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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에서 책읽기> 에이드리언 리치 “문턱 너머 저편”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고 쓰는 사람, 안미선이 삶에 영감을 준 책에 관해 풀어내는 “모퉁이에서 책읽기”. 이 칼럼은 한국여성민우회 블로그 ‘민우트러블’에도 공동 게재됩니다. www.ildaro.com
가장자리에 길을 낸 시인, 에이드리언 리치
내가 아이를 가졌을 때 산 책이 에이드리언 리치(Adrienne Rich, 1929-2012, 미국의 시인이자 페미니스트 이론가로 ‘강제적 이성애’ 개념을 규정한 것으로 유명하다)의 <더이상 어머니는 없다 -모성의 신화에 대한 반성>(Of Woman Born -Motherhood as Experience and Institution)이었다.
어떤 일이 생기면 그 무궁무진한 경험 속으로 들어가 탐험할 생각보다는 관련된 책을 읽고 이해하려는 것이 오랜 버릇이고 보면, 내 딴엔 그럴싸했다. 안 좋은 점은, 경험을 통해 느끼는 것보다 타인의 분석을 경탄하며 받아들이는 나머지, 내가 정작 어떤 경험을 했는지는 까먹고 만다는 것이다. 나중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고심한 끝에 파헤친 것이 고사 직전의 말라비틀어진 보잘 것 없는 씨앗 같은 모습인 걸 보고 경악할 때도 있다.
책은 술술 읽히기보다 고군분투하며 읽은 편이었다. 시간이 여의치 않거나 이해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마치 그게 나를 찾는 길인 양 기를 쓰고 읽어댔다. 리치의 책을 읽고 모성에 대해 정리하고는(그렇게 간단히!) 아기를 포대기에 업고 종일 서성대며 우에노 치즈코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읽고, 아이가 백일 무렵 동생이 나에게 선물로 준 <페미니즘의 도전>(정희진)을 읽고, 엄마 노릇에 탈진하던 무렵 <페미니스트라는 낙인>(조주은)을 읽었다. 쓰러져 병원 응급실에 가던 날 아침에는 헌책방에서 산 <결혼 실험실>(김만옥)을 읽고 있었다.
그래서 나의 기억은 누군가를 만났고 누구와 어떤 일이 있었는가 보다는 그때 어떤 책을 읽었고 그 책의 내용이 어땠는가가 더 생생했다. 애인을 기다리던 날 지하철에서 읽은 소설이며, 밤새 아픈 아이를 돌볼 때 읽은 소설이며, 누군가 헤어지고 나서 읽은 책 따위가 더 기억에 남았다. 그렇게 책은 현실에서 겪는 실망을 감추어주었고 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덮어주었다. 그래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놔두고 책만 파고든 모습이 후회스러울 때가 있다. 세상을 단어로 보고 단어를 세상으로 해석하느라 내가 놓친 형형한 색깔의 세상을 뒤늦게 그리워한다.
커다란 헤어짐 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버려도 아깝지 않은 허전한 마음이 되었을 때 서점의 책꽂이 앞에서 묻는다. ‘나는 다시 책을 읽을 수 있을까? 책이 세상이라고 믿었던 순진한 그때처럼 책을 읽을 수 있을까?’
▲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집 <문턱 너머 저편>
그때 눈에 들어온 책이 <문턱 너머 저편>(“The Fact of a Doorframe”, 한지희 역, 문학과지성사, 2011)이었다. 이 시집의 작가가 전에 읽은 <더이상 어머니는 없다>의 저자인지 모르고 이름이 왠지 낯익다 싶었다. 제목이 마음에 와 닿았다. 여자로 산 시인이 ‘문턱 너머 저편’을 말할 때, 여자로 사는 독자들은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공명하지 않을까?
나는 그 시집을 소중히 샀다. 이런 책이 번역된 데 감사하며, 내가 사는 첫 번째 책이라고 느끼며 샀다. 마음이 아물 수 있기를, 의미가 없어 보이는 세상에 의미가 있다고 이 책이 말해주기를(많은 책들이 그러기 위해 태어나듯), 네가 혼자가 아니라고 그리고 앞으로 함께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다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당신은
이 문을 통과하든지
못하든지 할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통과하더라도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위험을 언제나 각오하십시오
모든 것이 당신을 이중적으로 쳐다볼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뒤를 돌아보고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십시오
만일 당신이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가치 있게 사는 것이
가능합니다
당신의 태도를 유지하면서
당신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용감하게 죽는 것도요
하지만 많은 것이 당신을 장님으로 만들 것입니다
많은 것이 당신을 스쳐 지나갈 것입니다
어떤 비용을 치를지 누가 알겠습니까?
문 자체는
어떤 약속도 해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단지 문일 뿐이니까요
-<장래의 이민자들이여, 부디 주목하십시오> 전문
나는 시인이 맞닥뜨린 문을 만나고, 그 경계에서 사유하고, 그 문을 넘는 시인을 만났다. 어떤 비용을 치르든 두려워하지 않고 나직하고 사려 깊은 목소리로, 가슴속 숨겨진 깊은 울림의 목소리로 그녀는 말했다. ‘예술은 경계를 넘어 전달되고, 이방인을 인식하게 해주는, 그리고 만남의 광장을 모색하게 하는 실제적인 차원이 있다’(서문)고 말이다.
‘그런 삶이라도 거기 있었고, 그것은 나의 것’
경계에 다다랐을 때, 변태하듯 결단을 내려야 할 때, 그리고 공동의 언어를 소망할 때 리치의 시를 읽게 된다. 그녀 스스로 여성에게 덧씌워진 굴레를 체험한 여성이었으며, 문을 나온 여성이었으며, 새로운 공동체를 꿈꾸고 세계의 가장자리에서 길을 내기로 선택한 여성이었다.
‘양파를 썰어 담는 그릇 속에 떨어지는 오래된 눈물’을 마주한 이였으며, ‘싱크대에서 커피포트를 쿵쾅쿵쾅 씻을 때’ ‘스스로를 돌봐, 네가 다른 사람들을 구해줄 순 없어.’라고 천사의 꾸짖는 목소리를 듣는 여성이었다. 우는 아이 앞에서 ‘엄마가, 난 아닌가 봐, 그저 여자, 그리고 악몽인가 봐.’ 공포에 맥이 풀리는 여성이었으며,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과 함께 잠을 자며’ ‘예술가가 되고 싶어 하며’ 세상으로 나아가 그것을 바꾸기를 원한다는 것을 잊지 않은 여성이었다.
책을 읽을 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말하는 목소리 때문이고, 그것이 또한 책을 읽는 이유가 되었다. 그래서 책은 도달하지 않은 꿈의 이야기였고, 또한 이미 만들어진 아름다운 세상의 이야기였다. 리치의 시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처럼.
기억에 상처를 입었지만
우리는 시간을 지키듯 이곳을 지키고 있어요
우리가 사랑했던 몇몇 사람이 변절하고 떠났을 때,
또 우리 자신이 너무 일찍 죽음의 재촉을 받았을 때
우리는 어떤 것부터 조금 포기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기억은 이지러지는 달처럼 반복을 하잖아요.
하지만 우리는 다른 종류의 평화를 만들어냈어요.
그리고 신록이 우거진 곳을 걷는답니다.
과거의 우리에게서 용서를 받고,
용서하는 법을 배우면서요. 올해는 사과의
단맛이 더하네요. 문이 낡아 허물어질 것 같지만
그래도 (당장) 바꿀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죄인들의 땅에서 온 편지>에서
상처를 입고도, 시간을 지키듯 떠나지 않고 이곳에 남아 다른 종류의 평화를 만들 수 있기를. 과거의 우리를 용서하고 용서받으며 신록이 우거진 곳을 걸을 수 있기를. 리치가 남긴 전언처럼.
‘그런 삶이라도 거기 있었고, 그것은 나의 것’(<생존을 위한 필수품>의 한 구절)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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