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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맙이 만난 베트남 사회적기업> 호앙랑 마술클럽
공정여행과 공정무역을 통해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사회적 기업 ‘아맙’(A-MAP)이 베트남 곳곳에서 지역공동체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기업과 모임을 소개하는 글을 연재합니다. 필자 구수정씨는 아맙 베트남 본부장입니다.
▮ 호앙랑 마술클럽 (Hoang Lang Magic Club)
마술사 호앙 랑이 2008년에 설립한 ‘호앙랑 마술클럽’은 마술사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무료로 마술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10여 명의 학생들이 클럽에 소속되어 있으며, 베트남 남부에서 활동하는 50여 개 자원봉사단체와 결합하여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자선 마술 공연을 펼치고 있다.
▲ 호앙랑 마술클럽은 <귀한마음 자원봉사 요리단>과 함께 붕따우의 픅띤 마을에서 자선 공연을 했다.
마술에 빠진 가난한 소년, 마술사가 되다
1970년대 베트남 남부 판티엣의 작은 어촌 마을. 모두가 굶주리고 가난했던 시절, 한 소년이 마술을 만났다. 시장통에 자리를 잡고 마술과 묘기를 선보이며 약을 파는 약장수들, 시시껄렁한 마술을 보여주며 구걸을 하는 거지들. 소년은 북적대는 구경꾼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무언가에 홀린 듯이 그들의 몸동작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바라보았다. 마술이 끝나고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면 소년은 혼자서 기억을 더듬어 마술 연습을 했다. 그렇게 소년 ‘랑’은 마술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40년 뒤, 마술사 호앙 랑은 가난한 농촌 마을의 어린이들 앞에 섰다. 우스꽝스런 피에로 옷을 입은 그가 근사한 마술복을 입은 제자와 함께 공연을 펼쳤다. 빈손에서 장미가 피어나고 새하얀 비둘기가 날아오르면 아이들은 환한 웃음꽃을 피웠다. 마술을 좋아하는 아이들과 젊은이들을 위해, 오늘도 어디선가 마술 지팡이를 휘두르고 있을 마술사 호앙 랑.
기량이 뛰어난 마술보다는 사람들과 더불어 웃고 즐기는 행복한 마술을 위해 살아온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구수정(아맙 베트남 본부장. 이하 ‘수정’): 마술사를 만나니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마음이 설레요. 제가 어릴 적엔 한국에 마술과 서커스가 성행했지요. 예전에는 베트남에서도 마술과 서커스가 큰 인기를 끌었다고 들었습니다.
▲ <호앙랑 마술클럽> 대표 호앙 랑 © 아맙
호앙 랑(호앙랑 마술클럽 대표. 이하 ‘랑’): 1960~1970년대에 북베트남에서는 서커스가 성행했고 남베트남에서는 마술이 유행했어요. 베트남이 통일되고 마술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되는데요. 사람들은 마술을 단순한 장사꾼들의 상술, 사기행각, 눈속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죠. 반면, 서커스는 통일 이후에도 꾸준히 발전을 거듭해 1985년까지 전성기를 누렸어요.
지금도 하노이에는 ‘베트남 서커스연맹’(Viet Nam Circus Federation)과 ‘베트남 묘기와 서커스 예술중등학교’(Viet Nam Circus Arts And Vaudeville Secondary School)가 있어 그 맥을 이어오고 있지요. 반면, 마술 관련 단체나 학교는 전무하죠. 서커스와 마술이 한창 성행하던 시절에는 가수보다 마술사의 몸값이 더 높았습니다.
1985년 이후 사람들이 노래나 경극을 더 좋아하게 되면서, 서커스와 마술은 무대 뒤로 밀려나게 되었죠. 그러다 2008년부터는 텔레비전을 통해 마술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어요. 현재 베트남 국영방송인 VTV(Vietnam Television)에서 마술 관련 프로그램이 정규 편성되어 방영되고 있기도 합니다. 저도 출연한 적이 있지요.
모든 것을 전수해준 스승을 만나다
수정: 어린 시절부터 마술을 익혔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마술과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랑: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마술을 시작했어요. 처음엔 누군가로부터 정식으로 마술을 배운 게 아니라 마을을 찾아오는 마술단의 공연을 보고 어깨너머로 배워 친구들 앞에서 시연을 하곤 했지요. 학교에서도 제 재능을 알아보고 저를 어린이문화센터에 보내 마술을 배우도록 해줬어요. 5학년이 되었을 때 한 마술 공연단이 소문을 듣고 찾아와 저를 스카우트했어요. 그때부터 무대에 올라 공연도 하고 돈도 벌었지요.
당시엔 너무 어리기도 했고 정식으로 계약을 한 것도 아니라서 매일 저녁 공연이 끝나면 그저 집어주는 대로 돈을 받았을 뿐이지만, 어려운 집안살림에 약간의 보탬이 될 수 있었지요. 워낙 집이 가난한 터라 중학교 1학년 때부터 4년간은 방과 후면 마술 공연뿐만 아니라 구두 수리공으로 일을 해 돈을 벌었습니다.
수정: 마술을 전수해 준 스승님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분과는 어떻게 연을 맺게 되었나요?
랑: 베트남의 마술계에서는 보통 사제 관계를 찾아보기가 어렵지요. 특별한 마술 기술이나 비법 등을 다른 사람에게 공개하지 않고 후배나 제자를 두는 경우도 거의 없지요. 제가 어렸을 때 ‘호앙 리’라는 베트남 최고의 마술사가 있었는데 그분의 고향이 저와 같은 판티엣이었어요. 한번은 고향을 찾은 스승님이 마침 어린이문화센터에서 마술을 하고 있던 저를 발견하게 되었어요.
저의 마술을 보고는 언제 한번 자택으로 찾아오라고 주소를 남기셨더군요. 그때부터 제자가 되어 그분의 모든 마술을 전수받게 되었어요. 당시 최고의 마술이었던 신체분리 마술, 순간이동 마술과 현재 저의 장기이기도 한 비둘기 마술 등을 배웠지요. 나중에는 스승님과 함께 무대에 섰습니다. 제가 조수를 할 때도 있었고 스승님이 저의 조수가 되어주실 때도 있었어요.
한번은 스승님과 함께 무대에서 수건이 레코드판 구멍을 통과하면 색깔이 바뀌는 마술 공연을 펼친 적이 있습니다. 수건을 통과시킬 때마다 계속 레코드판을 바꿔 껴야 하는데 눈이 좋지 않았던 스승님이 실수로 판을 잘못 껴놓고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어요. 곧 관객에게 탄로가 날 위급한 상황이었는데, 제가 재빠른 손동작으로 제 마술을 하면서 동시에 스승님이 잘못 껴놓은 판까지 다시 제자리에 꽂아 놓았지요. 무사히 공연을 마친 스승님이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젠 더 가르칠 것이 없구나” 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납니다. 저는 그렇게 호앙 리 스승님 밑에서 3년 정도 마술을 배웠습니다.
해학과 희망을 담아, 관객과 소통하는 마술사
▲ 호앙 랑의 장기는 비둘기 마술이다. ©아맙
수정: 한때는 아예 마술 활동을 중단하고 어린이문화센터에서 일을 한 적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랑: 1985년 이후부터 마술의 인기가 떨어지고 사회적으로도 마술이 터부시되자, 공연이 줄어들고 마술에 필요한 장비나 기구를 마련하기도 어려울 지경이 되었죠. 마술사들이 생계를 위해 다른 일을 찾아 나서야 하는 암울한 시기였어요. 저도 어쩔 수 없이 한동안 어린이문화센터의 사업부에서 프로그램 기획이나 무대, 음향 스텝으로 일했습니다. 외부에서 마술 공연을 하지는 못했지만 센터의 아이들에게 틈틈이 마술을 가르쳐 주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 즈음 아주 부잣집 학생 하나가 찾아와 마술을 가르쳐 달라고 조르더군요. 워낙 부유한 집의 자제인지라 돈 걱정 없이 공연을 조직할 수 있었고, 제자와 함께 공연을 펼치면서 저도 유명세를 타게 되었습니다. 그후 공연 요청이 쇄도했고 다시금 마술사로 복귀하게 되었지요.
수정: 마술사 호앙 랑의 전성기는 언제였나요?
랑: 제 인생에 두 번의 전성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첫 번째는 제가 열다섯 살 때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제가 감히 넘볼 수 없는 마술의 대가들이 활동하고 있었지만, 저 같이 어린 마술사는 적었던 탓에 ‘마술 신동’으로까지 불리며 인기를 구가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2010년에 두 번째 전성기가 왔습니다. 마술 클럽을 설립하고 마술 공연단을 꾸리게 되면서 다시 한번 유명세를 타게 되었지요.
사람들이 우리 마술단을 좋아하는 이유는 우리가 아주 특별한 마술을 펼쳐 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관객들을 함께 호흡하는 공연을 기획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앞에서 공연을 할 때는 아이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상상력을 자극하기 위해 재미와 해학성을 강조한 마술을 합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할 경우에는 마술로 작은 기적을 보여 줌으로써 “희망은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지요. 예를 들면 3달러짜리 샴푸를 아주 조그만 50센트짜리 샴푸로 만드는 마술 등을 펼치는 거지요. 가난한 사람들도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샴푸를 만들어 큰 호응을 얻기도 했습니다.
수정: 베트남의 전통을 반영한 마술이 있다면 소개해줄 수 있을까요?
랑: 베트남 전래동화 중에 ‘소년 범’(Thang Bom)이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범이라는 소년은 신비한 부채를 가지고 있었는데, 부채를 부치면서 ‘배고파’라고 말하면 푸짐한 밥상이 차려지고 ‘졸려’ 하면 으리으리한 집이 뚝딱 만들어졌어요. 요술램프와도 같은 부채였죠. 소년이 살던 마을의 한 부자 노인이 그 부채를 탐냈어요. 노인이 소년에게 소 세 마리와 물소 아홉 마리를 줄 테니 부채를 달라고 했는데 소년은 거절했어요. 노인이 계속해서 양어장을 주겠다, 농장을 주겠다, 집을 주겠다 온갖 제안을 하지만 소년은 모조리 거절했지요. 마지막으로 찹쌀떡을 주겠다고 하자 그제야 소년이 노인에게 부채를 건네주었다고 합니다. 어린 소년은 그 어떤 재물보다도 찹쌀떡이 더 좋았던 거죠.
이와 같은 ‘소년 범’ 이야기를 배경으로 마술 공연을 펼칩니다. 아이들에게 베트남의 전래동화를 들려주면서 이야기 속의 신비한 장면들을 마술로 보여주는 거지요. 베트남의 문화와 전통을 마술에 담아낸 공연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베트남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도 이 공연을 보여주고 싶네요.
“마술은 종합예술” 젊은이를 위한 마술 클럽을 열다
▲ 제자와 함께 무대에 선 마술사 호앙 랑 ©아맙
수정: 마술클럽을 창립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랑: 베트남에는 정식으로 마술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없습니다. 서커스와는 달리 학교도 없고 마술 관련 단체도 없어요. 뿐만 아니라 마술을 배우려면 아주 많은 비용이 들지요. 마술에는 여러 가지 장비와 도구들이 필요한데 베트남에서는 이것들이 생산되지 않아 굉장히 비쌉니다. 마술 공연을 위해 장비와 도구를 갖추고 무대를 만들고 마술복을 준비하는 데만 5천달러가 들기도 하죠. 좀더 복잡한 마술로 들어가면, 한 사람을 무대에서 10초간 사라지게 하는 데만 1만 달러 가량의 돈이 들거든요.
가난한 사람은 마술을 배우고 싶어도 꿈도 꿀 수 없는 게 현실입니다. 게다가 유명한 마술사들은 자신의 비법을 아무에게도 전수하지 않아 마술을 배우기가 더욱 어렵지요. 저는 일반인들에게도 마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마술을 좋아하고 마술에 재능이 있는 사람들에게 마술사가 되는 길을 열어주고 싶었지요. 특히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에게 마술을 가르치는 것이 중견 마술사인 저의 사명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2008년에 <호앙랑 마술클럽>을 열었어요. 제 집을 마술 연습장으로 사용하고 있고 수업료는 받지 않습니다. 현재 십여 명의 학생들이 클럽에서 활동하며 저와 함께 공연을 하고 있어요. 수강생 중에는 사범대 체육학과 학생, 엔지니어, 의사 등 다양한 친구들이 있습니다. 저는 수강생들에게 마술은 단순한 손기술이 아니라 과학을 이용한 종합예술이라고 강조합니다. 마술은 재빠른 손놀림을 이용한 간단한 눈속임이 아니라 과학적 원리와 특별한 노하우를 활용한 연기라고 말이지요.
제 밑에서 3개월 정도 훈련을 받으면 보통 마술의 기본기를 익히게 되는데 그때부터는 수강생을 가급적 무대에 올리려고 합니다. 마술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첫째도 능숙함이요 둘째도, 셋째도 능숙함인데 그것은 단순한 기량이 아니라 관객과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고 무대를 장악하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마술은 눈을 가리지만, 마음을 열어주죠
수정: 자원봉사단체와 결합하여 자선 마술 공연을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랑: 어린이날(6월 1일)에, <아맙>이 인터뷰했던 <귀한마음 자원봉사 요리단>과 함께 붕따우의 픅띤 마을을 다녀왔어요. 2000년경부터 자원봉사단체와 함께 자선 마술 공연을 시작해서 지금은 50여 단체의 각종 행사나 프로그램에서 마술을 선보이고 있지요. 저희 마술클럽의 수강생들도 함께하고 있고요. 주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마술 공연을 할 때가 많은데, 이때에는 총이나 칼 등 무기를 사용하거나 불을 삼키는 마술 등은 피하지요. 아이들은 마술과 마법을 혼동하기도 하고, 위험한 마술을 그대로 따라 하거나 흉내 내는 경우도 많거든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마술을 통해 폭력이나 반사회적 행위에 노출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고 있습니다.
또, 자원봉사단체들을 따라 지방 곳곳을 다니면서 정말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요. 그러다 보니 그저 마술 봉사에 그치는 게 아니라 제가 직접 나서서 돕게 되는 경우도 점점 늘고 있네요.
▲ 가난한 농촌 마을의 어린이들을 위해 자선 마술 공연을 이어가고 있는 마술사 호앙 랑. © 아맙
수정: 앞으로 호앙랑 마술클럽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싶은가요?
랑: 좀 먼 미래의 일이 되겠지만, 마술학교를 세우고 싶다는 포부를 가지고 있어요. 지금의 마술클럽을 정규적인 마술교육 코스를 갖춘 공간으로 키우고 싶어요. 최근 몇 년 사이에 수강생들이 많이 늘고 있는데, 현재 클럽의 여건으로는 마술 도구 사용법 등 단순한 기량을 전수하는 데 그치고 마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아까도 말했지만 마술 교육은 기술로서의 마술 외에도 음악, 무용, 연극, 시나리오, 연출 등 다양한 장르의 예술 교육과 도덕, 태도, 가치관 등의 인성 교육이 함께 이루어져야만 하지요. 마술클럽을 단순한 기법 전수가 아니라 종합 예술로서의 마술을 가르치고, 그 토양 위에서 배출된 마술사들과 함께 멋진 공연을 이어나갈 수 있는 센터로 발전시켜 나가고 싶어요.
마술은 사람들의 눈을 가리지만, 대신 사람들의 닫힌 마음을 열어주기도 하지요. 저는 마술이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 기록 정리: 권현우 (아맙 마케팅 팀장)
* 아맙 카페: http://cafe.daum.net/doanhnhanxahoi * 연락처: 070-7554-5670 (베트남 사무소)
* 후원 계좌: 신한 110-313-503660 (예금주: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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