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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연습] 외로운 노년, 진정한 자아와 만나는 시간  

 

 

<철학하는 일상>의 저자 이경신님은 의료화된 사회에서 '좋은 죽음'이 가능한지 탐색 중이며, 잘 늙고 잘 죽는 것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 일다 www.ildaro.com 

 

20세 이후 지금까지 얼마나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면서 살았던가. 50대를 바라보는 지금, 한 곳에 진득하니 머물면서 이웃들과 안부 인사도 나누는 ‘정착의 삶을 살고 싶다’ 쪽으로 마음이 쏠린다. 가끔씩 며칠간 훌쩍 여행을 떠날 수는 있겠지만 더는 떠돌며 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런 정착의 유혹은 어쩌면 나이가 들어간다는 징표일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들수록 익숙한 공간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생활 리듬을 타면서 반복의 편안함을 만끽하며 살고 싶어질 것 같다. 지금도 낯선 곳으로 이사를 해서 그곳에 다시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부담스럽기만 하다.

 

익숙한 공간도, 친숙한 사람도 떠나야 한다면

 

그런데 익숙한 것을 누리면서 편하게 살고 싶은 노년기에 오히려 감당하기 어려운 변화의 과제가 주어진다는 점에서 우리 인생은 냉혹하다. 

 

▲  애니메이션 <업>에서 칼 할아버지는 집이 철거될 위기에 처하고 요양원으로 들어가야 할 상황에 내몰린다. 
 

살던 집, 친숙한 동네에서 살아온 대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모두에게 허용되는 현실은 아니다. 애니메이션 <업>(Up, 2009)에서 아내를 잃고 불편한 몸으로 홀로 살아가는 칼 할아버지처럼, 평생 살아온 집이 철거될 위기에 처하고 요양원으로 들어가야 할 상황에 내몰리기도 한다.

 

나이가 들어 경제 능력이 떨어지거나 없어져서, 아니면 또 다른 이유들로 줄곧 살아왔던 동네를 떠나 낯선 마을에 새로이 둥지를 터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지내왔던 집보다 더 작은 공간으로 옮겨야 하는 경우가 많다. 더 작은 아파트, 비좁은 원룸, 방 한 칸에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심지어 양로원이나 요양원의 한 뼘의 공간, 병원의 침대 한 칸에 겨우 내 자리를 마련해야 할 수도 있다.

 

공간만 바뀌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바뀐다. 우선 그동안 머물던 동네를 떠나 집을 옮긴다면 이웃도 달라질 것이다. 어느 정도 신뢰도 쌓고 서로의 가정사도 알고 지내던 오랜 이웃을 떠나야 한다면, 새로운 이웃들과 안면을 터는 노력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실버 타운’에 새로이 집을 마련한다면 노인들끼리 어울려 사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친구의 할머니처럼 요양원에서 살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면, 내 침상 곁의 또 다른 침상에서 지내는 낯선 노인과 좋건 싫건 코끝을 마주 대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노년의 인간 관계가 바뀌는 것은 공간의 변화 때문만은 아니다. 가까운 사람들이 차례로 이 세상을 떠나니 친숙한 인간 관계의 사슬이 하나씩 끊어진다. 배우자를 잃고 친구를 잃고 자식을 먼저 떠나 보내기도 한다.

 

영화 <송 포 유>(A Song for You, 2012)에서 아서 할아버지도 암으로 아내를 잃고 심각한 외로움에 빠진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을 떠나는 시련을 그 어느 때보다 감내해야 하는 것이 바로 노년기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친밀한 관계를 맺어왔던 사람들이 점차적으로 줄어들어 마침내 홀로 고립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살아남은 듯하다.

 

사적 공간이나 인간 관계만 바뀌는 것은 아니다. 긴 세월을 살다 보면 나의 일상을 이루어왔던 갖가지 것들이 변화의 물살에 밀려 사라져간다. 즐겨 이용하던 가게도 평소 다니던 길조차 달라진다.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온몸으로 겪어내고 있는 현실처럼 평생을 살아온 동네, 조상대대로 살아온 동네 자체가 국가와 기업에 의해 전면적으로 뒤바뀌는 폭력적인 체험의 희생양이 될 수도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기계화된 생활 환경은 어떤가? 나이든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벅차다. 게다가 익숙한 일상조차 제대로 꾸리기가 힘들 정도로 몸이 노쇠하고 건강을 잃는다면? 혼자서는 밖을 나설 수도 없을 정도라면? 더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기억 속으로 가라앉고, 오직 기억 속에서만 꺼내서 들춰볼 수 있을 뿐이다.

 

나이가 들수록 익숙한 것이 편안하고 안정감을 느끼며 익숙한 것에 안주하고 싶기 마련이지만 무엇보다도 세상이 허락하질 않는다. 늙어 죽음을 향해가는 자기 자신의 몸과 정신까지도 낯선 세상으로 비정하리만치 자신을 내몬다.

 

세상을 향해 마음의 빗장을 열고 

 

▲  영화 <송 포 유>에서 아서 할아버지는 아내가 죽은 후, 노인합창단을 통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간다. 
 

오래되고 익숙한 공간, 사람들로부터 분리되어야 하는 노년은 지독히 외로운 시간일지 모른다.

 

<송 포 유>의 아서 할아버지처럼 아내가 살아 있을 때는 싫어했지만, 아내가 죽은 다음에는 노인합창단에 가입해서 음악이란 새로운 즐거움에 마음을 열 수도 있을 것이다. 합창단원인 노인들과 함께 노래하면서 서서히 우정을 쌓아가며, 아내를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수는 있을 것이다. 뒤틀리기만 했던 아들과의 관계도 다시 들여다보고 반성하면서 회복할 기회를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업>의 칼 할아버지처럼 사는 데 바빠 잊고 살았던 젊은 시절의 꿈을 찾아 모험의 길에 나설 수도 있을 것이다.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 한부모 가정의 외로운 소년의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할머니는 일학년>(2012)의 오난이 할머니처럼 남편도 아들도 모두 잃었지만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어린 소녀와의 예기치 못한 동거를 통해 서로 소통해가면서 마음의 상처를 지워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사고로 죽은 아들이 남긴 편지를 읽기 위해 한글을 배우려고 마음먹은 뒤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하는 할머니, 이처럼 배움의 열정을 불사를 수도 있을 것이다.

 

영화는 외로운 노인들이 그 힘겨운 시간을 어떻게 좌충우돌하면서도 지혜롭게 헤쳐나가는지 나름의 시나리오를 쓴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죽어 홀로 된 외로운 노인들이 새로운 또래 친구들을 사귀고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도와주는 등, 새로운 인간 관계를 맺어나가면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상실감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상이 모두 끝난 것처럼 외로움 속으로 스스로를 격리하고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지 말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밖으로 끌어내면서 함께 노래하거나 배우지 못했던 것을 배우는 등,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즐거움을 찾아보라고 충고한다. 무엇보다 노인이라고 해서 남의 도움만 받는 나약한 존재는 아니라는 것,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여전히 보살피고 도와줄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일깨워준다. 영화가 전하는, 노년의 외로움을 떨쳐낼 수 있는 비법들은 그렇다.

 

고독이 들려주는 내면의 소리 

 

▲  노년은 신을 발견하는 긍정적 시간이라고 이야기한 조앤 치티스터 수녀의 <세월이 주는 선물> 
 

그런데 노년의 외로움을 반드시 떨쳐내야 하는 부정적인 것으로만 몰아도 되나? 외로움이야말로 자신과 진정으로 하나가 되어 참된 자아를 만날 수 있는 아름다운 기회라고 하지 않는가. <세월이 주는 선물>(문학수첩, 2010)에서 조앤 치티스터 수녀 할머니는 외로운 노년이야말로 신을 발견하고 영혼을 위해 마련된 긍정적인 시간일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고 자기 속으로 집중해서 안에서 울려 나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시간, 지나온 삶을 차분히 되돌아보고 자신을 진지하게 들여다보며 스스로를,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반성하는 시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유한한 자아가 신의 조각, 신의 씨앗을 품고 있다는 각성, 우주•대자연의 일부라는 자각, 꽉 찬 나를 비워내는 순수한 경험은 명상에 빠져들 수 있는 고독한 시간 없이 깨닫기 어려운 법이다. 진정한 자아와 대면한다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무한한 신을 향해, 또 다른 사람에게는 광활한 우주, 근원의 자연을 향해 길을 내는 것이리라.

 

노년의 고독한 시간을 내면을 탐구하고 존재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로 만들 수 있다면, 그 시간이 의미 있고 풍성해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젊은 시절에는 밖을 향해 분주하다 보니 자기 안을 들여다볼 여유를 갖지 못했다면 노년이야말로 진정으로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고독한 노년은 오히려 행운일 수도 있겠다.

 

애착을 가졌던 것들에 마음을 비우는 연습

 

그럼에도 큰 변화들을 마주해야 하는 노년의 진실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최근 들어 부쩍 물건을 버리거나 나누고 자료를 정리하는 데 시간을 들인다. 아직은 통념상 노인이라 할 만한 나이에 이르지 않았지만,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니 미리미리 가벼워질 준비를 하자는 마음에서이다. 쥐고 있던 것을 스스로 손에서 놓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물건이건 인간 관계이건 공간이건 애착을 가진 것에 대해 집착하는 마음을 끊는 것이 어디 하루아침에 되겠나.

 

하지만 죽음 앞에서 애착, 집착을 고집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인생살이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이니 나이가 더 든다면 지금보다 더 좁은 공간에서 더 적은 물건으로 살아가는 것이 맞다 싶다. 물건에 대해 조금씩 마음을 비우게 되면, 공간, 더 나아가서 사람에 대해서도 더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나이가 들어 외로움이 성큼 다가올 때 두려움 없이 그 고독을 맞이하고 죽음 앞에서도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것도 같다.

 

인생의 황혼기에 맞게 되는 크고 작은 변화들, 그 변화가 주는 외로움이 너무 버거운 짐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 이경신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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