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경험으로 말하다/이경신의 죽음연습

80대를 산다는 것

그 여자들의 물결 일다 2014.04.26 09:30

죽음연습. 26 죽음이 가까우면 삶이 즐겁다?! 
 

<철학하는 일상>의 저자 이경신님의 ‘죽음연습’. 의료화된 사회에서 '좋은 죽음'이 가능한지 탐색 중이며, 잘 늙고 잘 죽는 것에 대한 생각을 나눕니다. 일다www.ildaro.com

 

80대를 산다는 것,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84-85세라는 한국여성의 평균수명이 도저히 실감나지 않는 것이다. 큰 이모가 80살이 넘은 나이에도 정정하게 혼자 생활하는 것을 보면서 처음으로 80대라는 나이에서 현실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오래 전 중풍을 앓았던 외삼촌도 남성의 평균수명을 넘어 지금은 여든이 되셨다. 친척들 가운데 장수하는 사람이 한 분 두 분 늘어나니 80대란 나이도 차츰 현실로 다가온다.

 

가까이서 만나는 다양한 80대 노인들

 

그러고 보면, 주변에서 80대 노인을 만나기가 아주 어려운 것도 아니다. 일단 우리 아파트 이웃인 할머니부터 생각난다. 깔끔한 인상에 교양 있는 태도를 가지고 있어 언제 만나도 호감이 가는 분이다.

 

수년 전 같은 동에서 살다가 이사하신 후 한동안 뵙지 못했다. 할머니는 딸네 아파트에서 함께 지내면서, 직장생활로 바쁜 딸을 위해 초등학생 손녀를 돌봐주었다. 지난 번 아파트 입구에서 할머니를 우연히 다시 만났다. 인사를 나누다가 아파트 동은 다르지만 여전히 같은 아파트 단지 내 사신다는 것을 알고 반가웠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손녀는 할머니 몫이었다. 초등학생이었던 손녀가 이제는 고등학생으로 자랐다.

 

건강해 보여서 좋다고 했더니, 할머니는 마침 병원을 다녀오는 길이라면서 “속은 다 부서졌어.” 하신다. 수시로 병원 문턱을 넘나드신다지만 여든이 넘은 나이에 당신만이 아니라 누군가를 돌볼 여력이 되니까, 그 정도면 건강하신 것 아닌가 싶다.

 

또, 국선도 수련장에서 종종 마주치는 80대 중반의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는 근처 사는 자녀들이 함께 살자고 졸라도 꿋꿋이 작은 아파트에서 독립해 사신다. 마음은 종교에 의지하고 몸은 수련장과 수영장을 규칙적으로 오가며 열심히 관리한다. 시력이 나빠진 뒤로는 혼자 하는 생활이 쉽지 않을 것도 같은데, 홀로 사실 수 있을 때까지는 그 고집을 거두지 않을 모양이다. 병원비가 너무 많이 든다며 한탄하시지만, 비록 누군가를 돌볼 수 있을 정도는 아니더라도 스스로 당신 자신은 책임질 수 있으니까 아직은 어느 정도 건강도, 삶의 질도 유지하고 계신 것 같다.

 

얼마 전 도장에서 인사를 나누는데 ‘심장 혈관에 스탠트를 삽입하는 시술을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을 풀어놓았다. 벌써 8년 전부터 4년 전까지 세 차례나 스탠트 삽입을 받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없는 형편이라 비용이 부담스럽다고 한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자식에게 과중한 의료비 부담을 주면서까지 목숨을 연장해야 하나?’ 하는 질문을 앞에 놓고 근심이 많은 듯했다.

 

가끔 뵈러가는 친구 아버지는 두 할머니들과 달리 아내의 돌봄 없이는 일상 생활을 제대로 꾸릴 수 없다. 십수 년 전 사고로 전두엽이 부분적으로 손상되어 단기 기억 등 뇌기능 장애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뇌를 제외하면 젊은 사람 못지않게 신체적으로 건강한 데도 아내에게 완전히 의존해서 살 수밖에 없는 처지가 안타깝다.

 

작년, 친구 아버지의 팔순 생일잔치에 갔을 때 정작 잔치의 주인공은 아무 말씀이 없었다. 뇌를 다친 후로는 사람들과 간단한 대화 이상을 나누기 어려운 상태다. 혼자서 외출도 할 수 없는 형편이라 친구를 만나러 길을 나설 수도 없다. 그나마 단독주택에 살아서 집을 둘러싼 화단과 텃밭을 돌보며 무료함과 답답함을 달래고 계신 듯했다.

 

어느 수준까지 병원과 약에 기대야 할까?

 

이분들처럼 직접 대면하지는 못해도, 주위 사람들의 수다 속에서 병상에 있는 남녀 노인들, 손자 옷을 직접 짓는 할머니, 요양원 생활 중인 할머니 등 80대의 다른 노인들의 삶을 엿볼 기회가 적지 않다. 가만히 보면, 80대 노인 개개인의 삶도 젊은이나 중년, 초로의 삶 못지않게 일반화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다.

 

그럼에도 여성이건 남성이건, 자립적이건 의존적이건, 요양원에 머물건 집에서 살건 80대 노인들 대부분은 병원과 약에 기대서 살아간다. 의료의 발달이 장수의 이유인지, 쾌적한 생활환경, 운동, 영양식이 고령의 비결인지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병원과 약 없이 생활하는 80대 노인을 가까이서 본 적이 없다.

 

누군가 늙을수록 병원 갈 일이 많으니 노인들은 시골보다 도시에서, 그것도 큰 병원 인근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 문득 떠오른다. 경제적 형편에 따라 차이는 나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의료비 비중이 더 커지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도시에서 80세 이상을 산다는 것은 적어도 ‘병원, 약의 도움으로 사는 것’이라 말해도 지나쳐 보이지 않는다.

 

그 어느 때보다 80세 문턱을 넘은 노인들이 많다. 수시로 병원을 드나들고, 약을 한 움큼씩 복용하고, 각종 의료시술, 수술을 동원하고 결국엔 요양원에 몸을 내맡기더라도 80살이 넘도록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면 다행일까? 돈 없어 죽는 비극을 겪지 않고 값비싼 약, 고가의 수술로 장수를 보장받을 수 있도록 젊어서부터 차곡차곡 돈을 모아둬야 하나? 그렇지만 장수가 반드시 삶의 질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지 않는가? 소위 말년에 어느 수준까지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아야 할지 그 한계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얻기가 쉽지 않다.

 

지금, 좋아하는 일을 하라

 

얼마나 병원 신세를 지는지 알 수는 없지만 고령에도 삶의 질을 유지할 만큼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한 두 노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들은 80대를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 운 좋은 노인들로 보인다. 장수가 복이라면 이 노인들처럼 사는 것을 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만 86세의 로베르 부타르 할아버지는 몇 년 전 프랑스 한 지역신문에 소개되었다. 달리기 동호회 활동에 열성적인 할아버지는 한때 유럽에서 이름을 날릴 정도로 대단한 육상선수였다고 한다. 하지만 나이가 든 지금은 왼쪽 무릎이 아파서 장거리는 달리지 못한다. 그럼에도 언젠가 한 번 더 10킬로미터 정도 뛰어보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있다. 현대의학의 도움을 빌어서라도 감춰둔 욕망을 불태우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서 한 주에 두세 번 정도 짧게 달리는 훈련을 계속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것을 할 때면 아직도 젊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할아버지의 말이 마음 한 귀퉁이에 남았다.

 

여든 한 살의 나이에 <불량하게 나이 드는 법>(나무생각, 2009)이란 책을 쓴 세키 간테이 일본 할아버지에게서도 비슷한 생각을 발견한다. 즉, ‘노인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 마치 고목이 새싹을 피워 올리듯 생명의 기운이 넘칠 수 있다’는 것이다. ‘불량 노인’이라는 별명도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자꾸 하다 보니 얻게된 것이란다.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고 객쩍은 수다를 떨면서 웃고 노는 일이야말로 할아버지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이다.

 

세키 칸테이 할아버지는 여든 한 살의 나이에도 인생과 죽음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여전히 알고 싶고, 온갖 것에 마음이 설레고, 죽을 때까지 자신을 찾아 계속해서 성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란다. 나이가 들었으니까 죽음이 가까이 다가와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고, 설사 죽는다 해도 두려울 것도 없다고 한다.

 

죽음이 가까이 있으니까 지금 이 순간을 더 즐기고 싶은 것도 이해가 된다. 살아 있는 지금, 물질적 욕심과 같은 헛된 욕망에 집착하지 않고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게 되면 삶은 즐거울 수밖에 없으리라. 할아버지는 삶을 즐기다가 때가 되면 슬쩍 한 발짝 삶의 경계 너머로 내딛고는 스르르 사라져 가리라 생각한다.

 

‘말년 복, 죽는 복’

 

그런데 위에서 거론한 할아버지들처럼 노년의 삶을 즐기는 한국의 80대 남자 노인은 드문 것 같다. 한국남성의 평균 수명이 78세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80이 넘어서도 어느 정도 삶의 질을 유지하는 노인들은 주로 여성이 아닐까 싶다. 내가 만나거나 이야기로 듣는 80대 노인들 가운데 병원과 약에 의존할지라도 자립적인 생활이 가능하거나 가족에게 도움을 주는 분은 할머니들이다. 반면 남자 노인들은 주로 병상에 누워있거나 누군가에게 기대서 일상 생활을 해결하는 등 의존적으로 살고 있다. 가까이서 독립적이고 건강한 노년을 보내고 있는 80대 남성 노인을 만난 적은 없다.

 

그래서 더더욱 ‘80대 여성노인’이 전하는 노년살이, 노년의 지혜가 궁금했다. 우리나라의 80대 여성노인은 1920년대 중반과 1930년대 중반 사이, 즉 일제의 통치 하에 태어났을 것이다. 청소년기에는 일본군 “위안부”를 피하기 위해 서둘러 결혼을 해야 했거나 한국전쟁의 참상 속에서 살아남았을 여성들이다. 이들 가운데 여든이 넘도록 살아 자신의 노년 이야기를 글로 풀어낼 수 있는 여성이 있을까?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듣지 않는 한, 80대 여성노인을 대신해서 그녀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책이나 영화를 찾아보는 편이 현명해 보인다.

 

85세의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를 조명한 김성희 감독의 <노라노>(2013), 82세의 만신 김금화의 인생을 다룬 박찬경 감독의 <만신>(2013), 세 명의 80대 여성 노인들 -저자의 어머니 안완철, 80대 중후반의 여성노인 김미숙과 김복례-의 인생사 구술을 담은 최현숙의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이매진, 2013)가 얼른 떠오른다.

 

그러나 거기서 다양한 80대 여성들의 지난 세월을 엿볼 수는 있어도 지금의 삶, 그리고 노년의 삶에 대한 그분들의 생각을 충분히 들여다보기는 어려웠다. 김복례 할머니가 짧게 꺼내놓은 ‘말년 복, 죽는 복’이 많은 80대 한국 여성노인들의 노년에 대한 생각과 닮아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 정도다.

 

김복례 할머니는 “나는 지금이 젤로 좋아…” 라고 하신다. 가난과 처절하게 싸우면서 오직 자식 키우는 데 평생을 다 바친 할머니는 자식이 먹고 살만하고 건강하니까 당신이 말년 복이 있다고 여기시는 듯했다. 할머니의 이야기 속에는 헛된 욕망도 없지만, 지금 하고 싶은 일, 자기 성장, 이루고 싶은 꿈에 대한 언급도 없다. 80대 중반인 할머니는 그냥 ‘다 살았다’고 말씀하신다. 지금은 ‘죽는 복’을 생각한다. ‘집에서 딱 삼 일만 아프다 갔으면 젤 좋겠다’는 말에서 할머니가 원하는 ‘죽는 복’을 읽는다. 당신은 이미 인생의 끝에 이르렀고, 좋은 죽음으로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결국, 80세를 넘어 산다는 것은 자신의 죽음을 가까이 느끼며 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죽음이 도래하는 그 순간까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미래를 향해, 세상을 향해 자신을 열어두는 것. 다시 말해서 꿈꾸고 새로운 만남, 자기 성장을 계속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말년에는 헛된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고 두려움 없이 이 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해 보인다.

 

죽음을 담담히, 두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면, 죽을 때까지 삶을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죽는 복’은 억지로 목숨을 연장해 얻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스르르 사라지는’ 데 있는 것, 아닐까?   일다 www.ildaro.com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