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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로드트립> 24. 나미비아① 사막 캠핑
 
[애비(Abby)와 장(Jang)은 대학에서 만난 동갑내기 부부입니다. 만 서른되던 해 여름 함께떠나, 해를 따라 서쪽으로 움직인 후 서른둘의 여름에 돌아왔습니다. 그중 100일을 보낸 아프리카에서 만난 사람과 세상의 이야기를 나누려합니다. www.ildaro.com]
 

왜 아직도 오지 않는 거지? 조금씩 발을 동동 구르며 호스텔 바깥을 기웃대기 시작했다. 장과 친구 윤이 렌터카를 가지러 간 지 벌써 세 시간째, 렌터카 사무실이 걸어서 40분 정도의 거리였으니 이미 돌아왔어야 하는 시간이 훌쩍 넘었다. 렌터카 회사에 전화를 거니 이미 그 곳을 떠난 지 한 시간도 더 지났다고 했다.
 
굽이굽이 언덕, 가난한 캠핑족의 수동차 수난기

▲ 나미비아의 수도, 빈트후크의 번화한 도심 풍경. 우리는 이곳에서 캠핑에 필요한 물품과 자동차를 빌려 에토샤(Ethosha)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MadMike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까. 아무리 안전한 편이라고는 해도 이 곳 역시 아프리카의 도시, 외출한 사람을 두고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한 번 강도를 만난 경험도 있지 않은가! 갑자기 심박이 빨라졌다. 만일을 대비해 경찰서의 위치를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에 리셉션으로 향하는 순간, 헐레벌떡 대문을 열고 들어오는 두 남자가 보였다. 심장이 울렁이도록 걱정하던 마음과는 달리 버럭 큰 소리가 나왔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말도 마, 걸어온 것보다 더 힘들다.
 
붉으락푸르락하는 내 얼굴은 아랑곳 않은 채, 두 사람은 키득키득 너스레를 부리며 리셉션의 소파에 털썩 몸을 묻었다. 그러더니 장이 윤에게 말했다.
 
     내가 말했잖아. 생각보다 아주 어렵거나 생각보다 아주 쉽거나 둘 중 하나라고.
     그래 생각보다 쉽다고 치자. 이제 잘 할 수 있어. 이게 다 애비(Abby) 탓이야,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알고 보니 두 사람은 두 시간동안 호된(?) 운전 연수를 하고 온 터였다. 윤의 말처럼 면허가 없어 겁도 없는 내가 덜컥 수동 기어 차를 빌려 둔 탓이었다. 물론, 마지막 예약 전 “둘 다 수동 면허지?” 하고 확인하기는 했지만, 그리고 한 번도 수동 차를 몰아본 적 없다는 두 사람의 머뭇거림을 감지했지만, “오토는 가격이 두 배야!” 하고 가볍게 그들을 설득해냈다. 우리는 가난한 캠핑족이 아니던가. 당신들은 잘 할 수 있을 거야!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는데, RPM만 치솟고 차가 안 가는 거야. 내가 수동 운전 마지막 해 본 게 언젠지 생각해 보니까 13년 전이야, 면허 딸 때. 면허시험장 트럭 생각하면서 클러치에서 살짝 발을 뗐지. 그랬더니 엔진이 꺼졌어.
     문제는, 우리가 사무실 나온 지 한참 됐는데 아직 주차장을 못 빠져나갔다는 거야. 직원이 당황해서 뛰쳐나와서는 수동 운전 할 줄 아냐고 묻더라구. 당연히 할 줄 안다고 걱정 말고 들어가라고 떠밀어 보냈는데 진짜 진땀나더라. 시동이 걸리기는 했는데 차가 덜덜덜덜, 도로로 겨우 나왔는데 나오자마자 다시 엔진 꺼지고.
 
그들의 무용담이 이어졌다. 가다 서다를 몇 번 반복하고, 뒤차로부터 거세게 욕을 먹고, 할 수 없이 비상등을 켠 채로 뒤차들을 보내며 둘이 번갈아 같은 동네를 수차례 돌았다고 했다. 게다가 윤은 한국과 좌우가 뒤바뀐 오른쪽 운전석에서의 운전은 처음, 몇 번이나 역주행의 위기를 넘겼다. 등줄기에 식은땀 깨나 흘린 끝에, 드디어 ‘시동이 꺼지기 직전에 덜덜거리는 엔진의 미묘한 느낌’을 잡아내곤 둘이 부둥켜안고 울 뻔했다고 언구럭을 떨었다. 그러나 시련은 끝나지 않았으니……. 하필 시내에서 숙소까지 오는 교차로는 모조리 굽이굽이 언덕배기에 있었다고 했다.
 
     평지에서 섰다 출발하는 거랑 언덕에서 출발하는 건 완전히 다른 얘기라고. 우리 정말 진 다 뺐어.
     고생했다 고생했어. 그런데 그 덕에 시간이 빠듯해졌어, 바로 출발해야겠어.
 
그렇게 시작부터 본의 아니게(?) 돈독해진 동지애와 함께 나미비아 여행이 막 열렸다. 나미비아(Namibia)는 ‘아무것도 없다’는 뜻을 지니고 있지만, 실은 바다와 사막, 협곡과 초원의 아름다운 풍경을 두루 갖춘 독특한 나라다. 땅은 넓어 남한의 여덟 배에 이르지만, 인구는 고작 2백만 명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한국에서라면 천 명쯤 살 만한 규모의 마을에, 나미비아에선 다섯명 짜리 한 가족만 산다는 뜻이다. 나미비아는 아무리 붐빈다는 곳에 가도, 아무리 이름난 관광지에 가도 고즈넉하고 텅 빈 고독감을 자아내는 곳이라고 했다. 그래서 ‘아무것도 없다’는 이름을 붙였을까?
 
수도 빈트후크(Windhoek)에서 캠핑장비 대여하기
 
나미비아를 여행하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는 캠핑이다. 전국에 걸쳐 캠핑 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여행객이 많이 찾는 주요 관광지의 경우 캠핑 사이트를 정부에서 일괄 운영하는데 인기가 매우 높다. 우리 역시 빈트후크의 NWR(National Wildlife Reserve) 사무실에서 여정에 따른 몇 일간의 캠핑 예약을 마친 참이었다.

아흐레간 약 2,500킬로미터, 둘이 번갈아 운전하면 무리하지 않고도 충분히 곳곳을 여행할 수 있을 만큼 나라 구석구석 도로가 잘 깔려 있다. 거기에 탄자니아 세렝게티, 보츠와나 초베와 함께 아프리카 3대 야생 공원으로 꼽히는 에토샤(Ethosha) 국립공원은 드물게 여행자가 직접 운전하며 탐험하는 것이 허가된 곳이었다.

▲ 치안이 잘 유지된다는 빈트후크의 분위기는 여행자의 눈에도 남아공에 비해 훨씬 부드럽다.     ©MadMike  
 
지도를 더듬어 캠핑 장비 대여 업체를 찾아가기로 했다. 수도인 이곳 빈트후크(Windhoek)의 인상은 깔끔하다. 잘 구획 지어진 도심을 중심으로 유럽풍의 건물과 현대식의 고층 빌딩이 말끔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오래도록 독일의 식민지였던 탓에 빈트후크, 스와콥문트(Swakopmund) 등 큰 도시의 이름은 독일식이지만, 거리엔 로버트 무가베 스트릿, 넬슨 만델라 애비뉴 등등 대륙의 유명 지도자 이름이 눈에 띄는 것이 재미있다.
 
남아공과는 달리 치안이 잘 유지된다는 이 나라의 수도가 조벅이나 프레토리아와 한 눈에 다른 점은, 기묘한 살기나 긴장이 훨씬 덜하다는 것이었다. 가만히 서서 타인을, 특히 이방인을 뚫어져라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길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도시 곳곳에 있는 잔디밭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 여유로이 햇살을 즐기는 모습도 큰 차이였다. 조벅에서는 대낮에 시내를 걸어 다닌 것만으로 ‘강도당해도 싼 짓을 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였는데.
 
시내를 벗어나자 낮은 집들이 펼쳐진 주택가가 나타났다. 마당이 넓은 어느 집 앞에 당도해 벨을 누르자, 분주하게 창고를 정리하던 몇 명의 흑인 남자들이 문을 열어 주었다. 원한다면 숟가락이나 베개까지 모두 현지에서 빌릴 수 있다는 점도, 나미비아 초행인 우리 같은 초보도 열흘짜리 캠핑 여행을 계획하게 한 편리한 요소다.
 
활달한 백인 여주인은 메일로 미리 전해 둔 리스트를 꼼꼼하게 살피며, 미처 생각지 못했으나 꼭 필요한 것과 빌리려 했으나 굳이 필요치 않은 것을 우리의 행선지와 빌린 차 형편에 맞게 다시 한 번 가려 주었다. 능숙한 일꾼들은 마치 테트리스를 하듯 군용 텐트, 취사용 가스와 버너, 조리도구들, 접이식 의자 등을 작은 차 안에 차곡차곡 빈틈없이 실어 주었다. 고마움을 담아 약간의 팁을 건넸다. 고작 이틀째이지만, 나미비아 역시도 어딜 가나 인구의 6%밖에 되지 않는 백인들이 늘 고용주와 오너의 위치에, 흑인들은 피고용인의 위치에 있다는 것이 새삼 눈에 걸린다.
 
나미비아의 하늘이 내어준 무지개 아래에서
 
     자, 이제 출발이다.
 
조벅에서 날아온 민과 안을 공항에서 태우고 나자 장이 말했다. 윤과 민, 안은 처음 만나는 사이지만, 워낙 수더분하고 붙임성 있는 성격들이라 아무도 낯을 가리지 않았다. 평균연령 30세가 넘는 차 안은 왁자지껄, 마치 고등학생 다섯이 탄 것처럼 시끄럽기 짝이 없어졌다. 밖에서 보면 차가 들썩들썩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 야아, 진짜 나는 이게 서울에서 보던 하늘이랑 같은 하늘인지 의심스럽다!
 
들뜬 표정으로 윤이 말했다. 이미 아프리카에서 지낸 지 몇 개월이 흐른 나머지 네 사람에게는 흘러가는 구름 하나, 지평선으로부터 오묘하게 달라지는 하늘빛의 채도에 열광하는 윤의 모습이 더 재미있었다. 눈이 시린 절경을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동안 어느 새 무뎌진 감각이, 윤의 덕에 새로 깨어나는 기분이었다. 함께 하는 여행이란 이런 것이리라. 좋은 것에 함께 감동하고,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까지 서로 덕에 깨달아 감동과 기쁨이 촘촘해지는.
 
     <13층> 생각난다. 애비, 너 그 영화 알아?
     알지. 왜, 여기가 그 마지막 같아?
 
‘13층’은 인위적으로 프로그래밍된 가상현실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의 말미에 조작된 현실을 깨달은 주인공이 길의 끝을 넘어서는데, 그러면 생생하던 주변의 풍경이 갑자기 컴퓨터 속 그래픽 스케치처럼 지글지글 변해버리고 만다. 그 세상 끝까지 가는 길이, 마치 우리가 달리는 길처럼 생생한 하늘 아래의 오프로드였다.

마침 오늘 우리의 목적지가 사막이니, 윤처럼 마치 세상의 끝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느낌을 가진다 해도 과하지는 않으리라. 아침에 채운 아이스박스의 얼음이 다 녹도록 마을이나 도시가 나타나지 않는 적막한 길이었다.

▲ 노을과 달, 커다란 두 개의 무지개가 어우러진 저녁 하늘의 향연 © Abby  
 
다섯 시간을 예상한 길을 일곱 시간이 넘도록 달렸다. 열심히 달렸으나, 저 멀리 지나가는 우아한 헴스복(뿔이 높고 키가 큰 남아프리카의 산양)에 급히 차를 세워야 했고, 길을 가득 메운 소떼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뜨거운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엔, 이 어설프고 시끄러운 다섯 캠퍼들을 환영하기라도 하듯 하늘이 한 쌍의 무지개를 펼쳐 보여 주었다. 본래 제 모습이 반원이 아니라 거대한 하나의 원임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는 그 거대한 무지개 희미해질 때까지, 모두들 입을 딱 벌린 채 길에 서 있었다. 흰 구름을 붉게 물들인 노을 속에서도 선명하게 오색찬란한 빛의 띠, 그리고 어느 새 그 속에 자리를 잡은 시리도록 하얀 보름달. 아름답고 또 아름다웠다.
 
결국 캠핑 사이트가 문 닫는 시간을 훌쩍 넘긴 캄캄한 밤에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야간 당직을 서는 아저씨가 굳게 잠긴 쇠사슬을 풀어 주었다. 드넓은 나미브 사막의 초입에 있는 캠핑장도 적막하긴 마찬가지다. 어쩌면 나미비아 여행은 이 ‘텅 비어 있음’을 반복해 마주하는 시간이 되리라 짐작한다. 때로는 자유롭고, 때로는 막막하고, 때로는 헛헛할 그 빈 자리에서 무엇을 발견하고 무엇을 채우게 될까.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 저녁 그 호사스러웠던 장관도, 비어 있기에 끝없이 펼쳐질 수 있었던 하늘과 빛의 향연이었으니까.
 
서둘러 텐트를 치고, 남아공에서부터 공수해 온 한국 라면을 끓여 늦은 저녁을 푸짐히 먹고, 좁은 군용 텐트에 다섯이 누웠다. 넷이 나란히 눕고 한 사람은 모로 누운 그 대형이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마치 수학여행 첫 날처럼 킬킬대며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주고받느라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미비아에서의 첫 밤이 깊어간다. (Abby)

 
       * 여성저널리스트들의 유쾌한 실험! 광고없는 미디어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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