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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아프리카 로드트립>26. 나미비아③ 별무리 아래 캠프파이어
 
애비(Abby)와 장(Jang)은 대학에서 만난 동갑내기 부부입니다. 만 서른되던 해 여름 함께떠나, 해를 따라 서쪽으로 움직인 후 서른둘의 여름에 돌아왔습니다. 그중 100일을 보낸 아프리카에서 만난 사람과 세상의 이야기를 나누려합니다. www.ildaro.com
 
영화 세트장처럼 조용하고 단정한 해변도시
 
나미비아에 사람이 워낙 없다는 말은 줄곧 들었지만, 수도 빈트호크를 제외한 나미비아의 다른 도시들을 지나노라면 매번 “사람이 있기는 한 건가?” 하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줄지어 늘어선 주택과 차들로 누군가가 살고는 있으리라는 짐작만 할 뿐이었다.
 
▲  잘 만들어진 영화 셋트장처럼 단정하고 조용한 해변 도시 스와콥문트  © Abby 
 
하룻밤 머문 이 해변 도시 스와콥문트(Swakopmund)는 독일보다 더 독일스러운 도시의 풍경으로 유명한 꽤 큰 도시라지만, 쓰레기 하나 없이 잘 가꿔진 거리와 집들은 마치 한 철 촬영이 끝나고 더 이상 아무도 찾지 않는 영화 세트장같은 묘한 황량함을 풍겼다. 이런 나라에 살면 고즈넉해 좋을까, 고독해서 고통스러울까.
 
거기에 숙소의 문을 열고 들어서자 사람들은 어찌나 친절하고 분위기는 얼마나 따뜻한지, 마치 대문이 서로 다른 차원과 차원을 잇는 초현실의 입구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  어디 한 번 고독의 끝을 씹어 볼까?
 
아침 일찍 나서는 길, 트렁크에 짐을 실으며 일행이 서로 키득거린다. 설상가상 점입가경, 오늘 우리는 평지에 홀로 솟은 바위산 속으로 들어갈 예정이니, 아마 도를 닦아도 좋을 만큼 한층 깊은 고립감을 자아낼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먹거나 떠들거나’를 이번 여행의 이름으로 하잘 만큼 입에 간식을 넣을 때를 제외하곤 내내 차가 떠나가라 잡담을 멈추지 않는 다섯명의 일행이 달콤쌉싸레한 고독의 맛을 느끼기란 요원한 일이리라.
 
모래평원 위에 홀로 서있는 바위산, 스피츠코프
 
얼마나 달렸을까, 지도를 보지 않아도 길을 알 수 있는 순간이 왔다. 끝도 없는 평평한 모래 평원 위에, 저 멀리 산처럼 높디 높은 화강암의 무더기가 멀리서도 한 눈에 들어왔다. 오늘 우리의 목적지, ‘뾰족 솟은 돔’이라는 뜻의 스피츠코프(Spitzkoppe)다. 저 바위산은 어떻게 저렇게 저기에 혼자 있게 되었을까. 지도를 덮고 산을 향해서만 가 보기로 했다.

 ▲  스피츠코프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1728m, 암벽등반가들이 즐겨 도전하는 매끈한 화강암 산이다.
 
잘 닦인 도로가 끝나고, 차는 서부의 황야를 가로지르듯 먼지 날리는 사막 한복판으로 방향을 틀었다. 지도 없이 오다 보니 정식 출입구가 아닌 뒷문으로 들어가 바위 사이를 헤매다 거꾸로 정문에 닿게 되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지, 누군가 키득거렸다. 그런데 정문도 마치 제대로 된 출입구가 아닌 것처럼, 눈에 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모두들 차에서 내려 굳어진 팔다리를 펴고 여기저기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호주 한가운데의 거대한 암벽 '울룰루(Uluru)'를 찾은 적이 있었다. 사막이라곤 하지만 이 곳과 비교하면 초원에 가까운 사바나의 한가운데 어마어마한 위용의 돌산이 홀로 우뚝 서 있었다. 호주 원주민인 애보리진 사람들에게는 돌아간 조상들의 영혼이 머무는 곳이자, 아주 먼 옛날 거인 형제 둘이 진흙뿐인 세상에서 장난 치며 이리저리 진흙을 치우고 쌓고 그러다 싸우고 울고 하는 중에 하늘과 땅과 바다와 울룰루가 생겼다는 창조 설화에부터 등장하는 성지(聖地)다.
 
울룰루에 이야기가 있고 지나온 빅토리아 폭포엔 잠비아 사람들이 붙인 ‘천둥의 물보라’라는 이름이 있었듯, 대지 위에 뾰족 솟은 이 스피츠코프에도 이 곳 토박이들의 사연과 언어가 얽혀 있을 텐데, 알려진 아무 이야기 없이 식민 지배자의 독일어 명칭만 남아있는 것이 어쩐지 아쉽다. 자신보다 큰 자연에 대한 경외와 호기심의 감수성만큼은, 우리가 옛 사람을 따라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 정부가 아닌 지역사회가 관리하는 스피츠코프 공원은 소박하고 허름하지만 어디에나 사람 손이 닿은 매력이 있었다. 
 
인기척을 느꼈는지 멀리서 부스스한 한 남자가 다가왔다. 중앙 정부에서 관리하는 다른 관광지들과 달리, 스피츠코프는 ‘지역 공동체(local community)’에서 관리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유니폼을 입은 직원도 없고, 돌로 쌓아 만든 관리자 사무실은 작고 허름하고, 손으로 엉성하게 그려 만든 캠핑 사이트 지도는 쿡쿡 웃음이 나올 정도다. 그마저도 일일이 산의 이 곳 저 곳을 다니며 캠핑할 만한 장소를 물색해 말뚝을 박고 그 번호를 표시한 지도에 불과했다.
 
물론 예약 시스템도 없고, 지도를 보며 돌아다니다 다른 텐트와 차가 없는 자리를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다. 돈을 들여서 구축한 캠핑 사이트가 아니니 화장실도 샤워실도 수도도 없다. 미리 그런 정보를 들어둔 터라, 직전의 숙소에서 5리터짜리 식수병 여러개에 물을 담아 준비를 해 왔다. 아프리카에 도착하면서부터 ‘야생’ 타령을 해 온 윤에게는 진정한 ‘야생 체험’의 날이다.
 
한참을 헤매다 나즈막한 바위 아래 나무를 그늘 삼아 차를 멈췄다. 일단 짐만 던져 놓고 함께 근처를 돌아보기로 했다. 여기나 저기나 똑같기만 한 돌덩이 같지만, 지도에는 북한산 ‘물개 바위’나 시드니의 ‘세 자매 봉’처럼 동물이나 사물을 닮은 경치들을 표시해 놓았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바위의 크기나 겹친 모양, 빛을 받는 각도에 따라 산은 꽤 다양한 경치를 자아냈다.
 
‘부시맨’ 산(San)족,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들
 
이윽고 발길이 닿은 곳은, ‘부시맨의 낙원(Bushmen’s Paradise)‘이라는 간판이 붙은 집채만한 너럭 바위 앞이다. 비스듬히 서 있어 벽도 되고 지붕도 되었을 그 바위에는, 몇 번의 사파리 중에도 보지 못한 코뿔소가 선명한 붉은 색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네들이 그린 아주 오래 전의 그림들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 '부시맨의 낙원(Bushmen's Paradise)'에서 벽화를 보는 일행.     © Abby 
 
수풀(Bush)에 사는 사람들이라 하여 부시맨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산(San)족’. 하늘에서 떨어진 콜라병에 기겁하는 인류 최후의 원시인 정도로 폄하되고 희화화되어 알려진 그들은, 문명화된 인간들의 야만으로 멸족의 위기를 겪는 중이다.
 
산족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은 것은 짐바브웨의 마토포스 국립공원(아프리카 로드트립 13화 “마토포스의 코뿔소가 말해주는 것” 참조)에서였다. 주로 채집과 수렵을 하며 물을 찾아 사막을 떠도는 산족은, 다른 인종들과 약간 신체 구조가 다르다.
 
하루를 동행한 가이드 이안(Ian)에게는 몇 사람의 산족 친구가 있어 오래도록 왕래도 하고 얼마간은 같이 지낼 기회도 있었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작고 마른 그들은 앉은 자리에서 10kg쯤, 믿을 수 없을 만큼의 고기를 먹어 치운다. 대신 오래도록 이동을 하거나 사냥을 하지 못해 먹지 않아도 생존이 가능하도록, 엉덩이 쪽에 지방을 저장하는 기관이 있다고 했다. 그 나름의 진화라는 거였다.
 
-  그 부족 관습으론, 결혼하고 싶은 여인이 생기면 남자가 동물의 뼈를 은근히 그녀의 자리에 가져다 놓았어요. 좋으면 뼈를 가져가고, 아니면 그대로 두는 거예요. 철저히 여자의 뜻에 따라요. 아니라면 미련을 두지도 않아요. 나는 그렇게 정중하고 은근한 프로포즈를 본 적이 없어요. 뼈가 없어진 걸 확인하면, 비록 거창한 결혼식은 없지만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동침하죠. 그리고 모두가 그들을 부부로 인정해요. 단순하고 명쾌하지 않아요?
 
이안이 가장 힘주어 한 이야기는 그들이 결코 야만적이지 않다는 점이었다. 사유 재산이 없으니 도둑질의 개념도 없고, 거짓말도 하지 않고(그의 말에 따르면 산족의 어휘에 ‘거짓말’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 서로가 서로를 끝까지 책임지는 부족 공동체.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시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돌과 흙을 이용해 바위에 오래도록 남을 염료를 고안할 줄도 알고, 그리하여 어딜 가나 그림을 남기는 예술적인 사람들. 어딘가로 사라진 그들이 몹시 그립다는 이안의 말은 진심 같았다.
 
나미비아 스피츠코프의 코뿔소 그림을 보며, 문득 이안의 친구였다던 그 산족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 궁금해졌다.
 
산족이 사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 지배자들은 어떤 인류학자들의 무책임한 보고서를 근거 삼아 ‘보호’라는 명분으로 그들을 강제 정착시켜 개화하려 들었고, 산족들의 사냥을 엄격히 금했다. 결과는 멸족, 오래지 않아 산족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정착촌에서 질병과 정신질환에 시달리며 난민처럼 사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원래 살던 사막으로 도망쳐 산족답게 사는 산족은 이제 몇 백명에 불과하다고 한다. 지구상에 남은 ‘몇 백명’의 인종이라니.
 
상전벽해라, 내가 사는 세상은 십 년 전의 풍경을 지금 찾기 힘들만큼 빠르게 변한다. 그런데 산족의 세상은, 천 년이 지나도록 변치 않고 그대로라 했다. 과연 무엇이 더 쉬울까. 한 쪽이 다른 한 쪽보다 더 우월하거나 고결하다 단정할 수 있을까.
 
다만 산족들의 공동체에선 그저 자연스러웠다는 공유 개념, 신의, 사랑, 예술 등의 의미를 곱씹는다. 모든 것을 상대화하는 것이 세련된 세상이지만, 나는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심긴 근원적이고 절대적인 가치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천 년간 변함없이 대물림된 산족들의 삶으로부터, 사람의 한평생에 진정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별이 쏟아지는 저녁, 장작불 주위에 앉아
 
벌써 멀리의 바위산 능선이 색깔을 바꾸기 시작했다. 해거름이 지기 시작했다는 뜻이리라. 오래 밖에서 지내다 보니 달라지는 빛에 몸이 저절로 반응한다. 도시와 달라 빌딩도 무엇도 거칠 것 없는 노을이 바위산에 바로 닿자 세상이 한 번 다시 붉고 푸른 빛으로 일렁였다.
 
연한 와인빛으로 변해가는 바위에 넋을 놓던 윤은 “나 금방 올게!” 하더니 카메라를 지고 저 황혼 너머로 사라졌다. “작품 해 와!” 장이 뒤통수에 대고 소리친다. 아무렴, 배낭 무게에 맞먹는 장비를 지고 온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경쟁자들인데.

▲ 나무 아래의 캠핑장.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꿈꾸던 아마추어 사진가들은 정작 실수로 이 날의 노을 사진을 모두 잃었다. 
 
우리는 우리대로 야생에서의 저녁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안은 나무 아래 수풀 사이 돌을 골라 내고, 민은 오늘 밤 살림을 정리하고, 장은 잠자리를 준비했다. 그런데 낄낄대느라 부주의하게 텐트 설치를 돕던 내가 그만 실수를 하고 말았다. 단단한 텐트의 뼈대와 뼈대가 접합되는 순간 가운데 손가락을 대고 있었던 것. 급히 치운 손가락에서 순식간에 몽울져 주르륵 흐르는 피를 보고 모두 동작이 정지됐다.
 
어느 새 돌아오던 윤이 호들갑스럽게 어, 어, 하며 카메를 제쳐 두고 구급약통을 꺼내왔다. 피를 닦고 약을 발라준다며 제가 손을 덜덜 떠는 윤을 보니 그 와중에 스윽 장난기가 발동했다.
 
-  으아아아악!
 
고통스러운 척하고 발을 구르며 소리를 지르자, 화들짝 놀란 녀석이 약을 떨어뜨리곤 장에게 붕대를 넘겼다. 모두가 그 모습에 배를 잡고 웃었다. 다행히 피가 흐른 것에 비해서는 상처가 깊지 않다. 별로 아프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거친 여행 중엔 약간의 부상이라도 일행에게 부담이 된다. 먼지 많은 곳이니, 만약을 대비해 꼼꼼히 소독을 하고 손가락을 붕대로 칭칭 감쌌다.
 
나는 씩씩대는 윤에게 기세 좋게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이봐, 나는 이제 이렇게 거대한 욕을 날릴 수 있다!
 
-  하여간 미친놈, 조심성 없이. 안 아파서 좋겠다!
 
윤이 열없이 툴툴대며 넌 오늘 저녁에 밥 한다고 설치지 말고 가만히 있어! 하고 엄포를 놓는다.
 
- 우리 캠프 파이어 해요!
- 맞아, 베어 그릴스 아저씨(디스커버리 채널의 생존 다큐 ‘Man vs Wild’의 주인공)라면 당연히 사냥해서 모닥불에 구워 먹었을 거야.
 
민과 안이 일제히 말했다. 그럴까? 모두 순식간에 의기투합, 주변에 흩어져 땔깜을 줍기로 했다. 비록 베어 그릴스만큼은 못하더라도 이렇게 외딴 곳에서의 캠핑엔 역시 모닥불이 제 맛, 도란도란 분위기를 내기에는 좋을 터였다.
 
한참을 돌아다녔지만 불쏘시개나 될까 싶은 잔 가지들만 잔뜩 쌓이고 말았다. “에이, 이래서야 불 모양도 못 내겠다” 하는 찰나, 저 너머의 수풀까지 혼자 갔던 장이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잔가지가 붙은 꽤 굵은 나무 줄기들을 어깨에 짊어진 채였다.
 
보호색이라 칭해도 손색 없는 쑥색 도인 바지에 같은 색 티셔츠, 사파리 모자에 선글라스까지 끼고 장작을 짊어진 그의 모습이 얼마나 잘 어울리던지, 그가 다가오는 모습에 모두가 배가 아프도록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 주워 온 돌과 장작으로 1차 모닥불 준비를 마치고 기뻐하는 일행들 © Abby 
 
민과 안은 피를 보고 깜짝 놀란 윤을 ‘되련님’, 마당쇠처럼 장작을 해 온 장을 ‘짐승남’으로 졸지에 나누어 버렸다. 여행 내내 문명을 벗어난 적은 한 번도 없었건만, 윤은 “늬들 동티모르에서도 장작불로 밥 해 먹었다며!” 하며 붕대를 칭칭 감은 나까지 도매금으로 기인 취급하며 배를 잡고 웃었다. 그러고 보니 본의 아니게 우리 부부의 ‘야만’이 돋보이는 밤이다.
 
타닥타닥, 타오르는 작은 모닥불을 두고 밤이 깊어갔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민과 안의 예능과 연예인 이야기도 이런 밤에는 좀 다르게 들린다. 게다가 오늘은 할 얘기도 많은 날이다. 몇 갤런의 물로 밥을 짓고, 설거지를 하고, 모두 씻고도 넉넉히 물을 남긴 기특한 날! 역시 사람은 환경에 금방 적응하기 마련이다. 그 동안 듣지 못했던 윤의 회사에서의 고생담, 우리들의 여행 이야기, 누군가의 지나간 연애 이야기들이 속붉게 타오르는 장작처럼 은근하게 밤을 이었다.
 
별이 쏟아질 듯 많았다. 은하수가 하늘 한 켠을 가로질렀다. 도시에서도 가끔씩 모두 함께 불을 끄고 밤하늘을 보면 어떨까? 인공적인 빛 없이 밤다운 까만 밤에서 비로소 제 빛들을 발하는 별의 무리들, 안 보여서 없는 줄 알았던 그 별의 무리들이 언제나 인간만큼 그 자리에 빼곡했다는 걸 실감한다.
 
이 땅의 좀 더 많은 존재들이, 좀 더 많은 생명들이 제 삶의 방식을 인정받으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면 얼마나 좋을까? 저 별들이 함께 놓인 하늘이 그러하듯 말이다. 낙원의 흔적만 남긴 채 삶터를 잃은 산족들도, 이 순간 어디선가 평화로이 저 별들을 보고 있기를 조용히 빌었다.  (Abby)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만화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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