그것도 문화재 안에 인골을 전시하지는 않을 것 같다. 현대인은 죽음과 친하지 않다. 거부된 죽음은 은폐되고 유배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5세기부터 18세기 말까지 살았던 유럽인들은 달랐다고 한다. 이들에게는 시신도, 인골도 일상적인 삶의 일부였다. 17세기까지 사람 뼈가 여기저기 굴러다녔다고 하니까, 죽은 사람에게 절로 익숙해질 만하다. 이런 환경이라면 인골을 땔감으로, 그림 소재로, 명상의 도구로 사용한 것도 특별한 일은 아닐 것이다.

 

필립 아리에스가 쓴 <죽음 앞의 인간>(새물결, 2004)에서 교회 묘지에 대해 분석한 글을 읽다 보면, 당시의 유럽인들이 죽음과 얼마나 친숙하게 지냈는지 잘 알 수 있다. 교회 묘지는 오늘날 유럽의 시청광장 같은 곳이라고 한다. 시체들을 함께 매장했던 커다란 구덩이가 떡 하니 버티고 있는 묘지에서, 사람들은 설교도 듣고 사랑도 하고 산책도 하고 무언극, 가면극, 떠돌이 악사의 공연도 즐겼다.

 

심지어 묘지에 공동 화덕도 설치해 빵까지 구워냈다고 한다. 흙으로 살짝 덮어 두거나 그대로 방치해둔 공동묘 구덩이, 시체들이 악취를 내뿜고 부패하는 시체나 인골이 삐져나와 있는 곳, 그 근처에서 과연 빵을 만들어 먹고 소화시킬 수 있을 만큼 비위가 강할 수 있을지…. 현실이라 하기엔 생소하고, 상상조차 쉽지 않은, 내게는 오싹하고 끔찍스런 풍경일 따름이다.

 

영원한 생명을 기다리는 ‘죽은 몸’

 

이처럼 죽음과 삶이 뒤섞인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골을 전시한 납골당이 뭐 대수로운 일일까? 성당 출입문 위에 납골당을 만든 것도 같은 맥락 속에 있었다. 셍 피에르 성당의 납골당 안내문에 의하면, 사람들이 성당에 들어올 때 납골당 아래를 지나는 것은 산 자의 세계에서 죽은 자의 세계로 옮겨가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고 한다. 더불어 성스러운 성당 울타리 내에서 죽은 자와 산 자가 공존함을 함축하는 것이기도 했다.

 

삶이 죽음과 함께하듯 살아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 가까이서 일상적 삶을 꾸려나가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시절이었다. 죽은 자와 산 자가 성당 안에서 함께한다는 생각은 당연한 것이었으리라.  

 

▲  셍 카두 납골당 정면 벽 귀퉁이 ‘죽음’의 부조. © 이경신 
 
게다가 중세와 근세를 살았던 서구인에게 선량한 기독교도의 ‘죽은 몸’은 최후 심판의 날, 부활을 기다리는 신성한 것이었다. 고대인이 생각하듯이 불결한 존재도, 위험한 존재도 아니었다. 교회 묘지에 묻힐 자격이 없는 악인의 시체만이 더러웠을 뿐이다. 지구 종말의 날, 되살아나기 위해서는 성당의 울타리 내에 죽은 몸을 맡겨야 했다. 죄를 사해 주고 지옥의 형벌을 면하게 해 줄 수 있다고 믿었던 성인들 곁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그렇다면 납골당에 안치된 인골들은 영원한 안식을 위해 부활의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죽은 자의 몸이며, 납골당은 죽은 자를 위한 안식처인 셈이다.

 

성당을 오가며 인골을 바라보던 사람들은 이 세상을 앞서 떠난 사람들을 위해 영원한 평화를 기도했을 것이다. 그리고 살갗을 잃고 뿔뿔이 흩어져버린 뼈들은 산 자들에게 이 땅에서의 삶이 얼마나 덧없고 부질없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일깨워 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영생, 부활에 대한 믿음, 내세에 대한 확신을 공고히 하면서 신앙에 매달렸을지도 모르겠다. 죽음이 덧없는 삶에서 영원한 삶을 향한 통로가 되길 바라면서. 인골의 메시지가 ‘우리가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에서 끝나길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죽음 다음에는 영원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를 덧붙이지 않았을까?

 

19세기 이후 프랑스에서 유골을 옮기는 일은 금지되었다. 인골을 전시하는 납골당도 과거사가 되었다. 납골당에서 흘러간 긴 세월이 느껴졌다.

 

가만히 보니, 셍 카두 납골당의 정면 벽 한 귀퉁이에는 두개골에 X자로 겹쳐진 정강이뼈들, 즉 ‘죽음’의 부조가 새겨져 있다. 비바람에 시달려 흐릿해진 ‘죽음’의 부조가 죽음이 드러나지 않는, 죽음을 감추는 오늘날과 닮아 보인다. 우리 시대는 우리가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지 말고 ‘우리가 죽는다는 것을 잊으라’ 한다. 바로 이곳에 영생이 있기나 한 것처럼. ▣ 이경신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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