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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로드트립> 25. 나미비아② 나미브 사막
애비(Abby)와 장(Jang)은 대학에서 만난 동갑내기 부부입니다. 만 서른되던 해 여름 함께떠나, 해를 따라 서쪽으로 움직인 후 서른둘의 여름에 돌아왔습니다. 그중 100일을 보낸 아프리카에서 만난 사람과 세상의 이야기를 나누려합니다. www.ildaro.com
가장 오래된 사막, 나미브(Namib)의 캠프에서
- 언니, 진짜 대단하지 않아요? 다 말랐어요.
공용 샤워장에서 우리 텐트까지는 불과 100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인데, 막 샤워를 마치고 돌아온 안의 머리가 거의 말라 있었다. 사용한 수건을 널어 두고 밥을 먹으면 그 사이 수건이 바삭바삭해졌다. 캠핑장 안의 수영장에서 물을 뚝뚝 흘리며 나와도, 텐트로 돌아오는 사이에 옷이 얼추 마르기도 했다. 연평균 강수량이 2mm에 불과한 사막의 공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뜨겁고 건조하다. 간혹 눈에 띄는 동물이나 곤충들의 사체도, 땅바닥에 종잇장처럼 말라붙어 징그럽다는 느낌조차 자아내지 않을 정도였다.
▲ 빛과 바람이 빚어낸 고운 선과 음영. 저녁이 되자 푸르스름해지는 나미브. 사막은 시시때때로 색을 바꾼다. © Abby
하여, 한낮은 문명의 세계와는 달리 사막이 가장 고요한 시간이다. 인간도 짐승도, 감히 그 불볕 아래 뜨거운 모래밭에 나설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래 전에 읽은 시에라리온 소년병의 수기가 기억났다. 군대에서 문제를 일으킨 병사들에게 내려지는 가혹한 징벌은, 물병 하나 없는 빈 몸에 신발을 빼앗고 추방하는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땡볕 아래 사막을 걷다 보면 곧 말라 쪼그라지는 폐와 달군 모래에 살점이 뚝뚝 떨어지는 발 때문에 결국 쓰러지고 만다. (주인공은 다행히 인가를 찾을 때까지 버텨낸 후 쓰러져 사경을 헤맨 끝에 살아난다.)
사막은 무서운 곳이다. 그러니 우리도 텐트에 머물며 각자 짐을 정리하거나 낮잠을 청하며 시간을 보냈다. 해가 뜰 때, 혹은 해가 질 때를 틈타 조심조심 발을 옮길 준비를 하는 사막의 여느 동물들처럼.
‘나미브 사막(Namib Desert)’은 나미비아와 윗 나라 앙골라까지 2,000km에 걸쳐 펼쳐져, ‘광활한 곳’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거의 남한 전체에 육박하는 면적을 지닌 거대한 사막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 사막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서양과 몸을 맞대고 있다. 인간의 깜냥으론 헤아릴 수 없이 깊고 넓은 물의 웅덩이 옆에서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메마른 땅이 생겨 났을까.
수많은 사진가들이 이 광대한 바다와 사막이 만나는 기묘한 장관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이 곳에 온다. 하늘 높이에서 이 지역을 찍은 근사한 작품들을 보노라면, 어쩌면 이 바다와 사막은 인간이 존재하지 않던 고대의 거인들이 망중한을 보내던 거대한 해수욕장인지도 모른다는 장난스런 생각이 들곤 했다.
조그만 나라 한두 개를 합친 면적이다 보니, 나미브 사막은 곳곳의 특징이 다르고 이름도 다르다. 어떤 곳은 반건조 사막이라 나지막한 잡목이 끝없이 펼쳐져 있는가 하면, 어떤 곳은 나무 한 그루 없는 기암절벽 바위산이기도 하고, 어떤 곳은 ‘사막’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대로 끝없는 사구가 구비구비 펼쳐져 있다. 그 모래의 바다 중에서도 저 곳의 언덕은 마치 다른 행성에 떨어진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는 창백한 흰 빛이 사방으로 펼쳐지는가 하면, 이 곳의 모래 언덕은 태양빛이 스민 듯 붉은 빛을 띤다.
▲ 아무데도 쉴 곳 없어 보이는 사막에도 햄스복 등의 야생동물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 Abby
우리가 머무는 이 곳 세스림(Sesriem) 캠프는 붉디 붉은 남쪽 사막 지역에 위치해 있다. 붉을수록 오래된 사막이라 했으니, 어쩌면 나미브가 시작된 곳일지도 모른다는 짐작을 해 본다. 세스림은 본격적인 사막 입구로부터 60km 밖에 있는 가장 가까운 캠프로, 주변 다른 마을과는 그보다는 더 거리가 있다. 비록 상주하는 인구 없이 여행객만을 위한 인공적인 캠핑장이지만, 좀더 편안하게 머물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호텔과 부대 시설, 간단한 식료품과 생활용품이 구비된 상점, 주유소와 정비소까지 갖추어진 이 작은 문명 안에서는 별다른 불편을 느낄 수가 없었다.
- 역시 독일 사람들이야.
장의 말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대부분의 관광 자원 개발이 백인들의 주도로 이루어졌으리라 짐작한 때문이었겠지만, 나미비아 한복판의 캠핑장에 감탄하면서 우리도 모르게 나미비아 사람이 아닌 ‘독일 사람들의 깐깐함과 꼼꼼함’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 어쩐지 민망스러워서였다. 식민지 경험이 있는 나라 사람으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경주나 전주에 온 여행객들이 ‘일본인들의 정교함과 단정함’ 운운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리라.
아프리카에서는 시시때때로, 여전히 자신이 살아온 땅의 온전한 주인이 되지 못하는 원주민들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지배자였던 백인들이 대를 이어 살고 있는 남아프리카에서는 특히 그렇다. 이를 테면 하루에 일인당 약 10달러의 저렴한 비용을 지불하는 이 캠핑장도, 정작 여전히 2달러 이하의 하루 소득으로 생활하는 인구가 절반 이상인 이 나라 당사자들에게는 별세계의 이야기이리라.
아프리카에서는 ‘현지 사람들처럼’ 여행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생존과 생계의 문제가 크고 깊은 현지 사람들의 삶에는 대체로 여행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편해지는 한 켠의 심정을, 아프리카 여행에선 어쩔 수 없이 부대껴야 하는 마음이리라 저 명치 아래로 묻어 두곤 했다.
붉은 사막의 능선, 아름답고 두려운 장관
▲ 데드블레이 풍경. 울창한 오아시스였던 곳이 그대로 말라 사막이 되었다. © Abby
이글이글한 태양이 한풀 꺾인 늦은 오후, 첫 번째 출사를 떠났다. 이 남쪽 지역의 사막을 소서스블레이(Sossusvlei)라고 부른다. 원주민어로 ‘블레이’는 습지를, ‘소서스’는 ‘출구가 없는’, ‘죽은’ 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러니 소서스블레이는 ‘죽음의 습지’, 아마도 흘러든 강물이 바다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고였던 저수지쯤 되었을까?
소서스블레이 중 가장 유명한 풍경을 선보이는 ‘데드블레이(Deadvlei)’는 그 흘러든 담수로 형성된 거대한 오아시스, 울창한 숲이 그대로 사막화된 지형이라고 했다. 썩는 것도 물기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 허옇게 말라 갈라진 땅 위에 그대로 검게 말라 죽은 거대한 아카시아 나무의 사체들이 어우러진 풍경은 생과 사를 생각하게 한다고 했었다.
캠프를 떠나 아무것도 없는 길을 한 시간쯤 달렸을까, 주차장처럼 땅을 골라 놓은 곳에 몇 대의 빈 사파리 지프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이 곳이 본격적인 사막의 입구다. 4륜 구동이 아닌 차는 절대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판이 앞에 차를 세우고 걷기로 했다. 사막에서는 사륜구동조차 꼼짝 못하게 빠지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 했다.
함께 걷기 시작했으나 곧 민과 안과 내가 앞섰다. 케이프타운에서 나미비아로 출발할 때부터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완성하리라 언구럭을 부린 장과 윤이 끊임없이 셔터를 누르느라 점점 우리들과 멀어진 탓이었다.
우리 말고는 아무도 걷는 이 없는 늦은 시간, 양 쪽으로 구비구비 펼쳐진 모래의 바다가 끝없이 이어졌다. 모래라고는 하지만 밀가루처럼 곱게 풍화된 터라, 사구의 경사면에는 바람의 흔적이 물결처럼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 그 위로, 언제 지나갔는지 모를 곤충의 발자국이 점점이, 또 다른 방향으로 달린 햄스복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 우리 발자국도 남겨야지, 올라가 볼래!
안과 민이, 가장 먼저 닿은 야트막한 사구에 오르기 시작했다. 허벅허벅 발이 빠지는 모래 언덕에선 서두를수록 힘이 들기만 할 뿐, 아예 신발을 벗고 보드라운 모래가 발을 감싸는 느낌을 만끽하며 천천히 발을 뗐다. 언덕 위에 이르니 좀 더 먼 곳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부드러운 모래가 억겁의 세월로 쌓여 섬세한 칼날처럼 그려진 능선, 그 결을 따라 빛은 근사한 음영을 만들어냈다. 아름답고 두려운 장관 앞에 그저 한참을 앉아 있었다. 간간히 스치는 바람 소리와 바람에 실려 오는 짐승들의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 데드블레이 풍경. 사막을 걷다 보면, 인간은 정말 너무 작다. © Abby
신비했다. 풍뎅이처럼 작은 미물도 제 족적을 남길 수 있지만, 제아무리 큰 맘모스라도 영원한 흔적을 남길 수는 없는 공간. 아마 밤이 지나고 내일이 오면, 바람결에 모든 것이 처음처럼 스러져 있으리라. 그러니 내 발자국에 집착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사막에 오니, 삶은 쌓는 것이 아니라 바람을 따라 흐르고 사그라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삶의 어떤 것이, 세상의 마지막처럼 느껴지는 이 사막에 와도 끝까지 남고, 혹은 사막 근처에만 와도 흔적도 없이 사라질까? 우리 삶의 뒷모습이 이 붉은 사막처럼 곱고 깨끗했으면 좋겠다. 욕심부리지 않고 고집 부리지 않고, 주어진 몫을 깨끗이 소진한 자의 남은 자리만이 이렇게 정갈할 수 있으리라.
- 그만 가자, 이러다가 어두워지겠어. 밤이 되면 뭐가 나타날지 모르잖아.
윤이 다가오며 짐짓 엄살을 부렸다. 그러고 보니 저 멀리의 붉은 사구에는 서서히 보랏빛이 섞이기 시작했다. 우리 눈에는 아직 보이지 않지만, 해는 점점 저물고 대신 막 올라오는 달빛을 받기 시작했다는 뜻이리라. 어느 새 바람이 쌀쌀해져 모두들 긴 팔을 걸쳐 입었다. 사막은 시시각각 색을 바꾸고 온도를 바꾸었다.
어제의 흔적을 지우고 새로이 깨어나는 사막
이튿날, 시끄러운 알람에 눈을 떠 시계를 보니 네 시 반이다. 간밤에도 이야기를 하다 열두 시가 넘어서야 잠을 잔 터라, 모두 잠은 깼으나 천근만근 눈꺼풀을 들어올리기 힘든 눈치다. 첫 날은 불편하기 짝이 없게 느껴졌던 군용 텐트 속 어느새 좀처럼 벗어나기 싫을 만큼 안락한 요람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 십 분 더 자겠다고 미적거리다가는 단 한 번밖에 기회가 없는 일출을 놓치고 만다.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포토그래퍼를 경쟁 상대 삼았으니 이 절경이 더 절박한 장과 윤 중 누군가 먼저 일어나 랜턴을 입에 물고 부스럭대자, 나머지 네 사람도 하나 둘 일어나 눈곱을 떼고 어젯밤 미리 챙겨 둔 도시락과 따뜻한 옷을 챙겼다.
아직 사위가 캄캄한 새벽, 우리의 첫 목적지는 ‘듄 45(Dune 45)’다. 세스림 캠프에서 소서스블레이로 가는 길목의 45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해 있다는 뜻으로 이름 붙여진 거대한 모래 언덕이다. 멀리서 보면 칼날처럼 날카로워 보이는 사구의 모서리를 천천히, 천천히, 줄지어 오르는 인간들의 행렬이 마치 개미 같았다.
높이 150미터의 단단한 언덕은 오 분이면 뛰어오를 만하지만, 같은 높이의 사구는 이야기가 다르다. 첫 발을 딛자 사르륵, 부드러운 모래가 발목을 삼켰다. 후르륵, 모래를 털어내고 또 한 발, 사르륵, 다시 후르륵, 또 한 발, 정상까지 오르자 허벅지가 뻐근하고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부지런히 걸었건만 족히 삼십 분은 걸린 것 같다.
▲ 이미 죽어버린 땅, 사막에서 움트는 해에는 특별한 감동이 있다. © Abby
월몰(月沒)을 처음 보았다. 마치 사구의 표면을 따라 구르듯, 시리고 둥근 달이 조금씩 지고 있었다. 서서히 지평선으로 가라앉아 손톱 끝만큼 남은 달이 스륵 사라지자, 이번엔 모서리의 반대편에서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모두가 깊은 탄성을 지르며 숨을 죽였다. 지평선 부근의 달과 해는 유난히 빨리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저 너머에서 붉은 불의 덩어리가 점점 더 둥글고 커다랗게 떠오르고 있었다. 그 움트는 빛 아래, 어제의 흔적을 지우고 새로이 깨어나는 이 사막을 누가 함부로 죽은 땅이라 할 수 있을까.
- 사막은 내가 왔다 간 거 알기나 하겠어? 그래도 나한텐 나미브가 오래 남을 거야. 살 것 같아. 진짜 살 것 같아.
윤이 말했다. 몇 년간의 고생 끝에 이제 막 사표를 던지고 나온 그의 얼굴에 특별한 감탄과 감동이 번진다. 고소공포증을 이기고 꿋꿋이 칼날 같은 모래산을 오른 안의 표정에서도 두려움이 지워졌다. 어느 외국인 커플은 울컥, 눈물을 보이며 서로를 깊이 포옹했다. 새벽의 신선하고 깨끗한 빛이, 깊이 묵은 가슴 속 찌끼를 비추어 털어 주는 것만 같았다. 새 빛을 쪼인 모래를 가만히 쥐어 보았다. 아직 차가운 모래가 스스스, 기분 좋게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간다.
- 농담 아니야. 이 모래, 한 줌만 주머니에 넣어 가자. 누가 알어?
- 안 돼, 알지? 너도 참, 그렇게 가져가고 싶어?
속삭이는 내 물음에 장이 핀잔하듯 웃었다. 어제부터 유독 모래 욕심이 났다. 이 억겁의 세월을 담은 붉고 고운 모래 한 줌을 유리병에 담아 책상에 둔다면, 오래오래 사막에서의 생각을 잊지 않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사막의 방식과는 반대되는 일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이 곳을 찾는 모든 인간이 나처럼 제 욕심이 소박한 줄 알고 ‘고작 한 줌 두 줌’ 모래를 가져가면, 결국 아름다운 사구 같은 건 남아나지 않으리라.
모래가 달구어지는 것은 금방이라, 모두들 서둘러 언덕을 내려왔다. 덜덜 떨며 한 걸음씩 발을 딛는 안이나 나와 달리, 축지법을 쓰듯 바바바박 모래를 지치며 내려가는 도인 같은 장의 모습에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변함없이 지는 달과 뜨는 해가, 매일매일 새로 밝는 아침이 몹시 새삼스러운 날이었다. (Abby)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만화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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