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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연습] 21. 죽은 자가 아닌 살아남은 자를 위한 장례식
<철학하는 일상>의 저자 이경신님의 칼럼. 필자는 의료화된 사회에서 '좋은 죽음'이 가능한지 탐색 중이며, 잘 늙고 잘 죽는 것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www.ildaro.com
지난 12월 5일 남아프리카공화국 전 대통령 넬슨 만델라가 사망했다. 만델라의 장례식은 국장으로 치러졌다. 공식 영결식, 조문객을 위한 3일 동안의 시신 공개, 고향에서의 장례식으로 구성된 장례 행사는 10일부터 15일까지 이어졌다. 요하네스버그의 추모식에는 90개국 이상의 정상들이, 시신 조문에는 10만 여명이, 장례식에는 4천 여명이 참석했다고 전한다.
장례 행사의 규모가 참으로 대단하다. 만델라는 평소 간소한 장례식을 원했다고 하지만, 그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화장을 원했던 할머니의 뜻을 거슬러 우리 가족이 매장을 선택했던 기억이 겹쳐 떠오른다. 만델라의 장례식, 할머니의 장례식만 보더라도 장례식은 죽은 자가 아니라 살아남은 자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견디기 힘든, 소중한 사람의 죽음
죽음으로 가까운 이를 잃은 사람들의 애도를 위해 장례식이 존재해왔다는 점을 주목할 때, 장례식이 살아남은 사람을 위한 의식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프랑스 심리학자 마리 프레데릭 바케(Marie-Frédérique Bacqué)도 장례식의 변함없는 기능이 있다면,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분출해 슬픔을 견뎌낼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사실, 나는 부모님의 임종도 지키지 못했고,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다는 것을 굳이 이유로 댈 수 있으려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해외 체류 중이라서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이 어려웠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으니까, 어머니가 내게 아버지의 죽음을 숨기지만 않았더라도 장례식에는 참석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중에 어머니는 내 시험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고 변명하셨다. 어머니는 장례식을 통한 애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이해하지 못하셨던 것이다.
장례식의 필요성을 절감하지 못한 것은 어머니만이 아니었다. 나 역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머니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을 때, 솔직히 나는 어머니의 장례식을 피하고 싶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가 더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장례식에 참석하는 것이 가능했다고 한들, 장례식에 가긴 했을까? 그만큼 어머니란 존재의 상실이 견디기 힘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그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 그 슬픔이 너무 커서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누구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회피할 수 없다.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우리 자신의 삶을 지속시켜낼 힘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토록 큰 슬픔을 껴안고서 어떻게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평소대로 일상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
“그런데 이 바보같은 삶은 계속된다”
얼마 전 롤랑 바르트(Roland Gérard Barthes, 프랑스 철학자)가 어머니를 잃고 애도하는 마음으로 끄적거린 메모들을 들춰본 적이 있다.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한 달이 되었을 때다. “우리가 그토록 사랑했던 사람을 잃고 그 사람 없이도 잘 살아간다면, 그건 우리가 그 사람을, 자기가 믿었던 것과는 달리, 그렇게 많이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까...?”
소중한 사람이 죽었는데도 아무 일 없이 잘 살아가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 마음, 절절히 와 닿는다. 그리고 반 년이 조금 지난 메모를 살펴보면, “마망(엄마)은 이제 없다. 그런데 이 바보 같은 삶은 계속된다.”라고 적혀 있다.
누가 죽든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삶은 계속된다. 애통해하고 눈물로 세월을 보내더라도 삶은 계속된다.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도, 우리는 그 사람 없이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가야 한다. 삶에 머물러 있는 이상, 누군가의 죽음을 경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의 죽음이 도래하는 그 날까지 여러 죽음을 겪으면서도 그 죽음들을 껴안고 살 수밖에 없고, 또 잘 살아가야 한다.
잘 살아가려면 상실의 슬픔을 충분히 뱉어내야 한다. 타인의 죽음 앞에 선 사람에게 다들 이야기한다. 마음껏 슬퍼하라. 실컷 울어라. 감정을 숨기거나 속이지 말고 있는 그대로 쏟아내라. 눈물을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속으로 흘리고 쌓으면 마음도 몸도 망가진다고 한다. 슬픔을 충분히 풀어놓지 않고 감정을 억누를 때 마음과 육신이 얼마나 끔찍한 고통을 겪게 되는지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다. 실제로 사랑하는 사람이 죽고 난 뒤 남은 사람이 심리적인 괴로움, 심인성 질환뿐만 아니라 암과 같은 심각한 질병, 자살 등이 뒤따르는 일도 적지 않다고 한다.
장례식이야말로 진솔한 애도의 출발점일 수 있다. 장례를 준비하고 장례식에 참여하면서 내가 아끼던 사람이 죽었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그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작별인사를 건넨다. 죽은 사람은 죽은 자의 세계로 떠나보내고, 산 사람은 산 자의 세상에 남는다. 서로의 세계가 구분된다. 죽음이 사랑하는 사람을 영영 데려가 버렸으니 더는 같은 세상에 속할 수 없어 얼마나 애통한지 그 마음을 솔직히, 충분히 드러낼 때다. 진정한 애도가 시작된다.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은 죽은 사람과의 추억을 함께 나누고 죽은 사람을 각자의 기억으로 남긴다. 이렇게 죽은 사람과 제대로 이별하면 일상 생활에 복귀해서 자신의 삶을 지속해 나갈 힘이 생겨난다고 한다.
유대인의 장례 전통에서 보는 지혜
유대인의 장례 전통이야말로 진정한 애도를 위한 지혜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죽어가는 사람 곁에 머무르고 임종을 지키고 장례식을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한 사람의 죽음을 부정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 대하도록 한다. 장례식의 준비와 실행 과정에서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제대로 슬픔을 소화해서 죽은 사람 없이도 자기 삶을 잘 이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우선, 관을 매장할 때 직접 삽질을 하도록 함으로써 죽음을 직시하고 슬픔을 밖으로 표출하게 만든다. 할머니가 갑자기 사고로 돌아가셨을 당시가 생각난다. 할머니의 시신을 매장할 때, 난 직접 삽으로 관 위에다 흙을 뿌렸다. 내가 할머니를 땅에 묻은 것이다. 할머니가 더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할머니와의 뜻하지 않은 이별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라면 더더욱 장례식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좋다는 조언은 반드시 기억해둘 만하다.
또 유대인의 ‘회복의 음식’도 인상적이다. 장례식에서 돌아온 사람에게 제공되는 음식이다. 죽은 사람은 이 세상을 떠났지만 살아있는 다른 사람들이 내가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음을 뜻한다고. 더불어, 사랑하는 사람이 죽더라도 나의 삶은 계속된다는 의미도 함께 담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1년의 애도 기간을 두는 유대교의 현명함이 놀랍다. 누구나 죽음을 단번에 받아들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죽음을 완전히 수용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유대인들은 슬픔의 다양한 단계를 인정해, 3일간의 깊은 슬픔, 7일간의 애도, 30일간의 점차적인 재적응, 11개월 동안의 추모와 치유 과정으로 애도 기간을 나눈다고 한다.
살아남은 사람은 자신의 슬픔을 표현하고 다스려가면서 점차적으로 삶에 적응해간다. 이 과정에서 죽은 사람에 대한 죄책감이나 분노도 누그러진다. 한동안 슬픔을 삭혀내야 하더라도 시간에 따라 슬픔은 변하기 마련이다.
어린이도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어야
그런데 애도는 성인들만의 몫은 아니다. 어린이도 장례식에 참석시켜야 한다는 의견에 공감한다.
나만 해도 초등학교 4학년 때, 할아버지 장례식에 참여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할아버지 장례식에 참여한 것은 아니었다. 한 곁에서 펑펑 눈물을 쏟고 있는 나를 보신 친지 어른들이 ‘저 아이를 장례식에 참여시키자’고 결정하셨던 것이다. 할아버지의 시신을 직접 보지도, 염하는 광경을 보지도 못했고 곡을 하는 장례 의식에도 참여하지 못했지만, 뒤늦게 다른 어른들처럼 하얀 소복을 갖춰 입고 할아버지 시신을 매장하는 데 함께 따라 나설 수 있었다.
죽음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지 못했지만, 더는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만은 분명하게 이해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을 강렬하게 체험한 순간이었다. 어릴 때부터 장례식에 참여시켜 죽음에 친숙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은 의미가 있다. 죽음이 삶과 별개가 아니니 말이다. 어린이에게도 죽음이라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허락하고 애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죽음의 간접 경험을 통해 한 걸음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어린 아이에게서 박탈해서는 안 된다.
요즘 영미 국가의 장례식은 죽은 자를 화장시키고 어린이를 장례식에 참석치 못하게 하는 등, 죽음을 삶처럼 포장하고 삶 밖으로 밀어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기타나 포도주 병 모양의 관을 사용하거나 어깨춤이 절로 나오는 유쾌한 음악을 틀어놓는 장례식, 소위 ‘재미난’ 장례식이 유행 중이란다. ‘죽음’이라는 우울한 사건을 덜 비극적으로 만들려는 시도로 보인다. 이런 장례식은 죽은 자가 죽기 전 미리 계획한 대로 진행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종교적인 색채를 벗어던지고 세속적으로 흐르는 이같은 신종 장례 문화를 놓고 다들 의견이 분분하다. 무엇보다 ‘이러한 장례 형태가 애도의 부재를 야기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죽음이 안겨주는 상실의 아픔이 유쾌한 장례식을 치른다고 해서 가벼워질까? 죽어가는 내가 나의 장례식을 한바탕 즐길 수 있는 잔치로 꾸민다고 해서 남겨진 사람들의 깊은 슬픔을 치유해줄 수는 없다.
게다가 고인을 추모하는 영결식 없이 화장으로 끝내는 일본의 직장(直葬)만 보더라도 그렇다. 죽은 사람을 기릴 유족이 없다면 장례식 절차가 다 무슨 소용일까? 적어도 고인을 기억하고 이별을 슬퍼하는 사람이 있을 때 장례식의 존재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장례식은 죽은 자가 마지막까지 개인적 욕망을 투사하는 자리가 되기보다, 살아남은 자가 죽은 자를 떠나보내고 삶을 이어가기 위해 애도를 시작하는 자리가 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 이경신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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