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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맙이 만난 베트남 사회적기업>19. 히우리엠 공정여행클럽
공정여행과 공정무역을 통해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사회적 기업 ‘아맙’(A-MAP)이 베트남 곳곳에서 지역공동체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기업과 모임을 소개하는 글을 연재합니다. 필자 구수정씨는 아맙 베트남 본부장입니다. www.ildaro.com
▮ 히우리엠 공정여행 클럽 (Hieu Liem Tourism @Community Travel)
히우리엠(Hieu Liem) 공정여행 클럽은 베트남 남부 동나이성 외곽에 있는 가난한 농촌마을 ‘히우리엠’의 생태적, 문화적 가치를 알리고 지속가능한 지역 발전을 위해 2012년 4월 설립되었다. 유네스코가 생물권 보전 지역으로 지정한 깟띠엔 숲과 찌안 호수를 탐방하고, 농가 홈스테이를 운영하고, 농장 일을 돕는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
▲ 베트남 소수민족 쩌로(Choro)족의 전통가옥 냐자이(Nha Dai) 홈스테이. © 히우리엠 공정여행 클럽
청년, 대도시 스펙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오다
히우리엠 공정여행 클럽의 창립자 히우는 28살 청년이었다. 친구들이 고향을 떠나 하노이, 호치민시와 같은 대도시에서 한창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고 있을 때, 그는 오히려 벽지 농촌인 고향으로 돌아와 공정여행 사업을 시작했다. 요즘 베트남 젊은이들에게서는 정말 보기 드문 선택이다.
공정여행을 꾸리게 된 계기를 물어보자, 그는 가난하고 헐벗었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가난의 설움은 그의 몸 안 깊숙이 배어있는 듯했다. 인터뷰 도중 눈물이 터져 몇 번이고 화장실로 달려가곤 했다. 공정여행의 꿈을 품에 안고 가난한 고향으로 돌아온 베트남 청년의 이야기. 이번 <아맙> 인터뷰는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한국의 청년들에게도 힘이 되는 이야기가 될 것 같다.
구수정(아맙 베트남 본부장. 이하 ‘수정’): 동나이성에 있는 히우리엠 마을에 대해서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어요. 사실 동나이성은 외국인 투자가 집중되는 곳으로만 알려져 있을 뿐 여행지로는 낯선 곳이어서 이번 인터뷰에 대한 기대가 더욱 크네요.
응웬 딘 히우(히우리엠 공정여행 클럽 대표. 이하 ‘히우’): 히우리엠 마을은 제 고향이에요. 동나이성에서도 외곽에 위치한 벽지 농촌의 가난한 마을이죠. 외국인 여행자들은 물론 베트남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에요. 어쩌면 그래서 마을의 다양한 문화적, 생태적 가치가 보존될 수 있었는지도 모르지요.
수정: 히우는 정치학을 전공했다고 들었어요. 공정여행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아주 다른 삶을 살았을 것 같아요.
▲응웬 딘 히우 <히우리엠 공정여행클럽> 대표 ©아맙
히우: 베트남 전쟁 때 상이군인이 된 제 아버지는 몸 안에 박힌 파편 때문에 평생 몸의 절반 이상을 쓰지 못하는 상태로 사셨고, 어머니가 저희 4남매를 도맡아 키웠습니다. 저는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다녔는데, 자전거 주차비 500동(약 20원)이 없어 삼십리 길을 걸어서 오가야 하는 날도 많았죠. 14살 때부터 건설 현장에서 잡역부로 일하며 집안을 도왔어요.
밥벌이와 학업을 병행해야 했기 때문에 공부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수학이나 영어 과목은 성적이 좋을 수 없었어요. 그래도 독학이 가능한 정치, 사회, 지리 등의 문과 과목은 성적이 좋아 다행히 호치민시 인문사회과학대학교 정치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죠. 살아생전에 아버지께서 ‘너는 공산(共産)의 아들이다’라는 말씀을 자주하셨는데, 학과 선택에는 아버지의 영향도 컸던 것 같아요.
형제 중에는 막내였던 저만 대학에 진학했는데요, 형과 누나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죠. 대학생이 되어서도 등록금을 마련하기 어려워 친구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주기도 했어요. 보통 정치학과를 졸업하면 정부기관에서 일하게 되는데, 너무 관료적이고 구태의연한 조직이 싫어서 다른 직업을 찾고 싶었습니다. 졸업 후 1년간은 대형마트에서 일했고, 그후 일반 여행사에서 3년 정도 일했어요.
수정: 호치민시의 여행사에서 일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공정여행 사업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뭐였나요?
히우: 요즘 베트남 청년들의 진로 선택은 지나치게 현실적이고 획일화되어 있어요. 다들 대도시로 건너가 대학을 졸업하고, 연봉이 높은 외국인 기업에 취직을 하거나, 사업가가 되는 게 꿈이죠. 반면 농촌에는 아이와 노인들만 남아 있을 뿐 젊은 일손은 찾아보기 힘들어요.
전 호치민시에 살면서도 늘 가난한 제 농촌마을과 식구들이 눈에 밟혔고,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가 지역공동체에 기여하는 삶을 살겠다는 꿈을 간직하고 있었어요. 어느 날 호이안에서 ‘에코 투어’(eco tour)를 꾸리고 있는 한 여행사에 대한 신문기사를 접하고 처음 공정여행에 대해 알게 되었죠. 호이안 인근의 농어촌 마을에서 진행되는 농사 체험, 고기잡이 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제 고향에서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어요.
그후 공정여행 관련 자료를 모으고, 사업 구상을 하고, 영업 허가를 받고, 주민들을 설득하기 시작했죠. 홈스테이를 위해 화장실과 샤워실을 개조하고, 웹사이트를 개설하는 등 공정여행에 필요한 아주 기본적인 인프라를 구축하고 2012년에야 히우리엠 공정여행 클럽을 창립했습니다.
배고픈 주민에게 포획, 사냥을 금한다고 환경이 보호될까
수정: 공정여행을 꾸리고 있는 히우리엠 마을에 대해 소개해주세요.
▲동나이 자연-문화보전지구 트래킹
히우: 히우리엠 마을은 동나이성 빈끄우현에 위치한 농촌마을이에요. 베트남에서 가장 긴 강인 동나이강이 흐르는 마을로, 동나이 자연-문화 보전 지구와 3만2천 헥타르 면적의 찌안 호수와 늪 지대, 그리고 원시림을 간직하고 있는 깟띠엔 국립공원과 맞닿아 있어요. 유네스코로부터 생물권 보전 지역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해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많이 낙후되어 있지요. 주민들 대부분은 농사를 짓거나 호수에서 고기잡이하며 살아가요. 예로부터 사슴이 많이 사는 들판이라 하여 동나이(Dong Nai)라는 지명이 붙여진 만큼 사슴 키우는 농가도 많아요. 마을 주변을 숲이 둘러싸고 있는데, 예전엔 화전을 일구거나 벌목, 사냥으로 생계를 꾸리는 주민들도 많았어요. 하지만 숲이 자연보호 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숲에 기대어 살던 주민들은 아주 적은 보상금을 받고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만 했지요.
수정: 히우리엠 공정여행 클럽의 창립 제안서를 보면, 가난한 주민들의 화전과 사냥, 그리고 불법 어획으로 숲과 호수의 생태계가 많이 파괴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히우: 예전에는 숲이 나무로 울창하고 새와 들짐승들로 넘쳐났어요. 강과 호수에는 물고기와 민물새우, 물새들이 아주 많았고요. 배고픔과 가난에 시달리던 주민들이 숲과 호수를 찾게된 건 당연한 일이었죠. 그런데 무분별한 남획이 문제였어요. 화전이나 불법 사냥은 물론 지뢰, 전기 충격기(밧데리), 독약 등을 사용해 불과 몇 년 만에 숲과 호수의 자원들이 급격히 고갈되어 갔습니다.
급기야 정부가 자연보호 구역을 선포하고 유네스코나 세계야생생물기금에서도 관심을 가지면서 더 이상의 자연 파괴를 막기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지요. 하지만 주민들의 생계 유지와 지속가능한 삶에 대한 고민이 전제되지 않는 채 진행되는 환경보호 정책은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고 봅니다. 주민들의 환경 인식이 낮은 것도 문제지만, 보다 근원적인 문제는 그들에게 안정적인 생계 수단이 없었다는 거잖아요.
지금도 숲에서는 불법 사냥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정부는 그저 단속과 처벌에만 신경쓸 뿐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어요. 전 공정여행을 통해 주민들의 생계를 돕고 지역 경제를 살찌우게 된다면, 환경 파괴도 현격히 줄고 결국 생태를 보호하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히우리엠 공정여행 클럽을 ‘사람과 자연’을 함께 살찌우는 상생의 사업으로 키워가고 싶어요.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는 여행
수정: 히우리엠 마을에서는 어떤 공정여행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나요?
히우: 주로 자전거를 이용해 마을과 숲을 탐방하는 여행을 꾸리고 있어요. 찌안 호수의 고기잡이 체험, 깟띠엔 원시림 트래킹, 사슴 농장 탐방, 승마 체험, 농가 홈스테이, 농가 일손 돕기, 소수민족 마을 탐방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고요. 양봉 농가, 귀뚜라미 농가, 난초 재배 농가, 깟띠엔 숲의 묘목 농장을 방문하기도 해요.
모든 여행 프로그램의 핵심은 여행자를 위해 인위적으로 꾸며진 풍경이 아닌, 주민들의 있는 그대로의 삶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여행이라는 것, 그리고 현지인들과 정겨운 어울림과 교감이 있는 여행을 꾸린다는 것이지요.
수정: 히우리엠 공정여행만의 매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여행자들의 반응이 가장 좋았던 프로그램은요?
▲ 찌안 호수 고기잡이 체험. © 히우리엠 공정여행 클럽
히우: 히우리엠은 관광지로 개발된 곳이 아니기 때문에 베트남 농촌마을 본연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낄 수 있는 곳이에요. 여행자들은 원시림 트래킹과 홈스테이가 가장 좋았다고 해요. 히우리엠이 품고 있는 아름다운 자연도 강점이지만, 여행자들은 무엇보다 현지 주민들과의 크고 작은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 같아요. 가난하지만 구수한 정이 넘치는 이곳 주민들은 여행자들을 가족처럼 대하지요. 히우리엠 공정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수정: 현재 히우리엠 공정여행 클럽은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나요?
히우: 창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 아직은 소규모이고 개인사업자로 등록해 활동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와 제 가족, 그리고 웹사이트 운영과 가이드를 맡고 있는 친구가 한 명 있고요. 홈스테이에 참여하고 있는 농가, 사슴과 말 등을 키우는 농장, 채소와 과일 재배 농장 등이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고요. 마을 주민들이 자원봉사자로 결합되어 있지요.
고요한 숲과 호수의 마을, 히우리엠으로 오세요!
수정: 공정여행 사업을 꾸리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히우: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고 조직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죠. 공정여행이라는 개념도 낯설고, 히우리엠이 관광지가 아니라 많은 여행자들이 드나드는 것도 아니라서 주민들을 여행 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하는 일이 쉽지 않았지요. 홈스테이 하나를 조직하려 해도 화장실, 샤워실 등을 개조해야 하는데, 처음엔 주민들이 선뜻 투자에 나서지 않았어요.
마을에서 공정여행 사업을 꾸리면서 비닐봉지 사용을 줄이고, 쓰레기 분리 수거를 하고, 오토바이 대신 자전거를 타는 등 환경 보호 캠페인도 함께 벌이고 있는데요. 히우리엠을 청정마을로 가꾸어가려는 노력은 어느 한 집의 참여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고 전체 주민의 협력이 필요한 일이지요. 아직 많은 수는 아니지만 외국 여행자들도 이 마을을 찾고 공정여행이 가시화되면서, 다행히 마을 사람들의 인식도 변하고 참여 가구 수가 점차 늘고 있어요.
수정: 아직 히우리엠을 찾은 한국인 여행자는 없었다죠? 한국의 <아맙> 회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히우: 호치민시에 가면 코리아타운도 형성되어 있고, 최근엔 베트남을 여행하는 외국 관광객들 중 한국인 여행자 수가 가장 많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인터뷰를 통해 한국에 히우리엠 마을이 소개된다는 게 아주 기쁘고, 약간의 기대도 있는 게 사실이에요. 이곳에는 깟띠엔 국립공원도 있어서 오토바이나 자전거 트래킹을 하는 유럽 여행자들을 마주치는 일은 있는데, 한국인 여행자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어요.
히우리엠은 호치민시에서 채 두 시간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때묻지 않은 자연과 더불어 사는 농민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지요. 하롱베이나 사파와 같이 관광객들로 붐비는 유명 여행지에서는 접하기 힘든 매력이 감춰져 있죠. 히우리엠의 아름다운 숲과 호수를 한국인 여행자들과도 함께 거닐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네요.
* 기록 정리: 권현우 (아맙 마케팅 팀장)
* 아맙 카페: http://cafe.daum.net/doanhnhanxahoi * 연락처: 070-7554-5670 (베트남 사무소)
* 후원 계좌: 신한 110-313-503660 (예금주: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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