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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맙이 만난 베트남 사회적기업> 21. 깻도안 
 

공정여행과 공정무역을 통해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사회적 기업 ‘아맙’(A-MAP)이 베트남 곳곳에서 지역공동체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적 기업과 모임을 소개하는 글을 연재합니다. 필자 구수정씨는 아맙 베트남 본부장입니다. www.ildaro.com 

 

깻도안 (Ket Doan)

 

베트남 서부 고원지대 럼동성 럼하현에 있는 <깻도안>은 양잠업과 커피 농사에 종사하는 농민들을 지원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1985년 <도안깻>이 창립되어 양잠업, 커피 재배, 공정무역 수공예품 생산 등의 사업을 해오다가 1999년 커피 재배를 하는 <도안깻>, 직업훈련과 공정여행 전문인 <헙딱쩨>, 그리고 양잠업과 수공예를 주로 하는 <깻도안>이 분리, 설립되었다. 20여 명의 직원이 활동하고 있는 <깻도안>은 1천여 명에 이르는 농민들에게 고품질의 누에를 분양하고 양잠업 전문 기술과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깻도안> 제1 누에 배양사무소 비띠엔(Vi Tien). 누에를 배양받기 위해 농민들이 모여있다.  © 아맙  

 

누에와 함께 울고 웃는 사람들

 

“이 녀석들이 바로 우리의 희망이랍니다.”


배양실에서 나온 누에 한 마리가 융 씨의 손바닥 위에서 하얗게 반짝인다. 나무판자 위에는 잘게 썰린 뽕잎을 먹어 치우고 있는 수백 마리 누에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두 번째 잠을 깨고 ‘3령’이 된 누에들로, 이제 곧 농민들에게 보내질 녀석들이다.

 

한 농민이 오토바이 뒤에 누에를 싣고 길을 떠날 채비를 마치자, 융 씨가 서둘러 다가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배웅한다. 길게 줄을 잇던 다른 농민들도 한 명씩 융 씨와 정답게 인사를 나누고 누에와 함께 집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깻도안>의 누에 배양소는 누에와 함께 농민들의 희망을 키우고 있다. 누에 한 마리에 울고 웃으며 지난 10여 년간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온 <깻도안>과 1천여 명의 농민들의 이야기를 <아맙> 인터뷰가 전한다.

 

구수정 (아맙 베트남 본부장, 이하 ‘수정’): 지난 번에 ‘청년개발핸디크래프트’를 인터뷰했을 때(기사 보기: 베트남 빈곤청년의 자립 일구는 공정무역) 만난 찌 씨를 통해 <깻도안>을 소개받았어요. 그 인연으로 이곳 럼동성까지 오게 되었네요. 선선한 날씨며, 눈앞에 펼쳐지는 커피 농장을 보니 럼동성에 온 게 실감이 납니다.  

 

뽕나무 모종을 든 응웬 안 웅. <깻도안>은 고품질의 누에 배양을 위한 뽕나무 종자 연구를 하고 있다.  © 아맙 
 
응웬 안 융 (깻도안 사장, 이하 ‘융’): 깻도안을 설립한 이래 한국 사람들과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찌 씨가 입이 닳도록 <아맙>에 대해 칭찬하더군요. 설레는 마음으로 이번 만남을 기다렸습니다.

 

수정: ‘청년개발핸디크래프트’와 마찬가지로 깻도안도 베트남 남부 연대&개발협동조합 소데코(SODECO, Solidarity & Development Co-operative)의 일원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융: 네, 깻도안은 1985년 호치민시 천주교단결위원회 산하 ‘도안깻’(Doan Ket, 단결이라는 뜻)이라는 단체에서 출발했어요. 커피 재배, 양잠업, 수공예를 비롯해 직업교육, 빈민 지원, 장학사업, 외국인여행자를 위한 생산지 탐방 등 여러 사업을 해왔지요. 그러다 1999년에 두 분의 창립자가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하면서, 양잠업을 전문으로 하는 <깻도안>, 커피 재배를 하는 <도안깻>, 직업훈련과 여행을 전문으로 하는 <헙딱쩨> 세 개 단체로 나뉘게 되지요. 이미 알고 계신 것처럼 깻도안은 소데코(SODECO)의 일원이고, 제가 소데코의 대표를 맡고 있기도 합니다.

 

베트남 농민들은 왜 양잠업을 선택했을까

 

수정: 융 씨는 북쪽이 고향이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베트남 중부 럼동성에서 양잠업을 하게 되었나요?

 

융: 저뿐 아니라 럼동성에는 북부 출신이 많이 살고 있어요. 1975년 전쟁이 끝난 후, 베트남 정부가 북부 사람들 250만 명을 이주시켜 신경제구역을 건설하는 정책을 추진했지요. 현재 ‘깻도안’이 자리하고 있는 럼동성의 럼하현도 그 중 하나입니다. 우리 가족도 그때 이주를 하게 되었고요.

 

럼하현은 럼동성의 ‘럼’과 하노이의 ‘하’를 합쳐서 지은 이름이지요. 당시 럼동성을 비롯한 서부 고원지대의 신경제구역에서는 정부 주도로 커피 농사나 양잠업이 추진되었고요.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숲만 무성하고 소수민족 말고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던 이곳에 북부인들이 길을 내고 집을 짓고 땅을 개간해 커피 농사를 지으며 지금의 럼동성을 일군 셈이지요.

 

수정: 베트남에서 양잠업이 가장 발달한 곳이 럼동성이라고 들었습니다. 현재 ‘깻도안’의 주요 사업이 양잠업이기도 한데요, 이곳에서 양잠업이 발달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융: 럼동성은 해발 900미터의 고원 지대에 위치해 온대성 기후가 나타나는 지역이에요. 베트남의 다른 곳에 비해 연중 온화한 기후를 보이기 때문에 양잠업을 하기에 아주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죠. 누에는 변온동물로 기후, 습도, 공기, 채광 등 기상에 아주 민감한 유충이에요.

 

1975년 이전부터 이미 럼동성의 바오록시에는 양잠업 연구센터가 있었고, 1985년 양잠업을 전문으로 하는 국영회사가 설립되면서 양잠업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했어요. ‘깻도안’이 있는 럼하현에서는 1986년부터 양잠업이 시작되었고요. 럼동성에 있는 농업용 토지 가운데 약 80퍼센트가 커피 재배지이고,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이 바로 뽕밭이에요.  

 

▲  럼동성 럼하현 뽕밭 풍경.     © 아맙  

 

수정: 다른 농업에 비해 양잠업은 어떠한 특징을 갖고 있나요? 베트남 농민들이 양잠업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요?

 

융: 양잠업은 가난한 농민들에게 큰 도움을 준 농업이에요. 커피 농사와 달리 초기 투자비용이 아주 적게 들어서 가난한 농민들도 쉽게 시작할 수 있죠. 농민들은 보통 아기누에를 데려다가 뽕잎을 먹여 길러 고치가 되면 내다 파는데, 이 과정이 빠르면 3개월에서 느리면 6개월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요. 커피 재배는 초기 투자비용도 아주 많이 드는 데다 3년은 기다려야 수익을 얻을 수 있죠. 그래서 농민들은 양잠업을 통해 생활에 필요한 수입을 확보하고, 커피 농사를 통해서는 목돈을 마련해 집을 짓거나 땅을 사곤 합니다. 양잠업 덕분에 극빈층에 속하는 많은 농민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요.

 

‘깻도안’이 누에를 키우고 분양하는 원칙

 

수정: ‘깻도안’에서는 양점업을 하는 농민들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융: 누에가 알에서 깨어나면 보통 네 번의 잠을 잡니다. 처음 알에서 깨었을 때가 1령, 첫 번째 잠을 자고 난 후를 2령이라고 하고, 마지막으로 네 번째 잠을 깨면 5령이 되어 고치를 짓기 시작하죠. ‘깻도안’은 3령까지 누에를 키워서 농민들에게 분양하고 있어요. 이 시기의 누에들은 외부 조건에 굉장히 민감하고 병충해에도 아주 약합니다. 누에치기에는 알맞은 환경과 질 좋은 뽕잎을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죠. 일조량이 부족하거나 불량뽕을 주게 되면 익은 누에 때 병누에가 나오기도 합니다.

 

또 건강한 누에를 기르기 위해서는 온도, 습도, 공기, 채광 등의 기상 환경을 누에의 생리에 맞춰줘야 해요. 예전에는 농민들이 1령부터 누에를 키웠는데 보통 집이나 창고 등 아무런 시설도 갖추지 못한 열악한 환경에서 누에를 쳤기 때문에, 누에고치의 질도 떨어져 생산량도 적었고 병충해로 인한 피해에도 속수무책이었어요.  

 

명주실 뽑기. 1개의 누에고치에서 1천 미터가 넘는 명주실을 얻을 수 있다.  © 아맙 
 
‘깻도안’은 1996년에 누에 전문 배양소를 지어서 고품질의 누에를 키워 농민들에게 분양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배양소는 누에들이 각 시기에 맞게 최적의 환경에서 자랄 수 있도록 해주는 온도, 습도 조절 장치 등을 갖추고 있어요. 덕분에 농민들은 보다 안전한 조건에서 양잠업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리고 누에나 뽕잎 종자에 관한 연구를 하여 농민들에게 보급하는 일도 하고 있고요. 현재 우리에게 누에를 분양 받는 농민은 약 5백에서 1천 가구 정도입니다.

 

수정: 양잠업에 있어 농민들이 겪는 어려움은 어떤 것이 있나요?

 

융: 누에치기가 농민들에게 매달 일정한 소득을 보장하지만, 다른 작물에 비해 많은 노동을 필요로 해요. 햇빛이 쨍쨍 내리쬐거나 거센 비바람이 불어도 매일같이 뽕잎을 따다가 잘게 썰어 먹이를 주어야 하고 누에를 돌보는 데도 손길이 많이 갑니다. 누에는 아주 예민한 동물이라서 날씨가 너무 더워도, 너무 추워도 살 수가 없어요.

 

무엇보다 누에는 안 좋은 잎을 먹거나 먼지, 살충제 등 오염된 환경에 노출되면 쉽게 병에 걸리지요. 그래서 누에 사육실은 소독을 철저히 하고 항상 깨끗하게 유지해야 하고요. 그렇지 않으면 흔히 질병이 발생해 수확이 전혀 없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깻도안’에서도 누에를 분양할 때 누에병으로 손실을 입은 농민들에게 우선 순위를 주는 등의 배려를 하고 있습니다.

 

도시로 떠나는 농민들이 속출하던 시절

 

수정: ‘깻도안’을 설립한 창업자 두 분에 관한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사무실 왼편에 마련된 재단이 아마도 두 분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것 같네요.

 

: ‘깻도안’의 전신인 ‘도안껫’의 창립자 두 분의 이름은 응웬 반 허우와 응웬 탄 응히엡입니다. 빈곤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두 사람은 그 중에서도 가난한 농가에 주목했어요. 1990년 당시 농민들은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먹고 살기 힘들고 점점 빚만 늘어가기 일쑤였죠. 그들의 대부분은 이렇다 할 만한 기술이나 지식을 가지지 못했고 시장에 대한 이해도 없었습니다. 결국 농사를 포기하고 무작정 도시로 떠나는 농민들이 속출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두 사람은 양잠업에 눈을 돌렸습니다. 양잠업이 베트남의 전통 산업일 뿐 아니라 가난한 농민들이 큰 돈 들이지 않고도 쉽게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사업장으로 럼동성의 럼하현을 선택한 것도, 이곳이 양잠업의 최적지인데다 당시 아주 가난한 신경제지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1991년 두 사람은 프랑스의 ‘빈곤 퇴치와 개발을 위한 카톨릭위원회’(CCFD)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와 중국으로 건너가 베트남 양잠업에 적합한 누에종자를 구하고 양잠업 프로젝트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방 정부를 설득하고, 농민들의 요구를 파악하고, 인력을 양성하고, 토지를 구매하는 등 2~3년 준비 기간을 거쳤죠. 1994년에 드디어 실험실을 마련해 누에, 뽕나무 종자를 연구하고 가장 효율적이며 합리적인 누에 배양 시스템을 연구했어요.

 

두 분의 노력 덕분에 지금의 ‘깻도안’이 설 수 있게 되었지요. 안타깝게도 출장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두 분 모두 돌아가셨지만, 자신의 생을 다 바쳐 양잠업의 길을 열어준 선봉자의 업적과 정신을 우리는 늘 잊지 않으려고 합니다. 무엇보다 ‘깻도안’은 가난한 농민들을 위한 사회사업의 길을 걸어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농업이 외국과의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죠” 

 

이른 아침 <깻도안> 배양소에서 누에를 분양받고 있는 농민들.  © 아맙 
 
수정: 지금은 양잠업이 주요 사업이지만 예전에는 수공예품 사업이 번창했다고 들었습니다.

 

융: 럼동성에는 참족, 흐몽족 등의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어요. 예전에는 이들 소수민족이 직접 짠 천으로 수공예 가방을 만들어 주로 프랑스에 수출했습니다. 프랑스의 <아르티장스 뒤 몽드>라는 협동조합을 통해 판매했지요. 그러다 유럽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수출이 중단되었고 지금은 폐업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현재는 양잠업에 집중하고 있고요, 5년 전부터 커피 사업을 다시 시작했는데 아직까지는 단순히 원두를 생산해 판매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가능하다면 고품질의 친환경 커피를 생산, 가공해서 ‘깻도안’의 이름으로 커피 제품을 판매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최근 들어 경제 상황도 좋지 않은데다 ‘깻도안’의 수공예품 사업이 실패한 여파도 커서 현재로선 먼 꿈이지요.

 

수정: 최근 외국계 기업의 베트남 커피 생산량 점유율도 점점 높아지고 있고, 외국기업들이 베트남 커피 최대 생산지인 서부 고원지대의 커피 원료를 매점해서, 전체 커피 생산량의 50~60%를 점유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들었어요. 그래서 커피 농민들이 겪게 된 어려움은 없나요?

 

: 네, 외국기업들이 커피 농장까지 진출해 직접 원두를 사들이고 있죠. 정확한 통계는 모르지만, 럼동성 커피 농장들의 원두를 외국계 기업들이 마구 사들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요. 아직까지는 농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직접적인 피해는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베트남 국내 기업과 외국기업이 서로 경쟁을 하게 되면서 농민들에 대한 가격 압박이 전보다 줄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커피 시장에서 외국계 기업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고, 언젠가 그들이 수매권을 독점하게 되면 당연히 원두 가격을 낮추려 할 겁니다. 그러면 농민들은 아무 대안도 없이 그들의 요구에 굴복할 수밖에 없겠죠.

 

수정: ‘깻도안’은 지난 30년 동안 럼동성의 농민들과 함께 많은 시련의 시간을 극복해왔지요. 앞으로 ‘깻도안’을 어떻게 꾸려가실 계획입니까? 또, 양잠업에 더 주력하실 계획인지, 혹은 다른 사업을 준비 중인지 궁금합니다.

 

융: ‘깻도안’은 농민들과 함께하는 사회적 기업이에요. 한때 프랑스에 수공예품을 수출하면서 번창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양잠업에 집중하여 내실을 기하는 데 충실하려고 해요. 커피 농사는 물론 이제는 양잠업을 비롯한 모든 농업이 다른 나라와의 경쟁을 피할 수 없게 되었죠. 품질과 생산량 관리에 신경 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허나 대부분의 농민들은 이러한 현실을 잘 모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도 모르죠. 그래서 우리의 역할이 크다고 봅니다.

 

‘깻도안’은 누에 배양실을 더 늘릴 계획이고, 더 좋은 종자를 확보해 누에 배양 시스템을 개선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어요. 더 멀리 보자면, 수출 판로가 막히면서 중단되었던 수공예 사업도 다시 이어가야지요.

 

*기록 정리 : 권현우 (아맙 마케팅 팀장)

 

<아맙> 카페: http://cafe.daum.net/doanhnhanxahoi  연락처: 070-7554-5670 (베트남 사무소)
<아맙> 후원 계좌: 신한은행 110-313-503660 (예금주: 김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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