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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학교폭력 해결, 아이들을 믿어주는 것부터 
  
학교폭력이 부각되자 정부는 학교현장에 경찰력을 동원해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것을 ‘대책’의 일환으로 내놓았다. 그러나 오랜 기간 학교 현장의 변화에 대해 고민해온 이들은 이같은 정부의 학교폭력근절대책이 학생들을 더욱 폭력에 둔감하게 만들 뿐이라고 경고한다. 부산에서 9년간 교육복지사로 일해 온 고윤정님이 교육현장의 구체적 경험을 바탕으로 학교폭력의 본질과 해결 방안을 이야기한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아이들의 변화는 어디에서 오는가

3천원어치 사과 봉지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자 한다.

 
몇 년 전 마을도서관에서 다급히 나를 찾는 전화가 왔다. 갓 20살 넘긴 남자아이가 내 연락처를 묻는다며 빨리 와주길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급히 달려가 아이 얼굴을 확인하며 무척 놀랐다. 남자중학교에 근무 했을 때 학교에서 유명한 사고뭉치로, 타일러도 소용없었고 결석한 날 직접 집으로 찾아간 나에게 화만 내었던 아이다. 결국 퇴학을 당했고, 한동안 걱정했지만 이내 잊어버렸다. 그런 아이가 나를 찾을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수년이 흘러 그 아이는 여자친구가 임신을 했는데 어찌 할 바를 몰라 무작정 내가 데려간 적이 있던 마을도서관에 왔다고 했다. 사실 나에게 그 아이는 더 큰 범죄를 저지르며 살아 갈 것으로 예상되었던 실패한 케이스였다. 그런 그 아이가 직업기술학교에 잘 다니고 있고, 좋은 아빠가 되고 싶어 나를 찾아왔다는 이야기를 하니, 망치에 맞은 듯한 전율을 느꼈다.
 
“선생님이 우리 집에 사과 봉지 몇 번씩 걸어 두고 갔던 것이 갑자기 떠올랐어요. 그 때 만났던 복지사, 동네 어른들 참 좋은 사람들이었어요.”
 
‘참 좋은 사람들’. 나는 그 참 좋은 사람들이라는 말에 학교폭력 문제를 접근하는 데에 큰 전환점을 얻었다. 처벌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는 결과론적 태도가 아니라 ‘과정’과 ‘관점’이 얼마나 중요한지 깊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불량학생 소탕하겠다는 정부, 교육이 무엇인지 아는가?
 

최근 학교폭력의 심각한 면모가 이슈화되면서 정부는 학교폭력근절종합대책을 내놓았다. 별다를 것 없는 내용을 묶어 대책이라는 허울을 입혀 놓은 것도 문제지만, 경찰 개입 강화를 통해 문제를 풀겠다는 방안은 얼마나 정부의 교육 철학이 부재한지를 여실히 보여줬다.

일선학교에 경찰을 배치하고 실적이 좋은 경찰을 특진 시키며, 폭력에 대응하지 못한 교사를 처벌하고, 불량학생 명단을 확보해 심문해서 소탕하겠다는 것이 경찰 개입의 주요 골자다.
 
여기에는 인간에게 소위 ‘반사회적 성향’이 어떻게 확립되는지에 대한 고찰이 전혀 없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반사회적 성향은 ‘사회적 낙인’에 의해 형성된다. 사회가 자신을 실패자나 가치 없는 존재로 여긴다고 인식할 때 외향적으로는 분노가, 내향적으로는 우울감이 증폭된다. 그래서 전인적 인격체 양성을 목적으로 하며 산 날 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아동․청소년이 있는 학교에서는 첫째도, 둘째도 인간의 ‘변화 가능성’을 믿고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교육이다.
 
변화의 가능성을 믿는다는 것은 가해학생에게 면죄부를 주거나 폭력을 한 번쯤 실수로 예사롭게 넘겨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잘못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져야 한다. 그러나 위협과 심문하는 태도로 폭력 가담 학생을 ‘범죄자’로, 교실을 ‘범죄 현장’으로, 학생을 ‘잠재적 범죄군’으로 낙인찍는 접근 방식은 오히려 이들을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되게 만든다.
 
내가 만난, 학교폭력으로 징계 받은 아이들 대개는 징계 자체에 대한 반발보다 그 과정을 문제 삼았다. 수차례 뺨을 맞았거나, 경찰로부터 감옥에 보낸다는 위협을 받으며 분노를 느꼈다고 했다. 학교폭력 예방 위한 경찰교육의 골자도, 폭력을 행한 후 발생되는 사법처리 과정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더군다나 청소년기에는 또래들 간 동일한 감정을 느낄 때 유착관계가 깊어진다. 학교나 사회에 대한 반항심을 가진 학생들은 집단을 형성하고 집단 속에서 파워를 느낀다. 분노로 뭉쳐진 파워는 크기에 따라 더 큰 학교폭력으로 발전해 속칭 ‘일진회’로 변질된다. 이들에게는 범죄군으로 자신을 대하는 경찰이 아니라, 가능성을 믿어주는 ‘참 좋은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감시와 감찰이 일상적 폭력문화를 '더' 키운다
 
아이들이 감시받고 있다는 느끼는 전시 효과를 노리며, 경찰을 학교에 배치시키는 것은 효용성이 없다. 시간이 흐르면 학교 드나드는 경찰관도 일상이 될 뿐이다. 게다가 군대 ‘관심 사병’처럼 불량학생 명단을 자료화해놓고 정기적으로 행동을 관찰하겠다는 경찰의 요구는 인권침해에 해당한다.
 
그렇다고 피해학생들에게 안정감을 주느냐 하면 그렇지도 못한다. 또래에게도, 교사에게도 피해사실을 털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피해학생들이 하루에 몇 번씩 순회를 하는 경찰관을 찾아가는 일은 더욱 어렵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학교의 일상문화로 만들어가야 하는가’이다. 감시와 감찰을 지속하다 보면 그 자체에 무감각해지고, 더 강한 자극이 주어져야 반응하게 된다. 창의적 욕구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 더 큰 폐해를 낳기도 한다.
 
현재 학교폭력 양상은 일부 학생의 일탈행동이 아닌 10대 문화처럼 되어가고 있다. 필자가 지난해 초․중학생 2천8백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던 설문조사가 있다. 그 결과를 보면 학생들의 언어폭력 행위는 광범위해졌다. 불량학생의 필수품인 아웃도어 의류들은 10대들의 교복이 되었고, 학급에서는 ‘몇 명의 하수인을 거느리고 있는지’가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한두 달 안에 근절? 지속적으로 문화를 바꿔야
 
물론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수십 년간 제기된 '경쟁 위주의 교육 시스템'이 발단이다. 그러나 거대한 암 덩어리를 치료하기 위해선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치료법도 병행되어야 한다. 나는 부정적 문화를 긍정적 문화로 바꾸는 노력을 말하고 싶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속적이고 반복적이어야 일상이 되고, 문화가 된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지난달 15일 ‘학교폭력예방 홍보대사 위촉식’에서 “앞으로 한두 달 안에 경찰력을 최대한 투입해 학교폭력을 거의 근절시킨 뒤, 교권확립 등 모든 것을 정상으로 돌려놓겠다”고 밝혔다. 이 얼마나 문화에 무지한 발언인지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교육을 논하는데 있어 아주 오래전부터 거론된 한자성어로 ‘맹모삼천지교’가 있다. 맹자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했다는 뜻으로, 인간의 성장에 있어 환경과 문화의 중요성을 일컫는 대표적인 문구다. 부동산 시장 판세에 학군이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도, 유학 간 자녀 때문에 수년간 홀로 떨어져 가족 뒷바라지를 하는 기러기 아빠가 양산되는 것도, 바로 교육 환경과 문화를 과도하다 싶을 만큼 중요시 여기는 한국 사회의 특징 때문이다.
 
그런데 가장 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학교폭력 문제에서는 ‘한두 달 안에 근절한다’는 어이없는 발언을 자랑이라고 내놓는지 이해할 수 없다.
 
타인을 괴롭히는 쾌감 대신, 함께하는 즐거움을 알도록
 

▲ 군사정권 시절의 폭력적인 학교문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말죽거리잔혹사> 중.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소통과 평화의 문화이다.
 
50분 수업에 10분 휴식, 하교 후 또 학원을 가야만 하는 일상에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는 턱없이 부족하다.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없고, 친구 부모님과 허물없이 지내는 경우도 드물다. 학력평가에 찌든 교사는 하루 7~8시간 수업을 버텨내기도 모자라, 상담 시간을 갖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무리지어 다니지만 단절되어 있는 곳이 지금의 교실이다.
 
학급 구성원들이 돌려가면서 쓰는 학급 일기도 좋고, 비밀 친구를 부활하는 방법도 좋다. 타인의 정신을 괴롭히는 쾌감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다양한 공동체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질 때 단절의 벽은 조금씩 부수어 질 것이다.
 
남자중학교에 근무할 때 담임교사와 한두 시간 시간을 내어 가정 방문을 다녔다. 보호자와 대화하고 고민을 나누고 집안 환경을 이해하는 그 두어 시간의 노력들이, 장기결석자 수를 반으로 줄여주었다. 소통은 그만큼 강력한 힘을 지닌다.
 
그러나 지금 학교현장은 학생들의 고민을 듣고 나누는 상담교사를 진학 교사로 대거 배치시키고, 복지를 통해 학생들의 적응을 지원하는 교육복지사는 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 일선에 상담사를 배치시킨다고 하지만, 이 역시 일시적이며 문제학생 관리라는 측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비폭력을 배우고 어울리는 법을 배우는 학교

폭력은 또다른 폭력이 아니라 평화로 풀어야만 한다. 해군기지를 설치해야 제주도와 한반도의 평화가 오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아끼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비폭력 지역으로 인정받고 지켜나가야 하는 것처럼. 학교폭력도 경찰 개입이 아니라, 평화를 이해하고 실천해보는 경험을 학생들이 직접 하면서 스스로 만들 수 있게 해야 그것이 문화가 된다.
 
부산의 모 학교에서는 ‘간디와 함께 하는 100일 프로젝트’를 벌여 좋은 결과를 내기도 했다. 학생들은 비폭력을 함께 공부하고, 실천 방법을 배우고, 나아진 경험을 나누는 기회를 통해서 타인과 함께 즐겁게 어울리는 법을 배워갔다.
 
대한민국 사람들의 95% 이상이 학교를 경험했고, 앞으로 자라날 세대의 99% 이상이 학교를 다닐 것이다. 이제는 합리적이고 올바른 과정과 깊은 관점으로, 지속적이고 일상적인 문화를 만들기 위한 종합 대책이 진정으로 고민되어야 할 것이다. 
(고윤정 / 여성주의저널 일다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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