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모퉁이에서 책읽기> 우리가 사랑한 시인 허수경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고 쓰는 사람, 안미선이 삶에 영감을 준 책에 관해 풀어내는 “모퉁이에서 책읽기”. 이 칼럼은 한국여성민우회 블로그 ‘민우트러블’에도 공동 게재됩니다. www.ildaro.com 
 

▲ 허수경 시집 <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 지성사) 
 
내가 사랑한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건 시인 허수경을 좋아했다는 것이다. 그가 ‘허수경을 좋아한다’고 나에게 먼저 말했거나, 내가 ‘허수경을 좋아하냐’고 물었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내가 그로 하여금 허수경을 좋아하도록 만들고 말았다.
 
허수경은 문학을 창작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에게 우상 같은 시인이었다. 처음 만난 시인 허수경을 이해하려고 나는 꽤 애를 썼다. 캄캄한 자취방에 앉아 시집을 읽고 또 읽었다. 실은 낯설고 이해할 수 없었던 허무의 노래를 기를 쓰고 이해하려고 했다.
 
우리는 객지에 나와 느낄 수 있는 일말의 쓸쓸함마저 허수경의 시구를 통해 노래하고 밤새 술을 마시며 외로움을 확대했다. 사랑이 끝나면, 우리 사이에 아무런 공통점이 남아 있지 않았지만 우리가 헤어진 후 함께 가지게 된 것이 있었다. 그것이 허수경이었다. 스무 살이었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그의 노래였다.
 
무심한 구름 - 허수경
 
한-, 청평쯤 가서 매운 생선국에 밥 말아먹는다
내가 술을 마셨나 아무 마음도 없이 몸이 변하는 구름
늙은 여자 몇이 젊은 사내 하나 데리고 와 논다
젊은 놈은 그늘에서 장고만 치는데 여자는 뙤약볕에서 울면서 논다
이룰 수 없는 그대와의 사랑이라는 게지!
시들한 인생의 살찐 배가 출렁인다
저기도 세월이 있다네 일테면 마음의 기름 같은 거
천변만화의 무심이 나에게 있다면
상처받은 마음이 몸을 치유시킬 수 있을랑가
그때도 그랬죠 뿔이 있으니 소라는 걸 알았죠 갈기가 있으니 말이란 걸 알았죠
그렇다면 몸이 있으니 마음이라는 걸 알았나
생선죽에 풀죽은 쑥갓을 건져내며
눈가에 차오른 술을 거둬내며 본다 무심하게 건너가버린 시절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었던 시절
 
-<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 지성사)에서
 
취업을 했을 때, 꽤 문학 애호가였던 과장님이 한마디 했다.
“이른 나이에 일찍 허무를 보아버린 것, 허수경의 시는 그런 거잖아요.”
 
나는 그때부터 궁금했다. 허수경은 어떻게 그렇게 일찍 허무를 알아버렸을까. 무엇이 그 도저한, 바닥없는 허무 속으로 뛰어내리게 했을까.
 
내가 서른이 지나고 마흔이 가까워지면서, ‘허무’라는 말이 가릴 수 있는 비겁함과, ‘허무’라는 말이 숨기고 있는 다양한 색깔과, ‘허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폭력까지 알게 되면서, 하나의 단어를 방패삼아 뒤에 숨기고 있는, 사람마다 다른 저마다의 것을 낱낱이 까발리지 않으면 우리는 서로에게 절대 정직할 수 없다는 것을, 몸으로 알게 되면서 나는 다시 속으로 물었다.
 
‘허수경, 당신의 허무는, 결국은 당신만의 허무였을 그것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그 속엔 섣부른 언어의 감상에 젖었다가, 만만치 않은 인생에 후려치인 듯한 원망마저 있었다.
 
<길모퉁이의 중국식당>은 그이가 쓴 자전적 수필집이다. 헌책방에서 맨 아래 책꽂이에 꽂힌 책을 내려다보고 한참만에 집어 들었다. 시인은 독일에 가서 고고학을 공부하고 있다. 돌아와서 천천히 읽었다. 책의 맨 마지막장에 이 글이 있었다. 

▲ 허수경 산문집 <길모퉁이의 중국식당>(문학동네) 
 
우울했던 소녀
 
사춘기 시절, 나는 뚱뚱하고 우울한 소녀였다. 뚱뚱하다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는 것이 싫어서 자주 구석진 곳에 숨어 있었다. 숨어 있다고 한들 뚱뚱한 나를 다 숨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숨길 수가 없어서 어디에 갔다가 누가 뚱보라고 놀리면 나는 집으로 돌아와 어두운 곳에서 책을 읽었다. 책을 읽는데 누군가 나를 부르면 그렇게 싫었다. 세상이 나를 부르는 소리는 내 뚱뚱한 실존을 드러내라고 채근질을 하는 소리 같았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 놀림을 받아 마음이 쓰라릴 때면 나는 또 구석에 앉아서 단팥이 들어간 빵을 집어먹었다. 더 뚱뚱해질까봐 겁이 나는데도 먹었다. 빈속에 단맛이 들어가면 슬프고 외로웠다. 나는 그때마다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때 그 천장을 올려다보던 마음이 내가 문학으로 가는 모퉁이었다. 나는 혼자였고 외롭고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놀림을 당하는 실존을 가졌다.
그것이 내 문학의 시작이었다.”

-<길모퉁이의 중국식당>(문학동네)에서
 
나는 그 마지막 구절을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문학은, 그랬다. 문학은 남자가 없고 여자가 없고 문학 작가는 여자이기 전에 남자이기 전에 작가인 것이고, 작품은 하나의 전범이 되고 달달 외우고 뜻도 모르고 울고 웃는 어떤 것이었지만, 작가는 남자로 여자로 자라는 것이고 남자가 쓴 작품이 있고 여자가 쓴 작품이 있고, 남자가 이해하는 작품이 있고 여자가 이해하는 작품이 있고, 작가가 뜻하지 않게 여자에게든 남자에게든 선물로 물려주는 작품이 있는 것이다.
 
뚱뚱하다고 놀림 받는 우울한 어린 소녀가 단팥빵을 씹다가 눈물을 삼키며 천정을 올려다보고 떠올린 낮고 가라앉은 말들, 아무도 위로하지 않고 격려해주지 않은 자리에서 어린 여자애가 스스로 자신을 위무해주려고 만들어내었던 말들, 자신이 받은 차별과 고통이 암호처럼 아로새겨져 있는, 오롯이 그이의 말일 수밖에 없는, 누구도 그대로 이해할 수 없는 그 시를, 나는 비로소 이해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허수경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안미선 www.ildaro.com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